<은밀한 생>의 작가 파스칼 키냐르가, '성(性)의 관점에서 바라본 인류 문명사'. 고답적인 성격의 이론서라기보다는 서양 고대 미술사와 문학사, 사상사를 유연하게 넘나드는 철학적 에세이에 가깝다. 그리스-라틴문화, 성에 대한 인식의 비극적 변화와 그리스도교, 현대 프랑스어와 문화에 남아 있는 로마 세계의 흔적을 살필 수 있다.
키냐르에 따르면, 성의 관점에서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는 서구 문명사는 성이 공포와 저주로 변질된 역사이다. 그리고 그 뿌리는 고대 로마 시대, 더 정확히 말해서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제국의 형태로 로마세계를 재정비하던 시기(B.C 18년~A.D 14년)에 있다.
그 시기에 그려진 벽화들(주로 폼페이에서 이뤄진)에 대한 해석을 통해 키냐르는, 그리스인들의 태양빛으로 가득한 에로티시즘이 로마시대에 불안과 공포에 질린 우수(멜랑콜리)로 변화되었음을 논증한다. 그리고 이 시기를 서양 문화의 큰 분기점으로 간주한다.
논증으로 제시된 이야기들(그리스 로마 신화, 그리스 철학, 성서), 고대 희랍어와 라틴어의 변형을 짚어가는 언어의 향연, 그리고 유물과 벽화에 대한 섬세한 세공 같은 묘사가 상당히 매력적이다. 1994년 출간 당시 한 프랑스 언론은 이 책에 '폐허가 된 유적들에 바쳐진 꿈들의 모음집'이란 타이틀을 선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