出版社による書籍紹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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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딜레마 여행』의 저자 줄리언 바지니가 ‘논리의 관절’이 닳아버린 모든 헛소리를 간파한다 넘치는 정보, 너무 많은 이야기들을 접하는 이 시대에, 어떤 사안에 대해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파고든다면 시간이 남아돌거나 따지기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오해를 받기 쉽다. 무엇보다 논리라는 게 구체적으로 어떻게 작동하는지, 우리의 삶에 무슨 쓸모가 있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쉽게 ‘논리적 사고’를 포기하게 마련이다. “어떤 주장이 더 논리적이고 어떤 주장이 더 비논리적인지 확언할 수 없는 경우도 많은데 논리를 연마한다는 게 다 뭐란 말인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애매모호함 속에서도 대략의 ‘수준’을 판별할 수 있는 것이 일상세계이며, 그게 바로 우리가 ‘논리’뿐 아니라 모든 영역에서 ‘수련’을 하는 이유이다. 더불어 ‘그냥 싫어’서 싫은 게 아니라, ‘왜’ 싫은지 말할 수 있는 능력, 무엇보다 논리의 가면을 쓴 거짓말들에 속지 않기 위해 ‘논리’라는 무기가 절실한 것이다. 이런 고민을 함께 할 줄리언 바지니의 새 책 ≪가짜 논리≫가 출간됐다. ≪유쾌한 딜레마 여행≫으로 철학적 논쟁의 실마리를 제공하며, 대중들의 지적 욕구를 자극했던 저자는 특유의 명석함과 위트로 상식과 합리의 가면을 쓴 그럴듯한 말들의 오류를 조목조목 따지고, 습관적으로 반복하던 우리들의 생각에 물음표를 찍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 책의 미덕은 바로 타인의 오류를 통해 자신의 오류를 돌아볼 수 있다는 것이며, 동시에 모든 논리의 출발점에 설 수 있다는 점이다. 상식과 합리의 가면을 쓴 말들이 판치는 세상 ‘그들이 교묘한 걸까, 우리가 순진한 걸까?’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 알았더라면 이런 일은 없을 거다”라는 정치인들의 ‘사후 합리화’(20. 과거 만들기, 85쪽), 논쟁의 핵심을 흐리고, 문제를 해결할 여지는 과소평가하는 엉성한 학자들의 ‘미끄러운 내리막의 오류’(32. 걱정도 팔자, 128쪽), 지나치게 위험을 과장할 뿐 실질적인 수치는 제대로 언급하지 않는 무책임한 언론의 ‘공포 장사’(74. 과도한 걱정이 위험을 부른다, 277쪽) 등 신문이나 인터넷 기사를 훑어보면 이런 논리의 오류들은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저자가 논리의 오류로 지목한 발언들은 뭔가 께름칙하면서도 언뜻 보기엔 정당해 보인다. 이 말은 논리적인 발언과 교묘한 말장난의 구분이 어렵다는 것이고, 그만큼 우리의 일상에 만연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개발도상국에서는 미국에 본사를 둔 다국적 회사에 근무할 경우 자국 평균의 여덟 배에 해당하는 임금을 받는다. 사람들이 그런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서는 이유다. -요한 노베리,≪다국적 자본주의를 위한 변명≫의 저자 “노동력을 착취하는 작업장의 상황이 열악한 건 사실이지만 전문가들은 사람들이 자신의 의지로 그곳을 선택했다는 점을 지적하는데, 형편없는 일이라도 아예 없는 것보다는 낫기 때문이다” -영국 정책분석센터 직업을 선택하는 것은 개인의 문제이므로 착취당하는 것에 ‘불평’할 여지가 없다는 논리는 어떤 면에서는 ‘합리’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동의를 했으므로 아무 문제가 없다는 생각은 몇 가지 이유에서 오류가 있다. 첫째, 사람들이 가끔 끔찍한 선택을 하는 이유는 사실상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둘째, 그게 최선의 선택이라고 해서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상황이 괜찮아지는 건 아니다. 이런 사례는 투약과 수술에 대한 동의를 구하는 의료계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과연 환자에게 의사의 동의를 거부할 자유가 있을까? 또한 나보다 전문가인 의사를 신뢰하지 않을 도리가 있을까? 저자는 “개인의 선택이 오로지 당사자만의 문제가 되려면 그 이후에 벌어지는 상황이 합리적인 기대 수준에서 벗어나지 않는 공정한 것이어야 하며”(46.선택의 함정, 177쪽), 더군다나 “아예 없는 것보다는 낫다”라는 발언은 우리로 하여금 ‘현대판 노예주가 된 듯한 자괴감’에서 벗어나게 해줄 뿐이라고 말하고 있다(61.‘아쉬움’의 경제학, 231쪽). “기권도 합리적인 의사 결정이다. 투표 결과가 자신들에게 안겨줄 혜택에, 자신의 표가 결과를 바꿀 개연성을 곱해서 나온 값이 투표소에 가는 노력보다 작다는 계산을 한 것이다.” - 대니얼 핀켈스타인, <타임스> 내 행동이 수입 억의 행동에 묻혀 사라지는 세상에서는 대부분의 행동이 그만한 노력을 기울일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기 싶다. 게다가 선거 후 원하는 후보가 당선이 안 됐을 경우 우리 역시 대니얼 핀켈스타인처럼 선거가 시간 낭비라는 회의적인 주장을 할 때가 있다. 물론 투표는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게 목적이며, 내 한 표가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없으면 투표는 비합리적인 행동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줄리언 바지니는 “투표에는 다른 목적도 있”음을 지적하며, 경험과 통계에 기반한 염세주의자의 주장을 반박했다. 즉 투표는 “신뢰할 만한 정부를 창출하기 위한 시스템에 참가하는 것 자체가 목적”일 수 있으며, 그러면 “결과가 나의 한 표에 달렸다는 환상을 품지 않고도 투표를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 말은 설사 결과에 영향을 미치고 싶어서 투표를 한다고 해도, 나의 한 표에 당락이 결정된다고 믿는 것과는 다름을 의미한다. 줄리언 바지니는 “어떤 결과도 한 사람의 결정에 좌우되지 않는 게 민주주의의 핵심”임을 역설하며(64. 세상을 바꿀 생각이라면, 242쪽), 합리적인 행동의 여부가 반드시 당장의 결과에 따라 판가름 될 필요도 없다고 말한다. “부실한 논리를 들먹이는 건 적들만이 아니며, 우리가 찬성하는 주장의 근거 역시 함량 미달일 때가 있다” 어떤 주장에 대해 찬성한다고 해서, 그 주장을 뒷받침하는 엉터리 논리까지 찬성할 수 있을까? 저자는 이런 식의 오류야말로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으며, 글을 쓰는 사람보다 그 글을 읽고 재생산하는 사람이 더 쉽게 저지르고 있다고 말한다. 마치 우리가 너무 쉽게 자신이 지지하는 진영(그것이 진보라 하든, 보수라 하든)의 주장은 무조건 믿는 동시에 자신의 의견에 반하는 발언에는 적대시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와 유사한 오류를 부분적인 옹호를 전폭적인 지지로 오해하는 오류(70. 전부 다 나쁘지 않으면 전부 다 좋은 것, 263쪽)라 한다. 부실한 논리에 대한 검증은 우리가 찬성하는 주장에도 가해져야 하며, 아마도 이것이 저자의 의도에 가장 부합하는 방식으로 책을 읽는 길일 것이다. 저자는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은 선하고 합리적이라 생각”하며, 이런 믿음이야말로 “허술한 논리에 면역된” 근본적인 이유라고 말한다. 또한 이런 자만심의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의 추론에서도 늘 빈틈을 꼼꼼히 살펴야 하며, 명료한 사고를 위해서 필요한 것은 어떤 오류의 법칙들을 달달 외우는 것이 아니라, 자명하다고 여겨지는 전제와 주장들에 대해 의심하는 태도”임을 짚어주고 있다. ≪가짜 논리≫는 익숙한 반칙들을 피하는 방법을 익히는 동시에 사유 훈련을 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