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 있는 삶을 향한 카뮈의 탐색과 분투
“작가의 고귀함은 지키기 어려운 두 가지 약속에 영원히 뿌리박혀 있습니다. 알고 있는 사실에 대해 거짓을 말하지 않는 것과 억압에 저항하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사후 50년이 지난 후에도 기억되는 행운을 가진 작가는 많지 않다. 더구나 여전히 사랑을 받고 있으며, 아직까지도 커다란 논쟁거리로 남아 있는 작가는 더욱 드물다. 알베르 카뮈가 바로 그 예외적 사례이다. 허무주의와 《이방인》으로 대표되는 청춘의 상징, 실존주의의 대표 작가, 젊은 나이에 요절해 신화가 된 소설가, 시시포스로 상징되는 반항적 영웅 정신의 증언자, 극작가이자 연출가이며 기자이자 편집자였던 사람 등. 카뮈를 나타내는 수식어는 다양하다. 그러나 한 사람을 표현하는 말이 이토록 많다는 것은 그 사람을 알기 어렵다는 말이기도 하다. 작품과 이름에 비해 ‘인간 카뮈’는 우리에게 모호한 형상으로 남아 있다.
이 책의 저자 로버트 자레츠키는 카뮈가 평생 화두로 삼았던 “부조리, 침묵, 절제, 충실, 반항”이라는 다섯 가지 주제를 통해, 격동하는 시대의 참여 지식인이었던 카뮈의 삶과 작품을 가치 있는 삶을 모색하는 모럴리스트의 계보 속에서 조명한다.
가난한 노동계급 출신의 알제리 태생, 아버지의 전사와 반벙어리가 된 어머니, 일생을 따라다닌 폐결핵의 고통과 레지스탕스 활동, 평생에 걸친 사형제 반대 등 그의 인생에서의 주요한 국면들을 그의 작품들과 연결지어 탐구한 이 책은 20세기의 역사를 자신의 삶과 작품 속에 오롯이 새겨 넣었던 한 인간의 간결한 초상화다.
부조리에서 반항으로 가는 여정
“나는 내가 태어난 빛을 부인할 수도 없지만, 우리 시대의 책임을 거부하고 싶지도 않다."
카뮈에게 ‘부조리’는 인간과 세계 사이의 불일치다. 자기성찰이 주는 그늘을 가져본 적 없는 끝없이 이어지는 현재의 순간순간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처럼 부조리는 그렇게 존재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부조리가 카뮈의 삶과 사상의 최종 결론이 아니라는 것, 즉 인생의 부조리를 깨닫는 것은 목표가 아니라 시작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카뮈는 부조리를 발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려 했다. 이런 태도가 바로 ‘반항’이다. 《반항하는 인간》에서 카뮈는 부조리에서 시작된 성찰을 개인적 차원을 넘어 집단의 차원으로 끌고 가, 역사가 지배하는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선택하고 행동해야 할 것인가를 묻는 질문을 던진다.
부조리와 반항은 카뮈를 논할 때 빠지지 않는 단어지만, 자레츠키는 부조리에서 반항으로 가는 카뮈의 여정에 ‘침묵’과 ‘절제’, 그리고 ‘충실’이라는 이정표들을 배치한다. 카뮈의 침묵은 귀가 어둡고 말을 더듬는 어머니의 침묵에서 기인했다. 그는 프랑스와 알제리를 중재하려는 시도가 실패했을 때 비난을 받으면서도 침묵하는 길을 택했다. 침묵은 비겁한 후퇴라기보다 정치적 폭력에 대한 반항의 표시였다. 카뮈는 반항을 옹호했지만, 반항에도 반드시 한계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정의를 지향했지만 동시에 국가에 의한 살인과 민간인에 대한 테러가 정당화되지 않는 세상을 추구했다. 모자라거나 넘치는 것을 경계하며 중용을 지키려는 카뮈의 고귀하지만 불가능한 이상은 추상적인 거대 담론에 현혹되기를 거부하며 구체적인 인간에게 충실하려는 윤리적 태도를 보여준다. 저자는 부조리에서 반항까지
카뮈의 삶과 사유의 여정을 프랑스 지성사에서 파스칼, 몽테뉴를 잇는 ‘모럴리스트’의 계보 속에서 보여준다.
시대의 모럴리스트 카뮈
“역사를 만드는 이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역사를 견뎌야 하는 이들을 위해 봉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식인 카뮈’가 우리를 끊임없이 불편하게 만든 이유는 그가 가진 관심의 보편성 때문이다. 그는 프랑스의 편도 알제리의 편도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사르트르와 같은 프랑스 지식인들의 편도 아니었다. 노동계급 출신이었던 그는 “역사를 만드는 사람에게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견뎌야 하는 사람”들에게 봉사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인간이 역사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생각한 사르트르와 다른 길을 갈 수밖에 없었다.
《반항하는 인간》을 둘러싸고 사르트르와 치열하게 공방을 펼치던 시기에 그에게 받은 모욕은 ― “당신의 음울한 자만심과 나약함이 한데 얽힌 성격이 언제나 진실을 있는 그대로 말하지 못하도록 사람들을 가로막은 거요.” ― 카뮈에게 깊은 상처를 주었는데, 바로 그의 말에 어느 정도 진실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때문에 모럴리스트로서 카뮈의 위상이 낮아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자기회의에 빠진 불완전하고, 우울하며, 단점이 많지만, 예민하고 열정적이고 영웅적인 카뮈의 역설적 초상이야말로 모럴리스트로서 카뮈의 진면목을 드러낸다. 연대의식과 공동체를 강조한 카뮈의 생각은 철학적 기교 면에서 순진하고 소박하지만 그 단순하지만은 않은 순진함이야말로 당연하게 정당화되던 것들을 문제 삼는 모럴리스트의 미덕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작품들을 관류하고 있는 ‘윤리적인 요구’는 그가 항상 느끼고 있던 지식인과 작가로서 자신의 시대 역사를 멀리해서는 안 된다는 책임감을 반영한다. 그는 자살과 사형제도에 반대했으며 인간을 가해자나 피해자로 만드는 폭력과 잔혹함을 경계했다. 카뮈는 세계는 부조리하며 아무 희망도 허용하지 않지만 우리는 절망에 빠져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모럴리스트였으며, 결국 무심하고 말 없는 세계에 속한 우리들 서로가 전부임을 상기시키는 모럴리스트였다.
서구와 이슬람의 대립, 그 교차점의 카뮈
"존재에 대해서는 절망할 수 있지만, 개개인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역사에 대해서는 절망할 수 없다."
2차 세계대전 전후 식민지 해방의 기운이 전세계에 퍼져나갈 때, 프랑스와 알제리도 폭정과 테러의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렸다. 그 한가운데에 프랑스인도 알제리인도 아닌 노동계급 이주민 출신의 ‘피에 누아르’ 카뮈가 있었다. 프랑스를 고국처럼 느낀 적이 없지만 프랑스어를 사용하고 평생 고독과 유대라는 대립하는 힘 사이에서 분열되었던 회색인 카뮈. 그는 기자로서 식민지 폭력에 항거해 알제리에 새로운 정의가 자리 잡도록 투쟁하는 기사를 썼으며, 자유와 해방을 위한 아랍의 열망은 정당하지만 그 수단으로 사용된 폭력은 잔인할 정도로 부당하다고 단언했다. 또한 널리 알려진 작가이자 지식인으로서 국내외 문제에 대해 뜨겁게 논평하면서 정치적 대의가 있더라도 폭력을 정당화할 수 없다고 촉구했다.
카뮈는 프랑스인과 알제리인 사이에 평화가 가능하다는 불가능한 제안을 목소리 높여 주창했다. 그러나 민간인 휴전에 관한 제안이 거부당하고 양측의 비난과 오해에 부딪치자 침묵을 선택했다. 그 침묵 때문에 친구와 적 모두에게 공격을 받으면서까지 카뮈가 결코 포기하지 않았던 원칙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절제와 중용이었다. 그의 침묵은 ‘말 없는 사람들’에 대한 연대의 표시이자 인간성을 부정하는 자들에게 반항할 때에도 절도를 지켜야 한다는 그의 생각을 보여준다.
카뮈가 사망한 지 50여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지속되고 있는 서구와 이슬람 사이의 갈등과, 북아프리카와 중동에서 일어난 재스민 혁명, 이슬람국가(IS)의 잔혹 행위들은 카뮈가 반항과 폭력에 대해 썼던 시사평론들이 마치 오늘의 우리를 위하여 쓴 것이기라도 한 것처럼 생생하게 다가오게 만든다. 그리고 알제리와 프랑스라는 두 민족 사이의 회색인이 경계인이었던 카뮈가 제시했던 대안들이 현재 진행 중인 이슬람 사태에 대한 대안으로 여전히 유효할 수 있음을 암시한다.
정오의 사상가 카뮈의 살 만한 가치가 있는 인생
“한겨울에도 내 안에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여름이 있다는 걸 나는 마침내 깨달았다.”
카뮈가 동시대 다른 지식인들에 비해 오늘날까지 특별한 이유는 인생과 세계를 사랑한 것에 있다. 그는 치열한 정치 투쟁 중에서도 서정적 아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