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하는 지성 김영란이 안내하는
헌법의 현장
영국의 대헌장, 프랑스 인권선언, 미국 독립선언서,
독일 바이마르 헌법, 그리고 대한민국의 헌법까지
인간의 역사를 만들어 낸 헌법 탄생의 다섯 장면을 관람하다
2014년부터 시작된 풀빛의 청소년 교양시리즈 [비행청소년]이 20번 출간을 맞이했다. 주인공은 《김영란의 헌법 이야기: 인간의 권리를 위한 투쟁의 역사》다. 이 책은 두 종류 책의 맥을 잇는다. 첫 번째 줄기는 2020년 7월에 출간된 같은 제목의 도서 청소년판이다. 기존 도서 내용의 오류를 부분적으로 바로잡고 청소년이 흥미를 가지고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삽화와 사진을 풍성하게 실었다. 두 번째 줄기는 2016년 2월에 출간된 비행청소년 시리즈 10번째 도서 《김영란의 열린 법 이야기》와 내용상 한 세트로 이을 수 있다. 《김영란의 열린 법 이야기》는 법의 기원과 역사, 헌법정신과 법 질서, 법치주의와 법 실현의 시스템이라는 세 개의 큰 주제를 가지고 법의 탄생과 성장의 역사를 조망하는 책이다. 법은 그 시대의 상식을 반영하여 변하고 늘 변해야 한다고 말하며, 주권자로서 시민은 진지한 성찰과 열정적인 토론으로 올바른 법을 만들어 가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법의 민주성을 제시하였다. 법이라는 커다란 범주 안에서 헌법정신을 말했기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 ‘헌법’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는 지금의 시점에 헌법을 따로 논의할 필요를 느껴 이번에 《김영란의 헌법 이야기》에 담은 것이다.
무엇이 헌법이고, 헌법에 우리가 담아야 할 것은 무엇인지 알려 주되 딱딱한 교과서를 읽는 방식이 아닌 한 편의 연극을 관람하듯 느끼도록 구성한 것이 《김영란의 헌법 이야기》다. 대한민국의 국민이 대한민국헌법 개정을 논하는 주체로 제 역할을 다하기 위해 헌법사에서 가장 중요한 네 나라의 헌법 탄생의 장면을 파노라마처럼 펼쳐 보인 뒤, 우리나라 헌법이 시작되고 수정되는 역사를 새기고 앞으로의 헌법개정에 담아야 할 주제를 간접적으로 확인하도록 흐름을 잡았다.
헌법 탄생의 역사가 곧 그 나라의 중요한 역사적 전환의 장면이기에 비행청소년판 《김영란의 헌법 이야기》는 그 역사의 전환점들을 생동감 있는 그림으로 묘사했다. 역사를 생생하게 보여 주는 명화 및 사진까지 친절하게 실어 텍스트를 보지 않고 그림과 사진만을 죽 감상하더라도 당시의 시대상을 충분히 가늠할 수 있을 정도다. 내용과 형식 양 측면에서 한 편의 역사극을 관람하는 느낌을 주도록 심혈을 기울인 비행청소년 시리즈 20번 도서 《김영란의 헌법 이야기: 인간의 권리를 위한 투쟁의 역사》는 청소년과 청소년을 교육하는 분들은 물론 법, 사회, 정치, 그리고 역사를 알고자 하는 모든 사람에게 앎의 즐거움을 선사할 것이다.
헌법 탄생의 다섯 장면
《김영란의 헌법 이야기》에서 첫 번째로 찾아가는 헌법 탄생의 현장은 1215년의 영국이다. 당시 영국의 인구는 약 400만 명이었는데 늘어난 입을 감당하기 위해 새로운 농기구나 물레가 발명되었으며 풍차나 투석기, 말을 이용하는 운송수단들이 사용되는 등 기술적인 진보가 이루어졌다. 빈부격차는 점점 더 심해져 갔지만 노예 노동이 금지되어 농노제가 시작되던 시절이기도 했다. 영주들은 농노들의 노역으로 농사를 지어서 거기서 나온 수익으로 살아갔고 이후에는 점차 직접 장원을 경영하는 대신 소작료를 받는 식으로 변해 갔다. 동시에 부유해진 소작인이 상류사회로 진입하는 경우도 생겼다. 이에 따라 농노제하에서의 자유, 자치도시나 교회의 자유, 상업의 자유 등이 새로운 문제로 대두되던 시대였다.
커다란 변화의 물결을 맞이한 영국 사회에서 가장 큰 고통을 받는 계층은 민중이었다. 왕족들은 평민의 삶에는 관심조차 없이 권력을 쥐기 위해 크고 작은 전쟁을 벌였고, 왕은 귀족들에게 전쟁 비용을 떠넘기게 되면서 세력이 커진 귀족들의 반발은 거세졌다. 이에 귀족들은 영국의 모든 백성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왕의 권한을 제한하고 자유민의 자유를 침해하지 말 것을 요청한 대헌장 승인을 왕에게 요구하기에 이른다. 이것이 그 유명한 1215년의 대헌장이며, 대헌장의 정신은 권리청원, 권리장전으로 이어지면서 영국 헌법으로서 역할하게 된다.
책은 우리에게 익숙한 로빈 후드 이야기로 시작하면서, 윌리엄 1세부터 재판제도의 틀을 다진 헨리 2세, 그리고 대헌장을 승인한 존 왕에 이르는 긴 영국 역사를 훑고 대헌장 조항을 구체적으로 살피면서 그것이 담고 있는 의미를 전한다.
두 번째로 찾아가 본 현장은 1789년의 프랑스 파리다. 연도까지 많은 이가 기억하고 있는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해이자, 영국에서 명예혁명이 일어난 지 꼭 100년 뒤이다. 책은 우리가 잘 아는 장 발장이 주인공인 소설 《레 미제라블》을 가지고 당시 프랑스 사회를 묘사한다. 단순하게 프랑스 혁명을 1789년으로 알고 있지만 그 이후로 공화국과 왕정이 번갈아 등장하는 등 100여 년간 프랑스는 그야말로 혼돈의 도가니였다. 민중의 반란과 인권선언의 발표, 왕과 시위군의 충돌, 단두대 위에 선 왕에 이르기까지 함성으로 가득 차고 피로 얼룩진 프랑스의 긴 혁명의 세월이 책에는 숨 막히게 묘사되어 있다. 인간이 인간으로 살기 위해 치러야 할 커다란 대가가 아쉬움이라는 포장지를 푸니 적나라하게 드러난 셈이다.
세 번째와 네 번째로 찾아간 현장은 영국과의 독립전쟁을 치르고 당당하게 독립을 선언한 1776년의 미국과, 가장 현대적인 헌법이라는 평가를 받는 바이마르 헌법을 제정한 1919년의 독일이다. 물론 1776과 1919는 상징일 뿐 책은 독립선언이 있기까지의 역사와 그 이후의 미국을, 바이마르 헌법을 제정하기까지의 복잡한 정세와 그 이후의 독일을 종합적으로 살핀다. 미국의 독립선언서가 가진 민주주의적인 요소와 그렇지 않은 요소를 분리해 점검하고, 바이마르 헌법이 이후 각 나라 헌법 제정의 틀이 될 만큼 그 내용이 민주주의와 인권을 선언하고 있지만 히틀러라는 괴물을 만들어 낼 만큼 당시 독일이 처한 안타까운 상황은 그것대로 평가하며 책은 객관성을 유지한다.
나라마다 그 시기가 갖는 독특한 상황과 거기서 탄생한 헌법의 전신들은 결국 우리 대한민국에도 커다란 영향을 끼친 바탕이다. 광복과 신탁통치, 그리고 숨 가쁘게 이어져 온 제헌헌법과 그것의 수정들, 1987년 민주화 투쟁을 전후한 대한민국의 근현대 역사를 책이 묘사한 대로 읽어 내려가다 보면 대한민국에서 헌법이 얼마나 처절한 시민의 마음을 올곧이 담고 있으며, 그 마음을 해치지 않기 위해 이제 우리가 해야 할 헌법개정에 얼마나 신중해야 할지 깨닫게 된다.
예술 작품으로 상상하는 역사의 현장
다섯 나라의 엄숙하고 장중한 헌법 탄생의 역사지만 그 이야기들에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것은 당시의 역사를 배경으로 한 친근한 예술 작품들을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 가기 때문이다. 영국의 대헌장이 나오기 전 왕이 절대 권력을 행사하던 시대상은 《로빈 후드의 모험》(하워드 파일 작)을 통해 설명하고, 대헌장이 승인되던 러니미드 평원은 그곳에 세워진 대헌장 승인 800주년 기념관을 담은 사진들이 상상을 돕는다.
프랑스 혁명을 전후한 시대상은 영화와 뮤지컬로도 익숙한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 미제라블》을 가지고 묘사한다. 당시 민중이 겪은 삶의 바닥, 격변하는 사회의 혼돈, 끝이라고 안도할 수 없는 정치 체제의 변화가 소설의 이야기로 대변된다. 거기에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는 단두대라는 프랑스 혁명의 상징물을 제대로 관찰할 수 있게 돕는다.
미국의 정착기는 애니메이션 <포카혼타스>가 그 분위기를 일면 알 수 있게 한다. 토마스 페인의 《상식》, 너새니얼 호손의 소설 《주홍 글자》 는 미국이 자치 국가가 되기 위해 독립을 향해 가는 열망의 시기 그리고 혼돈의 시기를 가늠할 수 있게 한다.
바이마르 헌법이 탄생하기까지 독일 사회가 겪은 모순의 소용돌이는 판화가 케테 콜비츠의 일대기와 작품을 통해 재연된다. 어떠한 정치세력에도 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