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드보일드의 거장이자 펄프 픽션의 제왕”
엘모어 레너드의 고품격 범죄 소설을 만나다
“범죄 소설계의 알렉산더 대왕” “펄프 픽션의 제왕” “하드보일드의 거장” “디트로이트의 디킨스” “살아 있는 전설”…… 미국의 소설가이자 시나리오 작가 엘모어 레너드를 수식하는 말이다. 6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수많은 베스트셀러를 만들어온 그가 미국의 문화에 미치는 영향력은 실로 막강하다. 특히 그는 할리우드가 끊임없이 러브콜을 보내는 작가로 유명하다. 그의 작품 가운데 14편이 영화화되었고 7편이 TV시리즈로 제작되었으며, 많은 배우들이 레너드가 만들어낸 매력적인 캐릭터를 연기해 인기를 얻었다. 국내에도 <겟 쇼티>, <조지 클루니의 표적>, <재키 브라운> 등이 개봉해 크게 히트했다.
영화감독 쿠엔틴 타란티노는 14살 때부터 엘모어 레너드의 작품을 탐독했으며 “아마 내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작가일 것”이라고 인터뷰를 통해 밝힌 바 있다. 그는 학창 시절 엘모어 레너드의 책을 훔치다 붙잡혀 유치장 신세를 지기도 했는데, 훗날 레너드의 소설 『럼 펀치』를 각색한 영화 <재키 브라운>으로 큰 성공을 거두며 멋지게 설욕한다. 영화감독 박찬욱 또한 엘모어 레너드의 열혈 팬임을 자처한다. 그는 레너드가 “노벨문학상 수상자들이 집에서 몰래 읽는 작가로 남을 것”이라며 레너드의 작품의 국내 출간을 반겼다.
‘호러 소설의 마스터’라 불리는 스티븐 킹과 <셔터 아일랜드>의 원작자 데니스 루헤인을 비롯한 수많은 소설가들 역시 엘모어 레너드를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범죄 소설가”라 칭하며 경의를 표하길 주저하지 않는다. 천부적인 이야기꾼인 엘모어 레너드는 서부 소설로 인기를 얻기 시작해 역사 소설, 탐정 소설을 거쳐 마침내 범죄 소설에서 가장 뛰어난 성취를 보였다. 일찍이 미국추리소설작가협회로부터 ‘그랜드 마스터(거장)’의 칭호를 부여 받았고, 2009년에는 미국 펜클럽이 그에게 평생공로상을 수여했다. 펜클럽은 “『라브라바』『프리키 디키』『티쇼밍고 블루스』 등과 같은 레너드의 작품은 범죄 소설 장르의 고전일 뿐 아니라 지난 반세기 동안 발표된 가장 뛰어난 문학 작품들 가운데 하나”라며 장르를 뛰어넘어 그의 문학적 성취를 높이 평가했다. 미국 미시간 주에서는 “디트로이트의 디킨스”라 불리는 엘모어 레너드의 업적을 기리고 그의 작품 세계를 함께 즐기는 동시에 신진 작가를 발굴하는 지역 축제도 열린다. (www.elmoreleonardliteraryartsandfilmfestival.com)
『럼 펀치』 『표적』 『로드 독스』 동시 출간
이처럼 영미권에서 대단한 명성과 영향력을 지닌 베스트셀러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는 그의 작품들이 활발히 소개되지 않아 국내 독자들의 아쉬움이 컸는데, 드디어 엘모어 레너드의 스타일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대표작 3편이 동시에 출간된다. 바로 『럼 펀치』『표적』『로드 독스』가 그것이다. 이 세 권은 “펄프 픽션의 제왕”이라 불리는 레너드만의 분위기를 텍스트뿐 아니라 공감각적으로도 즐길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였다. 스타일리시한 레너드 표 하드보일드의 느낌이 표지에 드러나도록 했고, 본문 용지 또한 중질만화지를 선택해 거칠고 낡은 듯한 느낌을 살렸다. 책을 손에 들고 표지의 거친 감촉을 느끼는 바로 그 순간부터, 독자들을 엘모어 레너드의 세계에 첫발을 들이게 된다.
『럼 펀치』는 1992년에 출간돼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1997년에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영화 <재키 브라운>으로 만들어 또 한 번 크게 히트한 작품이다. 무기 밀매업자 오델이 바하마에서 벌이는 불법 거래(일명 ‘럼 펀치’)를 둘러싸고 모여드는 온갖 인물들과 그들이 얽히고설키며 펼쳐지는 음모와 배반, 거듭되는 반전이 압권인 작품이다.
『표적』은 1996년작으로, 이 작품의 주인공 잭 폴리는 엘모어 레너드가 만들어낸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들 가운데 하나다. 전설적인 은행강도가 탈옥에 성공하려는 순간 우연히 매력적인 보안관과 맞닥뜨리고, 둘이 사랑에 빠지면서 묘한 관계를 맺게 되는 독특한 설정에서 시작한다.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이 조지 클루니, 제니퍼 로페즈 주연의 영화 <표적>으로 만들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함으로써 “레너드의 작품은 가장 영화화하기 좋은 재료”라는 할리우드의 입소문을 또 한 번 입증했다.
『로드 독스』는 2009년에 발표된 엘모어 레너드의 최신작으로, 『표적』의 매력남 잭 폴 리가 다시 한 번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레너드는 잭을 비롯해 이전 작품들에서 창조해 낸 가장 흥미롭고 쿨한 악당들을 선별해 한데 모아놓았다. 그들이 서로 밀고 당기며 펼쳐가는 음모와 배신과 유혹을 다룬 작품으로, 심리 게임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
“화끈한 전개, 귀에 감기는 대사, 강렬한 캐릭터”
엘모어 레너드만의 독특한 스타일과 글쓰기 원칙
어째서 지난 수십 년간 미국 독자들이 엘모어 레너드에 열광해 왔을까? “독자가 건너뛰는 부분이라면 아예 쓰지 않는다”는 그의 원칙대로 군더더기 없는 스토리텔링과 함께 레너드가 만들어내는 독특한 매력의 캐릭터들, 그리고 그들이 나누는 위트와 생동감 넘치는 대화 때문이다. 더불어 범죄자, 사기꾼, 갱, 마약 중독자 등 사회의 어두운 일면을 구성하는 집단에 대한, 혀를 내두를 정도로 사실적인 묘사가 돋보인다. 그러나 그는 세상의 어둠을 철학적으로 해석하려 들지 않는다. 그저 스릴 넘치는 모험담으로 풀어낼 뿐이다. 세월이 흘러도 녹슬지 않는, 아니 오히려 더욱 날카롭게 벼려지는 냉소와 유머로 무장한 채 말이다. 그래서 미국의 작가 지망생들, 그리고 현역 소설가들마저 가장 따르고 싶은 작가로 엘모어 레너드를 꼽는다. 그는 범죄 소설(Crime Fiction) 장르의 전형을 만들어온 장본인이면서, 또한 끊임없이 그것을 파괴하며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해 나간다. 이것이 그가 ‘범죄 문학의 살아 있는 전설’로 불리며 대중성과 문학성을 동시에 인정받는 까닭이다.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는 스웨덴 아카데미가 엘모어 레너드에게 노벨상을 안겨야 마땅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멈추지 않고 페이지 하나하나를 조여 나가는 그의 솜씨는 단연 일품이다. 대화는 긴장이 감돌고, 인물들은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이며, 이야기가 전개되는 속도감은 가히 중력도 벗어날 수준이다. ― 스티븐 킹
이처럼 독자와 평단, 작가들마저 매혹시킨 레너드만의 특별한 스타일은 과연 무엇일까?
무엇보다 그는 캐릭터에 생명력을 불어넣을 줄 안다. 그가 종종 ‘신’으로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게 만들어진 캐릭터는 레너드 작품의 가장 중심을 이룬다. 사건 자체보다 인물의 심리 변화나 성격의 발현이 작품을 이끌어가는 것이다. 그는 “내 작품에서는 플롯보다 인물이 우선한다”고 강조한다. 그렇다고 그가 캐릭터를 창조해 냄에 있어 현실감을 부여하느라 드라마틱한 전형성을 빠뜨리는 법은 결코 없다. 이제 우리에게도 익숙한, 수사관보다 늘 한 발 앞서는 범죄자나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사기꾼, 거칠지만 쿨한 매력의 악당 등은 모두 “엘모어 레너드의 작품에서 튀어나온” 것이다.
그 인물들이 나누는 대화들이 캐릭터를 묘사하고, 사건을 이끌어간다는 것이 또 하나의 레너드 스타일이다. 인물에 대한 직접적인 묘사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 대신 그 인물이 뱉어내는 대사가 그의 캐릭터를 드러내고, 사건을 설명하며, 분위기를 조성한다. 또한 대사들 자체도 읽는 맛이 압권이다. 생동감, 촌철살인, 위트, 유머… 모든 것이 완벽하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레너드 소설을 원작으로 영화를 만들 때 원작의 대사들을 거의 그대로 가져다 썼을 정도.
음모와 배신, 허풍과 속임수가 난무하는 범죄 세계를 그려내는 솜씨도 대단하다. 인간의 특성을 관찰하고 분석하는 작가의 예리한 눈이 없다면, 결코 어디로 튈지 모르는 범죄 세계의 심리 게임을 이토록 흥미진진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