出版社による書籍紹介

“필독서라는 말로 충분치 않다. 물, 또는 공기처럼 본질적이다.” - A. O. 스콧, 「뉴욕 타임스」영화 비평가 미국에게 흑인이란 어떤 존재인가? 불안과 두려움으로 채색된 21세기 미국 흑인의 초상 *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 출간 1년 만에 100만 부 * 2015 전미도서상 수상, 2015 <올해의 책> 최다 수상 2014년 에릭 가너, 무허가로 개비 담배를 팔고 있다가 경찰 체포 과정에서 사망. 2014년 타미르 라이스, 그네에 앉아 장난감 총을 들고 있다가 신고를 받고 도착한 경찰이 쏜 총에 사망. 2014년 마이클 브라운, 엽궐련 몇 갑을 훔친 뒤 경찰관의 총에 맞아 사망……. 그리고 2016년, 댈러스 시에서 전직 흑인 군인이 쏜 총에 백인 경찰 5명 사망. CNN은 뉴스는 <현 상황은 사실상의 내전 상태>라고 보도했다. 미국 사회에 인종 문제를 향한 도발적인 주장을 던지며 커다란 논쟁을 불러온 2015~2016년 미국 출판계 최고의 화제작 『세상과 나 사이Between the World and Me』가 번역 출간되었다. 이 책의 저자 아프리카계 미국인 타네하시 코츠는 오늘날 미국에서 벌어지는 흑인 살해를 단순히 몇몇 인종주의자의 돌발 행동이나 KKK단과 같은 광기 어린 집단들의 문제가 아니라, 노예제를 통해 부를 일군 미국의 <유산과 전통>, 바로 미국의 역사에서 찾고 있다. 미국이 자랑해 온 민주주의의 신화를 깨뜨리는 동시에, <인종>이라는 허상 속에서 권력을 추구해 온 모든 문명을 고발하는 강력한 비평서이다. 또한 백인 사회가 만들어 놓은 차별의 철창 안에서 숨죽여 살아갈 수밖에 없는 흑인 남성의 불안과 공포를 강렬한 언어로 담아내고 있다는 점에서, 20세기 미국 흑인 문학의 계보를 잇는 문제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인종>이란 허상 속에서 세워진 제국 네가 알았으면 하고 바라는 것은 이거야. 미국에서는 검은 몸을 파괴하는 게 전통이라는 거다. 그건 문화유산이다. - 본문 160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미국은 노예해방을 통해 흑인들에게도 자유와 평등권을 제공하고 <지금껏 지상에 존재했던 가장 위대하고 고귀한 국가>라고 자칭한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인종차별은 20세기 중반을 넘어서까지 지속되었고, 오늘날에는 소위 레드라이닝redlining(흑인이 사는 빈곤층 거주 지역에 금융과 소매업 등의 서비스 제공을 제한하는 정책)을 통해 흑인들을 게토(흑인 빈민 지구)로 몰아넣고 있다. 심지어 흑인이 대통령이 된 시대에도, 여전히 많은 흑인들이 보이지 않는 차별에 억압받고 공권력에 의해 터무니없이 많은 수가 살해당하고 있다. 코츠는 이와 같은 차별의 뒤에 무엇이 감춰져 있는지 묻는다. 왜 <나는 왜 세븐일레븐의 주차장에 서 있는 소년들이 총을 꺼내 드는 그런 세상에 살았을까? 저기 저곳, 소행성 너머의 다른 세상(백인들의 교외)에서는 삶이 왜 그렇게도 달랐던 걸까?> 매년 학교에서는 <최루 가스>와 <소방 호스>에 나뒹굴던 과거의 영웅들(흑인 민권 운동가)을 전시하지만, 유독 흑인들에게만 <순종>과 <도덕성>을 강요하는 기분이 드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왜 수많은 흑인들이 주기적으로 경찰의 총에 쓰러지고, 그 경찰은 아무 기소도 받지 않는 걸까? 심지어 흑인 대통령이 당선되고 나서도 그와 같은 폭력은 멈추지 않는 걸까? 도대체 미국에게 흑인은 무엇인가? 이 책에서 코츠는 흑인 차별은 결국 <인종>의 문제가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노예제를 통해 부를 일군 미국에게 흑인은 곧 부(副)의 원천이었다. 이미 권력을 쥔 백인들은 자신들을 부를 유지하기 위해, 아래 계층을 만들어야만 했다. <산 아래 아무것도 없다면 산은 산이 아니기 때문에 계곡에는 항상 누군가 있어야> 했다. 하지만 코츠의 말처럼 이것이 학교에서 마틴 루서 킹과 같은 영웅들을 기념하는 한편에서 백인에게 순종하는 흑인상을 가르쳤던 이유였다. 흑인들의 몸을 억압해야 했다. 주기적인 살해와 폭력을 통해 그들의 위치를 알려 줄 필요가 있었다. <차별>의 본질을 탐구하는 지적 여정 이제야 하는 말이지만, 검은 몸을 하고 〈꿈〉 속을 헤매는 나라 안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질문은 나에겐 평생의 질문이었다. 그리고 이 질문을 좇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그 질문의 답이라는 걸 깨달았다. ­ 본문 23면 대학 시절, 코츠는 검은 피부가 열등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분투하기도 했다. 서구 문명의 <복사본>을 만들고자 그들 못지않은 자신들의 <톨스토이>와 자신들의 <왕>을 찾으려 한 것이다. 그때 코츠를 사로잡은 것은 제국주의 시대 네덜란드 대사와 협상을 벌인 마탐바 왕국(현재 앙골라)의 은징가 여왕이었다. 그녀는 네덜란드 대사가 의자를 내주지 않으면서 자신을 모욕 주려 했을 때, 시녀를 불러 <인간 의자>를 만들게 한 당당한 여성 지도자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 코츠는 자신이 인종주의자의 덫에 걸렸음을 깨닫는다. 코츠에게 그 깨달음은 묵직했다. 결국 여성이든 성적 소수자이든, 다른 어떤 존재든, <인종>의 자리에 무엇을 갖다 놓아도 상관없다는 깨달음이었다. 미국에서는 그것이 하필 흑인이었던 것이다. <인종>은 그냥 허구였다. 차별은 인종이나 성별 등과 같은 차이가 아닌, 권력의 유무에서 생겨난 것이다. 그 점에서 코츠가 백인을 <몽상가>라고 표현한 것을 이해할 수 있다. 그는 백인을 <스스로 백인이라고 믿는 사람들>이라고 지칭한다. 역사적으로 백인 역시 백인으로 범주화되기 이전에 <코르시카인, 웨일스인, 메노파 교도, 유대교도> 등 다른 어떤 존재였다. 다만 흑인들 몸에 가해지는 <호된 채찍질을 통해, 팔다리에 채운 사슬을 통해> 자신들을 하얗게 <세탁>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에겐 우리만의 <그라운드 제로>가 있다 아메리카의 폐허를 굽어보는 내 마음은 냉랭했다. 나에겐 나만의 재앙이 있었으니까. ­ 본문 136면 애초에 미국에서 흑인은 한 번도 <국민>이었던 적이 없었다는 코츠의 도발적인 주장은, 2001년 9?11 테러를 바라보는 냉담한 시선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 사건 1년 전에 그는 하워드 대학교 동창생 프린스 존스를 잃었다. 저명한 의사 어머니를 둔 흑인 중산 계급 출신의 프린스는 그를 범죄 용의자로 오인한 어느 사복 차림의 경찰관에 의해 차 안에서 총에 맞았다. 세계무역센터에서 치솟는 화염을 바라보던 코츠는 오래전 그곳이 흑인들을 경매에 붙이던 자리, 그들을 위한 무덤 터였다는 것을 떠올린다. 빈 라덴 이전에 백인 사회는 똑같은 곳에서 흑인들을 테러했다. 그곳은 바로 흑인들의 <그라운드 제로>였다. 그리고 그 사회를 지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