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리만자로의 눈 7
프랜시스 머콤버의 짧고 행복한 삶 57
깨끗하고 불이 환한 곳 123
하얀 코끼리 같은 산 135
온 땅의 눈 147
심장이 둘인 큰 강 1부 163
심장이 둘인 큰 강 2부 183
이제 내 몸을 뉘며 207
가지 못할 길 225
살인자들 251
사흘간의 바람 273
어떤 일의 끝 297
인디언 마을 309
옮긴이의 말 323
킬리만자로의 눈
アーネスト・ヘミングウェイ · 小説
32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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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세대'의 대표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 헤밍웨이는 1923년 <단편 셋과 시 열 편>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래 꾸준히 단편을 발표해왔고, 압축과 절제로 대표되는 그의 하드보일드한 문체는 짧은 분량에 메시지를 농축해내는 단편에서 빛을 발한다. <킬리만자로의 눈>은 헤밍웨이의 단편들 가운데서도 최고의 이야기로 꼽히는 13편을 엄선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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著者/訳者
レビュー
20+目次
出版社による書籍紹介
소설이 쓰이는 방식을 영원히 바꿔놓았고,
심지어는 잠시 동안 사람들이 스스로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조차 바꿔놓은,
이 사람은 대체 누구인가? _ 레이먼드 카버
어니스트 헤밍웨이.
참전 영웅, 맹수 사냥꾼, 낚시 애호가, 투우 마니아, 네 여자의 남편이었던 남자, 명사들과 어울려 흥청망청 화려한 삶을 살았던 남자. 그리고 작가.
하지만 헤밍웨이의 작품을 읽는 순간 그의 삶을 채운 그 숱한 사건과 기행, 일화 들은 우리의 머릿속에서 사라지고, 우리는 그의 언어가 만들어낸 강렬한 서정에 압도되고, 사로잡혀버린다. 그리고 세간에 비춰진 그의 겉모습에 속아 우리가 만들어낸 선입견을 부끄러워하게 된다. 가장 마지막에 놓은 역할, 하지만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고 대체 불가능한 작가로서의 그의 진면목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삶의 한순간을 포착해 시적인 언어로 승화시킨 헤밍웨이의 단편소설들에서 그의 진가를 확인할 수 있다. 헤밍웨이는 뛰어난 장편소설, 그 가운데서도 『노인과 바다』라는 불후의 걸작으로 각인되어 있어, 그가 70여 편에 달하는 단편소설들을 발표했다는 것, 다른 많은 작가들의 부러움을 살 정도로 뛰어난 단편소설 작가였다는 사실은 상대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헤밍웨이는 1923년 『단편 셋과 시 열 편』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래 꾸준히 단편을 발표해왔고, ‘압축’과 ‘절제’로 대표되는 그의 하드보일드한 문체는 짧은 분량에 메시지를 농축해내는 단편에서 빛을 발한다.
“헤밍웨이에게는 말이 완전히 사라지고 행동만 남는다기보다는, 있어야 할 것 같은 말이 아예 생략되거나 대명사로 대체되고(…), 기존의 언어는 아직 말이 되지 못한 것들로 진입하는 우회로 역할만 하는 경우가 많다. (…) 생략과 우회라는 이런 수법이 최대한 발휘될 수 있는 분야는 단편이며, 그래서 때때로 단편이야말로 헤밍웨이의 진가가 드러나는 영역이라는 말도 들린다.”(옮긴이의 말 중에서)
해럴드 블룸이 미국 현대시인 가운데 가장 탁월하다고 이야기한 월러스 스티븐스는 단편 작가로서의 헤밍웨이를 가리켜 “기이한 현실이라는 주제에 관한 한 현존하는 시인 중 가장 중요한 시인”이라고 평가했으며, 해럴드 블룸 역시 자신의 책에서 “헤밍웨이가 쓴 최고의 단편소설들은 그의 장편소설 가운데 시대물의 한계를 넘어서는 유일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태양은 또다시 떠오른다』조차 능가할 정도로 뛰어나다”(『해럴드 블룸의 독서 기술』)며 상찬하고 있다. 또한 <라이프>는 “헤밍웨이의 스타일은 간결하고 깔끔하면서도 생생하고 풍부하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스타일을 흉내 냈지만 그 누구도 똑같이 해내지 못했다. 그의 단편소설들은 정확함의 모델이다”라고 평했다.
『킬리만자로의 눈』은 이런 헤밍웨이의 단편들 가운데서도 최고의 이야기로 꼽히는 13편을 엄선한 책이다. 헤밍웨이 최고의 단편이자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킬리만자로의 눈」, 헤밍웨이 소설 중 예술적 성취도가 가장 높은 것 가운데 하나인 「프랜시스 머콤버의 짧고 행복한 삶」, 스페인 시절의 경험이 반영된 철학적이고 사색적인 「깨끗하고 불이 환한 곳」「하얀 코끼리 같은 산」을 비롯해, 헤밍웨이의 인생관과 그의 작품이 미학적으로 어떻게 발전해나가는지 그 정수를 보여주는 것으로 유명한 『닉 애덤스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하다 할 수 있는 9편을 함께 모았다(「온 땅의 눈」「심장이 둘인 큰 강 1부」「심장이 둘인 큰 강 2부」「이제 내 몸을 뉘며」「가지 못할 길」「살인자들」「사흘간의 바람」「어떤 일의 끝」「인디언 마을」). 이 가운데 「이제 내 몸을 뉘며」「가지 못할 길」은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작품으로 1차 대전 때 적십자사 운전병으로 참전했던 헤밍웨이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헤밍웨이 사후 출간된 『닉 애덤스 이야기』는 헤밍웨이가 1920년대부터 30년대 사이에 발표한 24개의 이야기와 스케치로, 독립된 단편들의 묶음이자 하나의 장편으로도 읽을 수 있다. 이 책의 주인공은 헤밍웨이의 분신이라 할 수 있는 닉 애덤스로, 우리는 의사인 아버지를 따라 인디언 여인의 분만 현장에 갔다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현실에 눈뜨는 소년 닉, 사랑하던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괴로워하면서도 새로운 희망과 기대에 부푸는 닉, 친구와 스키를 탄 후 술 한잔을 나누는 여유에 행복해하는 청년 닉, 전장에서 극심한 트라우마를 겪으면서 하루하루를 간신히 버텨내는 군인 닉, 전쟁에서 돌아와 자신을 보듬고 치유하기 위해 낚시여행을 떠난 닉의 궤적을 좇아가면서 삶과 죽음, 폭력과 공포, 사랑과 우정, 상실과 허무를 겪어나가며 삶의 비의에 눈뜨는 젊은이의 성장통을 함께 체험하게 된다.
아프리카의 뜨거운 태양 아래서 대면한 공허와 고독
그리고 굴복의 삶을 묵인하는 순간 찾아온 절대 자유
- 「킬리만자로의 눈」
주인공인 작가 해리는 아프리카로 사냥 여행을 왔다 뜻하지 않은 부상을 입고 다리가 썩어 들어가는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그의 주변에는 흉측한 모습의 새들만 배회하며 그의 죽음을 기다리고 있지만, 사실 “그는 아무런 고통도 느끼지 못했고, 통증과 함께 공포도 사라졌다. 이제 그가 느끼는 것이라곤 이게 끝이라는 커다란 피로와 분노뿐이었다. (…) 이제는 잘 쓸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알게 되면 쓰려고 아껴두었던 것들을 영영 쓰지 못할 터였다.”(본문 13?14쪽)
자신의 몫이라 생각하지 않았던 죽음과 대면하고 있는 그를 구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과거의 그 많았던 사랑, 많았던 이야기들과 주변 사람들도 그를 구해줄 수 없다. 지금까지 그토록 반짝반짝 빛나는 것들과 아름다운 것들에 둘러싸여 살아온 그였는데, 다를 것 없는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고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사람들과 어울려 흥청망청 살아온 그였는데, 이제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심한 악취를 내뿜는 죽음과 자신의 삶과 재능을 낭비해온 데 대한 허무, 더는 아무것도 새로 시작할 수 없다는 회한과 고독뿐이었다.
드디어 그는 자신의 인생에서 반복되었던 굴복의 삶을 다시 한번 더 받아들인다. 그리고 더이상 죽음에 개의치 않기로 한다. 그러자 그의 눈앞에 새로운 구원의 세계가 펼쳐진다.
“그의 눈에 보이는 것은 오직 하나, 온 세상처럼 넓고, 크고, 높고, 햇빛을 받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하얗게 빛나는 킬리만자로의 평평한 꼭대기였다. 그 순간 그는 그곳이 그가 가는 곳임을 알았다.”(본문 55쪽)
겁쟁이에서 진짜 남자로 도약하는 마법의 순간… 섬광처럼 찾아온 삶의 정점…
- 「프랜시스 머콤버의 짧고 행복한 삶」
잘생긴 외모에 엄청난 재산, 아름다운 아내까지 부러울 것 없는 프랜시스 머콤버. 아내와 함께 아프리카로 사냥 여행을 온 그는 저녁식사를 마치고 위스키소다를 한 잔 하고 나서 침상에 누웠지만, 잠을 이룰 수 없다. 오전에 있었던 사자 사냥 때문이었다. “그것은 일어났던 그대로 그 자리에 있었고, 어떤 부분은 지울 수 없이 강조되어 있었으며, 그는 그것 때문에 비참한 수치심을 느꼈”(본문 74쪽)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수치심보다 더한 것은 두려움. “한때 자신감이 있던 자리는 완전히 텅 비어버리고 그곳에 차갑고 끈적끈적한 구멍 같은 두려움이 들어”(본문 74쪽)서 있었다. 그는 사자 앞에서 두려움을 느꼈고, 자신이 상처 입힌 사자 앞에서 도망치고 싶어했다. 이 사냥에서 그는 자신이 겁쟁이라는 것을, 많은 것을 가지고 있지만 ‘잘난 미국인 꼬맹이-어른’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만천하에 드러내고 말았다. 결국 자신의 사냥 여행을 돕고 있는 백인 사냥꾼 윌슨이 사자를 해치우고, 그는 알아차린다. 아내가 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자신과 끝을 냈다는 것을.
그러나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머콤버는 자기 모멸감 속에 시달리는 와중에, 자신의 아내가 윌슨과 밤을 보내고 새벽에 들어오는 것을 목격하는 치욕까지 겪는다. 그럼에도 사냥은 계속된다. 모든 모욕에도 머



휘난새
4.0
우리 모두 우리가 하고 있는 일에 가장 잘 맞게 태어난 게 분명해, 그는 생각했다. 무엇을 해서 먹고살든, 거기에 네 재능이 있는 거야. 그는 평생 이런 형태로든 저런 형태로든 생명력을 팔아먹었다.
권희원
2.5
너무 난해하다. 생에서 다 이루지 못한 글과 경험이 무차별적으로 반복적으로 나와 헷갈림. 노인은 죽기전 꿈에서 안전히 비행기를 타고 킬리만자로 꼭대기를 본다. 그는 살고 싶었던 것이다. 삶의 끝은 후회로 가득 차 있고 이루지 못한 꿈은 죽음의 끝자락의 꿈에서 목격한다.
홍순
5.0
재능은 내것이아닌것의 충격
김종욱
3.5
자신의 재능을 등진채 방탕한 삶을 살아온 남자가 삶의 끝에서 느끼는 회환. - 작가 본인을 투영한 인물의 큰 하나의 이야기이자 그 안에 포함된 수많은 단편으로 이루어진 단편집
세리
1.5
아내에게 빌붙어 살던 마초의 마지막 한탄
한찬
1.0
그냥 잘 안 읽혔다.
광인
3.0
기사를 읽는듯 문체가 너무 담담하고 내용은 생략되어 있어서 당췌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소설 쓰기 전 실험작들을 모아둔 느낌.
박준영
4.5
'킬리만자로의 눈'은 헤밍웨이의 다른 작품에서도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실존주의적 삶의 태도와, 헤밍웨이가 생각했던 '이상적인 작가로서의 삶'을 가장 잘 나타내는 작품이다. 글에 재능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재능을 악용하며 단 한 편의 글조차 제대로 쓴 일이 없는 해리는 헤밍웨이의 악우이자 '위대한 개츠비'의 저자인 스콧 F. 피츠제럴드를 투영한 인물이다. 그는 1차 대전에 참전한 군인 출신으로, 전쟁 속에서 다양한 죽음의 이미지를 목격하고 그것을 기록하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고 여기지만 단 한 편의 글조차 쓰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의 영혼의 비곗살을 떼어내기 위한 여행에서 허무하게 죽음을 맞이한다. 해리는 죽음을 앞두고 '어떤 것도 남기고 가기 싫다'라는 말을 한다. 그는 작가로서 다양한 방식으로 상처받고 고통받으며 죽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목격하고 기록해야 했으나 그 의무를 저버리고 그들과 자신을 배신했다. 그는 킬리만자로의 정상과 표범에 대한 생각을 한다. 이는 대비 구도로 묘사된다. 킬리만자로의 정상에 죽어있는 표범과 평원에서 괴저로 죽어가는 해리는 대비되는 존재이다. 얼어붙어 죽은 채 시체를 남긴 표범의 이야기는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회자된다. 그것은 힘든 길을 걸어 온 것에 대한 보상이자, '불멸성'의 상징이다. 그러한 불멸성은 작가로서 자신이 남긴 작품이 죽은 뒤에도 끊임없이 회자되는 것을 통해 드러난다. 킬리만자로 산은 하나의 이상이자 작가로서 올라야만 하는 곳이라고, 헤밍웨이는 말하고 있다. --- 해리는 자신이 글을 써보려 하거나 아내에게 받아쓰기를 시켜보거나 잘만 하면 '모든 것을 한 문장으로 압축해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결국에 아무것도 쓰지 못한채 죽음을 맞이한다. 하지만 그는 마지막 꿈속에서 킬리만자로의 정상을 보며 최후를 맞이한다. 그는 비록 작가로서 표범과 같은 삶을 살지 못했지만, 죽기 전에나마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작가로서의 정체성과 작가에게 과연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표범이 그곳에서 찾고 있었던 것-를 깨닫고 죽은 것이다. 해리는 아무것도 쓰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그가 죽기 직전에 했던 회상은 자신이 1인 독자인 최후의 글쓰기였으며, 그는 그것을 통해 최후에나마 작가로서의 존엄과 삶의 의미를 찾은 채, 파멸할지언정 패배하지 않은 채 생을 마감한다. --- 해리가 최후의 순간 느꼈던 '아주 잘 쓴 하나의 문단에 모든 것을 집어넣을 수 있는 것'은 헤밍웨이가 말하는 '단 하나의 진실한 문장'이자 '하드보일드 문체', '빙산 이론'을 주장했던 그가 작가로서 지향하는 궁극적인 목표이다. 그의 노벨상 수상 연설문에서도 알 수 있듯, 그는 작가라면 누구나 성취감 너머에 있는 그 무엇을 이루기 위해 다시 시도하는 새로운 시작을 통해 날마나 영원성 또는 영원성의 부재를 마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한 작가로서의 사상을 '잃어버린 세대'들이 느꼈던 죽음에 대한 허무함과 삶에 대한 실존주의적 고찰을 통해 어우러지게 전달하는 이야기 방식은 경탄스러울 따름이다. 이는 비단 작가들에게만, '잃어버린 세대'들에게만 적용되는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 모두 해리가 그러했듯 괴저로 인해 고통조차 느끼지 못하며 서서히 평원에서 죽어가는 중일지도 모르겠다. 표범은 킬리만자로 정상에서 무엇을 찾고자 했는가? 우리는 그 답을 알 수 없지만 표범이 끝내 정상에 시체를 남긴 의미-삶의 의미-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필요성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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