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현산의 현대시 산고

황현산 · 詩
30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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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이자 불문학자, 황현산의 유고 평론집. 우리 시대 시의 '제 살아 있는 힘'을 일깨우는 비평가인 동시에 그 까다롭다는 프랑스 현대시의 가장 탁월한 주해자이기도 했던 그가 '시와 끊임없이 교섭하'며 마주한, '시가 가르쳐준' 깊이들을 넓은 품으로 아울렀다. 시에 낯선 이에겐 문으로 들어서자는 노크일 것이고, '문학의 밀림' 앞에 서 있는 이에겐 '앞서간 발자국'이 될 것이다. 그 제목이 '산고(散稿)'인 것은 현대시에 관한 "논문도 비평도 아닌 글"이라는 뜻일 테다. 그러나 "양쪽 모두이면서 어느 쪽도 아닌" 글로써, '수의를 마름질하는 것과도 같은' 팍팍한 작업에서 벗어나 '문학을 맨얼굴로 대면'하는 가뜬한 읽기를 돕는다. 그의 평론집으로만 보자면 <말과 시간의 깊이> <잘 표현된 불행>에 이어 세번째에 놓이겠으나, 언제든 비평에 붙은 더께를 벗고 "시를 우리에게서 해방"시킬 태세가 되어 있다. 시의 기쁨을 알게 하고 비평의 즐거움을 깨우치는 선생의 '영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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著者/訳者

レビュー

4

目次

책을 펴내며 ·························· 4 이육사의 안 좋은 시들 1 ···················· 9 이육사의 안 좋은 시들 2 ··················· 23 시를 번역하는 일······················· 37 섬의 상징 섬의 서사 ····················· 61 산문시와 음악 ························ 75 전쟁과 자연 ························· 91 「미라보 다리」의 추억 ···················· 107 김수영의 꽃과 꽃잎들 ···················· 121 백석의 『사슴』······················· 135 김종삼의 ‘베르가마스크’와 ‘라산스카’ 1 ············ 147 김종삼의 ‘베르가마스크’와 ‘라산스카’ 2 ············ 161 발레리의 주지주의와 영검 없는 시··············· 179 전봉건의 「어느 토요일」··················· 195 아름다운 문학청년 최하림 ·················· 211 이육사의 포도와 김수영의 꽃 ················· 227 박서원을 위하여 ······················ 243 두 개의 달 ························· 261 부기 | 젊은 비평가를 위한 잡다한 조언 ············· 275

出版社による書籍紹介

● 편집자의 책 소개 “설렘이 없는 시는 영검 없이 젯밥만 축내는 귀신과 같다.” 『밤이 선생이다』 황현산 선생이 유고로 남긴 시에 관한 끝없는 이야기 ‘시’는 최초의 무후했던 기억을 현실을 관통하여 미래에 던진다. ‘시인’은 슬퍼하는 인간이지만 또한 의지의 인간이다. 문학평론가이자 불문학자, 황현산 선생의 유고 평론집 『황현산의 현대시 산고』를 펴낸다. 우리 시대 시의 ‘제 살아 있는 힘’을 일깨우는 비평가인 동시에 그 까다롭다는 프랑스 현대시의 가장 탁월한 주해자이기도 했던 그가 ‘시와 끊임없이 교섭하’며 마주한, ‘시가 가르쳐준’ 깊이들을 넓은 품으로 아울렀다. 시에 낯선 이에겐 문으로 들어서자는 노크일 것이고, ‘문학의 밀림’ 앞에 서 있는 이에겐 ‘앞서간 발자국’이 될 것이다. 그 제목이 ‘산고(散稿)’인 것은 현대시에 관한 “논문도 비평도 아닌 글”이라는 뜻일 테다. 그러나 “양쪽 모두이면서 어느 쪽도 아닌” 글로써, ‘수의를 마름질하는 것과도 같은’ 팍팍한 작업(『잘 표현된 불행』, 6쪽)에서 벗어나 ‘문학을 맨얼굴로 대면’하는 가뜬한 읽기를 돕는다. 그의 평론집으로만 보자면 『말과 시간의 깊이』 『잘 표현된 불행』에 이어 세번째에 놓이겠으나, 언제든 비평에 붙은 더께를 벗고 “시를 우리에게서 해방”시킬 태세가 되어 있다. 시의 기쁨을 알게 하고 비평의 즐거움을 깨우치는 선생의 ‘영검’이다. 나는 오래전부터 시에 관해서, 특히 한국의 현대시에 관해서, 논문도 비평도 아닌 글, 양쪽 모두이면서 어느 쪽도 아닌 글, 내가 읽은 시들이 저절로 말하는 것 같은, 그래서 말이 말을 이어가는 것 같은 그런 글을 쓰고 싶었다. 그 욕망에서 이 연재를 시작하지만, 필경 내가 쓰는 글이 내 희망대로 이어지지는 않으리라는 것을 나는 글을 쓰기도 전에 짐작한다. (……) 그렇더라도 이 연재에 두서가 없으리라는 생각을 하면 유쾌하다. 여기도 더듬어보고 저기도 찔러보는 일이 자칫 시간의 엄연한 질서를 허물기도 하겠지만, 이 기율위반을 탓하지 않을 만큼 시간은 충분히 너그럽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책을 펴내며」 중에서 희망도 하나의 연습이다. 좌절의 땅에서는 그 연습이 불가능하다. 『황현산의 현대시 산고』는 2012년 여름부터 2017년 봄까지 『문예중앙』에 연재했던 글을 한데 모은 책이다. 시작하기에 앞서 “내가 쓰는 글이 내 희망대로 이어지지는 않으리라는 것” “이 연재에 두서가 없으리라는 생각”부터 털어놓는 목소리는 더할 수 없이 유쾌하다.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던 그 말쑥한 고백과도 궤가 같다. 그에게 ‘명랑하기’는 윤리였다. “늘 희망을 가지려고 애쓰고 다른 사람들을 사랑해야만” 지킬 수 있는 것(『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 126쪽). 쓰는 이의 윤리, 선생의 명랑함으로 책머리를 열었다. 안으로는 이육사, 백석, 김수영, 김종삼, 전봉건에 이르는 한국시사의 기둥들, 밖으로는 말라르메, 아폴리네르, 발레리라는 프랑스 시의 면면까지 뻗었으니, 그 품도 폭도 참으로 넓다. 익히 알려진 시인들에게서 미처 발굴되지 못한, 가려져 있던 “비밀의 광맥”을 찾아내는 것이 선생의 특출함이다. 그는 줄곧 시인들의 변호인을 자처해왔다. 삐친 혹을 감싼다는 뜻이 아니라 감춰진 빛을 밝히고 내보이는 일이다. ‘안 좋은’ 시로 저평가된 이육사의 시편들이 “육사의 기개에, 그러나 너무 협소하게 이해된 기개에, 눌려 있는 것”임을 짚어내며 그의 “일관된 정신” “역사적 시간에 대한 믿음”을 구제할 때, 백석이 “샤머니즘에 탐닉했다”는 주장에 맞서 “그가 무속에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비추며 그 현대성을 복기할 때, 우리는 선생이 건네는 통찰이 미처 손타지 않은, 비평의 ‘텃밭’에서 온 시의 ‘열매’임을 알게 된다. 지성은 우리를 감탄하게 하고 존경하게는 하지만 우리에게 감동을 주지는 않는다. 황현산은 빼어난 비평가인 동시에 가장 믿을 만한 번역가이기도 했다. 아폴리네르, 보들레르, 말라르메 등 걸출한 시편들이 그의 살핌으로 우리말 새 옷을 입었다. 이 책에서도 그 도저한 식견의 한 귀퉁이를 열어보인다. 「두 개의 달」에서는 아폴리네르의 ‘신소리’, 말꼬리 하나에서 “말의 내기에 자신의 미래를 모두 걸고 있는” 시인을 발견하며, ‘「미라보 다리」의 추억’을 말할 때는 소위 ‘초월 번역’이라 불리는, ‘원문보다 더 나은 번역’이 진실된 것인가 의심한다. 결코 길지 않은 각각의 글은 여정을 읊는 대신 그 입구를 일러주는 지도다. “튼튼하지만 녹이 슨 철문”, 시의 세계는 그 너머에 있는 “오래된 정원”과도 같다(「김종삼의 ‘베르가마스크’와 ‘라산스카’ 2」). 선생의 글이 그 문을 여는 가볍고 맞춤한 열쇠가 될 것이다. 한 편의 시를 번역하는 여정을 따라밟아보는 일도 새로운 즐거움이다. 「시를 번역하는 일」은 말라르메의 소네트를 번역하며 세 번에 걸쳐 ‘실패하는’ 기록이다. “결국 시는 번역될 수 없다는 일반적인 생각을 다시 확인하기 위해 이제까지 쓸데없이 긴 수고를 한 셈”이라며 너스레를 놓지만, 선생은 “이 실패를 통해 원문의 지속적 생명을 확인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아내는 것이 번역의 목적지임을 알고 있다. 그는 결코 앎을 뽐내지 않는다. 문학은 ‘모름’으로 참여하고, 어려움으로 ‘감동하는’ 일이다. 그러나 나는 여기서 이런 이유를 들어 시의 번역 불가능성을 강조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이다. 역설적인 말 같지만, 시의 번역 불가능성이 그에 대한 번역의 필요성을 만들어낸다고 할 수 있다. (……) 번역 작업은 원문이 지닌 지속적·미래적 성숙성을 다른 언어 풍토에 그대로 옮겨놓기에 성공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 생명에 참여하는 한 방법이 될 수는 있다. ―「시를 번역하는 일」 중에서 가장 쉽게 잃어버리는 것이 또한 낙원이다. 시는 잃어버린 것을 마음에 묻어두고 다시 얻어야 할 것을 생각해낸다. 말미에는 「젊은 비평가를 위한 잡다한 조언」을 덧붙였다. 다가올 시대에 대한 근심인 척 써내려간, 앞으로의 세대를 향한 프러포즈다. ‘산고’가 부산하지 않듯 ‘잡다’한 조언도 난삽하지 않다. ‘산고’도 ‘잡다’도 그다운 겸손의 표현일 것이다. 조언이라 달았으되 가르침이 아니라 물음이다. “당신보다 더 날카로운 칼이 어디 있겠는가” 물어올 때, “당신은 고백할 것이 많다” 끄덕일 때. 지금 현장의 글 쓰는 이들, 거기 있냐는 물음이겠다. 문학으로 또 만나자는 부름이겠다. 그는 언제나 ‘듣는 선생’이었던 사람, 손이 아닌 귀로 쓰는 사람이었으니까. “만해나 소월은 없어진 사람들이 아니며, 저 고인들의 역사를 제 역사로 여기지 않는 젊은이는 젊은이가 아니다. 시가 가르쳐준 바에 따르자면 그렇다.”(「책을 펴내며」) 이제 와서 이들의 시를 ‘다시’ 읽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읽어야 하는 이유다. 그의 비평은 여전히 지금, 언제나 현장이다. “현장의 사상가는 늘 명랑하다”는 선생의 말을 뒤집어, 명랑한 글이 그를 영원한 현장에 살게도 할 것이다. 온갖 재능의 사치는 생명의 행복을 증명하지만, 제 재능이나 남의 재능이나 재능이 거기 있음을 보고 행복할 줄 아는 능력은 생명의 위엄을 증명한다. ―부기 「젊은 비평가를 위한 잡다한 조언」 중에서 시가 한 구절 태어날 때 세상이 바뀌고 꽃이 한 구절 태어날 때 다른 세상이 온다.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 『잘 표현된 불행』으로 맞은 것이 선생의 1주기였으니, 어느덧 그 그리움으로 2주기를 지나며 엮은 책이다. 생전의 저서 『밤이 선생이다』 『황현산의 사소한 부탁』, 번역서 아폴리네르의 『동물시집』까지 난다와 함께한 책이 여섯 권. 그 여섯번째가 마침 난다에서 펴내는 백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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