出版社による書籍紹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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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진흥위원회는 한국 영화의 정사와 기록을 발굴하고 정리하는 의미에서 제작된 극영화 가운데 우수한 시나리오를 선정하여 1983년부터 매년 ≪한국 시나리오 선집≫을 발간하고 있다. 2004년 한국시나리오 선집에는 총 10편의 시나리오가 선정되어, [귀여워], [말죽거리 잔혹사], [범죄의 재구성], [빈집], [송환], [아는 여자], [알포인트],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인어공주], [태극기 휘날리며]가 수록되었다. ≪한국 시나리오 선집≫은 2004년 한국 영화의 흐름을 요약하면서 동시대에 가장 뛰어난 작품성과 시나리오 완성도를 가늠해 볼 수 있는 기초 자료가 될 것이다. [책의 특징] 김기덕 영화의 근간은 화합할 수 없는 환경에 파괴하고 파멸하는 인간들이 아니다. 더불어 그의 영화는 현실적인 고뇌의 영속에 바쳐진 것도 아니다. [섬]의 마지막 장면에서 나룻배 위에 누운 나신의 여인처럼, [나쁜 남자]의 마지막 장면에서 여자는 몸을 팔고 남자는 그런 여자를 보좌하는 기이한 평화처럼, 김기덕의 영화는 후미에 이르러 무심히 상징적인 초월을 갈망한다. 이것이 표면적인 이야기로 노골화된 것은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을 지나면서부터다. 동양적인 해탈과 명상의 아우라를 전면에 내세운 이 영화는 전적으로 현실의 고통을 초극하려는 의지에 헌사돼 있었다. 종교적 우화를 빌어 화해와 용서를 갈망하는 [사마리아]도 마찬가지였고, 그것은 [빈집]에 이르러 지극한 형식 화법으로 재생된다. 빈집만 골라 숨어사는 태석(재희)과 그가 탈출시킨 매 맞는 아내 선화(이승연)의 도심 로드무비는 드라마 상으로 별다른 이야기가 없다. 태석이 선화의 남편에게 3번 아이언 골프채를 휘둘렀을 때 현실의 폭력과의 이별식은 간단하게 끝이 났다. 이제 두 사람은 그들만의 명상적 여정에 돌입한다. 태석이 더 이상 옮겨다닐 것도 없이 빈집의 완전한 주인으로 거듭나는 길은 누구의 눈에도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성공한다. 교도소에 갇혔던 그가 좁디좁은 감방에서조차 교도관의 눈에 띄지 않는 방법을 발견했을 때, 선화의 집에서 남편의 눈에 포착되지 않고도 충분한 일상을 누리게 됐을 때 이 이야기는 이미 현실 너머에 있다. 김기덕은 초라한 인간 군상들이 더 이상 어디에도 집착할 것 없이 자유로울 수 있는 해탈의 경지로 존재의 무라는 철학적 사유를 끌어들인다. [빈집]은 이 같은 평화의 제례를 납득할 만한 상징들의 연속으로 풀어내고 있다. 그 상징들은 나름의 재기발랄한 호흡까지 갖추고 있다. 김기덕은 이 영화에서도 작은 단상으로 풍요한 난장을 만들어내는 장기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_[작품 해설]중에서 [머리말] 혁신과 변종을 넘나드는 다양한 실험들 2004 한국시나리오선집 심사 총평 2003년의 한국 영화는 2004년에 두 가지 유산을 남겼다. 하나는 박찬욱 감독 등으로 대변되는 이른바 신작가주의의 징후였으며, 다른 하나는 해가 바뀌는 시점에 형성된 천만 명 관객 시대의 도래였다. 2003년엔 주목할 만한 세 편의 영화가 등장했는데, 그것은 장준환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와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였다. 이 세 편은 각각 다른 결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공통적으로 감독의 역량에 거의 모든 것이 맡겨졌다는 점에서 신작가주의의 태동을 알렸다. [지구를 지켜라!]는 영화광 세대가 배출한 감독이 자신이 흡수했던 각종 영화적 취향에 거칠 것 없는 상상력을 결부시킨 한국 영화계의 돌진적 사생아였다는 점에서, [살인의 추억]은 작가적 세공력을 2003년의 주요한 키워드 중 하나인 웰메이드 영화의 조건들과 머리 좋게 악수시켰다는 점에서, [올드보이]는 지극한 비주류 취향의 작가성이 대중의 결핍된 욕구와 결합을 이루었다는 점에서 각각 다른 표정을 지었지만, 바로 그러한 점들의 다층적 분포로 인해 이후 한국 영화들에 연출자의 강력한 선도와 상상의 확장을 촉발시킨 새로운 형태의 작가주의를 탄생시켰다. 신작가주의의 태동은 감독의 사유 체계가 전적으로 상업영화의 논리와 이별했던 과거에 비해 관객들에게 소구될 수 있는 상업적 바탕을 유인했다는 면에서 매우 의미심장한 사건이었다. 그리고 2000만 명이 넘는 관객이 오로지 두 편의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을 찾는 전대미문의 풍경이 펼쳐졌다. 강우석 감독의 [실미도]는 은폐된 역사에 대한 관객들의 공격적 분노를 신파로 마감 처리해 파장을 일으켰으며, 강제규 감독의 [태극기 휘날리며]는 한국 영화 기술력의 진일보와 함께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대작 영화가 가능하다는 자신감을 선포했다. 천만 명 관객 시대가 남긴 것은 이렇듯 외연적으로 확장된 한국 영화 시장의 내면을 어떻게 하면 촘촘히 다질 수 있을 것이냐에 관한 만만치 않은 숙제였다. 과연, 극장 스코어가 천만 명을 돌파함과 동시에 한국 영화 산업의 외강내핍형 부실에 관한 우려들이 쏟아지기 시작했고, 역설적으로 천만 명 관객 시대는 한국 영화 위기론의 도화선으로 작용했다. 이제 공은 2004년으로 굴러들어왔다. 연출자들의 능력을 갈구하는 신작가주의의 분위기는 충무로에 새로운 아이디어, 새로운 영화에 대한 욕망을 불러일으켰으며, 천만 명 관객의 성과는 영화계에 더 많은 자본이 투여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했다. 그런데 천만 명 관객 시대의 비약적 풍요는 그 시작부터 투자자들과의 역설적인 동거를 예상하고 있었다. 한국 영화계에 진입한 금융 자본을 비롯, 각종 펀드와 자본들은 상업적 가능성이 높은 프로젝트에 집중적으로 돈을 쏟아부을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이 시점에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가 대성공을 거두자 자본의 촉각이 다시 곤두섰고 언제든 돈을 끌어들일 수 있는 가능성은 더욱 충분해졌다. 하지만 천만 명 관객을 모은 두 영화와 같은, 제작비 100억 원을 호가하는 프로젝트가 하루아침에 착수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영화라는 상품의 자본 단기 회수성을 눈여겨 본 자본 주체로선 대체재가 필요했고, 충무로의 입장에서도 눈앞에서 돈이 사라지는 걸 두고 볼 순 없었다. 이 간극에 등장한 것이 30억∼50억 원 제작비 규모의 중급 프로젝트들이었고, 이들이 신속히 후속작을 낼 수 있는 요충지는 바로 시나리오였다. 상업적 가능성을 인정받은 신작가주의가 극장가에 전진 배치할 수 있는 최대의 무기 역시 바로 새로운 상상력으로 무장한 신선한 이야기, 곧 답습을 벗은 시나리오였다(2004년 개봉작 중 호평을 받은 영화의 대부분에서 감독과 시나리오 작가가 동일 인물이라는 사실은 상상력의 원천이 신작가주의에 포함된 감독들 자신이었음을 말해준다). 이렇게 2003년으로부터 넘겨받은 신작가주의와 천만 명 관객 시대의 키워드는 상업적 접점을 찾는다. 2004년에 등장한 중급 제작비 규모의 다양한 영화들이 이전에 비해 더욱 강화된 시나리오로 질주할 수 있었던 데에는 이 같은 요인이 작용하고 있었다. (중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