出版社による書籍紹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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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 속에서도 작가적 양심과 지성인으로서의 자각을 아프게 지켜나갔던 오래 잊혀왔지만 그의 문학적 가치마저 지워낼 수는 없었던 작가, 허준 허준은 1936년 비평가 백철에게 추천되면서 “금일 창작의 최고봉”이라는 찬사를 받은 작품 「탁류」를 『조광』에 발표하여 소설가로 등단했다. 그는 1940년대 초반까지 활발한 창작 활동을 이어가며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잔등」 「습작실에서」 등의 대표작을 발표하다가 1941년 만주로 건너가 독립운동에 투신하였다. 해방 후에는 귀국하여 홍명희, 임화, 박태원 등과 함께 활동하였고, 한국전쟁 직전 월북하여 이후의 행적이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그의 작품은 미완성작까지 포함해도 열 편 남짓뿐이지만, 배제의 전선이 복잡하게 그어지던 해방 전후에도 엄격한 윤리적 글쓰기를 지향하며 “식민지 시대의 분노와 복수심, 해방의 감격과 무질서를 뛰어넘는 새로운 인간 정신”을 모색하고자 한 허준이 한국의 소설사에서 차지하고 있는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한국문학전집 허준 중단편선 『잔등』은 허준의 전작을 망라하기보다는 미학적으로 의미 있는 작품을 선하여 수록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으며, 중간에 자료가 멸실되거나 연재가 중단된 작품(「황매일지」 「임풍전 씨의 일기」 등)과 일본어로 발표된 콩트(「습작실로부터」) 등은 수록하지 않았다. 이번 선집에서는 다양한 판본들의 대조로 텍스트의 정확성을 높였으며, 조선어와 일본어의 이중어문학적 측면과 당시대의 방언을 최대한 살리고자 노력했다. 더불어 이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주석 또한 상세히 달았다. 이 책은 허준 문학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그의 진면목을 재조명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잔등」, 혁명의 가혹함과 상처받은 타자에 대한 연민 이 책의 표제작으로 선정된 작품이자, 허준의 가장 잘 알려진 대표작 「잔등」은 이러한 허준의 작가적 관심이 이동해가는 데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 해방과 귀향의 감격에 휩싸여 있는 현실과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면서, 격동기에 나타난 다양한 삶의 태도를 냉정하게 그려낸 수작이다. 이 작품의 이야기는 주인공과 그의 친구 ‘방(方)’이 만주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여로를 중심으로 구조화되어 있다. 주인공 ‘나’는 장춘에서 청진까지 오던 중 열차를 놓쳐 함께 오던 ‘방’과 헤어지고, 뱀장어를 잡아서 일본인에게 파는 소년을 만난다. 하지만 이 소년의 본업이 숨어 있는 일본인을 알아내 고발하는 것임을 알게 되고, 복수심으로 가득 찬 소년의 모습을 망연히 바라보게 된다. 한편 독립운동을 하다 죽은 외아들을 가슴에 품고서도 피난 가는 일본인마저 동정의 눈길로 바라보는 국밥 장수 할머니를 보며 가슴속에 혼재된 비애와 관용의 마음을 발견한다. 해방의 감격이 넘치는 귀향길 위에서도 주인공은 감격과 설렘보다 비애와 허무를 느끼게 되었음을 제시하는 이 소설은 격동의 상황과 거리를 유지하며 역사를 바라보는 또 다른 시각과 진정한 인간애의 모습을 담담하게 제시한다. 순정한 소설가의 절망과 좌절 너의 문학은 어째 오늘날도 흥분이 없느냐, 왜 그리 희열이 없이 차기만 하냐, 새 시대의 거족적인 투쟁과 열기 속에 자그마한 감격은 있어도 좋을 것이 아니냐고들 하는 사람이 있는 데는 나는 반드시 진심으로 감복하지 아니한다. 민족의 생리를 문학적으로 감득하는 방도에 있어서, 다시 말하면 문학을 두고 지금껏 알아오고 느껴오는 방도에 있어서 반드시 나는 그들과 같은 방향에 서서 같은 조망을 가질 수 없음을 아니 느낄 수 없는 까닭이다._1946년 9월 을유문화사에서 나온 『잔등』의 서문 해방 이후 민족으로의 귀환이 마땅한 것으로 종용되었던 상황에서 열정적인 주체로 거듭나야 한다는 세간의 요구에 대해 자신이 생각하는 문학의 방향과 전망은 다르다는 점을 작품으로써 거듭 밝혀온 허준은 그의 문학사적 입지와 그간의 꾸준한 연구에도 불구하고 월북 작가라는 틀에 갇혀 남한에서 크게 알려지지 않은 작가가 되었다. 하지만 막막한 현실에서 답보적인 체념을 느끼면서도 자신의 윤리를 꾸준하게 고수해온 그의 작가 정신은 언제나 유효하다. 내면주의에서 현실인식으로 허준은 1930년대 후반 일제의 파시즘이 노골화된 시기에, 지식인이 겪는 불안의식과 허무주의를 형상화한 작품을 발표하며 본격적인 창작을 시작했다. 허준 소설의 주인공들은 주로 존재론적 의미의 불확정성 속에서 살 수밖에 없는 인간의 숙명에 순응하는 지식인들로 그려지곤 하는데, 특히 해방 이전의 작품인 「탁류」와 「습작실에서」 등에서는 불안감, 허무감, 고독감에 사로잡혀 내면세계에 칩거한 채 현실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지식인의 자의식과 심리를 매우 개성적인 문체로 치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러한 내면주의 경향은 해방 이후 작품에서도 부분적으로 드러나 「잔등」의 주인공처럼 격동에 휩쓸리지 않으면서 자의식을 견고하게 유지하는 인물로 등장하기도 하지만, 「습작실에서」에서 고독한 개인의 내면을 집중했던 것과 달리 「속습작실」에서는 관심이 현실 인식으로 전환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렇듯 그의 작품 세계는 변모의 과정을 거친다. 1948년 월북하기 전에 남한에서 마지막으로 발표한 소설인 「평대저울」에 이르러 소설적 아름다움이 수사적인 것이 아니라 작가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진정성과 핍진성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그의 변화는 뚜렷하게 드러난다. 김동리가 허준 소설의 니힐리즘을 ‘강렬한 윤리적 의의’로 평가했던 것처럼, 내면세계에 천착해온 지식인이 현실에 새롭게 눈뜨는 과정을 통해 시대적 요구와 지성적 통찰로 자신의 주체성을 정립해나간 작가로 평가받을 만하다. 이 책은 ‘허준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시대와 결합한 한국 근현대문학의 한 지점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며, 균형 잡힌 시각으로 우리 문학사를 바로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