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1867년, 일본의 네 번째 천주교 대박해 사건을 배경으로 한 <마지막 순교자>와 1950년도부터 프랑스 리옹대학에서의 유학시절에 겪었던 살아 있는 경험들과 어릴 적 부모를 따라 중국 다례에서 살며 경험했던 일들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이 책의 타이틀 작품인 <마지막 순교자>는 저자의 나이 36세 때 발표한 작품으로, 7년 후 발표하여 그의 역작이 된 [침묵]의 원형이 되는 작품이다. 두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일본 천주교사에서의 <순교와 배교>는 저자가 일생을 통해 고민해왔고 또한 독자에게 던지는 물음이기도 하다.
이 책 첫 번째 글 <마지막 순교자>에 등장하는 주인공 키스케가 보여주는 하느님을 향한 신앙을 통해 순교에 대해 깊이 묵상하게 한다.
둘째 편부터는 저자가 전후 일본인으로서는 처음으로 프랑스 리옹대학에서 유학생활을 하게 되면서 경험하게 된 일들을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다. 코릿지관(館)에서는 저자가 코릿지관이라는 기숙사에서 다양한 종족의 학생들 틈에서 유일한 동양인 학생으로서 부딪치게 되는 괴리감, 소외감, 비굴함, 배신감 등을 잔잔히 그리고 있다. 저자는 그 속에서 현실과 타협하며 진실을 드러내지 못하는 자신의 아픈 양심의 가책을 스스로 고백한다.
세 번째 <주르당병원>에서 주인공은 유학생활 중에 발견된 결핵으로 낯선 이방인들 틈에서 투병생활을 하게 된다. 같은 일본인 유학생인 칸노에 비해 늘 자신 없고 약한 모습만을 보이게 되는 주인공의 열등감은 <마지막 순교자>에 등장하는 키스케와 같은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으며 자신의 열등감은 상대를 향한 미움, 더 나아가 증오의 수준까지 이르게 되지만 이는 역설적이게도 매사 약삭빠르고 현실에 따라 자신의 모습을 쉽게 바꾸는 칸노에 대한 인간으로서의 마지막 양심을 저버리지 않기 위한 최후의 몸부림임을 알 수 있다.
네 번째 <타향의 벗>에서는 유학시절 같은 유학생으로 일본에서 온 시코쿠 구니오를 등장시킨다. 그의 매사 약삭빠르게 처신하는 모습은 ‘악’으로 비춰질 수 있으나 저자는 결코 악으로 규정하지 않고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인간 내면의 유약함은 결국 자기 자신에게 있던 비굴함과 동일시하며 그를 용서한다.
<군종신부>에서는 리옹대학에서 주인공과 같은 학교에서 공부하던 친구가 주인공에게 보낸 서간이다. 이 서간에서 프랑스인 친구가 알제리로 파병되어 겪게 되는 일들과 전쟁의 참상을 담담하고 생생하게 그리고 있으며 등장하는 군종신부의 입을 빌려 전쟁의 정당성에 대해 논쟁한다. 어린이와 힘없는 농부들이 참혹하게 죽어가는 전장에서, 침묵하시는 하느님의 얼음과도 같은 차가움을 보면서 일본에는 하느님을 믿는 종교가 없다고 말했던 오래 전 학창시절에 나눈 대화를 마지막 화두로 던지고 있다. 박해시대 때 그랬던 것처럼 과연 하느님은 침묵만 하고 계시는 것일까? 진정 우리에게 침묵만 하고 계시는 것일까.....
<여름의 빛>은, 일본 식민 시절 중국 다롄에서 일어난 식수오염 사건을 모티브로 한 이야기다. 누군가에 의해 온 동네의 우물물이 납 가루로 오염되자 마을 사람들은 죄 없는 중국인 노역자 한 명을 지목해 그를 희생양으로 삼아 모진 매질과 추장으로 그들 두려움의 소통구로 이용한다. 그 예날, 군중들에 의해 옷 벗김 당함과 침 뱉음과 가시면류관을 쓰게 되는 예수님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면서 오늘날 우리들도 죄 없는 누군가에게 씌우는 가시면류관이 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엔도 슈사쿠는 이 책에서, 우리들 속에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는 인간 내면의 유약함을 그리고자 했다. 그 유약함이 하느님을 향한 배신으로 나타날 때 내재된 약함과 악함은 하느님께 매달리라고 주신 축복의 선물임을 알 수 있다.
그 옛날, 군중들이 그분께 씌웠던 가시면류관을 오늘날 나는 가까운 이웃에게 수도 없이 많이 씌우고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분의 희생이 헛되지 않았음을 깨닫게 되는 순간, 죄스러움으로 아린 가슴을 쓸어내리게 된다. 그것은 또한 그분이 치른 십자가 희생의 몫으로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아는 순간이기도 하다.
세기를 뛰어 넘어, 책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보여주는 유약함은 누구에게나 있으나 애써 외면하게 되는, 그래서 어려운 일에 닥칠 때마다 내면을 혼란스럽게 하는 그 무엇과 절묘하게 겹친다. 그러나 책을 다 읽어 내려가다 보면 어느새 스스로의 아픈 마음을 치유하는 힘과 자정(自靜) 능력이 생기는 참으로 신비로운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