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청춘들이 열광한 걸출한 역사판타지 코미디
<노다메 칸타빌레> 다마키 히로시, 아야세 하루카 주연 후지 TV 드라마 <사슴남자> 원작
독창적 스타일과 세계관, 뛰어난 오락성, 현실과 잘 어우러지는 역사를 가미한 판타지로 색다른 소설 읽기의 즐거움을 선사하는 마키메 마나부의 <사슴남자>가 작가정신 일본소설 스물두 번째 작품으로 출간되었다.
<가모가와 호루모>로 제4회 보일드에그즈 신인상을 수상하고 데뷔한 마키메는, 동명의 드라마로 제작돼 일본은 물론 대만에서도 사랑받은 두 번째 소설 <사슴남자>로 단번에 나오키상 후보에 오르고, 연속해서 두 작품을 일본서점대상 베스트 텐에 올려놓아 문학성과 함께 대중적 인기를 입증한 작가다.
<사슴남자>는 일본의 고도古都, 나라의 한 여고에 임시교사로 부임한 스물여덟 살 ‘신경쇠약’ 청년이 얼굴이 사슴으로 변해가는 ‘사슴남자’가 되어가면서 지진으로부터 세상을 구하기 위해 분투한다는 내용을 담은 역사판타지 코미디다. 몽골 여행 중 순록을 보고 글감을 떠올린 저자는 순록을 나라의 ‘사슴’으로 대체하고 매직 리얼리즘의 대표작 <백 년의 고독>처럼 비현실적 요소로 현실세계의 일부를 구성하는 유머 있는 작품을 써보고자 구상했다. 여기에 캐릭터와 작품의 배경 일부를 나츠메 소세키의 <도련님>(1906)에 대한 오마주로 설정하여, 컬러의 현대와 흑백의 근대가 뒤섞인 듯한 오묘한 정취가 깃든 소설로 탄생시켰다.
마키메 마나부와 모리미 토미히코, 두 ‘교토 판타지 작가’의 인기 고공행진
교토를 배경으로 짝사랑하는 후배를 뒤쫓는 어수룩한 대학생 청년의 짝사랑 이야기를 판타지에 접목한 작품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로 인기몰이를 했던 작가 모리미 토미히코와 함께 ‘교토작가’라는 별칭으로도 불리는 마키메는 현재 일본에서 젊은 독자들이 가장 열광하는 작가 중의 한 사람으로 주목받고 있다. 특히 2007년 발표한 <사슴남자>는 “장대한 구상, 치밀한 구성, 약동하는 디테일, 여기저기 흩뿌려진 유머. 이런 소설이 두 번째 작품이라니 믿을 수가 없다. 이 작가는 반드시 나오키상을 받을 것이다”라는 평을 받으며 미디어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매번 색다른 수상작으로 이슈를 불러일으키는 나오키상 위원회마저도 모리미와 마키메의 두 판타지 작품을 나란히 후보에 올려놓아 변화하는 대중의 문학 취향과 감성을 인정해주었다. 교토, 나라, 오사카라는 옛 풍물과 분위기를 고스란히 간직한 유서 깊은 도시를 배경으로 글을 쓰는 마키메의 작품을 읽다 보면 20센티미터 키의 도깨비도, 사람 말을 하는 사슴도, 동물원에서 지내다가 인간으로 둔갑해 거리를 활보하는 여우도 왠지 있을 것만 같은, 심지어 있을 거라고 믿게 되어버리는 묘한 설득력으로 독자를 휘어잡는다. 그는 교토, 나라에 이어 자신이 태어난 오사카를 무대로 쓴 세 번째 장편 <프린세스 도요토미>를 2009년 봄에 펴냈다.
“자, 10월이야, 선생. 이제 선생이 나설 때가 왔어”
소심한 여학교 물리 교사에게 사슴이 하달한 황당무계 구국지령이란!?
물리과학을 연구하는 대학원생 주인공은 지도교수에게 떠밀리다시피 내려간 나라에서 심술을 피우는 여고생들, 유별난 교사들, 그리고 센베이보다 빼빼로를 좋아하고 인간의 말을 하는 사슴을 만난다. 사슴은 그에게 교토로 가서 지진을 막는 신성한 의식에 필요한 ‘삼각’을 받아 오라는 명령을 내린다. 그래야 교토의 여우와 오사카의 쥐와 함께 땅속에서 요동치는 메기를 눌러 지진으로 인한 종말을 막을 수 있다고 말한다. 소설은 이렇게 시작되면서 결코 순탄치 않을 주인공의 앞날을 의미심장하게 예고한다.
역사 수업 시간에나 들었던 이야기를 주구장창 읊어대는 사슴을 자신의 ‘신경쇠약’ 탓으로 돌리며 무시하던 남자는 서서히 얼굴이 사슴이 되어가는 주문에 걸리고, 마지못해 임무에 착수한다.
과연 사슴이 말하는 중대한 임무란 무엇인가, 가져오라는 ‘삼각’은 무엇이며 왜 가져와야 하는가, 또 왜 하필이면 이 어수룩하고 신경마저 쇠약한 ‘나’를 운반책으로 삼았는가 등등 꼬리에 꼬리를 무는 궁금증이 더해지면서 주인공 ‘나’의 복잡해진 심경만큼 독자들의 호기심도 증폭된다.
주인공은 ‘삼각’을 학교대항 검도부 시합 우승패로 착각하고 ‘사슴여자’가 되어가던 담임 반 학생 홋타와 합세하여 죽기 살기로 연장 10회전까지 가는 대접전 끝에 우승을 차지한다. 이 장면은 소설의 클라이맥스라 할 만큼 압도적인 긴장감과 시원한 카타르시스를 준다. 그러나 승리의 기쁨도 잠시뿐, 긴장은 멈추지 않는다. 삼각형 모양의 우승패를 들자마자 지축이 흔들리면서 큰 지진이 멀지 않았음을 예고하는 불길한 팀파니가 울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면 사슴이 말하는 ‘삼각’은 과연 어디에?
사슴의 명령에 저항하며 우왕마왕하다 ‘사슴이 되어가는 남자’와
그를 둘러싼 매력 남녀들이 펼치는 유쾌한 학원소설
총 4장으로 구성된 역사판타지 코미디 <사슴남자>는 독특한 소재, 유머 넘치는 문체, 유구의 역사를 자랑하는 나라를 무대로 착안한 점에서도 특별한 느낌을 주지만, ‘말하는 사슴’이나 ‘세상을 구한다’ 같은 판타지적 요소를 도입한 발상과 빈틈없이 잘 맞아 떨어지는 플롯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제137회 나오키상 후보작이다. 또한 실존하는 오래된 건축물이나 역사적 인물과 사실 등에서 소재를 끌어와 현실에 버무린 독특한 흥취가 압도적인 작품이다. 하지만 어수룩한 ‘신경쇠약’ 청년이 손색없는 교사로서 성장하고, 소녀 홋타가 시련을 통해 성장해가는 학원을 배경으로 한 유머러스한 성장소설로 읽어도 손색이 없다. 물리 교사 주인공에, 그와 한 집에 사는 선배 꽃미남 교사 시게, <도련님>에 등장하는 기요와 비슷한 캐릭터를 연상시키는 구수한 하숙집 할머니, ‘가린토’라 불리는 막과자 마니아로 수다스럽지만 박학다식한 동료 교사 후지와라, 리처드 기어처럼 잘생겨서 별명마저 리처드인 오하리다 교감, 다른 학교 교사이자 순수 미녀인 마돈나, 물고기를 연상시키는 얼굴로 고집스런 느낌을 풍기는 당찬 소녀 홋타까지,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은 이 소설의 기발한 설정과 절묘한 균형을 이루면서 독자들을 환상적 세계로 거부감 없이 몰입하도록 이끌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