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인간성이 드러나는 추리소설을 쓰고 싶었다”
사회파 추리소설의 거장 마쓰모토 세이초의 추리소설 데뷔작인
「잠복」을 비롯해 8편의 단편을 수록한 첫 번째 <단편 미스터리 걸작선> 출간!
현실에 바탕을 둔 일상의 미스터리 8편을 수록한 <잠복>
<잠복>은 마쓰모토 세이초가 쓴 최초의 추리소설로 평가받는 「잠복」을 비롯하여 「얼굴」, 「목소리」, 「지방신문을 구독하는 여자」, 「귀축」, 「일 년 반만 기다려」, 「투영」, 「카르네아데스의 널」까지 총 여덟 작품을 수록하고 있다. 추리소설은 순문학 애호가들로부터 때때로 그 문학성을 의심받기도 하지만 이 작품들은 모두 높은 완성도를 자랑한다. 여기에 수록된 작품들의 이야기와 메시지에 주의를 기울이다 보면, 독자는 더 이상 이것이 어떤 장르에 속하는지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작품의 매력에 빠져들게 된다. 마쓰모토 세이초의 추리소설은 주로 사회파 추리소설로 분류되는데, <잠복>에서는 사회와 정치에 대한 묘사는 물론이고 그 사회를 구성하는 인간 개인의 심연에 대한 묘사, 즉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철학적인 질문까지 던지고 있다.
예를 들어 「얼굴」에서 주목하는 것은 인간 심리와 기억의 오묘함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우연히 영화에 출연할 기회를 잡게된 연극배우인데, 그는 과거에 저지른 죄악에 대한 기억 때문에 자신의 얼굴이 알려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어떤 남성이 자신의 얼굴을 목격했다고 믿는 주인공은 이 기억 때문에 긴 세월을 고뇌로 지새우나, 실제로 주인공을 목격한 남자는 그를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주인공은 오랫동안 무의미한 고뇌를 짊어진 셈이다. 이처럼 인물의 심리 묘사를 통해 인간 마음의 어두운 면과 기억이 갖는 오묘한 측면을 드러내는 작품인 「얼굴」은, 생각지도 않은 일로 진상이 드러나는 절정 부근까지 속도감 있게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읽는 사람을 빨려 들게 만든다.
「일 년 반만 기다려」는 ‘판결이 확정된 뒤로는 피고에게 불리한 사실이 발견되어도 판결을 번복할 수 없다’는 형법의 ‘일사부재리’ 원칙에서 모티브를 얻은 작품이다. 이 작품은 일반적인 추리소설과는 달리 범인이 죗값을 치루지 않는다. 일단 유죄 판결을 받지만, 집행유예를 선고 받고 실형을 면한다. 대신 살인을 저지른 범인이 왜 그런 상황에까지 이르게 되었는지를 자세히 묘사하는 것으로, 당대의 사회적 풍조는 물론 현실을 살아가는 개인이 처한 불가해한 상황을 독자에게 이해시킨다. 즉 범죄 해결보다는 인간 이해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추리소설의 장르적 특성상 어쩔 수 없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쓰모토 세이초의 소설은 대부분 인간의 어두운 면을 그리고 있다. 범죄를 저지른다는 행위가 인간의 어두운 면이 극대화 되는 순간이라고 한다면, 계속해서 범죄를 다루는 이 단편집은 인간의 어쩔 수 없는 부정적 측면을 독자들에게 계속 노출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 면에서 「투영」은 가장 위안을 주는 작품이다. 한 지방의 신문기자가 부패 사건을 추적하는 내용의 이 작품에는 아이와 같은 정의감을 가진 노인이 등장한다. 이 인물은 어떻게 보면 성격이 너무 일면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애초에 ‘절대적인 정의’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맹목적으로 정의를 신봉하고 스스로를 그 정의의 구현자라고 여기는 노인의 모습이 다소 코믹하게 다가올 수도 있다. 심지어 그에게 반감을 가질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투영」에서 등장하는 인물들과 그 애잔한 스토리는 우리들에게 인간의 근원에는 밝은 면도 있음을 알려준다.
거장 마쓰모토 세이초가 추구한 미스터리의 원형을 담고 있는 <단편 미스터리 걸작선>
이번에 모비딕에서 출간한 <잠복>은 총 6권으로 완결될 마쓰모토 세이초 〈단편 미스터리 걸작선〉의 첫 책이다. <잠복>에는 세이초가 처음 쓴 추리소설인 「잠복」을 비롯해 문학성과 대중성이 절묘하게 결합된 단편소설 8편이 담겨 있다. <잠복> 이후로 발간될 마쓰모토 세이초 〈단편 미스터리 걸작선〉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모비딕의 마쓰모토 세이초 〈단편 미스터리 걸작선〉출간 예정작
①『잠복> _ 추리소설 걸작(1)
②<역로> _ 추리소설 걸작(2)
③ _ 현대소설 걸작(1)
④<검은 바탕의 그림> _ 현대소설 걸작(2)
⑤<사이고사쓰> _ 역사소설 걸작(1)
⑥<사도로 유배 가는 길> _ 역사소설 걸작(2)
이 단편 걸작선은 세이초에 정통한 문학 평론가 히라노 겐이 세이초의 단편소설 가운데 가장 뛰어난 걸작을 묶어서 신초사에서 6권으로 펴낸 것이다.
크게 세 범주로 나눠 ‘추리소설'에 속하는 단편 걸작을 ①<잠복>, ②<역로>에 넣었고, ‘현대소설'에 해당하는 단편을 ③, ④<검은 바탕의 그림>에, 그리고 에도시대를 그린 ‘역사소설'을 ⑤<사이고사쓰>, ⑥<사도로 유배 가는 길>에 넣어서 묶었다.
세이초의 이 걸작선에는 하나같이 어떤 만만치 않은 ‘인생담’이 들어 있다. 그는 단순히 트릭이나 함정만으로 사건과 범인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그 이면에 배어 있는 한 인생의 무게를 담아내려고 한다. 따라서 그는 무엇보다 범죄의 동기에 주목하면서 범인의 불가피한 반사회성을 직시하게 만들고, 범인이라 할지라도 지닐 수밖에 없는 ‘어떤 인간성’을 추적해나간다. 바로 여기에 세이초 추리소설이 펼쳐 보이는 인생과 사회의 폭과 깊이가 있다.
간결한 제목과 속도감 있는 전개로 독자를 사로잡는 8편의 단편
세이초의 단편은 간결한 제목, 리얼리티에 바탕을 둔 일상의 미스터리, 깔끔한 마무리 등으로 정평이 나 있으며, 그가 추구한 미스터리 장르의 원형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장르 마니아들에게 각광을 받아왔다. 이번에 발간한 <잠복>에는 그중에서도 가장 완성도 높은 작품들이 대거 포진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