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 심리학 분야 최고 권위자’
저드슨 브루어가 밝히는 마음의 작동 방식
“만족을 모르고 갈망의 수레 위에 겁 없이 올라탄 모든 이들에게.”
정재승 (KAIST 뇌인지과학과 교수)
중독의 굴레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이들의
뇌와 마음을 동시에 들여다보는 책
스마트폰을 그만 손에서 내려놓아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하고, 다이어트를 결심하고 음식 앞에서 무너진 경험은 누구나 한 번쯤 있다. 중독은 오늘날 현대인의 일상생활 전반에 스며든 보편적 현상이다. 중독 심리학자 저드슨 브루어는 중독을 단순히 ‘의지력 부족’이나 ‘나쁜 습관’으로 치부하지 않는다. 도파민 보상 회로가 잘못 학습되면서 뇌가 특정 행동을 보상으로 오인하고, 그 결과 의지와는 관계없이 반복적인 갈망과 행동으로 이어진다는 맥락에서 중독은 개인의 도덕적 결함이 아니라 뇌의 학습된 반응 패턴일 뿐이다.
예일대, 매사추세츠대, 브라운대를 거치며 오랜 시간 쌓아온 임상 경험과 개인적인 탐색의 시간은 저자로 하여금 마음을 제대로 돌보면 뇌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이런 통찰이 환자의 삶을 개선하는 데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를 본격적으로 탐구하게 했다. 개인적인 경험이 계기가 되어 몸과 마음의 관계를 파헤치기 시작한 이후, 스트레스가 면역계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며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어느 날 저자의 손에는 한 권의 책이 들려 있었다. 마음챙김 명상의 대부 존 카밧진의 《삶의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Full Catastrophe Living》였다.
이후 저자의 삶은 180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매일 명상을 하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초기 불교의 가르침과 현대 과학의 발견 사이의 연관성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특히 중독 문제에 이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에 관심이 집중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연구는 20년 넘게 이어지며 저드슨 브루어를 ‘중독 심리학 분야의 최고 권위자’로 만들었다.
멈추고 싶지만 멈출 수 없는 뇌
이 책은 스키너의 ‘보상 기반 학습’을 통해 중독에 빠진 뇌의 메커니즘을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시험을 잘 봤더니 엄마가 칭찬을 해준다→칭찬받으려고 공부를 열심히 한다→칭찬받아 기분이 좋다.’ 우리가 이런 행동을 반복할 때마다 뇌의 경로는 강화되고 습관의 순환고리가 만들어진다. 그 결과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굳어지는데, 이렇듯 이전 행동의 보상과 처벌에 기초해 만들어지는 편향된 시각을 ‘주관적 편향’이라 한다. 종류와 상관없이 대부분의 중독은 이와 같은 과정을 거치며 주관적 편향이 지나치게 지배적인 상태를 이른다.
책은 6장에 걸쳐 다양한 중독에 대해 구체적으로 다루는데, 특히 사랑 중독을 다루는 장은 흥미롭다. 생물인류학자 헬렌 피셔의 연구팀은 사랑에 빠진 사람의 뇌와 코카인 등 중독 약물이 활성화하는 뇌의 부위가 같은지 fMRI 실험을 진행했고, 그 결과 사랑의 감정이 도파민을 생성하는 뇌 부위의 활동을 증가시키는 것을 발견했다. 그렇다면 사랑에 중독되는 것과 성숙한 사랑의 차이는 무엇일까? 저자는 낭만적 사랑이 끝난 후 힘든 시간을 극복하고자 자애명상을 시작했던 본인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명상을 하는 동안 뇌 활동 그래프는 후대상피질 활동의 감소를 보였는데, 이는 사랑이 반드시 자기중심성과 관련된 뇌 영역을 활성화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즉 마음챙김을 통해 사랑 역시 얼마든지 충만한 방식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의미다.
마음챙김을 통해 갈망에서 자유로워지는 법
사람들은 보통 나쁜 습관을 끊기 위해 의지에 기대지만, 의지만으로 이겨내기에는 역부족이다. 저자는 신경과학적·임상적 근거에 기반해 이 악순환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으로 ‘마음챙김mindfulness’을 제시한다. 마음챙김은 불안, 충동, 갈망과 같은 정서적인 신호가 생겨나는 순간 이를 판단하거나 억누르지 않고 있는 그대로 관찰하는 훈련이다. 이 과정에서 뇌의 전전두피질이 활성화되고 충동적 보상 회로를 조절하는 능력이 강화된다는 것이 수많은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 저자는 이를 다시금 증명하기 위해 금연에 마음챙김을 적용한 임상실험을 실시했고, 그 결과 마음챙김 기반 훈련을 받은 집단이 유명한 금연 프로그램에 참여한 집단에 비해 2배 이상 높은 금연 성공률을 보였다는 점을 증명해냈다.
뇌과학과 임상 사례를 바탕으로 욕망과 중독의 본질을 탐구하며, 누구나 일상에서 적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실천법까지 제시하는 이 책을 통해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간단하다. 중독은 잘못 학습된 뇌의 습관이며 이는 새로운 학습을 통해 충분히 바꿀 수 있다는 것. 중독으로 고통받는 이들에게 자기 비난에서 벗어나 주체적인 삶을 살아갈 기회를 주는 이 책을 따라 읽다 보면, 삶의 지형을 탐색하기 위한 마음챙김이라는 지도를 들고 올바른 길로 나아가고 있는 자신과 만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