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에 휘몰아친
민주주의의 위기와 포퓰리즘의 득세
이 대격변의 시대에
역사는 어떤 길을 택할 것인가?
세상은 왜 후퇴하고 있는가? 대중은 왜 포퓰리즘에 열광하는가?
세계 최고의 지성들이 인류의 미래를 고민하며 펼쳐나가는
혜안과 통찰의 현장에 동참한다!
최근 세계는 크나큰 지각변동을 겪고 있다. 무엇보다 전 세계를 강타한 권위주의 포퓰리즘의 득세와 그에 따른 자유민주주의의 위기 징후가 뚜렷하다. 유럽을 비롯한 여러 지역의 극단적인 우경화 움직임에서부터 배타적 민족주의・국가주의와 외국인・소수자 혐오주의의 극성스러운 부활, 세계시민주의와 관련된 자유주의 가치와 이상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에 이르기까지. 갑자기 몇 년 전만 해도 거의 상상할 수 없었던, 많은 이들 눈에 크게 후퇴하고 있는 듯 보이는 세상이 찾아온 것이다. 이 극적인 ‘퇴행’ 전환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우리는 과연 여기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이 책은 그러한 ‘거대한 후퇴’의 뒤에 도사린 힘의 본질을 이해・분석하고 새로운 길을 찾기 위해 세계 최고 지식인과 석학 15인이 공동으로 참여한 기획의 성과물이다. 슬라보예 지젝, 지그문트 바우만, 아르준 아파두라이, 폴 메이슨, 판카지 미슈라, 볼프강 슈트렉, 에바 일루즈 등 다양한 국적의 저자들은 독창적이면서 열린 관점으로 다채롭게 문제에 접근한다. 이들은 현재까지 역사가 걸어온 과정과 예상 가능한 미래의 행보를 논하고, 이 퇴행 움직임에 대응할 길을 숙고하면서, 더 폭넓은 역사적 맥락 속에서 현재 우리가 처한 난국을 타개할 방법을 모색한다.
『거대한 후퇴』는 오늘날 전 세계에 몰아닥친 자유민주주의와 세계시민주의에 대한 이 전례 없는 도전에 맞설 최선의 방책을 찾고자 하는, 최근 역사의 흐름을 우려하는 모든 이들에게 크나큰 가치를 지닌 중요한 공론장이 되어줄 것이다.
불신과 두려움, 분노와 적개심에 휩싸인 대중이 선택한 길, 권위주의 포퓰리즘
2016년 6월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가 실시되어 탈퇴 찬성으로 결정 났다. 2016년 11월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그사이 프랑스 니스에서는 끔찍한 테러가 일어났고, 터키에서는 군부 쿠데타가 불발되었다. 브렉시트로 대표되는 국가주의의 부활과 트럼프로 대변되는 포퓰리즘의 거센 물결이 전 세계를 뒤흔들어놓았다. 물론 이 두 가지 사례가 전부는 아니다. 러시아의 푸틴, 필리핀의 로드리고 두테르테, 터키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인도의 나렌드라 모디, 헝가리의 빅토르 오르반, 폴란드의 안드레이 두다는 권위주의 선동 정치가로서 정권을 장악한 국가・민족주의 포퓰리스트의 전형이다. 여기에 극우 정당인 프랑스의 ‘국민전선’, 독일의 ‘독일을 위한 대안’, 오스트리아의 ‘오스트리아 자유당’과 극우 단체인 미국의 티파티, 독일의 페기다(서양의 이슬람화를 반대하는 애국 유럽인), 영국의 영국수호동맹, 프랑스의 정체성연합, 이탈리아의 카사파운드도 있다. “이런 국가들의 총인구는 세계 인구의 거의 3분의 1에 달한다”고 한 저자는 지적한다.
마치 전 세계 시민 대중 대다수가 불신에 휩싸인 채, 두려움에 떨면서, 분노와 적개심을 한꺼번에 폭발시키고 있는 듯하다. 이들은 때로는 투표로, 때로는 직접적인 저항운동으로 자신들의 뜻을 관철하려거나 관철해내고 있다. 그리고 포퓰리스트들은 이들의 지지를 받으며 또는 이들의 지지를 결집하여 먹고살면서 권력을 거머쥐는 주인공이 된다. 포퓰리즘은 이탈・탈퇴・배제・경계・장벽・분리・구분・차이・경멸・혐오・증오의 서사로 도배되어 있으며, 민족주의・국가주의・정체성・순수성・우월성・정통성・근본주의를 모토로 삼는다. 특히 포퓰리스트들은 권위주의(가부장주의)로 가득 차 있으며 민주주의를 싫어한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그들은 모두 “아무 거리낌 없이 소수자와 반체제 인사를 탄압하고, 언론 자유를 억압하고, 반대자를 제거하기 위해 법을 이용한다.”
오늘날 그토록 많은 시민들이 도대체 왜 이러한 인종차별주의자, 독재자, 폭군, 제국주의자 포퓰리스트들에게 자신의 마음을 열고, 의지하고, 그들의 헛된 승리의 약속을 맹신하면서 자신의 인생과 사회와 국가를 이끌어달라고 내맡기는 것일까? 자유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인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희생하는 대가를 기꺼이 치르면서까지 말이다. 이들은 도대체 누구이고, 무슨 생각을 품고 있으며,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가? 이 의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 바로 이 책 『거대한 후퇴』의 핵심 중 하나다. 이를 통해 ‘지금 우리는 어디에 서 있으며, 어디로 가는지, 그리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실마리를 잡을 수 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에서 자유민주주의 거부까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저자들은 다양한 이론적・실질적 논거와 예시를 동원한다. 칼 폴라니를 필두로 움베르토 에코, 토크빌, 노베르트 엘리아스,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 등 대가들의 예리한 통찰력은 이미 이 시대를 예견한다. 그중 칼 폴라니의 견해는 중요한 준거로 인용된다. 폴라니는 대표작 『거대한 전환』에서 사회가 자유시장경제로 전환한 뒤에는 사회보호(social protection)를 요구하는 대항운동(countermovement)이 등장한다고 내다보았는데, 20세기 후반 이후 신자유주의 세계질서 아래에서 일어난 변화는 그것과 대단히 유사한 흐름을 보인다. 폴라니는 노동, 토지, 화폐의 무분별한 상품화가 결국 사회를 붕괴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최근 뚜렷해진 거대한 후퇴의 근본 원인은 무엇일까? 저자들이 한목소리로 지적하는 것이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위기다. 신자유주의의 본질은 다음과 같은 마거릿 대처의 말에서 잘 드러난다. “대안은 없다(There is no alternative).” “사회 같은 것은 없다(There is no such thing as society).” 이 책에서는 이를 이런 말로 달리 표현한다. ‘신자유주의적 민주주의사회는 스스로를 보장할 수 없다는 전제조건 아래 존재한다.’
신자유주의는 여러 가지 구조 변화를 일으켰다. 제조업의 해외 이전, 기업을 더 작은 회사들의 ‘가치 사슬’로 만드는 구조조정, 정부 역할을 축소시키는 감세 정책, 공공 서비스의 민영화, 일상생활의 금융화 등이 그렇다. 이러한 신자유주의 긴축정책은 세계화와 밀접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기획이다. 세계화는 무엇보다 세계경제 질서의 금융화, 상업화다. 이 과정에서 각 국민국가는 경제 주권을 시장에 고스란히 내주었다. 저자들이 누누이 강조하듯이 오늘날 세계화 시대에서 개별 국가의 주권, 특히 경제 주권은 회복이 불가능하다. 이런 상황에서 금융 위기가 터져 나와 전 지구 차원으로 확산되었고, 서서히 실패해가던 신자유주의는 벼랑 끝에 내몰렸으며,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지구를 하나로 묶으며 약속한 번영과 안정은 불가능한 일로 판명 났다.
“칼 폴라니가 예견한 시장경제 중심 사회 통합과 그로 인한 세계화의 위기는 오늘날 모두 현실이 되었다. 국제 테러리즘과 기후변화, 금융과 화폐 위기, 그리고 대규모 이주 움직임까지. 이 모든 현상은 이미 오래전 예측 가능한 일이었음에도 우리 사회는 제도적・정치적으로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사회를 이루는 시민 개개인 역시 마찬가지다. 세계화로 통합된 질서 속에서, 사람들은 ‘세계시민주의’식 공감대를 견고하게 확립하지 못한 채 여전히 ‘우리’와 ‘타자’를 나누고 있다. 오히려 오늘날에는 인종과 국가 그리고 종교를 기준으로 우리와 그들을 명확하게 구분 짓는 일이 더욱 빈번하다. 냉전 종식으로 세계는 이른바 ‘역사의 종언’을 맞이했지만, 냉전 시대 ‘적과 동지’라는 틀이 사라진 빈자리를 ‘문명의 충돌’이라는 논리가 빠르게 대체한 셈이다.”(본문 11~12쪽)
그 결과 대중은 반(反)세계화, 반동, 퇴행이라는 극단의 길을 선택하면서 자유민주주의 자체를 거부하는 상황까지 도달했다. 이른바 “민주주의 피로 증후군”이라는 현상이 빚어진 것이다. 그리고 이 개략적인 큰 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