出版社による書籍紹介
그리스 로마 고전을 원전에서 우리말로 옮기는 일에 매진하고 있는 천병희(단국대학교 명예교수) 교수가 번역한 플라톤의 이 출간되었다.
고대 그리스의 서사시(호메로스의 양대 서사시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에서 출발하여, 4대비극 작가(아이스퀼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의 전집을, 로마 시인 베르길리우스와 오비디우스를, 그후 역사 3부작(헤로도토스의 <역사>, 투퀴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크세노폰의 <페르시아 원정기>을 지나 서양철학의 근원인 플라톤에 이른 그의 발걸음이 한없이 반갑다. 이미 에 이어 <국가>를 내놓으며 뜨거운 반응을 얻은 바 있다. 천교수의 철학서 번역이 반갑고 의미 있는 것은 그동안 어렵기 그지없던 철학서들이 정확하면서도 읽기 쉽게 번역되어 누구나 맘먹으면 읽어낼 수 있도록 번역되었기 때문이다. 무거운 근엄한 옷을 걸치고 곁을 내주지 않던 플라톤에게서 그 두툼한 겉옷을 벗겨낸 것이다.
<파이드로스>
<파이드로스>는 어느 화창한 여름날 오후 아테나이 근교 일리소스 강가의 쾌적한 장소에서 철학자 소크라테스와 그의 젊은 친구 파이드로스가 사랑, 특히 동성애적인 사랑과 수사학에 관해 이야기를 주고받는 대화편이다.
이 과정에서 영감, 혼불멸론, 혼의 윤회 같은 문제들이 자연스럽게 제기된다. 소크라테스는 사랑은 신에게서 비롯되는 일종의 신들림 현상으로, 날개를 잃고 추락한 혼에 다시 날개가 자라나게 해주는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 혼을 훌륭한 말 한 필과 나쁜 말 한 필이 끄는 마차를 모는 마부에 비기며, 그것이 왜 하늘나라에서 추락한 뒤 지상에서 몸을 받아 태어나서는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 들려주는 부분은 감동적이며 인상적이다. 이어서 소크라테스는 당대 수사학의 문제점들을 열거하며, 기교에 의존하기보다는 먼저 진실을 파악한 다음 각각의 혼에 맞는 맞춤형 연설을 해야만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또한 말이 글에 우선한다며, 이는 작성된 연설보다는 담론이 직접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어 진실에 더 가까이 접근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파이드로스>는 사랑, 지식, 이데아론, 혼불멸론, 혼의 윤회 같은 플라톤의 주요 사상을 조금씩 선뵈고 있다는 점에서 여태까지는 대체로 초기 작품으로 간주되었지만, 지금은 중기 작품에 속하는 <국가>보다는 나중에, 후기 작품에 속하는 <필레보스>보다는 먼저 집필되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소크라테스와 파이드로스가 언제 만나서 그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는지도 확실하지 않다. 뤼시아스는 추방당했다가 아테나이로 돌아와서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으며, 그의 형 폴레마르코스는 아직도 살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뤼시아스는 소년시절 남이탈리아의 투리오이로 망명했다가 기원전 412/411년까지는 귀국하지 않았고, 폴레마르코스는 기원전 404년에 처형당했다. 그런데 그사이에 파이드로스는 아테나이를 떠나 망명 중이었다. 그러나 <파이드로스>가 플라톤의 가장 깊이 있고 가장 아름다운 대화편에 속한다는 점에는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할 것이다.
<메논>
소크라테스의 문답법을 잘 보여주고 있는 <메논>은 텟살리아 출신 귀족 청년 메논이 미덕은 배울 수 있는 것이냐고 소크라테스에게 묻는 것으로 시작된다. 먼저 메논이 미덕이 무엇인지 몇 차례 정의해보지만 번번이 실패하자 소크라테스는 지식은 불멸의 존재인 혼(魂)이 전생에서 획득한 것이며 따라서 지식은 사실은 상기라고 주장하며, 메논이 데려온 노예 소년이 질문만 받고도 기하학 문제를 해결하게 함으로써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보여준다. 미덕이 지식이라면 미덕은 배울 수 있겠지만 미덕의 교사는 어디에도 없다. 미덕의 교사라고 생각되는 훌륭한 사람들도 자식들에게 자신의 미덕을 전수하지 못하지 않았는가? 결국 훌륭한 사람들은 지식이 아니라 바른 의견에 의해 훌륭한 것이며, 바른 의견이란 지식과는 무관하게 신의 섭리에 의해 인간들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이 대화편은 용기란 무엇이냐, 우정이란 무엇이냐는 식으로 첫머리에서 미덕이란 무엇이냐고 묻는다는 점에서 초기 대화편들의 특징을 띠고 있는가 하면, 혼불멸론, 상기론, 윤회론 같은 중기 대화편들의 특징도 띠고 있어 초기에서 중기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집필된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메논이 페르시아 왕 아르타크세르크세스(Artaxerxes)에게 반기를 든 그의 아우 퀴로스(Kyros)를 돕고자 그리스인 용병부대를 이끌고 소아시아로 건너가기 전이며, 소크라테스가 아뉘토스 등의 무고로 사형당하기 3년 전인 기원전 402년에 두 사람이 아테나이에서 만나 대화를 나눈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