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 H. 카 러시아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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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H. 카의 불편부당하고 '수정같이 명료한' 러시아 혁명사.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카의 유명한 묘사처럼, 카는 전쟁과 혁명으로 상징되는 20세기의 방대한 역사를 매우 냉철하고 '수정같이 명료하게' 서술했다. 이 책은 카의 방대한 역사 서술의 한 부분이며, 카의 러시아 혁명사 연구의 정수이기도 하다. 1917년에서 시작해서 1929년으로 끝나는 이 책의 서술은 혁명의 발발부터 전쟁과 내전, 전시공산주의, 신경제정책, 5개년 계획, 농업 집단화, 독재의 시작 등으로 이어지는 혁명 직후 10여 년의 기간을 다룬다. 혁명의 딜레마가 어떤 식으로든 처리되고 스탈린 독재의 기틀이 마련되면서 향후에 소련 체제가 나아갈 방향이 정해진 시점까지를 집중적으로 살펴본다. 애초에 혁명이 추구했던 이상이 내전과 식량난, 경제적·사회적 압력이라는 소비에트 체제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장벽에 부딪히면서 전시공산주의와 신경제정책 등 혁명 전에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정책이 실행되는 과정을 카는 집요하게 추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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目次

머리말―5 연대표―7 1. 1917년 10월―13 2. 두 세계―25 3. 전시공산주의―41 4. 신경제정책의 휴식기―54 5. 새로운 소비에트 질서―65 6. 가위 모양 가격 위기―81 7. 레닌 최후의 날들―96 8. 스탈린의 부상―107 9. 소련과 서구(1923~1927년)―131 10. 소련과 동방(1923~1927년)―146 11. 계획화의 시작―162 12. 반대파의 패배―174 13. 농업의 딜레마―185 14. 산업화에 따른 진통의 고조―196 15. 1차 5개년 계획―210 16. 농민의 집단화―227 17. 독재의 양상―241 18. 소련과 세계(1927~1929년)―256 19. 역사적 관점에서 본 혁명―272 해제―281 옮긴이의 말―321 1917~1929년에 관해 더 읽을거리―329 찾아보기―330

出版社による書籍紹介

E. H. 카의 불편부당하고 ‘수정같이 명료한’ 러시아 혁명사 혁명의 기원에서 좌초까지…혁명의 딜레마와 세계사적 반향에 대한 집요한 추적 2017년 러시아 혁명 100주년, 독점 계약 한국어판 정식 출간 1917년 ‘세계를 뒤흔든 열흘’ 이래 올해(2017년)는 러시아 혁명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은 역사의 전환점이었으며, 후대의 역사학자들에게 20세기 최대의 사건으로 평가받는 것도 당연한 일일 것이다. 프랑스 혁명이 그렇듯이, 러시아 혁명도 한쪽에서는 인류를 과거의 억압에서 해방시킨 이정표로 찬양받고, 다른 쪽에서는 범죄이자 재앙으로 비난받는 식으로 오랫동안 계속해서 양 극단의 평가를 받을 것이다.”라는 E. H. 카의 말처럼, 러시아 혁명은 “보수주의자에게는 도깨비 같은 괴물이었고 급진주의자에게는 희망의 횃불”같은 존재였다.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카의 유명한 묘사처럼, 카는 전쟁과 혁명으로 상징되는 20세기의 방대한 역사를 매우 냉철하고 ‘수정같이 명료하게’ 서술했다. 이 책 《E. H. 카 러시아 혁명》은 카의 방대한 역사 서술의 한 부분이며, 카의 러시아 혁명사 연구의 정수이기도 하다. ‘왕따’ 역사학자의 러시아 혁명사 연구 《역사란 무엇인가》의 저자로 잘 알려진 카는 (국내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소비에트 러시아’의 세계 최고 권위자였다. 카는 영국의 전형적인 보수 성향 중산층의 아들로 태어나 모범생으로 대학을 졸업한 1916년에 하급 직원으로 외무부에 들어가 1936년까지 20년 동안 외무부에서 일했다. 처음에는 볼셰비키에 적대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으며, 레닌의 혁명 정부를 상대로 영국 등 서구 자본주의가 벌이는 무역 봉쇄를 시행하는 역할도 맡았다. 그러나 러시아 내전을 거치면서, 처칠을 필두로 한 대對소비에트 강경파에 맞서 러시아 혁명 정부를 인정하고 그들과 공존해야 한다는 입장을 갖게 됐다. 이러한 일종의 온건한 현실주의는 제1차 세계대전 종전부터 제2차 세계대전 발발까지를 살피며 국제정치에서 평화의 조건을 모색한 책인 《20년의 위기》(1939년)으로 집약된다. 1936년 외무부에서 사임한 뒤 웨일스대학에 잠시 몸담았다가, 제2차 세계대전 중인 1941~1945년에 《타임스》 부편집인으로 일했다. 이 시기에는 대공황 이후 결국 전쟁으로 폭발한 자본주의의 무질서함, 그리고 그와 대비되는 소련 계획경제의 성장을 목도하면서 정치적으로 점차 왼쪽으로 옮겨 갔다. 또 다른 전쟁을 막기 위해서는 온건한 사회주의적 유럽 연합을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지만 당시 카가 염두에 둔 사회주의는 권위주의와 사회민주주의가 결합된 다소 모호한 성격이었다. 카는 마르크스주의 자체에는 기본적으로 동의하지 않았지만, 대공황과 양차대전으로 점철된 자본주의 위기의 시대에 계획화와 전체주의에 호의적인 시각을 견지했다. 그 때문에 보수적인 기성 학계에서 왕따에 가깝게 배척당했다. 하지만 오히려 그것이 소비에트 러시아의 역사에 대한 연구와 집필에 몰두하는 계기가 됐다. 그 결과물이 1권이 나온 1950년부터 마지막 권이 나온 1978년까지 28년 동안 열네 권으로 펴낸 《소비에트 러시아의 역사》(1950~1978년)이다. 그 와중에 1955년 케임브리지에 자리를 잡은 뒤 반反볼셰비키 역사학자들의 이념 공세에 계속 시달리던 카가 “당파적” 역사가인 자신을 옹호하면서 반격에 나서며 쓴 책이 《역사란 무엇인가》(1961년)이다. 경험적 사실에 매몰된 보수주의 역사학에 일침을 가하면서 역사학자는 필연적으로 시대와 사회의 일부이며, 오히려 그런 처지를 기꺼이 인정해야만 사실을 선택하고 해석하는 데서 상대적 객관성을 획득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14권의 출간을 끝낸 직후인 1979년에 이 대작을 일반 독자용으로 간추린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이 책에는 카가 30년 넘게 몰두한 러시아 혁명사 연구의 정수가 담겨 있는 셈이다. 러시아 혁명에 대한 세 가지 관점 1917년 혁명이 일어나자마자 러시아 자체에서나 외부에서나 이 충격적인 사태를 파악하고 이해하려는 시도가 생겨났다. 초창기에 혁명을 현장에서 직접 경험한 이들이 목격담을 쓴 이래, 크게 세 가지의 시각에서 러시아 혁명을 바라보는 역사 서술이 있었다. 서구에서는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이 시작된 뒤로 보수 반공주의 역사학자들이 소련 사회를 이해하기 위한 토대로 혁명의 역사에 주목했다. 그런데 그들이 보기에, 혁명은 극소수 볼셰비키의 음모로 일어난 일종의 쿠데타였고, 대중의 지지를 얻지 못한 볼셰비키 세력은 체제 유지를 위해 일당 독재와 전체주의, 반대 세력에 대한 가혹한 탄압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으며, 그 때문에 결국 소련은 무너질 운명이었다. 이 학자들은 편견에 사로잡힌 나머지 기본적인 사실도 왜곡하기 일쑤였고, 무엇보다도 노골적인 선입견 때문에 객관적 현실을 외면했다.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최근 10년 동안 영어 사용권 국가들에서 소련에 관해 쓰인 …… 글들 가운데 상당수는 상대방의 마음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을 가장 기본적인 수준에서조차 상상적으로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에 망가져 버렸”다고 카가 꼬집은 것이 바로 그들이다. 한편 마르크스주의자나 트로츠키주의자가 아닌 입장에서 이런 보수 반공주의에 반기를 들고 사실에 충실한 역사를 추구한 독보적인 인물이 카이다. 카는 소련 체제를 독특한 형태의 산업화·근대화 과정을 거치는 국가로 바라보며 내재적 접근을 한다는 점에서 두드러진다. 카의 연구는 두 가지 점에서 냉전적 시각의 주류 역사와 갈라선다. 무엇보다도 러시아 혁명이 볼셰비키의 음모적 쿠데타가 아니며, 오히려 19세기 말 이래로 끊임없이 자생적인 봉기와 반란을 일으킨 대중이 혁명의 주역이라고 본다. 10월 혁명에서 가장 적극적인 세력이었던 볼셰비키조차 끝까지 임시정부를 무너뜨리는 봉기를 주저했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또한 카는 차르 체제는 스스로 개혁하지 못해서 자멸해 버렸고, 그것을 대체한 부르주아 민주주의 역시 대중의 끓어오르는 정치적·사회적 열망을 만족시킬 해법을 내놓지 못했기 때문에 무너질 운명이었다고 단언한다. 1917년 10월의 순간에 러시아 앞에 놓인 길은 사회주의뿐이었다는 것이다. 카는 누구보다도 충실하게 혁명의 역사를 추적하고 기록했지만, 좌우 어느 쪽에서도 받아 마땅한 만큼의 관심을 얻지 못했다. 광의의 수정주의 학파의 선구자라고 볼 수 있건만, 냉전의 한가운데서 어느 한쪽 편에도 서지 않았던 터라 많은 이들이 카의 방대한 저서를 제대로 읽지도 않았다. 다른 반대쪽에는 소련의 공식 혁명사가 있다. 스탈린 시대에 스탈린이 혁명에서 맡은 역할을 과대 포장하면서 생겨난 공식 혁명사는 소련 사회의 변화에 따라 여러 차례 굴곡과 변천을 겪었지만, 기본적으로 혁명의 과정을 필연성으로 옹호하는 성격이 강하다. 혁명 승리를 강조하고 체제의 정당성의 원천으로서 혁명을 계속 소환해야 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러시아 혁명에 대한 관심이 가장 컸던 1980년대에 가장 널리 읽힌 혁명사도 브레즈네프 시대인 1969년 소련 사회과학원에서 대중용 역사책으로 펴낸 책을 번역한 《소련공산당사》이다.(1985~1992년에는 전 6권으로 출간됐고, 1987~1991년에는 《러시아혁명사》라는 제목으로 전 3권이 출간됐다.) 《러시아혁명사》로 나온 세 권은 도합 20만 부 가까이 팔렸다고 하니, 1980년대 후반 한국에서 러시아 혁명에 대한 관심과 열기가 어느 정도였는지 가늠이 된다. 카의 이 책 역시 1980년대에 출간된 적이 있지만, 당시에는 독자들의 관심을 많이 끌지 못했다. 1980년대에 민주화를 열망했던 한국인들은 민중 운동의 이념적 근거와 실천적 지침을 찾기 위해 러시아 혁명을 읽었는데, 10월 혁명이 부딪힌 갖가지 딜레마와 한계를 냉정하게 정리한 카의 설명보다는 자랑스러운 승리의 역사를 열정적으로 서술하고 도식적인 혁명 방법론을 제시하는 소련 공식 역사서가 더 환영받았던 탓이다. 그렇지만 그런 열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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