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어째서 선뜻 남을 도울까?
불공정함에는 왜 그토록 분노하는 걸까?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면 우리 뇌의 선택이 달라진다
“당신은 나를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게 해요.”
이 말은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에서도 손꼽히는 명대사다. 이기주의자였던 주인공이 사랑하는 여자를 만난 뒤 점차 선한 사람으로 변화하고자 노력하는데, 이 모습이 관객의 마음을 뭉클하게 한다. 그런데 어떤 관객의 머릿속에는 이런 질문이 떠오를 수도 있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 남을 도왔던 거라면 그 사람을 정말 선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영화의 감동을 깨뜨리는 것 같은 이 질문에는 사실 우리 삶에 중요한 깨달음을 가져올 수 있는 단서가 담겨 있다. 근본적으로 사람은 왜 이타적인 행동을 하는 걸까?
저자는 이타적 동기의 근원에는 본래 인정 욕구가 있음을 다양한 실험을 통해 증명하고 있다. 뇌과학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인간은 사회적 가치를 학습하기 훨씬 전부터 타인의 감정을 구분하며, 타인의 호감을 ‘보상’으로 환산할 수 있는 가치 계산 기제를 사용한다. 저자는 도파민 신경 세포부터 측핵, 편도체, 전전두피질 등 선택과 관련된 뇌 속 구조들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특히 복내측 전전두피질이 자신의 평판에 도움이 되는 행동을 어떻게 촉진하는지, 평판에 해가 되는 행동을 어떻게 회피하는지 보여준다.
사실 ‘평판’이라는 말을 들으면 우리는 흔히 부정적인 의미부터 떠올린다. ‘평판에 민감한’ 사람은 기회주의적이고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한 나약한 인간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우리 뇌 속에 있는 평판 관리 기제를 적절한 수준에서 사용할 수만 있다면 이는 긍정적인 사회적 행동을 만드는 원동력으로 삼을 수 있다. 저자 역시 타인으로부터 인정받으려는 욕구가 대부분의 긍정적인 사회적 행동을 이끌어 내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타인의 인정과 칭찬은 사회 공동체를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행동을 유도하는 보상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앞서 우려한 대로 인정을 향한 과도한 집착 역시 중독과 유사한 사회적 행동을 유발한다. 마치 약물 중독이 우리 신체 기능을 심각하게 무너뜨릴 수 있는 것처럼 인정 중독 역시 원활한 사회적 시스템 유지를 저해하는 독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동안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대한항공 회항 사건이 인정 중독의 사례라면 어떤가. 이른바 ‘갑질’이라고만 여겼던 사건이 인정 욕구와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 지금부터 한번 살펴보자. (…) 타인과 비교하여 자신의 지위가 상대적으로 높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은 적응 능력, 즉 생존 적합도를 판단하는 데 중요한 정보가 된다. 이러한 인식은 주로 타인의 존중을 통해 지각된다. 그런데 인정 욕구가 증감함에 따라 이전과 동일한 수준의 존중으로는 만족감을 느끼기 어렵게 되면, 상대방으로부터 점차 더 높은 수준의 존중을 기대하거나 요구하게 된다. 따라서 일상적인 수준의 사과나 감사의 표시에는 오히려 실망감을 느끼거나 상대방으로부터 무시당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급기야 이러한 실망감을 보상받으려는 동기는 분노로 표출되기에 이른다. (69~71쪽)
저자는 인정 욕구가 가진 긍정적인 가능성을 최대한 끌어내야 한다고 말하며, 인정 욕구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파악하는 것이 바로 그 출발점이라고 주장한다. 냉철하면서도 예리한 저자의 뇌과학적 해석을 따라 인정 욕구의 실체를 정확히 인식하고 적절한 방향으로 조율해나갈 능력이 무엇인지 알아보는 것은 이런 측면에서 유의미하다. 인정 욕구가 인정 중독으로 이어지기 전에 이를 미리 감지하고 건강한 이타성으로 이끌 수 있다면 개인과 사회 모두에 긍정적인 변화를 이룰 수 있지 않을까?
그 사람은 왜 착한 일을 할까?
선량한 선택의 이면에 대하여
‘아라비안 배블러(Arabian babbler)’라는 집단생활을 하는 새들이 있다. 식사 시간이 되면 밥을 먹는 다른 새들을 위해 한 마리 새가 가장 높은 나무에 올라가 포식자가 접근할 때 큰 소리를 내는 역할을 맡아야 하는데, 이 보초 역할을 오래 하기 위해 많은 새들이 경쟁을 한다. 언뜻 보면 말도 안 될 만큼 무모한 행동이지만, 그만한 위험을 무릅쓸 수 있을 만큼 탁월하다고 여겨져 무리의 리더가 되고 더 높은 번식 기회도 얻게 되기 때문이다.
인간은 어떨까? 인간은 왜 이타적인 행동을 할까? 저자는 최신 뇌과학 분야의 여러 연구결과와 사례를 통해 인간의 경우 역시 이타적 행동이 장기적으로 더 높은 이득을 주는 전략이 된다고 설명한다. 이타적인 행동은 타인으로부터 호감을 끌어내며,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위치를 공고히 해주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이타적 행동이 정말 뇌의 생존 전략이라면 낯선 사람을 구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 사람의 경우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 중요한 점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상식적으로 우리는 이타적인 행동을 하기 위해서는 자기중심적인 본능을 억눌러야 한다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자기 욕구보다 타인의 욕구를 우선시하는 것이 이타적인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정반대의 연구결과를 소개한다. 우리가 내리는 이타적이고 친사회적인 선택이 오히려 직관적이고 충동적인 기제로 이뤄진다는 것이다. 또한 타인을 돕는 이타적 행동은 복잡한 사회관계 속에서 생존 확률을 높이기 위해 보다 우세하고 직관적인 가치로 강하게 우리 뇌 속에 각인되어 왔다고 설명한다.
물론 도덕성과 이타성의 가치가 생존과 번식이라는 궁극적 욕구에서 비롯된다는 논리를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다. 저자 역시 사랑이나 공감처럼 고귀한 본성이라고만 여겨졌던 인간 심리들이 결국 뇌의 작용이라는 연구들을 소개할 때마다 대체 왜 이런 연구를 해야 하느냐며 불쾌해하거나 울먹이는 학생들을 만나 변명 아닌 변명을 한 적도 많았노라 털어놓는다. 이런 연구가 진실한 선행의 의도를 의심하게 만들 거라며 우려하는 이들 또한 적지 않았다. 그러나 저자는 그러한 주장은 마치 인간의 생리작용과 대사 작용을 이해하면 식욕이 사라질 것이라 걱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기우에 불과하다고 말이다. 오히려 타인과의 관계에서 어떤 감정이 발생할 때마다 그 감정의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집중할 것을 조언한다.
자신의 감정이 인정 욕구로부터 비롯되었는지 파악하고 자각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사회관계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갈등을 피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자기인식 과정을 통해 감정이 자신의 인정 욕구에서 비롯되지 않았음을 깨달을 경우에도 더욱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인정 욕구는 다양한 사회적 상황에서 나타나는 감정의 주요 원인이 되지만 가장 인식하기 어려운 문제이기도 하다. 오랜 교육과 훈련을 통해 이 욕구를 감추고 포장하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온 우리에게 이를 의식 위로 끄집어내 인정하는 것은 매우 큰 용기를 요구한다. 하지만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숨은 인정 욕구를 인식할 때 오히려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고 스스로를 위해 더 나은 선택을 발견할 여유를 가질 수 있다. (244쪽)
이기적 이타심’이 세상을 바꾼다
합리적 이타주의를 향하여
타인을 도울 때는 ‘감정이 아닌 이성으로 판단해야 한다.’ 철학자 피터 싱어(Peter Singer)가 ‘효율적 이타주의(effective altruism)’를 설명하며 한 말이다. ‘순수한 선의’에만 의존한 이타적 행위는 크게 도움이 되지 못하거나, ‘덜 순수한 선의’를 가진 타인을 평가하고 비난하는 등 오히려 세상에 해악을 끼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효율적 이타주의를 하나의 예시로 삼으며, 이 책의 독자들에게 ‘합리적 이타주의’를 권한다. 자신의 이타적 행동의 동기에 대해 집요한 자기인식 과정을 거치라고 조언하는 것이다. 그래야 오히려 더욱 전략적이고 체계적인 이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