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유럽은 암흑시대였는가?

박용진 · 歴史
12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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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적 지식을 압축적으로 보여 주는 인문 교양 문고 시리즈 '민음 지식의 정원' 서양사편. 총 12권으로, 각 권의 제목들이 서양사의 시대별 핵심 주제에 대한 질문으로 구성되었으며 본문의 구성 또한 주입식 역사가 아니라 일상적인 물음에서 출발하는 서술 방식이다. 역사를 읽으면서도 다양한 물음을 통해 논리적 사고력을 키울 수 있도록 기획되었다.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 출신의 교수들로 구성된 저자들은 그동안 우리나라 서양사 학계에는 독자적인 연구 성과가 없었다는 데 문제의식을 같이한다. 지금까지 기계적으로 받아들인 서양의 연구를 소개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었던 것과는 달리 이 시리즈는 우리의 시각에서 바라보고 자체적으로 해석한 서양사를 표방한다. 고대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서양사를 핵심 주제별로 관통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이 시리즈의 특징은 서명부터 각 장 제목까지 모두 하나의 질문에서부터 시작한 물음이 계속해서 이어지도록 하는 구성에 있다. 3권 에서는 중세는 암흑시대라는 편견과 부정적 시각에서 벗어나 중세 유럽의 정확한 모습을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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著者/訳者

目次

머리말 중세는 암흑시대인가? 1 중세는 어떻게 시작되었나? 중세는 언제부터 언제까지인가? 게르만 족은 로마를 어떻게 멸망시켰을까? 게르만 족은 왜 침입했을까? 게르만 족들은 어떤 나라를 세웠나? 중세 유럽은 어떻게 기독교 세계가 되었나? 바이킹은 어떤 종족인가? 2 봉건 사회란 무엇인가? 봉건 사회는 어떻게 형성되었나? 기사는 어떤 사람인가? 중세의 성은 어떤 역할을 했나? 영주와 농노는 어떤 사람인가? 중세 농노는 어떻게 살았을까? 3 중세 사회는 어떻게 발전했을까? 십자군은 성전인가? 물품의 교환은 어떻게 이루어졌나? 어떤 사람이 상업에 종사했나? 중세 도시민은 농노가 아니었나? 길드란 무엇인가? 도시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4 중세 유럽은 기독교 세계였을까? 기독교의 영향력은 어느 정도였을까? 교육과 문화 분야에 기독교는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건축 분야에 기독교는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5 흑사병은 중세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켰을까? 흑사병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을까? 흑사병은 중세인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교황과 교회의 권위는 어떻게 실추되었을까? 6 백 년 전쟁은 어떤 변화를 가져왔을까? 백 년 전쟁은 왜 일어났을까? 중세 말에는 어떻게 싸웠을까? 잔 다르크는 어떻게 등장했을가? 중앙 집권적 국가는 어떻게 출현하게 되었을까? 중세는 암흑시대였을까? 연표 더 읽어볼 책들

出版社による書籍紹介

민음 지식의 정원 서양사편 출간 ▶ 우리의 관심으로 서양을 바라보다 『민음 지식의 정원』 시리즈 서양사편이 민음인에서 출간됐다. ‘시대를 뛰어넘는 삶의 근본적인 물음에 답한다’는 모토로 출간된 『민음 지식의 정원』은 인문학적 지식을 압축적으로 보여 주는 인문 교양 문고 시리즈이다. 총 12권으로 구성된 서양사편 시리즈의 1차분으로 출간된 책은 『역사란 무엇인가』, 『로마는 어떻게 강대국이 되었는가?』, 『중세 유럽은 암흑시대였는가?』, 『대항해 시대의 마지막 승자는 누구인가?』 등 네 권이다. 기존의 서양사를 다룬 모든 책들이 단지 서양의 역사 연구를 소개하고 번역하는 데 그친 반면 『민음 지식의 정원』 서양사편은 우리의 현실과 관심에 맞게 새롭게 펴낸 서양사 시리즈라는 점에서 확연히 구분된다. 『민음 지식의 정원』 시리즈는 각 권의 제목들이 서양사의 시대별 핵심 주제에 대한 질문으로 구성되었으며 본문의 구성 또한 주입식 역사가 아니라 일상적인 물음에서 출발하는 서술 방식이다. 역사를 읽으면서도 다양한 물음을 통해 논리적 사고력을 키울 수 있도록 기획되었다.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 출신의 교수들로 구성된 저자들은 그동안 우리나라 서양사 학계에는 독자적인 연구 성과가 없었다는 데 문제의식을 같이한다. 지금까지 기계적으로 받아들인 서양의 연구를 소개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었던 것과는 달리 이 시리즈는 우리의 시각에서 바라보고 자체적으로 해석한 서양사를 표방한다. 저자 정기문 교수(군산대 사학과)는 “서양의 연구를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서양의 시각과 이데올로기를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시리즈는 우리가 서양을 바라볼 때에 관심을 가질 만한 주제를 선정해 구성했다. 한국적인 시각에서 바라본 서양사라는 측면에서 대중적인 관심 또한 크게 높일 것”이라고 말했다. ▶독창적 관점으로 서양사의 핵심 주제를 관통하다 『민음 지식의 정원』 서양사편은 고대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서양사를 핵심 주제별로 관통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각 권을 통해 해당 시대에 대한 깊이 있는 내용으로 서양사 전반에 대한 흐름을 짚고 이해를 넓힐 수 있어 독자들에게 이해의 폭과 깊이라는 두 가지 측면을 만족시켜 준다. 이 시리즈의 특징은 서명부터 각 장 제목까지 모두 하나의 질문에서부터 시작한 물음이 계속해서 이어지도록 하는 구성에 있다. 특히 책의 서명은 이 시리즈가 주제 설정에서부터 기존의 서양사 연구의 관점을 답습하지 않았다는 것을 잘 드러내 준다. 예컨대, 서양사 연구의 고전으로 꼽히는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 제국 쇠망사』를 비롯한 많은 로마사 관련 책들이 ‘로마는 왜 멸망했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이 시리즈에서는 『로마는 어떻게 강대국이 되었는가?』라고 묻는다. 또한 ‘중세 암흑기’라는 일상적인 표현에 『중세 유럽은 암흑시대였는가?』라는 물음을 던지면서 중세 사회가 봉건 제도와 교회의 속박으로 학문과 예술이 쇠퇴했던, 말 그대로 ‘암흑시대’였는지 비판적으로 살피고 있다. 이 시리즈를 통해 독자들은 과거를 통해 현재를 판단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데 도움을 얻는 역사서로서의 효용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잘 알지 못했던, 혹은 잘못 알고 있었던 역사적 사실과 의미를 재확인하고 평가하는 계기를 얻을 것이다. ▶책 속에서 발견하는 의외의 역사적 사실들 일본이 아니라 우리나라 역사 교과서에도 잘못된 내용이 실려 있다? 중세 유럽 인들이 고기보다 더 비싼 ‘후추에 고기를 뿌려 먹은’ 이유는? ① 고구려의 승려 담징이 일본에 건너가 호류사의 금당 벽화를 그렸다? 담징은 610년에 일본에 건너갔고 631년에 죽었다. 그런데 670년에 호류사에 대화재가 발생하여 주요 건물들이 소실되었고, 금당 벽화가 그려져 있는 건물은 7세기 후반에 지어졌다. 따라서 시기적으로 담징은 호류사의 금당 벽화를 그릴 수 없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는 어떻게 생겨났을까? 최초로 담징이 호류사의 벽화를 그렸다는 것을 교과서에 실은 사람은 국사학자 이병도이다. 이병도가 한국 사학계에서 워낙 거물이었는지라 이병도의 진술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이후 담징이 호류사 금당 벽화를 그렸다는 이야기는 한국사를 다루는 거의 모든 책에서 그대로 채용되었다. 도대체 이병도는 왜 그렇게 주장했을까? 신빙성이 약하기는 하지만 일본의 구전을 담고 있는 몇몇 작품에 담징이 호류사의 금당 벽화를 그렸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아마도 애국심 때문에 이병도는 이 구전들을 사실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역사란 무엇인가?』 50~52쪽 참조. ② 백제 의자왕은 삼천 궁녀를 거느렸다? 백제의 마지막 왕인 의자왕은 삼천 궁녀를 데리고 주색잡기에 빠졌고, 충신들을 벌하고 악신들을 가까이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실은 삼천 궁녀라는 말은 삼국 시대를 다룬 어떤 역사책에도 나오지 않으며, 조선 중기의 한 시인이 지은 시에 등장한다. 이후 역사책에는 아무런 고증도 없이 이 시의 내용이 사실인양 서술되었다. 우리는 여기서 도덕을 강조하는 사람들이 의자왕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사실을 왜곡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임금이 몇 번 연회를 베풀었다고 해서 망하는 나라는 없을 것이다. 백제가 멸망한 진짜 원인은 고구려와 손잡고 당에 맞섰기 때문이다. -『역사란 무엇인가?』 163~165쪽 참조. ③ 잔 다르크는 시대를 넘어선 프랑스의 진정한 영웅이다? 백 년 전쟁 당시 위기에 빠진 프랑스를 구한 잔 다르크는 교회의 재판에서 이단으로 판정받고 화형당하였다. 그녀의 도움으로 왕위에 오른 샤를 7세가 그녀를 복권시키기는 했지만 잔 다르크는 한동안 영웅으로 대접받지 못했다. 특히 계몽주의 시대에는 조롱과 경멸의 대상이었다. 계몽주의자들은 ‘이성’을 철저하게 신봉했으며 종교를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따라서 천사를 만났다거나 하느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주장하는 잔 다르크는 경솔하고 무지한 존재일 뿐이었다. 잔 다르크를 영웅의 반열에 올려놓은 사람은 나폴레옹이었다. 나폴레옹은 프랑스 국민을 단합시키고 프랑스의 힘을 상징해 줄 인물이 필요했다. 특히 영국과 대립하고 있었기 때문에 영국과 싸운 인물이 필요했다. 잔 다르크는 이 모든 조건을 훌륭하게 충족시켰다. 나폴레옹이 몰락한 후 민중이 새로운 역사의 주인이라는 생각이 등장하였다. 진보적인 지식인들은 프랑스 혁명의 이념을 계승하여 민중이 주인이 되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려고 했다. 그런데 이들에게도 영웅이 필요했는데, 민중의 후손이면서 지배층에게 희생당한 사람이어야 했다. 잔 다르크는 이들의 요구를 훌륭하게 충족시켰다. -『역사란 무엇인가?』 105~108쪽 참조. ④ 프롤레타리아는 마르크스가 최초로 만들어 낸 용어이다? 로마 시대의 군인들은 개인의 돈으로 병장기를 마련해야 했다. 즉 국가가 무기를 사 주는 것이 아니라 개인 돈으로 무장하고 국가를 위해서 싸우도록 했다. 그렇다면 돈이 없는 사람은 어떻게 했을까? 그들은 스스로 무장할 능력이 없으므로 군대에 가지 않아도 되었다. 이들을 프롤레타리아(proletaria)라고 불렀는데 이 단어는 라틴 어로 ‘아이를 낳는 자’라는 뜻으로 로마 제국 당시 군에 입대시킬 아들 이외에 부를 소유하지 못하는 계급을 비하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 후 마르크스가 사회학적인 용어로 도입하여 현대 사회학에서는 노동력 이외에 생산 수단을 갖지 못한 노동자의 의미로 사용된다. -『로마는 어떻게 강대국이 되었을까?』 34쪽, 134쪽 참조. ⑤ 명예를 위해서라면 목숨도 걸고 싸우는 것이 기사도 정신이다? 기사는 전투가 있으면 주군을 따라 싸움터에 나가 전투를 했다. 기사들이 벌이는 전투는 목숨을 걸고 싸우는 전쟁이 아니라 그 자체가 이들의 소일거리이자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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