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기본권이 거꾸로 가는 시대,
노동변호사 김선수가 한국사회에 던지는 직언
“27년째에 접어들고 있건만 우리 사회 노동권의 현실은 얼마나 나아졌는가 생각해보면 크게 달라진 게 없어 보인다. 공무원과 교원의 노동조합을 인정하는 법률이 제정되어 있지만 현실에서는 해고자의 조합원 자격을 인정하고 있다는 이유로 노동조합으로서의 법적 지위조차 부정당하고 있다. 평화적인 단순파업을 이유로 노동조합 간부들을 업무방해죄로 형사처벌하고, 천문학적 액수의 손해배상으로 옥죄고 있는 실정이다.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기업은 여전히 무노조주의를 천명하고 있다. 노동조합조직률은 10퍼센트에도 미치지 못한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광풍 속에 거세게 추진된 노동유연화와 민영화 등의 정책기조는 비정규직 양산과 사회양극화로 이어졌다. 참으로 답답한 현실이 계속되고 있다. 나는 과연 제대로 살고 있는가?” -머리말에서
노동 vs 노동법, 27년간의 화해와 싸움의 역사를 기록하다
김선수 변호사가 직접 쓴 27년 노동변론기를 한자리에 엮어냈다. 1988년 전태일을 생각하며 변호사를 꿈꾼 이래, 한국사회의 부침을 고스란히 받아 안으며 ‘전태일’들을 변호해온 기록이다. 이 기록에는 법정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화려한 변호도, 유려한 수사도, 거창한 의미부여도 없다. “의뢰인의 신념을 지켜주는 것이 변호사”라는 ‘신념’을 가진 한 변호사의 강직하고 담백한 목소리가 있을 뿐이다. 노동자 변호에 생의 절반 이상을 바쳐온 노변호사가 노동법이라는 양날의 검을 다루며 분투한 개인의 기록인 동시에, 한국사회 노동과 노동법이 팽팽하게 마주 보며 화해와 싸움을 거듭해온 모두의 기록이다.
노동기본권이 바닥 모를 암흑으로 추락하고 있는 이 시대, 그가 몸으로 살아낸 노동권 법적 투쟁의 역사가 더욱 뜻 깊고 아프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여민黎民’(노동으로 검게 그을린 백성)을 위하는 노동변호사
저자 김선수 변호사는 1988년 남대문합동법률사무소 조영래 변호사의 사무실에서 변호 인생의 첫 발을 떼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창립회원, 서울대학교노동법연구회 창립회원이기도 하다. 고비마다 거목 같은 조영래 변호사의 존재를 죽비 소리 삼았다고 말하는 그는, 10대 시절 은사가 지어준 ‘여민’이라는 호를 여전히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에 나오는 여민(黎民)은 ‘검은 백성’, 즉 노동을 해서 살갗이 검게 그을린 평범한 백성을 가리킨다. 저자는 노동변호사란 바로 이 ‘여민’을 기억하고 늘 그들과 함께해야 하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정의하기를 망설이지 않는다. 노동법이, 나아가 법 자체가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는 한계―인권을 보호해야 하는데 도리어 인권을 벼랑 끝으로 몰아가기도 하는―를 끌어안고 분투하는 과정에서, ‘여민’이라는 상징이 그의 좌표가 되어주는 것이다.
30년 가까운 세월이다. 살아온 날들의 절반 이상을 노동자를 변호하며 보냈다. ‘노동 변호’를 빼놓고 그의 삶을 설명하는 일은 가능하지 않다. 그런데 그런 저자에게서 느껴지는 것은 베테랑의 여유라기보다는 오히려 청년의 활기에 가깝다. 2008년 미국쇠고기 파동 이후 공장식 사육동물을 먹지 않고, ‘처음부터 다시’라는 마음으로 ‘기초체력’을 키우기 위해 독서 모임과 등산을 하고 있다는 그다. 자신에게 주어진 자리인 법의 영역에서 늘 현재진행형의 투쟁을 하는 그에게 나태해질 여유란 없다.
노동투쟁의 역사이자, 만신창이 한국사회의 자화상
이 책에는 25가지 실제 노동사건들이 시간 순으로 담겨 있다. 이 땅의 노동자들은 자신이 노동자라는 것을 ‘인정’받는 투쟁부터 시작해, 노조설립과 단체교섭, 단체행동을 위한 투쟁, 노동에 대해 마땅히 받아야 할 수당과 퇴직금을 위한 투쟁, 자유롭고 평화적인 집회·시위를 위한 투쟁, 비정규직을 벗어나 정규직으로 인정받기 위한 투쟁, 합당한 기준과 절차를 무시한 정리해고에 맞서 생존권을 사수하기 위한 투쟁, 개인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징계해고에 대한 투쟁 등을 그치지 않고 벌여왔으며, 저자는 그 곁에서 법정 투쟁을 함께했다. 사건들을 죽 따라가다보면 이것이 ‘노동’에 한정된 문제가 아니라 결국 한국사회의 정치, 경제, 문화 전반에 직결된 우리의 자화상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한국 노동이 있는 곳에, 그도 있었다
캐디노조 설립신고 행정소송, 병원노련 합법성 쟁취 사건, 서울대병원 법정수당 소송, ILO공대위 전국노동자대회 사건, 나우정밀 등 직장폐쇄 사건, 현대전자 채용내정 취소 사건, 공무원노조 창립대회 사건, 비판 교수 축출에 악용된 재임용제, 시내버스 운전기사의 해고 투쟁, 대한항공 승무원의 11년 법정 투쟁, 콜트·콜텍 해고 사건, 시그네틱스 경영해고 사건, 일제고사 거부 교사 해직 사건, 경기대 기간제·파견근로 해고 사건, 사무직 노동조합 설립과 해고 투쟁…… 숱한 사건들을 맡아 때로는 졌고 때로는 이겼다. 노동법은 손바닥 뒤집듯이 진보와 퇴보를 거듭했고, 그 손바닥에 매달린 노동자들은 울고 웃었다. 그 한가운데서 김선수 변호사에게 주어졌던 유일한 것이 바로 ‘변호’다. 그는 법이라는 불완전한 검으로 도리어 노동자를 상처 입히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지금 “27년째에 접어들고 있건만 우리 사회 노동권의 현실은 얼마나 나아졌는가 생각해보면 크게 달라진 게 없는 것으로 보인다. (...) 참으로 답답한 현실이 계속되고 있다. 나는 과연 제대로 살고 있는가?”라고 스스로에게 날 선 질문을 던져야만 하는 상황이다.
‘노동 야만’의 시대, 노동법은 답하라
2013년 10월, 고용노동부 장관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 대해 법외노조 통보를 했다. 조합원이 6만 명이 넘고 15년간 적법하게 활동해온 노조에 무 자르듯 “노조 아님”을 명한 것이다. 이 결정은 유례없이 폭압적인 만큼이나, “그럼 님은 대통령 아님”을 통보한다는 반응이 나올 정도로 황당한 것이었다. 지난 8월에는 2009년 철도파업 업무방해 사건에 대해 업무방해죄가 성립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도 했다. 파업시기를 예고하고 필수유지업무 제도를 준수하고 대체근로까지 하도록 했는데, 단지 철도가 필수공익사업이고 거액의 영업손실이 났다는 이유로 철도공사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이는 사실상 공익사업 노동자들의 파업권을 원천봉쇄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쌍용차, 철도, 한진중공업, 현대차비정규직 노조 등에는 사측으로부터 수십억, 수백억 손해배상과 가압류 폭탄이 떨어졌다. 너희가 투쟁해서 손해를 봤으니 너희가 물어내라는 것이었다. 2009년 이후 스물다섯 명의 동지와 가족의 목숨을 잃어가며 복직 투쟁을 벌여오고 있는 쌍용차 해고자들은 지난 10월 또다시 희망을 기각당했다. 2월에 고등법원이 부당해고 판결을 내렸음에도 가처분사건에서 1심인 수원지방법원 평택지원이 가처분신청을 기각한 것이다.
그런가 하면 최근 충격적인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국회환경노동위원회 여당간사의 발의하에 추진 중이기도 하다. 현행 법정근로시간 40시간에 연장근로 허용한도를 주 12시간에서 20시간으로 늘리고, 휴일근로의 경우 가산수당(50%)만 지급하되 휴일수당(50%)은 지급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그 내용이다. 농담 같은 이러한 제안이 실제로 추진 중이라는 데 대해, 안 그래도 추가근무와 무보수에 찌들어 있는 직장인들은 냉소조차도 나오지 않는 형편이다.
이런 식으로 하나하나 다 거론할 수 없을 만큼, 한국사회의 노동은 벼랑의 벼랑에 내몰려 있다. 노동기본권 시계가 거꾸로 간다는 탄식이 나온다. 아니, 거꾸로 가고 있다는 말도 부족할 정도이고 저자가 말하듯 그야말로 ‘야만의 시대’라고 할 만하다. 이 ‘노동 야만’의 선두에 현 정부가 있고, 또한 현재의 ‘노동법’이 있다.
우리나라는 1953년에 노동조합법, 노동쟁의조정법, 근로기준법이 처음 만들어졌고 이후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