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에서 만날 빨간색은 장밋빛이 아닙니다,
그것은 핏빛입니다.
마르크스가 이른바 ‘시초축적의 역사’를 통해
보여주려던 것은 무엇일까요.
땅을 빼앗기고 공동체를 파괴당한 사람들이 겪었던 피와 불의 역사에서
바로 ‘자본주의’라는 이상한 사회형태가 생겨났다는 겁니다.
노동하는 자들이 자기 노동으로 먹고살지 못하도록 생산수단을 빼앗고
노동하는 자들이 서로 기대며 살아갈 수 없도록
공동체를 빼앗은 후에야 자본주의가 시작될 수 있었습니다.
다수의 생산자들을 궁핍과 빈곤으로 내몬 후에야
자본축적이 시작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본의 창세기, 그 첫 문장은 이것입니다.
태초에 수탈이 있었다!
이란?
천년의상상 출판사는 철학자 고병권이 ‘독자들과 함께’ 마르크스의 『자본』을 읽어나가는 대형 프로젝트를 기획했습니다. 그간 ‘난공불락의 텍스트’로 여겨지며 수많은 독자들을 중도 포기하게 만든, 그래서 늘 미련이 남는 책 마르크스의 『자본』을 철학자 고병권의 오프라인 강의와 더불어 더 쉽게 더 제대로 읽어나가려는 기획입니다. 2018년 8월부터 『자본』을 더 깊이 해석한 단행본이 먼저 출간되고, 책 출간 다음 달에는 오프라인 강의가 진행되었습니다(이 강의는 온라인으로도 제공). 자세한 출간 일정은 책 속의 ‘일러두기’에 있습니다.
1. ‘시초축적’, 피와 불의 문자들로 기록된 연대기
― 마침내 만난 『자본』의 프리퀄, 그 핏빛 역사
철학자 고병권과 함께하는 시리즈의 대미를 장식할 열두 번째 책 『포겔프라이 프롤레타리아』가 출간되었다. 2018년 시작한 시리즈의 마지막 책을 3년여의 여정 끝에 드디어 만나게 된 것이다. 이 책 12권에서 저자 고병권은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 I권의 마지막 부분, 즉 제7편의 제24장 “소위 시초축적”과 제25장 “근대 식민이론”을 독자들과 함께 읽는다.
이 책은 말하자면 시리즈의 이전 책들(1~11권)이 다룬 내용의 ‘프리퀄’이라 할 수 있다. 11권까지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을 전제하고 내용을 펼친 것이라면, 이번 12권은 그 전제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다룬다. 즉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전사’(前史)를 이야기한다.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있기 전에, 혹은 그것이 있기 위해 무엇이 필요했던 것인가.
지금까지 이 시리즈에서 저자는 자본이란 곧 ‘잉여가치를 낳는 가치’임을 말해왔다. 그런데 ‘잉여가치’가 존재하려면 그것을 낳는 가치가 ‘먼저’ 주어져야 한다.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시작되려면 일정 규모 이상으로 축적된 자본(일정 규모 이상의 가치량)이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시작하는 자본’이 없다면 자본의 순환 운동은 ‘시작’될 수 없다. ‘자본의 순환’ 이전에 존재하는 ‘시초축적’을 상정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제24장의 제목을 보면 마르크스가 ‘시초축적’이라는 말 앞에 ‘소위’라는 수식어를 붙이고 있습니다. 앞으로 소개할 내용이 ‘사람들이 말하는’ 바로 그런 의미의 ‘시초축적’이라는 것이지요. 사람들은 이렇게 물을 수 있을 겁니다. ‘도대체 자본주의는 처음에 어떻게 시작된 거지?’ 나는 마르크스가 이런 물음에 답하기 위해 제24장을 썼다고 생각합니다. 자본(자본주의)의 ‘역사적 등장’에 대해 말하려고요. - 본문 30쪽, <1장 “수치스러운 기원”>에서
‘처음의 자본과 처음의 자본가’는 어떻게 생겨난 것인가. 우리는 시리즈의 이전 책들을 통해 ‘노동력’이라는 특별한 상품이 없다면 자본 역시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화폐와 상품이 존재한다고 해서 그것들이 저절로 자본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화폐와 상품이 자본으로 변신하려면 ‘노동력’이 시장에 ‘상품으로서’ 나와야 한다.
그런데 노동력이 시장에 나오려면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저자 고병권의 분석에 따르면, 그중 하나는 노동자의 ‘신분 해방’이다. 즉 노동자가 자기 노동력을 시장에서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노동자의 ‘빈곤’이다. 즉 노동자가 생활수단과 생산수단을 상실해버려 더는 노동력을 팔지 않고서는 살길이 없어야만 한다.
이 책 『포겔프라이 프롤레타리아』에서 저자 고병권은 이른바 ‘시초축적기’에 자본의 탄생에 필수불가결한 상품인 노동력이 어떻게 출현했는지를 추적한다. 부르주아 역사가들은 이 시기에 관해 말할 때 노동자들이 농노적 예속이나 길드 예속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졌다는 점만을 강조하지만, 마르크스는 그 자유의 이면, 즉 어떻게 해서 다수의 사람이 노동력 판매 외에는 살길이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는지를 분석했다. 그리고 그 일이 얼마나 참혹하게 이루어졌는지를 마르크스는 다음과 같은 말로 표현한다. “이러한 수탈의 역사는 피와 불의 문자들로 인류의 연대기에 기록되어 있다.”
2. ‘포겔프라이 프롤레타리아’의 탄생
― ‘노동력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숨겨진 끔찍한 진실
『자본』에서 마르크스는 “대다수 인구의 프롤레타리아화”가 자본주의를 가능케 한 결정적 사건이라고 보았다. 여기서 저자 고병권은 마르크스가 ‘프롤레타리아’라는 단어와 함께 언급한 용어, ‘포겔프라이’(vogelfreie)에 주목한다.
본래 ‘포겔프라이’라는 말은 새(Vogel)처럼 자유롭다(frei)는 뜻입니다. 어디에도 묶여 있지 않다는 뜻이지요. 하지만 시초축적기에 즈음하여 ‘아무런 법적 보호도 받을 수 없는’, ‘아무런 권리도 없는’이라는 부정적 의미가 생겨났습니다. 사람을 처형한 후 ‘새들의 먹이로 내던지는’ 경우가 있었는데요. 이 표현에서 포겔프라이의 새로운 의미가 덧붙여진 것 같습니다. 그래서 공동체로부터 아무런 보호도 받을 수 없는 존재, 법적 권리가 없어 무차별적 폭력에 노출된 존재를 가리킬 때도 이 말을 썼습니다. - 본문 39쪽, <1장 “노동자의 탄생 ①―공유지 약탈과 인간 청소”에서>
저자의 분석에 따르면, 마르크스의 용어 ‘포겔프라이’는 이처럼 ‘해방이 상실로 나타난 것’ 혹은 ‘상실의 형태로 해방이 이루어진 것’을 표현하기 위한 단어다. 즉 ‘포겔프라이’는 기존의 봉건적 예속에서 벗어난 존재(새처럼 자유롭게 나는 존재)이자 보호받지 못하는 존재(새 먹이로 내던져진 존재)라는 의미를 다 갖고 있다. 사실 속박에서 벗어난 인간은 발가벗겨진 인간이기도 한 것이다.
인격을 부인당한 노예나 농노의 처지에서 벗어났으니 이제 온전한 인격을 가진 인간이 출현해야 할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아무런 권리도 없이, 아무런 보장도 없이, 오로지 인간이라는 사실 하나만 남은 인간이 ‘시초축적기’에 등장한다. 저자 고병권은 “이때의 인간이 가장 위험한 처지의 인간”이며, 바로 이 시기에 “인간으로서의 생존이 가장 위태로운 순간”을 맞게 된다고 말한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기초를 만들어낸 변혁의 서막은 1470년경부터 1500년대 초의 수십 년 동안” 일어났다고 말한다. 이 시기에 다수의 농민이 자신들이 보유하던 토지를 잃고 ‘포겔프라이 프롤레타리아’로 전락해 ‘대량의 인간대중’이 노동‘시장’으로 내던져졌다. 나라마다 시기와 양상은 다르지만 세계 곳곳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 그것이 바로 ‘울타리를 두른다’라는 뜻의 ‘인클로저’인데, 울타리 하나 두르는 것이 무슨 큰일일까 싶지만 이 울타리야말로 중세 농촌의 사회형태가 해체되었다는 징표였다.
사실 중세에는 ‘관습’의 힘이 상당히 강했으며, 제아무리 영주라 해도 관습을 무시하고 농민들의 땅을 제 마음대로 빼앗을 수는 없었다. 그랬던 영주들이 어찌하여 돌변해 농민들의 토지를 앗아간 것일까. 마르크스는 봉건귀족 자체의 구성이 바뀌었음을 지적했다. 영국의 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