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로서의 젠더는 없다
다른 성별, 다른 젠더, 다른 섹슈얼리티를 혐오하는
페미니즘 백래시 시대, 다시 젠더를 생각한다!
『젠더 트러블』 개역판 전격 출간
2008년 한국어판으로 출간되어 오늘날 페미니즘 이론의 고전으로 자리잡은 『젠더 트러블』이 이전의 번역을 다듬어 개역판으로 새롭게 돌아왔다. 첫 한국어판이 출간된 이래로 지금까지 이 책은 젠더를 이해하기 위한 필수 관문이자 ‘이 책을 읽지 않고는 페미니즘을 논할 수 없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막대한 영향력을 가진 저작으로서 자리매김해왔다. 새로운 번역과 새로운 표지로 선보이는 이번 개역판 『젠더 트러블』은 기존의 번역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해 오역을 바로잡았으며, 개념어와 용어의 명확한 의미 전달을 위해 번역어를 대폭 다듬었다. 또한 원문의 의미를 가독성 있게 전달하면서 맥락마다 놓친 의미가 없도록 세심하게 점검함으로써 페미니즘 이론의 영원한 고전이라는 이 책의 위상을 더욱 공고히 세우고자 노력했다.
1990년에 미국에서 초판이 출간된 이후 사반세기가 훌쩍 넘는 34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며 학계를 비롯한 여러 영역에서 페미니즘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한 변화를 겪어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젠더 트러블』이 영향력은 여전하다. 이는 이 책이 품은 문제의식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중요한 페미니즘의 과제와 쟁점들을 다루기 때문이다. 더욱이 전 세계적으로 페미니즘 백래시 현상이 점점 거세지고, 페미니즘 담론이 사회 변화를 추동하려 할 때마다 이에 대한 반격도 잇따르지 않는가.
이럴 때 떠오르는 가장 근본적인 질문이 젠더란 무엇이며, 젠더를 어떻게 이해할 것이며, 젠더가 왜 문제가 되는가이다. 주디스 버틀러는 『젠더 트러블』을 통해 기존의 관행적 의미로 한정된 젠더의 의미에 자유를 주고자 했다. 더 나아가 “젠더 가능성의 장을 여는 것”을 목적으로 “젠더소수자 및 성소수자의 행위를 불법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해 진리 담론을 휘두르려는 모든 시도들을 뒤흔들어보고자” 젠더의 고정성에 의문을 던졌다. 따라서 다른 성별, 다른 젠더, 다른 섹슈얼리티를 혐오하는 오늘날의 페미니즘 백래시 시대에, 젠더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려는 버틀러의 문제의식은 여전히 중요하고 유효하다.
그간 국내에서도 주디스 버틀러의 여러 다른 저작들과 관련 해설서들이 다수 출간되어 더욱 풍부한 이론의 장이 형성되면서 그의 사상이 밟아온 궤적과 논점의 변화 과정 또한 추적해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럴수록 버틀러 이론의 정수인 『젠더 트러블』에 대한 이해는 필수불가결한 가치를 지닌다. 이번 개역판에서는 『젠더 트러블』의 이해를 돕기 위해 핵심 개념과 용어를 정리한 ‘버틀러의 주요 개념들’ 내용을 보충했고, 개역판 출간에 맞춰 현재의 관점에서 풀어쓴 옮긴이 해제를 추가로 수록했다.
2008년에 번역했던 책을 16년 만에 다시 잡았다. 상식적인 것에는 급진성이 없다는 저자의 신념에 따라 이 책 원문이 어려운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가능하면 가독성을 조금 더 높이고 기존의 부족함을 바로잡아 페미니즘과 퀴어 이론의 고전으로서 이 책의 위상을 더욱 공고히 세우자는 것이 개정판을 출간하게 된 취지다. 이번 개정판에서는 원문의 sex를 ‘섹스’로 옮기는 대신 맥락에 따라 성 혹은 성별로 옮겼다. sex, gender, sexuality 모두 우리말로 성에 해당하지만 타고난 성sex은 성별을 의미하는 반면, 한글로 쓴 섹스는 관용적으로 성행위를 연상시키는 면이 있어서다. 가독성을 위해 matrix는 모태에서 기반으로 바꿨고, 철학적 개념의 정확성을 위해 substance는 본질에서 실체로 바꿨다. 젠더를 대체할 역어도 고심했으나 결국 젠더는 그대로 두었다. 그 단어가 전하는 의미가 다의적으로 파생되어 젠더의 문화번역이라는 파급 효과를 기대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젠더는 여전히 젠더로 남고, 여전히 트러블을 일으키며, 앞으로도 일으킬 것이다. _‘개정판 옮긴이 해제’에서
기존 페미니즘의 패러다임을 단숨에 전복시킨 세기의 문제작이자
현대 페미니즘과 퀴어 이론을 대표하는 영원한 고전
현존하는 가장 도전적이면서 영향력 있는 사상가 주디스 버틀러 이론의 정수
『젠더 트러블』은 페미니즘 내부의 가부장적 이성애중심주의를 비판하고 성별과 젠더의 이분법적 틀을 허물면서 기존 페미니즘에 대한 도발적인 문제 제기를 담아낸 책으로, 전 세계 다양한 언어로 번역 출간되며 학계의 큰 주목을 받았다. 이 책으로 인해 버틀러는 30대 중반의 나이에 페미니즘 학계의 스타로 떠올랐고, 현존하는 가장 도전적이면서 영향력 있는 사상가로 평가받는다.
초판 서문에서 ‘젠더’라는 규정 자체가 ‘트러블’임을 밝히면서 시작하는 이 책은 페미니즘 담론에서 트러블이란 피할 수 없는 것이므로 버틀러 스스로 최대한 트러블을 잘 일으키고, 최고로 멋지게 트러블에 빠지려고 한다는 의지를 표현한다. 이러한 저자의 의도대로 『젠더 트러블』은 출간 직후 학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고, 이 급진적 사고는 페미니즘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을 뿐 아니라 퀴어 이론, 사회학, 정치학 등 학계 전반에 파급력을 증명했다.
젠더의 불확정성을 주장하면 결국 페미니즘이 실패하기라도 할 것처럼, 젠더의 의미에 관한 당대의 페미니즘 논쟁은 여러 번이나 트러블을 일으켰다. 그렇다고 트러블에 부정적 의미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내가 어릴 적 위세를 떨치던 담론에서는 트러블이란 일으켜선 안 될 어떤 것이었는데, 트러블을 일으키면 트러블에 빠지기 때문이었다. 반항과 그에 대한 질책이 같은 말에 휘말리는 것 같았고, 그런 현상을 보고 나는 처음으로 권력의 미묘한 책략을 꿰뚫어볼 비판적 통찰을 갖게 되었다. 지배적인 법이 우리를 트러블로 위협하기도 하고 트러블에 빠지게도 하는데, 이 모두가 트러블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트러블이란 피할 수 없는 것이고, 내가 할 일은 최대한 트러블을 잘 일으키고, 최고로 멋지게 트러블에 빠지는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_74쪽
후기구조주의 페미니즘 철학자인 버틀러는 이 책에서 프로이트, 라캉, 데리다, 푸코 등 후기구조주의자라 불리는 쟁쟁한 철학자들의 이론을 끌어와 페미니즘의 이론에 맞게 변형시켜 자신의 논지를 전개한다. 그리고 1960~1980년대 이른바 제2물결 페미니즘이 집중했던 가부장제의 억압 구조와 여성 해방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되짚어보고자 시몬 드 보부아르, 뤼스 이리가레, 쥘리아 크리스테바, 모니크 비티그 등의 프랑스 페미니즘 이론을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조망한다.
푸코가 명확히 밝힌 대로, 문화적으로 모순적인 억압기제라는 기획은 금지하는 동시에 생성적인 것이며, 특히 ‘해방’의 문제에 날을 세운다. 아버지의 법의 족쇄에서 해방된 여성의 몸은 전복적인 위치를 가장하지만, 아버지의 법이 자기 확대와 확산 작용을 하기 때문에, 아버지의 법의 또다른 구현이라는 것이 입증될 것이다. 피억압자라는 이름으로 억압자가 해방되는 것을 피하려면 법의 전체적 복잡함과 미묘함을 반드시 고려해야 하며, 법을 넘어선 진정한 몸이라는 환상을 우리 스스로 고쳐야 한다. 만약 전복이 가능하다면, 그것은 법이 스스로에 반하는 작용을 하면서 법이 예측하지 못한 순열을 생산할 때 생기는 가능성을 통해서 법의 내부에서 온 전복일 것이다. 그렇다면 문화적으로 구성된 몸은 그 몸의 ‘자연스러운’ 과거도, 기원적인 쾌락도 아닌, 문화적 가능성이라는 열린 미래로 해방될 것이다. _259~260쪽
성별, 젠더, 섹슈얼리티에 강제된 질서를 뒤집는 전복적 상상력
패러디, 수행성, 우울증적 정체성 등에 나타난 젠더의 양상을 고찰하다
보부아르가 말한 “여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라는 유명한 명제는 생물학적으로 결정된 성(성별)과 사회문화적으로 구성된 성(젠더)이라는 개념을 사회적 통념으로 고착화하는 데 영향을 주었다. 여기서 젠더는 생물학적 성별과 구분되는, 성별의 문화적 해석이거나 성별에서 파생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