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 중국사 당

마크 에드워드 루이스
61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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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중국사 시리즈 '당' 편. 중국 역사의 '황금기'로 불리는 당 제국은 중국 역대 왕조 중 가장 개방적으로 다양한 문화를 수용하였던 기간이었으며, 동시에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사회 문화적으로 동질성을 유지하고 있는 동아시아문명이 본격적으로 형성되는 시기였다는 점에서 범지구사적으로 대단히 중요하다. 저자 마크 에드워드 루이스(미 스탠포드대 교수)는 이 책에서 중국이 '중원지역'을 벗어나 지리적 확장을 이루었고, 한국과 일본, 그리고 페르시아만 여러 나라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었던 역동적인 당대라는 시기를 쉽고도 풍부하게 담아낸다. 당대 사람들은 바다와 육지에서 광범위하게 무역에 종사했다. 내륙 아시아로부터 온 상인들이 장안과 낙양에 거주하였고, 모험적인 상인들은 보다 넓은 세상을 향해 나아갔다. 이는 곧 범지구적 디아스포라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영원할 것 같던 번영과 평화는 곧 종지부를 찍었다. 756년 절도사 안녹산의 반란은 당 제국을 그 뿌리까지 흔들었고 그 후 재건된 당 왕조는 이전과 뚜렷이 구별되었다. 이 책은 흥미롭게도 후대 동아시아인들에게 찬란한 영광의 시기로 기억되는 당대의 전반기보다 쇠락해가는 당의 후반기에 주목한다. 그 역사적 단절이 중국 역사 궤도에서 결정적 순간이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저자는 서구학계의 방대한 학술성과를 집대성하고 특유의 박람강기를 동원하여 지리, 정치, 도시생활, 농촌 사회, 외부 세계, 친족, 종교, 문학과 예술에 걸쳐 난숙하였던 당대 문명이 정치적 위기를 통해 한계에 직면한 뒤에 새롭고 보다 업그레이드된 문명으로 탈피하는 과정을 유려하게 풀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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著者/訳者

目次

한국어판 서문 들어가는 말 1_ 당 제국의 지리적 경관 중국 고대의 중심지, 관중 | 북동부, 중원 평원, 그리고 사천 | 남부 지역 | 수상 운송 | 내지와 외지 2_ 당 제국 건국에서부터 반란으로 당 제국의 통합 | 현종의 치세와 안녹산의 반란 | 당의 군사 시스템 | 중국 중세의 ‘귀족’ | 당대의 법전 | 토지 소유와 조세 3_ 절도사와 재정관 중앙 조정과 절도사의 긴장관계 | 당쟁 | 다양한 지역세력 | 군사적 지방 분권주의와 새로운 정치적 역할들 | 재정적 지방 분권주의와 새로운 정치적 역할 4_ 도시 생활 장안과 낙양의 배치 | 장안성의 유흥 지역 | 모란꽃 열풍 | 당대 도시의 상업화 | 세금과 화폐 5_ 농촌 사회 토지 소유의 새로운 양식 | 농업 기술 | 원거리 교역과 상업화 | 차와 설탕 6_ 외부 세계 천가한으로서의 당 황제 | 동아시아의 등장 | 국제 교역의 재편성 | 당대 중국 거주 외국인들 | 외국에서 온 불교도들 7_ 친족 당대 집안의 여성들 | 조상 숭배의 변화 | 당대의 문벌귀족들 | 대가문(문벌귀족)의 최후 8_ 종교 당대 도교 | 여관과 여성 사제 | 중국 불교의 등장 | 국가 신앙과 지역 신앙에서의 유교식 의례 | 유교 경전의 독해 | 인쇄술 9_ 저술 초당 시의 위치와 가사 | 고대 시가에 대한 성당시의 계승 | 시인에 대한 인식 변화 | 애정소설 | 비평 수필 나오는 말 당대 주요 연표 중국의 역대 왕조 참고문헌 지은이의 말 옮긴이의 말 찾아보기

出版社による書籍紹介

중국 역사상 가장 중대한 전환기, 동아시아 문화권의 형성기 중국 역사의 “황금기”로 불리는 당 제국은 중국 역대 왕조 중 가장 개방적으로 다양한 문화를 수용하였던 기간이었으며, 동시에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사회 문화적으로 동질성을 유지하고 있는 동아시아문명이 본격적으로 형성되는 시기였다는 점에서 범지구사적으로 대단히 중요하다. 저자 마크 에드워드 루이스(미 스탠포드대 교수)는 이 책에서 중국이 ‘중원지역’을 벗어나 지리적 확장을 이루었고, 한국과 일본, 그리고 페르시아만 여러 나라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었던 역동적인 당대라는 시기를 쉽고도 풍부하게 담아낸다. 당대 사람들은 바다와 육지에서 광범위하게 무역에 종사했다. 내륙 아시아로부터 온 상인들이 장안과 낙양에 거주하였고, 모험적인 상인들은 보다 넓은 세상을 향해 나아갔다. 이는 곧 범지구적 디아스포라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영원할 것 같던 번영과 평화는 곧 종지부를 찍었다. 756년 절도사 안녹산의 반란은 당 제국을 그 뿌리까지 흔들었고 그 후 재건된 당 왕조는 이전과 뚜렷이 구별되었다. 이 책은 흥미롭게도 후대 동아시아인들에게 찬란한 영광의 시기로 기억되는 당대의 전반기보다 쇠락해가는 당의 후반기에 주목한다. 그 역사적 단절이 중국 역사 궤도에서 결정적 순간이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저자는 서구학계의 방대한 학술성과를 집대성하고 특유의 박람강기를 동원하여 지리, 정치, 도시생활, 농촌 사회, 외부 세계, 친족, 종교, 문학과 예술에 걸쳐 난숙하였던 당대 문명이 정치적 위기를 통해 한계에 직면한 뒤에 새롭고 보다 업그레이드된 문명으로 탈피하는 과정을 유려하게 풀어낸다. “사실상 중국의 중심지이면서 북부의 통제를 받는 남부” ; 당대 가장 큰 변화는 중화 제국의 공간에 대한 재정립이었다 저자는 이 책에서 가장 먼저 중국의 중심지 관중, 북동부, 중원 평원, 사천, 그리고 남부 지역 등지의 지리적 경관에 대해 기술하면서, 당대의 가장 큰 변화로 남부 지역이 경제와 인구, 문화 등 여러 측면에서 중국의 중심지로 등장한 것을 꼽는다. 당 왕조 첫 140여 년간(618~756년 사이) 그 중심지인 장안과 제2의 수도인 낙양에서 외부로 확장하고 있을 때에 인구의 대다수는 북부 최대 수로인 황하, 그리고 그 주요 지류인 위하와 분하 유역에 거주하고 있었다. 하지만 당 왕조가 멸망할 즈음에는 완전히 변하였다. 전통적 중심지였던 북서부 지역은 장기간의 경제적, 생태적 쇠퇴가 시작되어 오늘날과 같은 빈곤하고 반(半)사막인 후배지로 전락하였다. 중원 평야는 고대 중국 문화의 전형으로서의 광채를 상실하였고, 북동부(하북성과 산동성)는 거의 이민족에게 점거되거나 경계 지역이 된다. 이 지역들은 후기 중화 제국 시기 내내 비한족의 ‘정복왕조들’의 본거지가 되었다. 남부의 개발은 위진남북조 시기 잇따라 등장한 국가들에 의해 시작되었고, 단명한 수 왕조의 최대 업적인 대운하를 통해 곡물, 특히 쌀을 남부에서 북서부의 장안에까지 운반할 수 있었다. 안녹산 반란 이후, 황하 유역 대부분의 지역에 대한 당 왕조의 통제권이 상실되면서 양자강 유역, 이른바 강남은 제국의 경제 중심이자 국가 재정 수입상으로도 가장 중요한 지역이 되었다. 남부는 경제적, 인구나 문화 등 모든 면에서 북부를 압도하였다. 하지만 전략적인 이유로 북부에 있던 수도의 정치적 통제를 받는 남부라는 전형적인 형태는 당말 이후의 중화 제국 시기 내내 유지되었다. 최상위 대가문의 몰락과 함께 ‘상업화’와 ‘도시화’가 진행되다 중국 역사에서 되풀이되는 주제는 정치권력의 중앙집권화와 지역 자치 세력 사이의 긴장관계이다. 756년 장안을 장악하면서 그 절정에 도달한 안녹산의 반란은 당 전기의 제도적인 틀 즉 균전제, 부병제, 조용조 세제가 실패함으로써 발생하였고 또한 그것을 완전히 붕괴시켰다. 이는 국가 자산과 신민(臣民)에 대한 국가 통제의 상실을 의미하는 것이며, 일련의 변화들은 차례차례 대가문 중심의 귀족제적 사회질서를 종결시켰다. 후기 중화 제국을 창조해 내었던 ‘경제 혁명’이 송대에 절정을 이루지만 그 변화는 8~9세기 당대에 시작되었던 것이다. 이는 오대 시기에 이르러 중국인들의 생활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마크 에드워드 루이스는 당 후반기 위진남북조 이래 형성된 기존의 사회 시스템이 중단 및 폐기되는 시점을 ‘남부’라는 문화적 지형의 변화와 함께 후기 중화 제국으로서 가장 큰 전환점이라 강조한다. 변화의 방향은 ‘상업화’와 ‘도시화’였다. 저자가 깨알같이 묘사하고 있는 장안과 낙양의 벽으로 둘러싸인 격자형의 페쇄적인 도시 구조는 8세기 중반을 기점으로 균열이 생긴다. 많은 공간적 제약들이 사라지면서 도시의 상업시설들이 시끌벅적한 거리를 따라 주거 공간과 섞여 있는 후기 중화 제국의 도시 모델로 변화하였다. 더 중요한 것은 대운하를 따라 설탕, 차, 종이, 소금, 목재, 보석, 약초, 구리, 실크 등의 상품들이 대규모로 운송, 교역되는 새로운 중심지가 등장하여 번성하였다는 점이다. 바로 강도(남경), 항주, 소주, 번우(광주) 등이다. 경제 혁명은 도시 생활과 상인에게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났지만, 당대 농촌 사회 역시 혁신을 이 시기에 겪는다. 농촌 여기저기에서 생겨난 새로운 상업 중심지들은 중개인이나 소매상인의 지배하에 점차 상업화되어 가는 농업 시스템에 편의를 제공하였다. 당의 후반기는 이러한 상업적 혁신의 전환기였다. 한편, 남북조 시대에 걸쳐 형성되었으며 당대의 특권층으로 존재했던 대가문이 당 제국의 운명과 함께 소멸한 것은 20세기 중국 역사학의 주요한 쟁점 중의 하나였다. 다수의 통설은 과거시험 제도의 등장에 주목해 왔지만, 이러한 경향은 그 결과가 원인으로 변한 것이라 저자는 주장한다. 오래된 가문에게 당시의 과거시험은 전적으로 유리하였고, 과거를 통한 최고위 관료로의 변신은 놀랄 만한 일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들이 지역적 기반을 포기하고 수도 장안과 낙양으로 실제로 이주하게 되면서, 국가 체제 밖에서는 존재할 방법이 없는 관료적 귀족이 되었다는 점이다. 또한 안녹산의 난 이후, 국가 관료제 외부에서 새로운 권력의 기반이 등장하였다. 동북 지역과 중원 지역에서 절도사들이 발호하고, 남부 지역에서 소금 전매제가 등장하면서 군사적, 재정적, 행정적 전문가로서의 배경을 지닌 인물들이 바로 그들이다. 반면 난세로 인해 북부의 대가문들은 그들의 지역적 기반을 버리고 장안으로 더욱 결집하였다. 881년 황소 반란군의 장안 약탈은 대가문 구성원의 죽음이나 당 왕조의 종말만이 아니라 그들의 물질적 부의 파괴도 의미하였던 것이다. 상업과 외부와의 교섭에 무관심한 중국 중심적 제국이라는 서구의 시선을 걷어낸다 당대 상인들이 외부 세계와의 교역관계를 재편한 것은 새로운 중국으로 가는 또 하나의 전환점이었다. 서북쪽의 최대 중심지는 수도였던 장안과 낙양이었다. 투르크, 위구르, 소그디아나 인뿐만 아니라 아랍, 이란, 인도 등의 상인과 각국의 외교 사절과 유학생 및 외국인 불교 승려 등이 가득 차 있었고, 돈황이나 양주와 같은 감숙 회랑지구의 도시는 외국계 주민이 중국계 주민의 수를 훨씬 상회하였다. 남부 항구인 교주(하노이), 번우(광저우), 복주에는 주로 참족, 크메르족, 자바인, 신할라 인이 거주하였던 것처럼 외국 상인의 분포는 교역의 패턴과 일치하였다. 당시 강도(남경)는 동아시아 상업 교역의 최대 중심지로서 그 지위를 8세기 후반까지 유지하였는데, 대체로 한국인이 장악하고 있었고, 일본인은 제한적인 역할만을 수행하였다고 저자는 기술한다. 신라가 고구려와 백제를 통일하고 일본 선박들의 운항을 통제한 이후, 나가사키의 일본 상인들은 한국인들의 독점을 피해서 장강 하구로 직접 행해를 시도했으나 그것은 모험이었고 대부분의 일본 구법승이나 상인, 외교 사절단은 신라의 선박이나 발해의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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