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그랬다. 첫 작품을 만들 때부터 마이너가 되고자 한 건 아니었다. 나는 그냥 아웃사이더였을 뿐이다. 나는 여전히 첫 작품을 기억하는데, 그것은 1964년에 만든 단편영화였고 제목은 ‘어울리지 못하는 아이들’이었다. 내가 16살 되던 해에 이 영화를 만들었는데 이 작품은 다른 누군가의 영화와 함께 텔레비전에 방영되었다. 이 일로 다른 영화의 감독이 인터뷰를 하였고 마침내 내 차례가 되었을 때 방송국 관계자들은 내가 너무 다르고 너무 독창적이어서 인터뷰를 하지 않겠다고 알려왔다. 그들은 내게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나의 시작이 이러했다. 나는 언제나 다른 사람들로부터 별난 사람으로 취급되었다. 그래서 말하자면 이런 대우 때문에 나는 영화계의 아웃사이더로서 영화를 만들게 된 것이다…….”
― 필립 가렐
1960년대 말은 롤랑 바르트, 자크 라캉, 기 드보르, 마르크스, 그리고 코카콜라의 전성기이자 앙리 랑글르와와 프리드리히 빌레름 무르나우(F. W. Murnau)가 활동하던 시대였다. 당시 조용한 젊은이였던 필립 가렐은 자신의 첫 장편영화 〈기억 속의 마리〉를 만들었다. 오늘날의 시선에서 볼 때 이 영화는 옛날 영화처럼 느껴진다. 과거의 논쟁들, 배우들의 연기에 거리를 둔 시선, 파리 도로를 내달리던 딱정벌레 모양의 시트로엥 자동차는 이제 낡은 유산이 되었지만, 여배우 주주의 얼굴과 연기, 배우 모리스 가렐의 아들인 필립 가렐의 원시적 장면들, 그들의 침묵과 시선, 사회적 폭력, 버려진 감정과 고독의 환기에는 힘과 아름다움이 간직되어 있다.
― 세르주 카강스키
사실 필립 가렐의 미학적, 정치적 입장을 거부할 수는 있겠으나 그 누구도 그가 지금까지, 요즘 영화계에서는 보기 드문 정도로 고결하고 비타협적으로 그 입장을 지켜왔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 토마스 레스퀴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2015년 11월 25일부터 2016년 2월 28일까지 개최된 전시 《필립 가렐, 찬란한 절망》 (전시실7, 미디어랩), MMCA 필름앤비디오 상영프로그램 《필립 가렐 회고전》과 더불어 출간된 이 책은 필립 가렐의 영화 세계를 입체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파리3대학 영화과 교수이자 아방가르드 영화이론의 전문가인 니콜 브르네즈, 영화이론가이자 큐레이터, 그리고 프랑스 시네마테크 원장을 역임하기도 했던 도미니크 파이니, 영화평론가이자 언론인, 작가인 필립 아주리를 비롯해 국내외 17명의 필자가 참여해 필립 가렐의 독특한 영화적 궤적을 그려내고 있다. 또한 부록으로 들어간 <마스터클래스>와 <필립 가렐과 그의 친구들>은 필립 가렐과 그의 영화에 대한 이해는 물론 오늘날 영화를 한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심오한 성찰을 담아내고 있다.
필립 가렐 소개
흔히 포스트 누벨바그의 거장으로 알려진 필립 가렐은 16살 되던 1964에 그의 자화상이라 할 수 있는 첫 작품 〈어울리지 못하는 아이들〉(1964)을 발표하면서 영화의 신동이라 칭송받았다. 그는 1960년대부터 1970년대 후반까지 궁핍한 환경에서 독특한 실험적인 작품들을 주로 만들었다. 이 시절 그의 삶과 영화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 니코(독일 출신의 가수이자 배우)가 출연한 7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그의 영화는 장 비고 상(Prix Jean Vigo)을 받은 〈비밀의 아이〉(1979)부터 실험과 서사가 공존하기 시작하며, 파편화된 사랑의 기억이 교차하는 자전적 영화 〈그녀는 조명등 아래서 그토록 많은 시간을 보냈다…〉(1985) 이후부터는 고전적 서사의 형식 안에서 추상적 사실주의의 새로운 형태를 발전시켜나간다. 그의 아들 루이를 주인공으로 68혁명의 내부에 자리한 청춘의 고뇌를 기록한 〈평범한 연인들〉(2004), 무의식 속에 자리한 차가운 상처의 블랙홀을 지나 결국은 거울 속 환영과 마주하게 되는 시적 공포감을 안겨주는 〈새벽의 경계〉(2008), 그리고 불완전한 사랑의 내부에 자리한 공허감을 전달해주는 〈질투〉(2013) 등을 완성한다. 남녀관계의 아이러니를 유머러스하게 보여주는 신작 〈인 더 섀도우 오브 우먼〉(2015)은 제68회 칸영화제 감독주간 개막작, 제40회 토론토국제영화제,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 공식초청에 이어 《카이에 뒤 시네마》가 선정한 올해의 영화 TOP10에 포함될 만큼 주목받았던 영화로, 변화해가는 가렐 영화의 또 다른 시작을 예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