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

제인 제이콥스 · 社会科学/人文学
59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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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제이콥스의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은 도시계획 역사상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저작 중 하나로, 기존의 정통 도시계획의 반대편에 서서 ‘다른’ 도시계획에 대해서 말하는 책이다. 저자는, 계속되는 도시 재개발과 신축건물들은 결코 도시를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지 않으며 오히려 황폐화시킬 뿐이라고 비판하면서 유명 건축가들과 도시계획가들의 이론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다. 자신들이 실제로 살지 않는 공간에 대한 폭력적인 계획과 개발은 그 지역을 슬럼으로 만들 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제인 제이콥스가 내놓는 대안적 도시 살리기 방안은, 거리에 많은 사람이 다니도록 하는 것, 오래된 건물들을 그대로 두는 것, 인기 있는 업종만이 아니라 여러 용도의 혼합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 등이다. 저자는 특별한 건축적 비전이나 전략을 다루고 있지는 않지만, 도시를 유토피아가 아닌 현실세계로 바라보면서 우리가 진정으로 살고 싶은 도시에 대한 물음을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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著者/訳者

レビュ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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目次

1993년판 서문 6 감사의 말 15 서론 21 1부 도시의 독특한 성격 51 1장 보도의 효용: 안전 53 2장 보도의 효용: 접촉 88 3장 보도의 효용: 어린이들의 동화 113 4장 근린공원의 효용 132 5장 도시 근린의 효용 162 2부 도시 다양성의 조건들 199 6장 다양성을 만들어 내는 것들 201 7장 혼합적인 주요 용도의 필요성 212 8장 작은 블록의 필요성 246 9장 오래된 건물의 필요성 257 10장 집중의 필요성 273 11장 다양성에 관한 몇 가지 신화 300 3부 쇠퇴와 재생의 힘 323 12장 다양성의 자기파괴 325 13장 경계 공백지대의 저주 345 14장 탈슬럼화와 슬럼화 362 15장 점진적인 돈과 격변을 일으키는 돈 389 4부 다른 전술 423 16장 주거 보조 425 17장 도시의 잠식, 또는 자동차의 소모 445 18장 시각적 질서 : 그 한계와 가능성 488 19장 계획단지 구조하기 514 20장 지구의 관리와 계획 529 21장 도시 문제는 어떤 종류인가 557 옮긴이 후기 583 찾아보기 587 지은이/옮긴이 소개 591

出版社による書籍紹介

“도시 재건축은 도시 약탈이다!!” ―1950년대 미국 도시의 흥망을 통해 본 도시의 오래된 미래! 1950년대 미국, 사람들의 귀중한 세금을 쏟아부으면서도 이렇다 할 만한 결과를 내지 못했던 도시계획. 도심 재개발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수십억 달러를 투자하면서도 도시를 안전은 물론이거니와 흥미롭지도, 활력이 넘치지도 않는 곳으로 만들어 버리는 모습을 목격한 『건축포럼』(Architectural Forum)의 부편집장 제인 제이콥스(Jane Jacobs, 1916~2006)는, 그때부터 정통 도시계획 이론의 정 반대편에 서며 계획가들과는 전혀 다른 방식의 도시 살리기 운동을 시작했다. 현재의 도시계획은 수십억 달러를 들여 도시의 활력을 떨어뜨리는 결과가 나올 뿐이며,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 같은 유명한 건축가들과 도시계획가들이 오히려 도시의 다양성과 생명력을 파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엄밀하고 명징하고 풍자적이며, 문학적이기까지 한 제이콥스의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은 1961년 초판이 나온 이래, 도시를 실제로 이용하고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열광적인 지지를 받으며 도시계획의 패러다임을 바꾸어 놓은, 우리 시대의 고전이 되었다. 이 책에서 저자 제이콥스는 어떤 특별한 건축적인 비전이나 전략을 다룬다기보다는 도시를 유토피아가 아닌 현실세계로 바라볼 줄 알았던, 게다가 보도의 공중생활을 사랑했던 한 ‘시민’으로서의 소소한 기록을 남기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도시에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폭력적이고 일방적인 개발과 공사가 아니라 조그만 동네와 오래된 건물들, 북적거리는 사람들과 도로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임을, 미국 각 도시의 실례를 들어 구체적이고 다정하게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까지 수십억 달러를 쏟아부어 우리가 건설한 것들을 보라. 저소득층 주택단지는 기존의 슬럼보다도 더 심한 비행과 파괴와 전반적인 사회적 절망 상태의 중심이 되어 버렸다. 도시 생활의 활기나 활력과는 동떨어진 불가사의한 답답함과 획일성의 표본인 중산층 주택단지. 김빠진 천박함으로 공허를 누그러뜨리려고 애를 쓰는 호화 주택단지. 좋은 서점을 유지하지 못하는 문화센터.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것 말고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부랑자들만 찾는 시민센터. 규격화된 교외 체인점 쇼핑을 흐리멍덩하게 모방한 상업센터. 어디서 시작해서 어디서 끝나는지 알 수 없는, 산책하는 이 하나 없는 산책로. 대도시의 속을 들어내 버린 고속화도로. 이런 건 도시 재건축이 아니라 도시 약탈이다.” (본문 22쪽) 도시는 누구의 것인가, 혹은 누가 살고 있나 재개발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폭력은 무지(無知)로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어떤 파괴, 어떤 폭력. 개별 존재에 가해지는 폭력, 그것은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생겨나기가 쉽다. 도시란 곳은 자본주의 시스템이 필연적으로 발생시키는 과잉축적의 위기를 공간의 부단한 생산과 파괴를 통해 잠정적으로 해소하는 곳인 까닭에, 이런 폭력은 차라리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말이다. 제인 제이콥스가 살던 시기의 뉴욕, 이스트할렘. 그곳에 새로 정비된 한 저소득층 주택단지에는 눈에 띄게 크게 자리를 잡고 있는 잔디밭이 있었다. 지역 관계자들은 그 잔디밭을 보면서 한마디씩 했다. “참 예쁘군요. 이제 가난한 사람들도 누릴 거 다 누리는군요.”(본문 36쪽) 그러나 정작 주민들은 자신들의 집을 헐어 버리면서 자신들의 동네를 커피 한 잔, 신문 한 부 구할 데 없는 곳으로 만들어 놓은 그 잔디밭을 좋아할 수 없었다. “누가 저게 필요하대요?” “어느 누구도 이곳을 지을 때 우리가 뭘 원하는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어요.”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에는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시 당국과 개발 관계자들. 그들은 지역 주민들, 혹은 그들의 삶에 대해서 실제로 아는 바가 없었기 때문에 ‘개발’이나 ‘주거환경 개선’이라는 명목으로 엄청난 폭력을 휘둘러 서류상의 정의에 의해 ‘슬럼’으로 명명되었으나 실제로는 살기 좋았던 곳을, 단돈 5센트도 빌리기 어려운 명명백백한 슬럼으로 만들어 대고 있었다. 그리고 1950년, 혹은 60년대의 미국의 모습은 2000년대에 세계 곳곳에서, 또한 대한민국에서, 여전히 반복되어 나타나고 있다. 제인 제이콥스는 가장 구체적인 이야기를 통해서 가장 일반적인 주장을 펼쳤던 것이다.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재개발은 사람들의 실제적인 삶을 개발해 내는 데 실패했다. 도시가 어떻게 살아서 움직이고 작동하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그저 어떻게 보이느냐가 중요했던 소수 전문가 집단의 결정으로 그 몇십, 몇백, 몇천 배 되는 사람들의 삶이 이랬다 저랬다 하는 상황. 용산 참사에서도, 평택 대추리에서도, 수많은 뉴타운 지구, 그 어디에서도 정부 및 관계자들은 실제로 그 지역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 일상의 흐름, 그들의 네트워크, 삶의 터전, 생활방식에 대해 화폐 이외의 다른 가치로는 고려한 적이 없었다. 50년 전의 이 책,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은 그런 식의 일방적인 개발이 가져오는 도시의 죽음을 경고하고 있다. 개발로 죽어간 미국의 많은 도시들과 우리나라의 지역들 사이의 거리를 잴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도시의 죽음을 늦출 수 있을 것이다. 저소득층의 주거 보조의 다양화 지난 1월 한 신문보도에 따르면, 서울인구의 1%에 달하는 사람들이 고시원에 산다. 현대판 쪽방이라고 불리는 고시원은 애초에 주거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으나 고시생은 물론이고, 직장인, 외국인 노동자, 결혼한 부부들까지도 비싼 전세금을 마련하지 못할 경우, 그 쪽방에 들어가서 산다는 것이다. 불과 5,6년 전만 해도 자취를 목적으로 고시원을 선택하는 것은 지방 거주 대학생들의 몫이었으나, 이제는 고시원을 선택하는 사람들의 범주가 꽤 많이 확장된 셈이다. 50년 전의 제인 제이콥스의 지적처럼, 우리의 도시에는 공공의 양심상 사람들이 마땅히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양질의 주거의 값을 치를 수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다른 점이 있다면, 제이콥스의 경우에는 많은 도시에서 주거의 공급 자체가 너무 적어서 과밀 없이는 인구를 수용하지 못한다고 지적한 반면, 지금 우리의 경우에는 주거의 공급 자체는 차고 넘치는데, 단순히 주거에 대한 대가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높은 비용이 문제가 된다는 것. 서로 다른 이유 때문이기는 하지만 제이콥스의 미국과 우리의 한국은 도시 주거의 일정한 비율에 대해서는 보조가 필요하다는 동일한 결론에 다다른다. 그런데 이 주거 보조에서 제이콥스가 문제 삼았던 것은 주거에 많은 비용을 치를 수 없는 사람들, 즉 사기업에 의해 주택을 공급받을 수 없는 사람들을 눈 깜짝할 사이에 하나의 통계―소득!―에 기초하여 죄수같이 특별한 주거요건을 가진 통계 집단으로 바꿔 놓고 있다는 것이었다. 저소득층 사람들은 도시의 주거 보조라는 과제를 수행하기 위하여 유토피아론자들이 이리저리 갖고 노는 특별한 기니피그 집단이 되는 것이다. 도시를 하나의 ‘과제’로 생각하고 그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을 대상화하여 본다면, 그리고 그 대상화가 되는 척도가 단지 그들의 소득수준일 뿐이라면, 도시 발명가들이 내놓을 수 있는 결론도 단지 소득수준에 따른 방법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른 도시 개발의 문제에서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주거 보조의 문제에서는 더더욱 사람들의 여러 가지 스펙트럼과 다양한 사정이 고려되어야 하며, 단지 가난하다는 이유로 다른 결정권자들에 의해 자신들의 삶이 휘둘리지 않아야 한다. 도시의 문제들이 단순히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었다면, 그 많은 돈을 쏟아부어도 도무지 생기와 활기가 생기지 않는 지역, 아무리 예쁘게 꾸며 놓아도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공원들은 설명되지 않는다. 살기 좋은 도시는 결과가 아니라 원인이다 슬럼과 비슬럼을 가르는 기준의 모호함 제인 제이콥스가 보스턴 최악의 슬럼가로 불리는 노스엔드(North End)에 갔을 때, 그녀는 도시계획 및 지역 관계자들의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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