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머니와 손녀가 엮어 가는 알콩달콩, 가슴 뭉클한 이야기
인자한 웃음, 포근하고 넉넉한 품, 맛있는 음식. ‘할머니’ 하면 으레 떠오르는 것들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저마다 가슴속에 품고 있는 할머니와의 추억은 꽤 비슷합니다. 도끼눈을 뜬 엄마를 가로막으며 등 뒤로 나를 숨겨 주시던 할머니, 내가 어떤 말썽을 부려도 푸근하게 안아 주시던 할머니, 고기 반찬 하나 없어도 너무나 맛나던 할머니의 밥상. 이렇게 할머니는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따뜻한 휴식처이자 언제든 기댈 수 있는 큰 산과 같은 존재지요.
이 책 《할머니의 레시피》의 주인공은 바로 할머니입니다. 여름 방학을 맞은 서현이는 시골에 내려가 외할머니와 함께 지내게 되는데, 자주 못 보는 외할머니일 테니 모르긴 몰라도 서현이는 외할머니와 함께 보내는 여름 방학이 무척 신나고 설렐 것 같습니다. 그런데 기차역에서 외할머니와 만난 서현이의 표정이 그리 밝지만은 않습니다. 알고 보니 서현이 외할머니는 보통 할머니들과 달라도 한참 달랐지요. 장승 같이 키가 크고, 조금만 잘못하면 득달같이 혼내고, 부려먹고 골리기 좋아하는 외할머니가 서현이는 무섭고 싫었습니다. 여름 방학 숙제를 면제 받고 그렇게 소망하던 블라이스 인형까지 안겨 주는 엄마의 꼬임에 넘어가 이 산골까지 오긴 했는데, 서현이는 외할머니를 보자마자 그제야 아차, 하는 생각이 든 거지요. 그렇게 여장부처럼 걸걸한 외할머니와 새침떼기 서현이의 아슬아슬한 동거가 시작됩니다.
서현이의 불길한 느낌은 그대로 현실이 되고 맙니다. 보물 1호가 된 블라이스 인형을 보며 얼굴이 운동장만 한 그게 뭐가 좋냐고 잔소리를 해 대고, 밥값 하는 셈치고 걸레질이나 하라고 하고,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늘 동당동당 바쁜 외할머니에게 서현이는 도무지 정이 가지 않습니다. 게다가 구더기가 굼실굼실 기어다니는 변소에도, 심심하기 짝이 없는 산골에도 괜히 화가 납니다. 그렇게 심통이 날 때마다 서현이는 외할머니와 투닥투닥 다투고, 삐치고, 화해하기를 반복하면서 시간은 느릿느릿 흘러갑니다.
하지만 결국 서현이는 알게 됩니다. 변소 똥통에 빠져 울고 불고 난리칠 때도 더럽다는 말 한 마디 하지 않고 맨 손으로 정성껏 씻겨 주고, 새벽마다 흰 사발에 정화수를 떠 놓고 나의 건강을 기원하고, 기껏 부녀회 관광에 나서 놓고는 내가 걱정돼 한밤중에 비를 잔뜩 맞으며 돌아오는 외할머니를 보면서, 외할머니의 사랑이 얼마나 깊고 넓은지 말입니다. 그런 외할머니가 안쓰럽고, 외할머니가 집을 비우면 허전하고, 흘러가는 시간이 야속하다고 느끼던 그 순간, 서현이도 자신이 할머니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깨닫게 되지요.
아옹다옹 투닥거리던 외할머니와 손녀가 결국 딱딱한 껍데기를 벗고 서로의 마음속에 숨겨 놓은 애정을 확인하는 《할머니의 레시피》는, 어쩌면 결론이 예상되는 빤한 이야기라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외할머니와 서현이가 헤어질 때, 외할머니가 서현이를 위해 레시피를 남겨 두고 돌아가실 때, 우리는 레시피를 가슴에 안고 조용히 우는 서현이와 함께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할머니의 레시피’가 단순히 요리법을 적어 놓은 책이기 전에, 외할머니에 대한 추억이자 외할머니의 사랑이기에 독자에게 새삼 뭉클한 감동을 전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당연하게 생각되던 또는 잊고 있던 ‘나의 할머니’를 추억하게 하고 보고 싶게 만드는 강렬한 힘을 이 동화는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바로 매력적인 캐릭터, 담백하지만 가슴을 툭툭 건드리는 글, 빠르고 힘 있는 전개, 유머와 감동 등을 적절하게 결합시킨 작가의 힘 때문입니다. 여기에 소박한 시골 정경과 맛있는 음식, 외할머니와 서현이를 생생하게 살려 놓은 아기자기한 일러스트가 빛을 발해 이 책의 재미와 감동이 더 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