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문화 없는 다문화 사회와 이민 없는 이민정책
이주민들에게 대한민국은 어떤 나라일까?
‘다민족 사회’라는 키워드에서 출발해 한국의 여러 이주민 문제를 분석하는 『다민족 사회 대한민국』이 출간되었다. 이 책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다문화 담론이 매우 허구적이라 근본적인 반성과 비판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우리 주변에는 이미 수많은 다문화 가정이 있지 않은가? 다문화가 왜 문제인가? 다문화는 ‘다문화주의’의 줄임말인데, 이는 서로 다른 문화 간에 나타나는 차이를 인정하고 공존을 추구하는 이념이나 정책으로 이해된다. 이 의미에서 보자면 한국 정부는 단 한 번도 다문화주의적 정책을 추진한 적이 없다. 정부는 한국인과 결혼한 외국인, 재외동포를 제외하고는 외국인의 영주를 원칙적으로 허용하지 않는다. 혈연을 제외하고 다른 문화, 민족, 인종을 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의미다. 또한 이주민에 대한 각종 교육프로그램 역시 한국어나 한국사회 교육에 집중된다. 법무부가 이주민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사회통합 프로그램’을 살펴보면, 교육 과정은 한국어와 한국문화, 한국사회 이해가 전부다. 국가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은 다문화주의적 ‘사회통합’과는 거리가 멀고 이주민을 한국사회와 문화에 흡수시키는, 동화교육 과정에 가깝다.
다문화 사회에 다문화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민정책에는 이민이 없다. 우리는 ‘이민’이라고 하면 원래 살던 나라를 떠나 다른 나라에 가서 정착하는 것을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한국인과 혈연관계에 있지 않은 외국인에게는 원칙적으로 정착을 허용하지 않고, 일정 기간 체류 후에는 떠나도록 제도를 만들어놓았다. 단순기능인력으로 입국하는 외국인은 최장 4년 10개월의 체류만 가능하고, 가족 동반과 같은 정착의 기본적인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다. ‘전문인력’은 장기체류 신청에 유리한 기회가 주어지지만, 정부가 정착을 유도하는 ‘전문인력’에게 한국은 매력적인 선택지가 아니다.
이 책에서는 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이주민과 관련된 문제를 살펴보고 그 핵심을 드러낸다. 많은 담론이 혐오와 착취를 일삼는 내국인 개인을 문제 삼는다. 하지만 이 책은 우리가 운영하는 제도와 구조 자체가 인종주의와 같은 문제를 발생시키며 조장한다고 지적한다. 개개인의 의식을 바꿈으로써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미 건설 현장에서, 중소 공장에서, 농어촌에서, 돌봄이 필요한 곳에서 이주민이 일하지 않으면 대한민국은 돌아가지 않는다. 이주민을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인정하는 구조를 만들지 않고서는 이 체제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그 첫걸음은 ‘다민족 사회’라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 이주민 도입으로 저출생, 돌봄, 인력 부족을 해결할 수 있을까?
이주민에 의존하는 한국사회의 구조를 들여다보다
“저출생으로 인구 재앙이 닥칠 것이다.” “여성의 육아 부담을 줄여야 한다.” “지역에 사람이 부족하다.” 요즘 한국에서 사회문제로 떠오르는 주제들이다. 이런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이주민을 도입하자’는 해법이 등장한다. 과연 이주민은 한국사회의 문제들을 해결해줄 수 있을까?
최근 크게 이슈가 된 외국인 가사도우미의 사례를 생각해보자. 정부는 가사이주노동자를 도입함으로써 여성의 경제활동을 돕고 출생률을 제고하겠다고 홍보했다. 이를 반대하는 측에서는 가사이주노동자는 일반적인 가정이 아니라 중상계층의 전유물이 될 가능성이 크며, 여성의 가사노동 부담이 남성에게 분담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여성에게 전담되는 꼴이라 도우미를 둘 여력이 없는 저소득층에서는 결혼과 출산을 계속 미룰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이 정책은 시행 초기부터 크게 화제가 되었지만 다양한 문제가 일어나며 비판을 받았다.
다른 이슈들도 마찬가지다. 인구, 돌봄, 노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이주민 도입은 한국사회의 난제들을 돌파할 해결책으로 언급된다. 정작 한국사회의 고질적인 문제들, 낙후된 산업의 구조조정이나 복지 정책의 개선 등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이주민 도입은 임시방편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주민을 도입하는 일은 다른 무엇보다 값싸고 편리하게 내놓을 수 있는 대책이다. 그런 이유로 정부는 단기 이주인력 수입 확대, 결혼이주민과 재외동포의 2등시민 편입을 조장해왔다. 인력의 대상으로서 이주민을 받아들이되, 그들에게 시민으로서의 기회를 주지 않은 것이다.
■ 이주민은 왜 차별받는가?
인종주의가 만들어낸 편견과 혐오의 실체를 드러내다
국내 본격적인 이주민 유입의 역사는 20년을 넘어섰다. 그사이 우리나라의 이주배경인구도 전체 인구의 5퍼센트를 넘었고, 이주민과 관련된 갈등도 이어지고 있다. 대구시에서는 이슬람사원이 건축허가를 받아놓고도 주민들의 반발에 부딪혀 완공되지 못하고 있고, 포천시에서는 베트남 출신의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10대 청소년들에게 폭행을 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정부는 인종차별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우리가 아직 다른 문화에 대한 포용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말을 반복한다. 그러나 차별을 문화, 사상, 이념, 역사 탓으로 돌리는 설명은 본질을 전혀 모르고 하는 얘기다. 이 논리를 따라가면 차별의 해결책은 개인의 무지, 오해, 편견을 교정하는 일, 즉 교육일 것이다. 하지만 교육은 차별을 실질적으로 해소하지 못했다. 미국은 반세기 넘게 인종차별에 대한 교육을 지속해왔다. 그러나 최근 연구들은 미국의 인종차별이 개선되기는커녕 끈질기게 존속하고 있음을 꼬집고 있다.
이 책에 따르면 인종과 인종주의는 정부나 내국인이 자신의 이익을 취하기 위해 이주민을 이용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한다. 정부가 이민정책을 통해 이주민에게 충분한 기회와 시민권을 주지 않는 이유는 내국인의 일자리를 지키면서 이주민의 노동력을 활용하기 위해서다. 이주민으로부터 내국인의 이익과 기회를 높이거나 지키는 과정은 필연적으로 이주민들이 우리와 다르고, 심지어 열등하다는 믿음, 인종과 인종주의를 생산한다. 이렇게 정부나 내국인이 법, 제도, 언론 등을 통해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이주민을 인종으로 만드는 과정을 “인종기획”이라고 한다. 인종의 형성이 일종의 ‘기획’인 이유는 인종이 생물학적으로 당연한 것도, 몰지각한 개인들이 만들어낸 것도, 아니면 유입되거나 자생적인 이념 또는 사상이 만들어낸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국가나 내국인 등 사회적 집단이 만들어낸 것이다.
이 인종기획에 따라 우리나라는 여러 이주민 집단을 ‘인종화’했다. 전문인력과 비전문인력을 구분하는 차별적인 이민정책은 출신구와 피부색, 직업에 따른 인종의 구분을 만들었다. 선진국, 백인, 전문직 이주민은 세련되고 똑똑하며 바람직한, 그래서 우리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부류로 인식된다. 반대로 개발도상국, 유색인종, 비전문직 이주민은 거칠고 무식하고 게을러서 사회의 일원이 될 수 없다는 인식으로 연결된다. 법적 체류자격이 인간됨의 인식으로 확장되어 가는 과정이 인종화의 핵심이다.
이 책은 우리나라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이주민 집단을 분류하고 인종화된 그들의 실태를 조명한다.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해외로 추방되어야 했던 혼혈인, 가정과 시설에서 돌봄의 역할을 도맡고 있는 중국동포, 가정에 종속된 결혼이주여성, 일상적인 차별과 혐오 속에서 성장하는 2세대 이주민, 이주민의 정의에 가장 잘 들어맞지만 이주민으로 집계되지 않는 탈북민 등은 저마다 다른 사연을 안고 한국사회에서 차별받고 있다.
대한민국은 이미 이주민 없이는 유지되기 어려운 나라다. 이들과 현실적인 공존을 모색해야 하는데, 우리의 인식 속 인종주의가 이를 가로막고 있다. 냉정하게 현실을 평가하고 새로운 이민정책과 담론을 고민해야 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