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테 안경 007
옮긴이의 말 145
조르조 바사니 연보 149
추천의 말_안젤로 조에 157
조르조 바사니 『페라라 소설』을 펴내며_김운찬 163
페라라 지도 166
금테 안경
조르조 바사니 · 小説
168p



조르조 바사니 선집 2권. ‘기억의 작가’ ‘페라라의 작가’로 불리는 20세기 이탈리아 문학의 숨은 거장 조르조 바사니(Giorgio Bassani, 1916~2000)의 1958년작. 단편집 『성벽 안에서―페라라의 다섯 이야기』, 장편소설 『핀치콘티니가의 정원』과 함께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바사니의 경장편 소설이다. 『금테 안경』을 두고 이탈리아 작가 엘사 모란테는 “내가 읽은 책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설의 하나”라 했고, 알베르토 모라비아는 “아주 아름다운 이야기이고, 아마도 바사니의 최고작일 것”이라 극찬했으며, 안드레아 카밀레리는 2000년 바사니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페라라의 위대한 작가의 가장 아름다운 작품”으로 꼽았다. 또한 이탈로 칼비노는 이 작품을 읽은 직후 프랑스 세유Seuil 출판사의 프랑수아 발에게 보낸 편지에서 바사니를 “요사이 등장한 이탈리아 작가 가운데 가장 수준 높은 작가 중 하나”로 평가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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レビュー
30+目次
出版社による書籍紹介
“나는 나의 유배지에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절대로.”
슬픔도 허락되지 않는 심연의 고독. 나는 유대인이었고 그는 동성애자였다
바사니의 작품은 페라라 부르주아사회의 유대인 박해라는 깊은 상처에 기인한다는 점에서 정치적이다.
페라라 및 그 부르주아계층과 바사니의 관계는 양가적이다.
한편에는 페라라 부르주아사회의 일원이던 시절에 대한 향수 어린 애정이 있고,
다른 한편에는 모욕당한 데 대한 극도의 증오감이 있다.
이 두 감정이 끊임없이 뒤섞이고 겹쳐지면서 바사니의 고유한 문체가 탄생했다.
_이탈로 칼비노
★ 1987년 줄리아노 몬탈도 감독이 영화화. 엔니오 모리코네의 음악으로 다비드디도나텔로 상 수상.
【개요】
적막에 싸인 밤거리, 느릿한 걸음으로 도시를 배회하는 두 남자와 그들을 뒤따르는 길 잃은 개…… 모라비아, 모란테, 제발트가 ‘가장 아름다운 소설’로 손꼽은 바사니 문체 미학의 백미. 1930년대 중반 파시즘 체제를 묵인하며 안일하게 살아가던 이탈리아 페라라의 부르주아사회가 명망 있는 의사 파디가티의 동성애와 반유대주의적 인종법 앞에서 민낯을 드러내며 자기분열을 시작한다. 소외된 자들의 고독과 침묵이 서정적이고 애상적으로 그려진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의 보석 같은 작품.
【작품 소개】
두 개의 소외, 하나의 운명
‘기억의 작가’ ‘페라라의 작가’로 불리는 20세기 이탈리아 문학의 숨은 거장 조르조 바사니(Giorgio Bassani, 1916~2000)의 1958년작. 단편집 『성벽 안에서―페라라의 다섯 이야기』, 장편소설 『핀치콘티니가의 정원』과 함께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바사니의 경장편 소설이다.
『금테 안경』을 두고 이탈리아 작가 엘사 모란테는 “내가 읽은 책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설의 하나”라 했고, 알베르토 모라비아는 “아주 아름다운 이야기이고, 아마도 바사니의 최고작일 것”이라 극찬했으며, 안드레아 카밀레리는 2000년 바사니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페라라의 위대한 작가의 가장 아름다운 작품”으로 꼽았다. 또한 이탈로 칼비노는 이 작품을 읽은 직후 프랑스 세유Seuil 출판사의 프랑수아 발에게 보낸 편지에서 바사니를 “요사이 등장한 이탈리아 작가 가운데 가장 수준 높은 작가 중 하나”로 평가하기도 했다.
소설의 주인공은 베네치아 출신으로 페라라에 정착해 성공한 의사 아토스 파디가티다. 교양 있고 온화한 예술 애호가인 중년의 신사 파디가티는 페라라 시민들의 존경을 받으며 풍족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었다(‘금테 안경’은 성공한 부르주아 파디가티의 상징물이다). 그러다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한 젊은이에게 공개적으로 수모를 겪으면서 한순간에 인생이 바뀌게 된다. 작가 자신으로 보이는 서술자 ‘나’는 페라라에 사는 유대인으로 볼로냐 대학에 다니던 시절을 회상하며 주인공의 이야기를 전한다. 그는 모든 사람이 외면하는 파디가티에게 연민을 느끼고 친구가 되는데, ‘다름’과 ‘소수’를 인정하지 않는 세계에서 그 둘은 비슷한 처지에 있었기 때문이다.
탐미적 형식미, 네오리얼리즘의 진수
『금테 안경』은 바사니 문학의 형식적 완결성을 아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소설에는 한편에 파시즘 시대의 역사와 부르주아사회의 일상이 포개져 있고, 다른 한편에 유대인 ‘나’의 이야기와 동성애자 의사 파디가티의 이야기가 병치되어 있다. 역사와 일상, 유대인과 동성애자는 서로를 되비추는 거울처럼 작용한다.
페라라 부르주아사회의 중심에 있던 두 사람(동성애자와 유대인)은 어느 날 갑자기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어둠과 마주한다. 때는 반유대주의적 인종법 시행을 앞둔 1937년이다. 무솔리니의 파시즘 체제가 들어선 1921년 이후 위기를 예감하기는커녕 파시즘에 동조하며 안일하게 살아가던 유대인 공동체는 갑작스레 배신감과 당혹감에 휩싸인다. 유대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차가워지는 과정과 동성애자 의사에 대한 잠복해 있던 경멸감이 폭발하는 과정이 두 개의 톱니바퀴처럼 기묘하게 맞물려 돌아간다. 종국에 반유대주의라는 광기로 치닫게 되는 일상 속 파시즘의 징후는 동성애자에 대한 위선적 태도에 이미 나타나 있다.
이야기가 펼쳐지는 배경 공간은 소설에서 각별한 의미를 갖는데, 이는 바사니 문학 전반의 특징이다. 페라라와 볼로냐를 오가다가 아드리아 해안의 리초네로, 마지막에 다시 페라라로 돌아오는 장소 변화는 이야기 전개의 전환점이 된다. 평온한 일상에서 시작해 페라라-볼로냐 왕복 기차에서 서서히 긴장이 고조되고, 해변 휴양지 리초네에서 갈등이 폭발한다. 그러다 다시 페라라로 돌아왔을 때, 두 타자에게 이 도시는 낯설고 혹독한 곳으로 변해 있다. 광장과 거리, 성당과 영화관 등 지도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사실적인 묘사는 도시의 삶을 속속들이 들여다보게 하며, 길 잃은 개와 함께 거니는 어두운 밤거리, 파디가티에게 유일한 위안인 아드리아 해의 검푸른 바다는 비극적 운명을 암시한다.
하지만 바사니의 문체는 결코 음울하지 않다. 격정도 눈물도 없다. 오히려 차분하고 담담하다. 이 작품의 주조음은 슬픔과 절망이 아니라 고독과 침묵이다. 정교한 플롯과 영화적 미장센, 격조 높은 심미적 묘사를 통해 바사니는 파시즘 시대의 일상을, 부르주아사회의 속물적 이면을, 그 안에서 숨죽이며 살아가는 소외된 자의 고독한 내면을 서정적이고 애상적으로 그려낸다. 주인공이 바라보는 검푸른 아드리아 해처럼, 아름다움 속에 죽음이 있고 그 죽음 속에 자유가 있다는 점에서 『금테 안경』은 바사니 문학 가운데 가장 탐미적인 작품이다.
※ 『금테 안경』은 1987년 줄리아노 몬탈도 감독에 의해 동명의 영화로 만들어진다. 엔니오 모리코네의 아름다운 음악과 영화 〈시네마 천국〉 〈일 포스티노〉로 유명한 프랑스 국민배우 필리프 누아레의 애상적인 연기가 인상적인 영화다.



이동진 평론가
4.5
제목만 다시 보아도 미소 지으며 우아하게 다가왔다가 고개를 떨어뜨리고 쓸쓸히 멀어져 간 한 사람의 그림자가 짙게 일렁인다. (난이도 하)
권혜정
4.5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받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사회적 시선이라는 것, 참 역겹고 싫다. @이동진의빨간책방 297-298회
134340
3.5
괜찮지만 예전 같진 않아 그게 슬프지만 괜찮아
미지의세계
3.0
'나는 유대인이었고 그는 동성애자였다.' 21.06.23
아몬드꽃
3.5
차별과 소외를 이길 리 없는 그 힘없는 밤거리를 함께 걷는 두 사람이 있었네.
샌드
3.5
소외된 자들의 이야기를 하면서, 잊혀지지 않을 듯한 여운과 감동으로 가득합니다. 벅차오르는 느낌의 감동보다는 한없이 슬퍼서 쓸쓸해진 감정을 잘 잡은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개인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사회 전체로 끌고오는 힘이 상당히 자연스럽고, 소수의 이야기같아 보이지만 결국엔 모두에게 적용할 수 있을 얘기가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태양같은 뜨거움을 다룬 수많은 걸작 소설도 있겠지만 살아간다는 것 에 대한 먹구름같은 감정을 다룬 좋은 소설로 이 작품을 기억할 것 같습니다.
푸코
3.5
고독과 침묵. 2021년 3월26일 95.
크레마
3.5
존재가 부정당하거나 조롱당하는 일을 겪은 후, 당신은 바사니가 될까 바사니의 아버지가 될까 아니면 파다가티가 될까. . . 나는 아무래도 비관적인 바사니가 될 것 같다. 국가가 자신을 다시 받아준다는 것에 상처가 치유되고 모든 게 괜찮아지면 그 자신의 삶도 단순해지고 행복해지겠지만... 그건 불공평하지 않나. 그간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고도 은근하게 느껴지는 부정과 조롱, 멸시와 미움을 견뎌내야 했는데. 그 끝이 ‘아무것도 아닌’ 거라니. 거기에 안도해야 하는 상황이라니. 마치 학대하는 주인에게 애교를 부리는 불쌍한 애완견이 된 기분이다. 아니다. 대상이 분명하면 오히려 억울함도 덜할 텐데 여기선 가해자도 명확하지가 않다. 피해자는 분명 있는데 가해자들은 그저 ‘군중’이라는 이름에 섞여 희석된 결말이라니. 더 최악인 거다. 그러니 나를 둘러싼 것들에 시니컬해지는 것, 무로 돌아간 결말에 기쁨과 환희를 느끼는 단순한 사람들(바사니의 아버지와 같은)에게 분노가 이는 게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바사니 글의 원천은 아마 그러한 감정들일 테다.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인간의 감정들을 전달하기 위해선, 소설가 본인이 그런 것들을 예민하게 느끼는 사람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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