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선으로 읽는 북아메리카 인디언의 역사
- 북아메리카 인디언 근세사에 던지는 도발적인 질문과 불편한 진실
미국에는 현재 연방 주권, 주 주권, 그리고 부족 주권, 이렇게 세 가지 주권이 공존한다. 이 가운데 부족 주권은 북아메리카 인디언이 보호구역 내에서 행사하는 주권으로, 이곳에서는 주와는 별개의 의회, 행정부, 사법부 조직을 갖추고 있다. 미국 전역에 흩어져 있는 인디언 보호구역은 약 310개로, 그중 애리조나, 유타, 뉴멕시코 주에 걸쳐 있는 나바호 보호구역은 그 넓이가 우리나라 경상도 · 전라도 · 충청도를 합한 것과 맞먹고, 유럽과 견주어볼 때는 벨기에 · 덴마크 · 네덜란드보다 크다.
이 책은 북아메리카 인디언이 이론상 연방 주권과 대등한 영향력을 지닌 부족 주권을 얻기까지의 역사, 곧 유럽 이주민과 만난 이후부터 19세기 말까지 이어지는 북아메리카 인디언의 역사를 들려준다. 대부분의 역사책이 북아메리카 인디언이 미합중국의 탄압으로 인해 절멸했거나 멸망했다고 서술하는 것과 달리, 이 책은 인디언이 멸망하지 않았다는 시선을 담고 있다. 또한 대부분이 번역서인 것과 달리 국내 저서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이 책은 독자에게 중요한 몇 가지 질문을 던지면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유럽에서 건너온 이주민은 북아메리카 인디언의 땅을 빼앗은 논리는 무엇인가, 이들은 어떠한 논리로써 자신들의 정책을 합리화했을까? 왜 북아메리카 인디언은 국가를 만들어 대항하지 않았을까? 강제 이주 이후 이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북아메리카 인디언을 미국화하기 위해 미국이 취한 정책은 무엇일까? 그럼에도 이들이 부족 주권을 얻게 된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북아메리카 인디언의 역사에 던지는 이 질문들은 새로운 방식으로의 역사 읽기를 제안한다.
이 책은 촘촘한 시선으로 미국 정부가 아메리카 인디언 부족의 땅을 빼앗은 이론적 배경과 논리를 살폈으며, 강제 이주 이후의 역사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즉, 미국 정부가 인디언의 강제 이주를 실시한 이후 교육과 종교, 토지 면에서 어떻게 이들의 미국화를 시도했는지를 자세히 들려준다. 그중에서 특히 백인 방식의 이름 짓기와 영어 사용을 강요한 인디언 기숙학교 이야기는 일제강점기 제국 일본이 식민지 조선인을 황국식민으로 만드는 과정을 연상시킨다(4장 참고). ‘좋은 인디언은 죽은 인디언’이라는 말에 함축된 바처럼 미국 정부는 보호구역 내의 토지까지 욕심을 부려, 인디언에게 남다른 의미를 지닌 땅을 개인의 사유지로 만듦으로써 인디언의 삶과 문화를 파괴해나간다. 한 문화가 다른 문화를 강제적으로 변화시키는 과정은 그 자체가 폭력일 수밖에 없음을 깨닫게 하는 대목이다. 마지막 장에서는 ‘인디언 네이션’을 법적으로 인정했음에도 어떻게든 이들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 미국 정부와, 그럼에도 부여할 수밖에 없는 부족 주권 이야기를 들려준다. 미국 시민권과 부족 주권 사이에서 줄다리기하는 이들의 모습은 현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인디언 마을 공화국’이라는 이 책의 제목은 특히 ‘북아메리카 인디언은 왜 국가를 만들지 않았을까?’라는 질문과 연결되어 있다. 저자는 이들 인디언이 국가를 만들지 않은 것은 사회로부터 분리된 권력의 탄생을 바라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국가보다 오래된 인디언 사회, 그 토착의 삶이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시각을 바탕으로 한 이 책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시각으로 ‘북아메리카 인디언의 역사’를 접하게 한다.
세계평화의 전도사로 자처하는 미국이 인디언을 살육하고 그들의 땅을 강탈한 사실을 어떻게 합리화했는지는 인디언 역사를 공부하면서 가장 먼저 품었던 의문이다.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에서 이런 궁금증도 생겼다. 인디언 부족들이 연합해서 미국 정부에 대항했더라면 역사는 달라지지 않았을까, 인디언은 국가를 만들지 못한 것일까 아니면 안 만든 것일까?
결과적으로 보면, 힘에서 밀린 인디언 부족들은 정든 고향에서 인디언 보호구역으로 쫓겨나게 된다. 19세기에 자행된 강제 이주로 인해 인디언들은 보호구역에서 살아야 했다.
현재 미국 전역에는 약 310개의 인디언 보호구역이 있다. …… 이들 보호구역에서 인디언 부족은 주(州)와는 별개의 의회, 행정부, 사법부 조직을 갖고 독립적으로 부족민들을 통치한다. 물론 인디언 부족도 미합중국의 구성원이므로 연방정부의 관여를 받는데, 둘 사이는 주와 연방정부의 관계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미국에는 연방 주권, 주 주권, 부족 주권이라는 세 가지 형태의 주권이 존재한다.
사실 미국은 인디언 부족이 부족 주권을 가지는 걸 원치 않았다. ‘좋은 인디언은 죽은 인디언’이라고 말할 정도였으니까. 19세기 후반, 미국 정부는 인디언 부족을 말살하고 인디언을 미국인으로 바꾸려는 동화정책을 인디언 사회에 강요했다. 19세기 이래로 미국 정부가 부족사회에 실시한 교육·종교·토지 제도 등이 모두 동화정책이라는 큰 틀에서 나왔다. …… 그런데 미국 정부의 예상과 달리 인디언은 사라지지 않았다.
- <책머리에> 중에서
국가보다 오래된 인디언 사회에서 배워야 할 것은 무엇인가
- 저자, 인터뷰를 통해 책을 말하다
이 책의 저자 여치헌 선생님을 만나 이 책을 쓰게 된 동기와 ‘인디언 마을 공화국’에서 독자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인지, 인디언, 마을, 그리고 국가에 관한 저자의 생각을 들었다.(정리 최세정)
▶ 선생님, 반갑습니다. 《인디언 마을 공화국》은 북아메리카 인디언의 근세사를 다룬 책입니다. 시중에는 북미 인디언을 다룬 책이 여럿 나와 있는데, 대부분이 번역서입니다. 국내 저술이라는 점에서도 무척 반갑습니다. 이 책은 선생님의 첫 대중서이기도 한데요, 법학 분야와 다소 무관해 보이는 북아메리카 인디언에 관심을 가지게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간략하게 <책머리에>에 집필 배경을 적긴 했는데, 아마 저도 모르는 여러 이유가 있었을 겁니다. 십여 년 전의 일인데, 귀농을 하겠다고 마음먹고는 개근상까지 받아가며 귀농학교를 열심히 다닌 적이 있어요. 같이 공부한 분들이 “언제쯤 내려갈 예정입니까” 하고 물어올 때마다 저는 선뜻 대답하질 못했습니다. 귀농학교를 다니면서 비로소 변호사 일이 소중하게 느껴졌거든요. 토착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도시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것 같은 그런 착각 아닌 착각을 한 거죠. 주제넘은 소리지만 인디언에 관한 글쓰기가 그런 생각의 연장선에서 이루어진 게 아닌가 합니다.
▶ 저 또한 이번에 처음으로 현재 미국에 세 가지 주권이 있고, 그 가운데 하나가 부족 주권이라는 걸 알고는 미국 사회에서 인디언이 차지하는 독특한 위치를 알게 되었습니다. 인디언은 멸망하거나 절멸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곧 이들이 지금까지 우리가 모르고 있던 그들만의 역사를 만들어왔다는 말과도 통한다고 봅니다.
예, 그렇습니다. 우리가 모르고 있었지만, 북아메리카 인디언 또한 그들의 역사를 만들어오고 있습니다. 몇 년 전 미국 중부 사우스다코타 주의 대평원 지역에 있는 파인릿지 보호구역을 방문한 적이 있어요. 면적이 한국의 충청북도보다 넓은데, 대부분의 부족민이 궁핍하게 살아가는 빈곤한 보호구역으로 손꼽히는 곳이죠. 어렵게 살아가는 주거환경을 카메라에 담으려고 마을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는데 결국은 사진을 찍지 못했어요. 가난하다고 얘기되는 지역도 마치 한국의 전원주택 단지를 보는 것 같아서 빈곤하다는 게 실감나지 때문이었죠.
경제적 사정이 어려워서 그렇지 파인릿지 보호구역은 여느 국가 못지않게 독립적으로 주권을 행사하고 있었어요. 규모는 작더라도 행정을 총괄하는 부족 청사, 부족의회, 부족 법원, 부족 경찰서, 부족 교도소 등을 모두 갖춘 그야말로 ‘마을 공화국’이죠. 이들 보호구역의 20세기부터의 역사 이야기는 두 번째 책에서 살펴볼 예정입니다.
▶ 책에서는 ‘인디언이 최초의 아메리칸이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이 얘기는 일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