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셀에서 픽업아티스트까지
온라인을 넘어서 학교, 직장, 언론, 학계, 정치
그리고 ‘생존’을 위협하는 ‘여성혐오 극단주의’를 파헤치다
일상 속의 성차별 프로젝트(Everyday Sexism Project) 설립자로, 성평등 부문 대영제국 메달 수상자인 페미니스트 작가 로라 베이츠는 지난 8년간 학교에서 청소년을 대상으로 ‘성평등’ 강연을 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남성 청소년들의 ‘여성혐오’ 발언 수위가 거세지기 시작한다. 그것도 스코틀랜드 농촌부터 런던 중심부까지, 잘못된 통계를 인용한 정확히 똑같은 워딩으로 ‘남성이 진짜 피해자’라는 주장을 듣는다. 거의 같은 시기에 뉴스에서 정치인과 언론인들조차 똑같은 수사적 표현을 하는 것을 목격한 저자는 의문을 품는다. ‘온라인의 여성혐오는 현실로 어떻게 새어 나오기 시작했나?’
저자는 모태솔로의 20대 남성 ‘알렉스’로 위장하여 1년간 매노스피어에 직접 투신한다. ‘매노스피어(Manosphere)’란 남성계 커뮤니티를 포괄하는 말로 알려져 있지만, 저자는 ‘각자 견고한 신념체계, 언어, 세뇌의 형태가 있는 서로 다르지만 연관된 여러 집단의 스펙트럼’이라고 정의한다. ‘강간 합법화’와 ‘섹스 재분배’라는 기이한 주장을 펼치는 인셀 커뮤니티, 성폭력을 가르치며 그 시장이 약 ‘1억 달러’로 추산되는 픽업아티스트 커뮤니티, 여성은 위험한 기생충이라며 ‘고립주의’를 택한 믹타우 커뮤니티, 사이비 학문과 그럴듯한 주장으로 반페미니즘의 선봉장에 선 남성권리운동가 커뮤니티 등이 이에 해당한다. 저자는 거미줄처럼 얽힌 각 커뮤니티를 헤집으며 이들의 ‘기원’과 ‘혐오의 방식’을 파헤치는 한편, 학계 연구자와 매노스피어 일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이들의 ‘심리적 기제’와 ‘사회적 영향’을 살펴본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왜 이들이 백인 남성 ‘역차별’과 신이 내린 ‘섹스권’을 주장하는지, ‘표현의 자유’를 운운하며 이들이 내세우는 ‘유머와 밈’이 얼마나 위험한지, 언론과 소셜미디어가 이들의 범죄를 어떻게 부추기는지, 이들이 정치권을, 정치권이 이들을 어떻게 이용하고 있는지, 왜 인셀들이 ‘총’을 들고 거리로 나왔는지 알게 될 것이다. 또한 우리의 코앞까지 들이닥친 위협의 실체가 분명히 보일 것이다.
인셀, 총을 들고 거리로 나오다 :
오해에서 벗어나 비로소 목격한 실체
2014년 유튜브에는 ‘엘리엇 로저의 심판’이라는 영상이 하나 게재된다. “내일은 심판의 날, 내가 복수를 하는 날이야”라고 말문을 연 로저는 “나는 아직도 동정을 못 뗐”고 “모든 타락하고 건방진 금발 잡년들을 도륙”하겠다며 전형적인 인셀 이데올로기를 줄줄 읊는다. 업로드 직후 그는 캘리포니아대학교 여학생 클럽으로 가서 총을 쏴 6명을 살해하고 14명에게 상해를 입혔다(64쪽).
엘리엇 로저라는 이름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그가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가 사용한 용어, 이용한 커뮤니티, 선언문을 쓰고 대량살상 범죄를 저지르는 방식이 그 이후 일어난 수많은 인셀 범죄의 모범답안이 되었기 때문이다(69~75쪽). 오늘날까지 그는 인셀 커뮤니티에서 ‘영웅(hERoes)’으로 칭송받고 있으며, 인셀 대학살을 의미하는 ‘ER하러 가다(go ER)’를 비롯한 인셀 밈과 신조어의 시초가 되었다.
그렇다면 이 참혹한 범죄자 로저를 광신도처럼 숭배하는 ‘인셀(incel)’들은 도대체 누구일까? 1990년대 중반 젊은 캐나다 여성 알라나(Alana)가 만든 소규모 연애 추진 사이트에서 유래된 이 용어는 비자발적 순결주의자(Involuntary Celibate)의 준말로, 오늘날 ‘연애 또는 성적 파트너를 원하지만 구할 수 없다고 스스로 정의하는 사람들’을 지칭한다. 웹사이트, 블로그, 포럼, 팟캐스트, 유튜브, 채팅방 등의 커뮤니티에서 주로 활동하는 이들은 2014년 엘리엇 로저 총격사건 이후 폭력적인 여성혐오로 악명이 높아졌으며, 그 자체로 전 세계적인 ‘현상’이 되었다.
인셀에 대한 흔한 오해 중 하나는 이들이 ‘방구석에 처박힌 외톨이’ 혹은 ‘소외된 계급’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에 따르면 이들은 블루칼라 노동자부터 일류 사립대학생까지 다양한 사회적?경제적 배경을 가졌다(34쪽). 실제로 인셀 범죄에 연루된 사람들만 봐도 주유소 노동자부터 IT개발자, 심지어 미국 주의원 후보까지 있다(61쪽). 물론 이토록 다종다기한 개인들로 구성된 인셀에게도 몇 가지 공통적인 특징이 있는데, 첫째는 섹스에 대한 광적인 집착과 그것을 ‘거부당한’ 데 대한 분노에 집중한다는 것이다(35쪽). 이들은 성 시장이 불리하게 짜여 있으므로 섹스 재분배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강간 합법화를 지지하고, 여성은 성적 자율성을 누릴 수 없는 성적 도구로 여긴다(49~51쪽). 둘째는 자신을 ‘결백하고 비극적인 피해자’로 여긴다는 것으로, 이들은 여성 중심적인 세상(지노크라시)과 ‘알파 수컷’에게 유리한 세상에 대한 피해의식으로 가득하다. 특히 이런 경향이 강한 건 인셀 중 가장 패배주의적인 집단인 블랙필(blackpills)인데, 사회적, 유전적 로또가 너무 견고하게 고정되어 있고 선천적 결함 때문에 자신들은 완전한 실패자라며 서로의 자살을 부추기기도 한다(47쪽). 셋째는 ‘표현의 자유’를 빙자한 혐오스러운 용어들이다. FBI가 ‘용어집’을 공개할 정도로 극단적인 개념들이 담긴 혐오의 언어들은 이들 집단의 결속과 매력을 높이고, 나아가 폭력화와 급진화를 빠르게 유도하는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빨간 알약을 먹은 자들의 기묘한 생태계 :
픽업아티스트, 남성권리운동가, 자기만의 길을 가는 남자들
인셀이 매노스피어의 가장 대표적인 집단임은 틀림없지만, 매노스피어에서 위험한 집단은 그들만이 아니다. ‘빨간 알약(red pill)’을 먹고 ‘남성에게 불리한 세상에 눈을 뜬다’는 통과 의례와 그 근간에 ‘여성혐오’가 있다는 것은 동일하지만, 각기 다른 계기에서 출발한 집단들이 있다.
첫 번째로 픽업아티스트는 영화, 드라마, 예능의 소재로 다루어지며, ‘바람둥이’ ‘진짜 남자’라는 이미지로 자리 잡았지만, 오늘날엔 여성 대상 범죄자를 양산하는 ‘산업’이 되었다. 그 시장 가치가 1억 달러에 달하는 픽업 커뮤니티는 스타 강연자들이 1회에 수천 파운드에 달하는 입문 캠프, 세미나 등을 통해 성희롱, 스토킹, 심지어는 성폭력을 가르친다. ‘섹파 보고서’를 올리는 미션을 주고, 성폭행 후 ‘범죄 은닉법’을 공유하는 이들의 강연은 대개 ‘매진’이다.
두 번째 남성권리운동가(Men’s Rights Activists, MRAs)들은 오늘날 남성이 불공정한 사회에서 역차별을 당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페미니스트들의 성평등 운동에 맞서 싸우는 곳이다. 이들은 이름과 달리 성별 고정관념과 유해한 남성성을 강화하는 쪽에 관심이 더 많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사이비학문이나 가짜 통계를 활용하는 통에 매노스피어의 음험한 생각들을 ‘정당한 의견’으로 포장해 사회로 내보내는 역할을 한다(190~192쪽).
이들 중에서 그나마 덜 위협적으로 보이는 ‘믹타우(MGTOW)’는 ‘자기만의 길을 가는 남자들(MEN GOING THEIR OWN WAY)’의 약어로, 여성을 ‘위대한 기적을 책임져온 남자들의 꽁무니에 올라탄 기생충’으로 묘사하며 ‘고립주의’를 택한 사람들이다(148쪽). 이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건 여자들의 ‘허위 강간 고발’인데, 믹타우의 음모론이 어찌나 설득력이 있던지 영국 경찰에도 영향을 미쳐 ‘강간 신고를 한 피해자가 경찰에 휴대폰을 제출해야 하고, 그러지 않으면 기소가 진행되지 않을 수 있다는 계획’을 발표하게 만들었다(450쪽). 얼핏 무해해 보이는 이들 집단마저 오프라인의 여성들에게 실제 타격을 입힌 것이다.
저자는 이들을 ‘긴밀한 공생관계 속에서 호흡하는 하나의 생태계’라 정의한다. 그가 매노스피어를 ‘생태계’로 표현한 건 단순히 비유가 아니다. 실제로 이들은 서로를 이용해 ‘먹고산다’. 인셀과 믹타우의 두려움을 이용해 픽업아티스트는 돈을 벌고, 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