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베르 드 노장의 자서전

기베르 드 노장
31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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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텍스트 17권. 중세 유럽 사회와 당대인들의 삶을 생생하게 녹여낸 <기베르 드 노장의 자서전>은 박용진 서울대학교 HK연구교수에 의해 국내 최초로 번역되었다. 중세 유럽을 다루는 원전 가운데 국어로 전문을 완역한 바가 지금까지 거의 없었다는 점에서, 서양사학계는 이 소중한 기록의 출간을 더욱 반기고 있다. 박용진 교수는 가는 학회마다 동료 역사학자들에게서 “<기베르 드 노장의 자서전>은 언제 출간되느냐”는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그간 다양한 연구자가 <기베르 드 노장의 자서전>을 인용하고 있었지만, 그 가운데 일부는 맥락과 상관없이 문구만 인용되는 경우도 있었다. 이에 박용진 교수는 책 전체를 좀 더 자세히 읽고 번역할 결심을 했다. 이후 수년에 걸쳐 번역에 몰두한 결과, 드디어 서양사학계가 손꼽아 기다려오던 <기베르 드 노장의 자서전>이 완역·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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著者/訳者

目次

해제 제1권 나의 어린 시절 제2권 노장 수도원 제3권 랑의 코뮌과 봉기 기베르 드 노장의 연보와 『자서전』의 역사 기베르 드 노장의 활동지역 옮긴이의 말 찾아보기

出版社による書籍紹介

국내 최초 번역! 중세 유럽의 사회와 삶을 담은 프랑스 수도사의 귀중한 기록 지금으로부터 약 900년 전, ‘기베르 드 노장’(Guibert de Nogent)이라는 이름의 한 프랑스 수도사가 자신의 성장 과정을 되돌아보고 속세의 당면 문제에 대해 서술한 고백록을 남겼다. 기베르가 ‘혼자 부르는 노래’(Monodiae)라고 이름 붙였던 이 자서전은 당대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으나, 오늘날에는 중세 유럽의 사회상을 증언하는 가장 중요한 사료 가운데 하나로 손꼽힌다. <기베르 드 노장의 자서전>은 1114~17년 사이에 쓰였으며, 총 세 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1권이 기베르의 어린 시절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그의 종교적 심성을 드러낸다면, 제2권은 수도원의 역사와 이와 관련된 종교적 기적에 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한편 제3권은 중세 도시의 서약결사체로 도시민의 조직이었던 ‘코뮌’(Commune)과 관련된 12세기 프랑스 북부의 도시 폭동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기베르 드 노장의 자서전>은 중세 유럽의 가족제도, 결혼 풍습, 세 신분 체계 등 중세사회의 다양한 모습을 비춰주는 거울과 같다. 이처럼 풍부한 내용 덕택에, 이 값진 사료는 19세기 이래 시대의 관심에 따라 다양한 측면에서 끊임없이 새롭게 해석되고 있다. 중세 유럽 사회와 당대인들의 삶을 생생하게 녹여낸 <기베르 드 노장의 자서전>은 박용진 서울대학교 HK연구교수에 의해 국내 최초로 번역되었다. 중세 유럽을 다루는 원전 가운데 국어로 전문을 완역한 바가 지금까지 거의 없었다는 점에서, 서양사학계는 이 소중한 기록의 출간을 더욱 반기고 있다. 박용진 교수는 가는 학회마다 동료 역사학자들에게서 “<기베르 드 노장의 자서전>은 언제 출간되느냐”는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그간 다양한 연구자가 <기베르 드 노장의 자서전>을 인용하고 있었지만, 그 가운데 일부는 맥락과 상관없이 문구만 인용되는 경우도 있었다. 이에 박용진 교수는 책 전체를 좀 더 자세히 읽고 번역할 결심을 했다. 이후 수년에 걸쳐 번역에 몰두한 결과, 드디어 서양사학계가 손꼽아 기다려오던 <기베르 드 노장의 자서전>이 완역·출간되었다. 부르주아지의 진정한 기원, 도시민의 결사체 ‘코뮌’의 이야기를 증언하다 기베르 드 노장의 저서가 본격적으로 역사학자들의 관심을 끈 것은 19세기부터였다. 제3권이 프랑스 랑(Laon)에서 일어난 폭동과 코뮌 운동의 자세한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었다. 프랑스혁명 이래 19세기 여러 차례의 혁명을 통해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낸 부르주아지는, 그 사회가 완전히 새로운 것이 아니라 유구한 역사적 기원을 갖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당위성을 갖고 있다는 근거를 제시할 필요가 있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자유주의 역사가들은 부르주아의 기원이 중세 도시에 있으며 중세시대에 투쟁을 통해 자유를 획득한 이래 절대왕정에 의해 한동안 자유를 침탈당하기도 했으나 결국 일련의 혁명으로 승리를 쟁취하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가령 이러한 해석을 대표하는 티에리(A. Thierry)는 프랑스 북부의 코뮌에서 부르주아가 서약을 통해 결합하여 자유와 자치를 실현했으므로 코뮌이야말로 부르주아지의 진정한 기원이라고 하기도 했다. “다음 날인 목요일, [주교] 고드리와 부주교인 고티에가 정오 성사를 마친 뒤에 사람들에게서 돈을 모으고 있을 때, “코뮌!”이라고 외치는 소리가 시내 전역을 통해 퍼져나갔다. 동시에 칼, 양날 도끼, 활, 창, 투창 등을 가진 엄청난 군중이 주교관으로 들이닥쳤다. 그들은 노트르담 성당의 중앙 회랑으로 들어왔다. ……이 무례한 무리들은 주교관의 벽 앞에서 소리를 지르며 주교를 공격했다.” - <기베르 드 노장의 자서전> 제3권 '랑의 코뮌과 봉기'에서(223~224쪽) 랑에서는 주교가 시민의 대표인 스카비니(scabini)를 재판과정에서 배제한 채 기사들과 결탁하여 시민에게 자의적인 수탈을 자행하고 있었다. 이를 참다못한 시민이 서약을 통해 상호부조의 결사를 만들고(1110) 코뮌을 인정받았으나(1112), 얼마 지나지 않아 주교는 이 약속을 어기고 코뮌을 취소했다. 격분한 시민이 “코뮌! 코뮌!”을 외치며 봉기를 일으켜 유력자들에게 약탈과 방화를 자행하고 주교를 살해했다. 이를 시작으로 이어진 일련의 폭동에 대해 기베르 드 노장은 그 원인이 방탕한 한 고위 성직자의 죄 때문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동시에 코뮌에 대해서도 적대감을 드러냈다. 도시의 시민이 돈을 다루는 새로운 사회 세력으로 등장함에 따라, 상업의 발전과 도시의 영향력 확대를 경계했기 때문이다. 사실 코뮌의 성립 과정은 도시마다 달랐지만, 오늘날 코뮌의 성립을 묘사할 때는 일반적으로 위와 같은 폭력적인 장면을 인용한다. 이러한 인용은 바로 <기베르 드 노장의 자서전>에서 비롯된 것이다. “나는 수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그것이 나의 소명이었던 모양이다” 자서전은 인간이 자신을 독립된 개인으로 자각하기 시작한 근대 이후에야 탄생한 장르다. 하지만 자신에 대한 성찰은 근대 이전에도 이루어졌으며 특히 기독교의 고백이야말로 근대 자서전의 기원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시초는 바로 아우구스티누스였다. 그런데 아우구스티누스 이후 <고백록> 같은 부류의 글이 거의 나타나지 않다가, 기베르 드 노장에 이르러서 다시 나타나게 되었다. 따라서 <기베르 드 노장의 자서전>은 기독교 전통 속의 자서전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자서전은 한편으로는 신에 대한 헌신을 나타내는 것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독자들을 교화하기 위한 것이다. 오, 하느님, 당신도 아시다시피 어머니는 내가 타락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도록 매일 내 귀에 경고의 말을 쏟아부었습니다. 어머니는 집안일에서 벗어나 약간의 시간이 남을 때마다, 나에게 기도하는 법과 그 목적을 가르쳐주었습니다. 위험한 영혼을 가지고 있던 내가 하느님 덕택에 건강하고 좋은 젊음을 갖게 되었는데, 내가 그 젊음을 타락시키지 않도록 하기 위해 어머니가 겪었을 고통은 거의 산고와 비견될 만한 것으로서 하느님만이 알고 계십니다. - <기베르 드 노장의 자서전> 제1권 '나의 어린 시절'에서(83쪽) <기베르 드 노장의 자서전>에서 기베르는 자신을 설명하기 위해 어머니, 선생, 동료 수도사 등 여러 사람과의 관계를 언급하지만, 그것은 신과의 관계를 설명하는 데 필요해서일 뿐이다. 그는 종교적인 관점에서 자신의 생애를 돌아보고, 오직 신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설명하고자 한다. 기베르는 자신이 태어날 때부터 성직에 종사하도록 예정되어 있었는데, 수도원장이 됨으로써 하느님의 소명을 다했다고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수도사의 일상생활은 다루지 않고, 자신의 성장과 회개를 중점적으로 적으며 하느님의 뜻이 자신에게서 어떻게 구현되는지 보여주려 했다. 마치 아우구스티누스가 타락했다가 어머니 모나카에게서 감화를 받아 회개했듯이, 기베르도 젊은이의 혈기로 타락했지만 어머니의 노력으로 회개를 했다. 기베르에게 이 모든 과정은 하느님이 예정하신 바였는데 길 잃은 어린 양이 회개하여 수도사가 됨으로써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진 것이다. 자신의 삶을 가감 없이 그대로 드러낸 옛 자서전에 오늘의 우리를 비추다 <기베르 드 노장의 자서전>을 읽으면 일관되지 못한 서술방식에 당황할 수도 있다. 기베르는 하느님께 고백을 하듯이 말하다가, 갑자기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듯이 말하기도 한다. 일관된 논리로 쓰인 글에 익숙한 독자들이 보기에 이러한 서술의 비일관성은 이해할 수 없기도 하고 우스꽝스러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한 사람의 삶이 어찌 아무런 동요도 없이 일관되게 진행되겠는가. 우리도 만약 자신의 삶을 아무런 가감 없이 그대로 드러낸다면, 자신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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