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세의 「난 아직 모르잖아요」부터 빅뱅의 「붉은 노을」까지
우리 시대 최고의 연가(戀歌)를 써 왔던 작곡가 이영훈
“그의 음악 인생과 북아트의 행복한 만남”
“‘대중출판물로서의 아트북’이라는 관점에서 LP 판 형태의 디자인과 아날로그 책의 결합은
상당히 새로운 시도이다.” ― 김나래(북아티스트)
“그의 가치는, 격이 있는 사랑 노래가 얼마나 예술적이고 보편적일 수 있는지를
증명한 것에 있다.” ― 나도원(음악평론가)
“이영훈의 노래들은 두고 온 사랑에 대한 달랠 길 없는 향수다.” ― 황인숙(시인)
Art Book으로 만나는 이영훈의 음악 인생
우리 시대 최고의 연가(戀歌)를 써 왔던 작곡가 고(故) 이영훈의 삶과 음악을 북아트 작품으로 재탄생시킨 <Art Book 광화문 연가>가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이영훈은 「난 아직 모르잖아요」, 「사랑이 지나가면」, 「광화문 연가」, 「옛사랑」 등 가수 이문세의 수많은 히트곡을 작곡/작사한 음악가로, 1000만 장이 넘는 앨범을 판매한 한국 대중음악의 독보적인 존재였지만 작년 이맘때 대장암으로 세상을 떠나 팬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 바 있다.
고(故) 이영훈 1주기에 맞춰 출간된 이 책은 2008년 4월 성남 국제북아트페어에 전시된 한 북아트 작품에서 시작되었다. 모두 두 권으로 이루어진 놀라운 책이었는데, 한 권은 이영훈의 가사들을, 한 권은 그가 홈페이지에 남긴 글과 덧글들을 함께 엮은 작품으로, 본문 한 장 한 장 원형 커터로 잘라 접지하여 LP 판 디자인으로 만든 책이었다. 이번에 민음사에서 나온 <Art Book 광화문 연가>는 본래 수제본으로 이루어진 북아트 작품을 대중출판의 영역에 실험적으로 적용하여 만든 책이다.
그간 출판계는 케이스나 용지, 가름끈, 띠지 등 책의 장정에 변화를 주면서 특별한 책을 제작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이는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 디지털이 우리 생활을 지배하더라도, 책은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도구가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작품의 역할을 해 왔음을 보여 준다. 책이란, 독자의 오감을 자극하는 아날로그적인 물성으로 이루어졌을 때 가장 매혹적이라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 주는 것이다.
특히 이 책 <Art Book 광화문 연가>는 까다로운 제작 공정을 거쳐 완성된 새로운 출판물로, 분명 출판의 역사를 한 단계 진전시킨 선례로 남을 것이다.
1960년대 유럽 작가들이 오프셋 인쇄를 이용해 실험적인 한정판 아티스트 북을 만든 이래, 오늘날 북아트는 대중출판의 영역으로까지 확장되었다. 그러나 ‘대중출판물로서의 아트북’이라는 관점에서 보더라도 LP 판 형태의 디자인과 아날로그 책의 결합은 상당히 새로운 시도이다.
― 김나래(북아티스트)
대중음악의 격을 한 차원 높인 음악가의 내밀한 ‘삶’
이 책은 이영훈의 글과 아내 김은옥의 글을 함께 엮은 <삶> 그리고 작곡 노트와 함께 편집한 가사집 <음악>, 이렇게 두 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두 권 중 한 권인 <삶>은 1989년부터 2008년 초까지 작곡가 이영훈이 남긴 기록들을 모았다. 음악 노트뿐 아니라 일기, 메모 등에서 발췌한 글에는 그의 삶의 구체적인 흔적들이 남아 있다.
“음악은 인생과 같다. 그래서 음악은 인생과 동반해 갈 수밖에 없나 보다.”(p. 86) 또는 “음악의 존엄성이란 음악을 만든 이와 듣는 이가 같이한 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만든 이 따로, 듣는 이 따로인 음악은 내팽개쳐진 음악일 뿐. 그런 것은 없다!”(p. 98)라는 글이나 “참 많이 아팠다. 하지만 주님의 은혜 가운데 퇴원을 했다.”(p. 217) 등의 글에는 이영훈의 음악관과 종교관이 잘 드러나 있다.
또한 아내에게 보내는 연서들과 메모들을 통해, 아름다운 말과 선율로 우리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 작곡가의 영원한 연인인 아내에 대한 사랑이 그만의 유머와 애틋함으로 뒤섞여 독자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든다.
여기에 마지막까지 그의 곁을 지켰던 아내 김은옥의 기억들을 함께 담아내어 이 책은 그들의 사랑의 기록이자 이영훈의 병상 기록이기도 하다. 또한 친필 악보의 몇 소절, 특히 미발표된 악보의 몇 소절과 병상에서 떠올린 마지막 악상의 기록까지 함께 편집해, 한층 더 소장 가치를 높였다.
우리말을 빛나게 한 작사가이자, 가슴으로 곡을 쓴 작곡가 이영훈의 ‘음악’
나머지 한 권인 <음악>은 1985년부터 그가 쓴 가사들을 모아 발표순으로 정리했고, 그가 쓴 ‘작곡 노트’를 함께 편집하여 그의 노래들을 한층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했다.
“이 곡은 「옛사랑」과 더불어 내 음악 세계의 두 기둥이 되는 곡 중 하나다.”(「광화문 연가」의 작곡 노트, p. 58)라는 글이나 “이 곡 이후에 쓴 내 노래의 가사들은 모두가 별첨 정도일 뿐이다.”(「옛사랑」의 작곡 노트, p. 100) 등의 작곡 노트에는 곡을 쓸 당시의 심경이 잘 드러나 있다. 그런가 하면 “이때는 정말 힘든 시기였다. ……오래 사귀었던 그녀는 나를 떠나 버렸다.”(「난 아직 모르잖아요」의 작곡 노트, p. 20) 또는 “나는 가끔 곡을 쓸 때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리곤 한다. 나의 마지막 꿈은 영화감독이다.”(「이별 이야기」의 작곡 노트, p. 34)라는 글에는 노래가사로 다 표현해 내지 못한 사연들이 숨어 있다.
복고 트렌드의 부활, 그 가운데서 바라본 이영훈의 음악
최근 대중문화 산업를 주도하는 아이콘은 ‘복고’다. 지난 1997년 IMF 때도 그랬지만, 복고 트렌드가 다시 문화계를 강타하고 있다. 이는 시대의 분위기를 다분히 반영하는 것으로, 옛날에 대한 향수뿐 아니라 이제 과거를 제대로 평가하고 현실 속에서 어떤 희망과 안정적인 것을 발견하고자 하는 대중들의 의지의 발현이기도 하다.
대중음악은 영화와 더불어 대중문화의 여러 장르 중에서도 가장 보편적인 장르여서, 이러한 복고 트렌드 속에서는 특히 리메이크가 끊이지 않는 영역이다. 이영훈 노래 또한 마찬가지이다. 요즘 대중음악 시장에는 빅뱅의 「붉은 노을」이 크게 히트 치고 있다.
하지만 그의 노래의 리메이크 현상은 단지 복고 트렌드의 영향만은 아니다. 1980년대부터 현재까지 세대를 막론하고 대중의 사랑을 받으면서 변진섭, 신승훈, 조성모 등 여러 뮤지션들에 의해 새롭게 해석되어 불려 왔다. “두고 온 사랑에 대한 달랠 길 없는 향수”와도 같은 서정성 짙은 그의 노래들이 한국인의 정서와 잘 맞고, 이들의 심성을 울리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음악평론가 임진모는 이를 이렇게 분석한다.
이영훈의 주요 업적은 가요가 당당하게 대중음악의 주체로 상승하게 된 밑거름을 제공했다는 데 있다. 만약 새로운 패턴의 발라드 곡 쓰기가 그의 개인적 성공이라면 팝과 가요의 우선순위 교체는 그가 쾌척해 낸 사회적 성공일 것이다. 새 노래뿐 아니라 우리 대중음악의 ‘새날’을 맞게 해 준 것이다. 이랬으니 1980년대를 어린 시절로 보내며 이전 세대보다 가요의 감수성을 더 진하게 체득한 지금의 20-30대 가수들이 어찌 이문세 노래와 이영훈 곡을 불러 보고 싶지 않겠는가.
이영훈. 이제 그는 떠난 지 1년이 되어 가지만, 그의 노래는 연인들의 가슴속에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고, 대중에게도 뮤지션에게도 한국 대중음악의 한 획을 그은 이영훈을 “잊는 것은 이 세상의 사랑 노래가 모두 사라진 후에나 가능할 것이다.”
이영훈에 대하여
우리 대중음악의 역사를 새로 쓴 이영훈(1960년생)은 본래 연극, 방송, 무용 등 순수 예술 영역에 속해 있던 뮤지션이었다. 그러다 1985년에 이문세와 함께 2001년까지 정규 앨범 8장과 기획 앨범 3장을 함께 만들면서 1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