出版社による書籍紹介
존재하는 것은 리토르넬로다. 리토르넬로는 세계의 반복들 위에 새긴 눈금, 리듬, 습관, 지속이다. 리토르넬로는 사건들, 관계들, 충돌들의 형태로 정동하고 정동되며 세계를 만든다.
모든 세계는 이러한 리토르넬로 곡조에 따라 꽃피는 공간이며 그 잔여다.
정동은 몸과 몸(인간, 비인간, 부분-신체, 그리고 다른 것들)을 지나는 강도들에서 발견되며, 또 신체와 세계 들 주위나 사이를 순환하거나 때로 그것들에 달라붙어 있는 울림에서 발견된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강도와 울림 들 사이의 이행과 변이형 들 그 자체에서 발견된다. 가장 의인화된 방식으로 말하자면 정동은 의식화된 앎 아래나 옆에 있거나, 또는 아예 그것과는 전체적으로 다른 내장의(visceral) 힘들, 즉 정서(emotion) 너머에 있기를 고집하는 생명력(vital forces)에 우리가 부여하는 이름이다. (「미명의 목록[창안]」)
정동(affect)이란 무엇인가?
“스피노자에 따르면, 외부 사물(외부의 몸)이 인간의 몸에 일으키는 변화로 인하여 몸의 능동적 행동능력이 증가·감소하거나, 촉진·저지될 때 그러한 몸의 변화를 몸의 변화에 대한 ‘생각’(idea)과 함께 지칭하는 것이 정동이다(스피노자, 『윤리학』 III부 정리3). 따라서 정동은 신체의 일정한 상태를 사유의 일정한 양태와 함께 표현하며, 삶의 활력의 현재 상태를 보여준다. 정동적 노동은 편안한 느낌, 웰빙, 만족, 흥분 또는 열정과 같은 정서들, 감정들을 생산하거나 처리하는 노동이다. 정동은 라틴어 affectus, 영어와 불어의 affect에 상응하는 말이다. 네그리·하트와 들뢰즈·가따리의 저작에서 주요하게 사용되어온 이 용어는 ‘변양’(變樣)(『천 개의 고원』), ‘정서’(情緖)(『제국』), ‘감화’(感化)(『시네마』 1권), ‘정감’(情感)(『영화』 1권), ‘감응’(感應)(『질 들뢰즈』) 등 여러 용어로 번역되어 왔다.” (조정환, 『인지자본주의』 556~557쪽)
(이하의 내용은 『정동 이론』 「옮긴이 후기」에서 요약·발췌하였습니다. 책 586~589쪽을 참조해 주십시오.)
1) 정서(emotion), 감정과 정동
우리는 우리 자신이, 근대 이래 학문에서 상정하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주체가 아니라, 감정적이고 불확실한 주체라는 것을 자주 목격한다. 정치적 주체는 정의와 주권의 주체라기보다 정치적 사안에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여론에 휩쓸리는 주체이며, 경제적 주체는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소비주체라기보다 감정적으로 충동구매와 투자를 하는 주체이며, 문화적인 주체는 독립적인 취향을 가지고 대중문화에 접근하는 주체라기보다 드라마나 리얼리티쇼, 뉴스 등 매스미디어에 수시로 휘둘리는 주체이다. 이처럼 실생활에서 우리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주체가 아니라 정서적 혹은 감정적인 주체이다. 정동이라는 개념은 이 ‘정서적인 주체’를 포착하는 유용한 매개이다. 정동은 정서나 감정보다 넓은 개념이다. 감정이 개인적인 측면에서 문화적으로 약호화된 방식으로 언어나 몸짓으로 나타나는 표현이라고 한다면, 정동은 개인적인 차원 이전의 단계, 즉 전개인적인(pre-individual) 단계에서 감정과 느낌을 다룬다. 따라서 정동 연구는 사회적인, 문화적인, 정치적인, 경제적인, 심지어 과학의 분야에서, 과거에는 측정하고 계량화할 수 없기에 일탈 또는 예외라고 치부했던 현상들을 충분히 이론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교량 역할을 한다.
2) 정신(mind)와 정동
스피노자의 명제, “우리는 몸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아직 모른다”가 암시하듯, 정동 연구는 몸과 정신의 이분법을 거부하고, 몸의 관점에서 정신(의식)을 설명하려 시도한다. 오늘날 이것은 신경과학과 양자이론, 인지공학의 지식과 연동하여 융합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한편 개인적인 주체 개념을 넘어 전개인적인 것에 기반하여 주체에 접근하는 정동 개념은 네트워크와 관계성의 개념과 연동하며 인간/기계/비유기체의 배치물을 한꺼번에 다룰 수 있는 개념틀을 제공한다. 이는 일상생활의 정동의 흐름에 초점을 맞추어 평범해 보이는 것들 속에 숨겨진 정치적 함의를 찾는 작업으로 연결된다. 정동 이론은 일상생활의 경험의 물질성에 주의를 기울이면서 그러한 물질성에 작동되는 권력의 흔적을 조사하는 한편, 권력이 유도하는 규범화된 삶의 경계에서 존속하면서도 그것을 뛰어넘는 세계를 실현하는 잠재성을 펼쳐 보인다.
3) 신체와 정동
느낌은 기존에 ‘감정’ 또는 ‘정서’라 일컫던, 몸과 마음의 이분법 중 한쪽에 치우친 것을 중립화하는 어휘이다. 다시 말해, 느낌은 몸과 마음이 함께 작동하여 일어나며 그 양쪽에 흔적을 남기는 움직임, 즉 정동이다. 그런 점에서 정동을 기술하는 말 중에 유독 신체와 관련된 어휘들이 많이 등장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대표적인 예로, ‘내장을 건드리는/내장의’(visceral)라는 형용사를 꼽을 수 있다. 이 말은 정동이 단지 뇌에서 일어나는 정신적 작용이 아니라 우리의 몸 전체의 물질성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부각시킨다. 즉 정신/신체의 이분법보다 훨씬 아래에서 작동하는 힘으로서의 정동을 의미한다.
간략한 소개
이 선집은 정동 연구라는 이제 막 발아하는 분야를 정의하는 시도이자, 이 분야를 집대성하고 그 힘을 다지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글쓴이들은 정동 이론의 주요 이론가들을 망라하고 있다. 정동이란 의식적인 앎의 아래와 곁에 있거나 그것과는 전반적으로 다른 내장[몸]의 힘으로서, 우리를 운동과 사유, 그리고 언제나 변하는 관계의 형태들로 인도한다. 로렌 벌랜트는 ‘잔혹한 낙관주의’를 탐구하고, 브라이언 마수미는 공공 위협의 정동적 논리를 이론화하며, 엘스페스 프로빈은 수치에 대해 연구한다. 이들은 다른 기고자들과 함께, 정동을 인식하는 것이 어떻게 인류학·문화연구·지리학·심리학은 물론이고, 철학·퀴어 연구·사회학에 이르는 분과학문들에서 흥미진진하고도 새로운 통찰력을 열어 주는가를 보여 준다. 소재와 스타일, 관점이 다른 논문들에서 글쓴이들은 어떻게 정동 이론이 일상적이거나 비범한 방식으로 (인간과 비인간의) 신체를 가로질러 작용하면서 미학적인 것과 윤리적인 것, 그리고 정치적인 것이 서로 얽힌 영역들을 조명하는지를 보여 준다. 윤리·음식·공공의 사기진작·글래머·직장에서 비꼬는 말·정신건강서비스 체제 등을 망라하는 영역에서 그들은 정동에 대한 자각으로 열린 광범위한 이론적 가능성들을 드러내 보인다. 『정동 이론』은 문화 이론가인 로렌스 그로스버그와의 인터뷰와 인류학자인 캐스린 스튜어트의 후기를 담고 있다. 서문에서 편저자들은 정동을 정의하는 방식들을 제시하고, 이 개념의 역사를 좇으며,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정동 이론의 역할을 강조한다.
상세한 소개
일상으로, 몸으로 내려앉은 사유
1990년대 이래 영미권 학계에서 ‘정동’(affect) 관련 연구가 불붙기 시작하였다. 정동 연구는 사회 계급 및 구조에 기반한 비평 이론들과 문화연구에서 간과했던 문제들, 심지어 관심을 가질 가치조차 없다고 치부했던 현상들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한마디로, 머리(이념)와 몸(행동)의 괴리현상들을 파헤치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이론은 하늘을 날고 있는데 우리 현실은 시궁창 같은 상황에 대한 비판 의식과 맞닿아 있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자본주의의 소외 현상 분석에 천착하면서도 우리가 일상에서 자각하지 못하고 매혹되어 들어가는 자본주의 상품의 마술적 힘을 단지 속임수로 치부하면서 외면하거나, 사회정치적으로는 진보를 표방하면서도 일상에서는 행복한 삶에 대한 환상에 무력하게 포섭되거나 가부장적 폭력을 행사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 등에 대해서이다. 정동적 힘에 대한 자각은 그렇게 우리의 몸에서부터 관계, 가치, 좋은 삶에 대한 약속, 정치적 희망, 문화적 취향, 교육과 학문, 그리고 글쓰기의 문제로 뻗어나가면서 사유의 고리들을 형성해 왔다. 이는 전혀 다른 ‘사유하기’의 방식, 즉 변증법에 대한 오랜 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