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식의 세상 속으로

이규식 · 社会科学
30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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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OOO 시리즈 1권. 한국 사회에서 최초로 중증 뇌병변 장애인의 언어로 적은 생애사다. 대표적인 ‘장애인 투사’의 일상과 인생을 통해 바라본 한국 장애 인권 운동사가 직접 쓴 책이다. 그 혼자서는 결코 쓰지 못했을 책의 특별한 집필 과정도 담았다. 전장연 지하철 시위 현장을 지나쳐 가며, 이들이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는지 궁금했던 사람들에게 권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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著者/訳者

レビュ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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目次

서문. 나는 오늘도 달린다 7 1장. 방구석에서 13 2장. 집을 떠나 공동체로 31 3장. 날개 달린 스쿠터 53 4장. 운명의 노들야학을 만나다 71 5장. 이동권, 그리고 제베의 탄생 83 6장. 자유로운 삶, 시설 밖으로 101 7장. 활동보조라는 신세계 127 8장. 차별의 그림자 149 9장. 발바닥이 없었더라면 165 10장. 이음을 잇다 195 11장. 장애인의 감방 생활 213 12장. 내가 만드는 배움 233 13장. 제주로 가는 휠체어 251 14장. 전사의 꿈 279 에필로그. 미래를 앞당겨 온 글쓰기 298

出版社による書籍紹介

● 한국 사회에서 최초로 중증 뇌병변 장애인의 언어로 적은 생애사 ● 대표적인 ‘장애인 투사’의 일상과 인생을 통해 바라본 한국 장애 인권 운동사 ● 직접 쓴 책이자 그 혼자서는 결코 쓰지 못했을 책의 특별한 집필 과정 ● 전장연 지하철 시위 현장을 지나쳐 가며, 이들이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는지 궁금했던 사람들에게 권하는 책 1. 중증 뇌병변 장애인의 기록이 책으로 나오기까지 “기획재정부 장관 집에서 현행범으로 잡힐 뻔했는데 장콜(장애인 콜택시)이 안 와서 안 잡아갔다.” - 이규식의 페이스북(https://www.facebook.com/gyusig2), 2022년 7월 14일 “학교는 의무교육인데 왜 그때는 장애가 있는 아이를 둔 부모에게 벌금이나 죄를 묻지 않았을까? 내가 장애가 있어서였을까. 그러고 몇 년이 지나서 동생이 학교를 졸업하고 또 아침마다 나가길래 어딜 가나 했는데 ‘직장’에 나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때 직장이라는 게 뭔지 알게 되었다. … 내 나이 열아홉 살에 처음 시설에 들어가게 되었다. 부모님이 시설에 데려다주셨는데 그날이 주일이라 목사님 설교를 듣던 중에 어머니, 아버지가 집에 가신 걸 알게 되었고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다른 사람들은 우는 내 모습을 보고 목사님 설교 말씀에 감동받아서 우나 싶었다고 했다. … 똑같은 생활이 싫었다. 시설에서 나오기 전에 어머니한테 다시 데리러 와달라고 전화했다. 그래서 다시 집에 왔는데 그때 우리 집에 계단이 많았다. 반층 정도 올라가야 엘리베이터가 있어서 아버지랑 어머니랑 동생이 1층에서 맨날 업고 3층 집 앞까지 왔다 갔다 해줬다. 그렇게 집 밖에 나가서 동네 한 바퀴 빙빙 돌다가 불빛이 보여 가보니 정립회관이었다. 안에 나 같은 장애인이 많아서 뭐 하는 곳인지 궁금해 들어가 보니 3층에 박(경석) 선생님이 있었다. 그때 박 선생님이 들어오라고 해서 가보니 (노들)야학이 뭔지 설명해 주었다. 그때부터 야학이 뭔지도 모르고 다니게 되었다. … 내가 혜화역에서 리프트 타다가 떨어지고. 그때부터 이동권연대가 시작되었다. … 처음에 서울역 철로에 들어갔고 시청 철로에 들어가서 잡혀서 조사받았고 조사받을 땐 48시간 동안 못 나왔다. 한두 번이 아니라 여러 번 조사를 받았다. … 수도 없이 도로를 막고 그 덕분에 장콜도 생기고 그 덕분에 저상버스도 생겼다.” - 이규식의 페이스북, 2022년 7월 10일 호소이자 외침이었다. 오랫동안 그에게 귀 기울이지 않는 세상을 향해 끝내 비집고 나온 말이었다. 그의 싸움이 ‘죄’라면서도 정작 그를 옮길 마땅한 이동 수단도 수감할 시설조차 마련해 두지 않은 사회의 뒤처진 풍경을 고스란히 비추는 문장이었고, 무엇보다 한번 보면 끝까지 읽게 만드는 글이었다. “22년 넘게 장애인 이동권을 요구하는 동안 내가 죄를 지었다면 대한민국이 죄를 짓게끔 만든 거 아니냐.” 할 말을 잃게 만드는 이 말을 꺼내기까지 그는 어떤 싸움을 했고, 어떤 시간을 살았을까. 그의 세상이 문득 궁금했다. 중증 뇌병변 장애인인 그는 손을 거의 쓰지 못한다. 왼손만 간신히 움직여 전동 휠체어의 기어를 조작하고 숟가락을 들거나 한다. 혼자 자판을 두드려 가며 책을 집필하기란 매우 어렵다. 그럼에도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는 활동으로 온통 채워진 일과를 보내는 틈틈이 컴퓨터에 자서전 폴더를 만들어 자료를 모으고 원고를 끄적여 왔다. 기억이 더 달아나기 전에 지나온 삶을 기록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싸움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말 한마디를 뱉으려면 힘을 짜내야 하는 언어장애가 있는 그에게, 여러 이유로 말하기보다 듣기를 선택해 온 그에게, 말보다는 몸으로 운동해 온 그에게 생각과 감정을 언어로 표현할 일은 평생 거의 없다시피 했다. 책을 쓴다는 건 그에게 낯설고 고단한 작업이었다. “우리의 삶이 그렇듯, 이규식의 삶 또한 그렇듯, 이 책 역시 그 혼자 이루어 내지 않았다. 함께 기억을 더듬고 의미를 찾아내는 과정에서 이규식도, 동료 집필진도 기꺼이 서로 의지했고 서로 배웠다. 집필에서 출판으로 이어지는 과정 자체가 이규식이 앞당기고 싶었던 어떤 미래를 보여 준다.” - 본문 303, 304쪽 장애를 이유로 ‘사회적 말하기’의 기회를 좀체 얻지 못한 이규식의 처지를 평소 안타까워하던 사람들이 있었다. 이규식의 삶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봐 온 그의 10년차 활동지원사 김형진, 이음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일하며 이규식과 남다른 우정을 주고받은 김소영, 오랜 지인이자 인권 활동가인 배경내가 ‘동료 집필진’으로 결합했고, 이규식에게 친형보다 각별한 제주 삼달다방의 이상엽이 기획을 도왔다. 과정은 쉽지 않았다. 조각난 기억을 복원하기 위해 예전에 살았던 시설에 가보고, 22년 운동의 역사를 되짚으려 영상과 신문 기사를 찾아보거나, 역사적 순간들을 함께한 동료들의 기억을 청해 들었다. 동료 집필진은 이규식의 이야기를 그대로 받아 적다가도, 때로는 되묻거나 다른 표현을 제안하면서 ‘이규식의 문장’을 찾으려 애썼다. 관련 자료를 검토해 사실 관계를 확인하고 토론하며 문장을 수선해 갔다. 간신히 나온 원고 초안을, 이제 장애 인권 운동의 역사와 맥락에 넣어 살핀 뒤 이규식에게 보완을 요청했다. 그렇게 그 스스로 표현하길 “평생 해온 말보다 이 책을 집필하는 과정에서 뱉어 낸 말이 더 많았”던 시간을 거쳐, 읽는 사람의 무릎을 치게 하고 귀를 사로잡는 이규식만의 말이 한 권의 책으로 완성되었다. 『이규식의 세상 속으로』는 한 개인의 생애사인 동시에, 우리 사회의 보이지 않는 장벽과 차별의 그물망까지 드러낸 한국 장애 인권 운동사이다. 최초로 중증 뇌병변 장애인이 자신의 언어를 통해 살아온 시간을 기록하고 사회를 해석한 책을 썼다는 점에서, 그동안 언어화되거나 기록되기 힘들었던 중대한 목소리의 공백이 비로소 메워지는 출발점이라고 할 만하다. 2. ‘행운’을 ‘제도’로 바꾸기 위해 새벽 5시부터 시작되는 싸움 “매일 새벽 5시에 하루를 시작한다. 지하철 선전전에 나가기 위해서다. 벌써 1년이 넘었다. 몸도 마음도 무척 고된 시간이었다. 남몰래 이렇게 기도한 적도 있다. 활동지원사가 아팠으면, 내가 불러도 활동지원사가 잠에서 깨지 않았으면 하고. 그 핑계를 대고 안 나갈 수 있으니까. 그러다가도 기어이 일어나 집을 나섰다.” - 본문 7쪽 “1999년 어느 날 이규식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가 혜화역에서 리프트를 타다 떨어져 크게 다쳤습니다. … 그 추락 사고가 장애인 이동권 투쟁을 촉발했습니다. 혜화역 2번 출구로 나가면 ‘혜화역 장애인 휠체어 추락 사고 이후, 여기서 이동권을 외치다’라고 적힌 동판이 있습니다. 서울 지하철 역사 가운데 가장 먼저 엘리베이터가 생긴 곳이 바로 혜화역입니다.” - 2023년 2월 10일 280일 차 혜화역 선전전에서 박경석의 발언 (<비마이너> https://www.beminor.com/news/articleView.html?idxno=24592) 법원에서 ‘이동권’이 인정된 첫 사례였다. 아찔한 사고였지만 타박상에 그쳤다니 기적이었고, 무엇보다 죽지 않고 살아남았으니 더없이 다행이었다. 크고 작은 행운은 그의 인생에 여러 번 찾아왔다.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일이 지금보다 훨씬 힘들었던 시절, 7년 넘게 반복된 시설 생활이 지겨워 충동적으로 떠난 제주도에서는 생면부지의 청년이 3박 4일 동안 활동지원사처럼 동행했다. 시설에만 있지 말고 동네라도 돌라며 선뜻 전동 스쿠터를 선물한 사람도 있었다. 스쿠터를 타고 돌아다니다 운명처럼 만난 노들야학은 그에게 ‘싸우는 장애인’의 삶을 새롭게 열어 주었다. 아버지가 만들어 준 그의 첫 ‘자립 주택’ 판잣집에는 파리며 모기에 뱀만 같이 지낸 게 아니라 “서울에서 비싼 월세 내기 아깝지 않냐”는 이규식의 꾐에 기꺼이 넘어온 야학 교사 동거인들도 복닥거렸다. 이동권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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