出版社による書籍紹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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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그 넓은 역사적 품과 문화적 너비를 만든 역사의 12가지 힘을 추적하다 치욕의 역사와 애달픈 관부연락선의 뱃고동 소리 | 물만골, 감천마을, 아미동 산동네가 일궈낸 기적 | 영도다리에 깃든 부산 사람들의 삶과 운명 | 밀면이 일궈낸 부산의 맛과 누들 문화 | 왜관에서 조선인과 일본인의 ‘잘못된’ 만남 | 식민지의 파도에서 살아남은 영도 해녀들 | 한국전쟁기 밀다원 다방이 탄생시킨 문학 파란만장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부산이란 도시가 어떻게 형성되었는가를 핍진하게 다룬 『부산은 넓다』가 출간되었다. 이 책은 엄밀히 말하면 기존의 부산 책들과는 좀 다르다. 저자는 외부인이다. 그에게 부산은 낯설면서 매혹적이었다. 머리말에서도 “부산에 대해 무지했던 내가 지역문화에 관심을 갖고 연구를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은 부산박물관에서 일하면서다. 10년 전 부산박물관은 서울내기인 나를 따뜻하게 맞아주었고, 박물관에서 유물 구입, 전시, 조사 등을 하면서 점차 부산의 역사문화와 그 매력을 하나둘 알게 되었다. 알면 알수록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역사문화가 곳곳에 흩어져 있는 곳이 바로 부산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 최고의 가왕 자리에 오른 조용필이 ‘바위를 치더라도, 머리가 깨지든 바위가 깨지든 우선 들이대야 한다”고 말한 것처럼 부산에 부딪쳤다. 그렇게 깊숙이 개입한 외부인에 의해 부산이 그 속살을 드러낸 결과물이 바로 이 책이다. 이 책은 인문학의 바다에서 부산의 이야기를 거둬 올리고자 했다. 인문학은 사람을 중심에 두고 생각한다. 즉 사람의 생각과 말, 시간과 공간을 연구하면서 궁극적으로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는 인간학이다. 저자는 가능한 한 낮은 자세에서 부산을 바라보고, 거시적인 것보다 미시적인 것에 관심을 둔다. 부산의 산동네, 노래방, 부산 밀면, 조내기 고구마, 영도 할매와 같은 소재는 제도권 학문에서는 변방으로 밀려나 있지만, 이처럼 부산의 문화를 잘 비춰주는 거울도 없다. 저자는 인문학이란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학문이라는 전제 아래 잘 알려진 역사적 사실들에 대해서 새로운 질문을 던져보고자 했다. 예컨대 왜관에서는 ‘조선과 일본인의 만남’, 동래온천에서는 ‘농심호텔에 서 있는 노인상’, 영도다리에서는 ‘수많은 투신자살 사건’, 임시수도에서는 ‘번창했던 다방들’, 부산항에서는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에 대해서 질문을 던지고 답을 구해봤다. ‘부산’ 하면 언제나 넓고 푸른 바다가 떠오른다. 출항하는 컨테이너선 앞으로 넓은 바다가 펼쳐져 있고, 끼룩끼룩 하늘로 나는 갈매기 아래에도 넓은 바다가 있다. 해운대, 광안리, 송도 해수욕장에 몰린 피서객들 사이에도 넓은 바다가 넘실거리고 있다. 생명을 탄생시킨 어머니와 같은 바다가 도시를 감싸고 있다는 것은 그 자체가 행운이다. 그러나 바다만으로 넓은 부산을 설명하기에는 뭔가 부족하다. 부산이 넓은 것은 자연환경 때문만은 아니다. 부산의 역사적 품이 넓다는 것이며, 부산의 문화적 너비가 광대하다는 것이다. 항구도시인 부산은 해양 문화와 내륙 문화가 서로 교류하고 충돌하는 곳이었기에 그 역사적 품은 장대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인지 부산 사람들의 가슴과 아량도 넓었다. 조선을 침략했던 일본에게 교린의 관점에서 왜관을 제공해주었고, 해방된 고국으로 들어온 동포들을 먼저 맞이해준 곳도 부산이었다. 전쟁을 피해 남으로 내려온 북한 피란민들이 정착할 수 있었던 땅도 다름 아닌 부산이었다. 부산 사람들은 바깥의 문화를 배척하지 않고 담대하게 받아들이면서 웅숭깊은 부산을 만들어갔다. 그러한 점들은 조선시대부터 파란만장한 현대사를 계속적으로 분주하게 오가며 아주 가까운 어제의 일부터 아주 먼 과거의 기억까지 보듬으려 한 이 책의 역사 읽기 방식에서 충분히 잘 드러난다. 어떤 도시인들 현대사의 숨은 때가 덕지덕지 앉은 곳이 없겠냐만, 부산은 역사성은 그 얼룩이 더욱 휘황찬란하다. 베트남을 향해 떠나는 장병들의 그 불안한 마음, 일본과 가까워 왜색문화의 전진기지로서의 비판, 피란 수도로서의 흔적 등은 부산이라는 육체에 두겹 세겹으로 아로새겨져 있는 것이다. 그런데 ‘넓은 부산’의 발전을 옥죄었던 관념이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부산은 제2의 도시’라는 별 볼일 없는 카드였다. 여기에는 전쟁 이후 급격한 산업, 인구, 무역의 성장 속에서 빛을 발했던 ‘경제 신화’가 자리 잡고 있다. 부산이 이처럼 ‘제2의 도시’라는 카드를 만지작거리며 만족하거나 혹은 과거 회상에 연연하고 있을 때 상황은 크게 바뀌었다. 냉정하게 따져보자. 현재 부산은 과연 우리나라 제2의 도시인가? 이미 여러 통계로 볼 때 서울은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앞섰고, 뒤에 있던 도시들도 부산을 앞지르거나 바짝 쫓아오고 있다. 시대정신이 달라져 지금은 도시의 독자적 가치와 삶의 질을 따지는 시대다. 경제개발과 토건 시대에 유행했던 산술적 수치를 들이대며 순위를 따져본들 별 도움이 안 된다. 더욱이 벤치마킹이라는 명목으로 앞서가는 서울을 계속 따라 해봤자 별 재미를 못 보는 시대다. 따라 하는 사람은 잘해도 언제나 2위가 아니던가. 부산이 지닌 가치를 살리며 부산만의 특징이 무엇인가를 먼저 살펴봐야 할 때다. 부산이 걸어온 길 속에서 부산의 정체성을 찾는 것이 유일한 해답일 것이다. 개항 이후 부산은 한국사의 전면에서 높은 파도를 맞아온 탓에 수많은 역사적 경험을 지니고 있다. 부산에 내재해 있는 근현대사의 기억은 다른 도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들이다. 물론 당시에는 갈등과 모순, 슬픔과 고통을 안겨줬던 역사도 있다. 하지만 이처럼 어둡고 슬픈 역사도 우리가 간직해야 할 역사인데, 부산은 아직 이런 점에서 서툴다. 인천에서는 서민들이 살았던 과거의 달동네를 문화 콘텐츠로 삼아 달동네박물관을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지방자치단체들은 저마다 나서서 자기 지역의 역사 소재를 문화 콘텐츠와 이야깃거리로 만들어 그들만의 역사를 꾸려나가고 있다. 비단 역사 전쟁은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역사 왜곡을 두고 일어나는 것만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각 지방 역시 ‘자신의 역사화’라는 전쟁을 펼치고 있다. 오해는 할 필요가 없다. 부산이 역사문화 콘텐츠 ‘원조 싸움’의 전면에 나서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따금 저자는 부산의 근현대 생활사와 관련된 문의를 받거나 자문 의뢰를 받으면서 실망감을 감추기 힘들었다고 고백한다. 대부분 부산의 역사문화 원천 소스를 발굴하는 사업을 외면한 채 이미 잘 알려진 역사문화 콘텐츠에 겉옷만 갈아입혀 무대에 등장시키려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산복도로 르네상스 사업에서는 문화 창조를 외치면서 실제 산복도로 사람들의 삶과 생활문화에 대한 진지한 발굴조사는 한 번도 이뤄지지 않았다는 게 하나의 사례다. 그러하니 여러 지방자치단체가 15년 전부터 표방했던 ‘역사문화 도시’라는 개념조차 부산에서는 낯설기만 하다. 부산의 근현대사에서 한국전쟁과 피란민들이 미친 영향만큼 큰 것은 없다. 당시 실향민들은 이제 연로해 세상을 하나둘 떠나고 있지만 이들의 역사적 기억을 기록하여 보존하는 데 예산과 인력은 마련되지 않고 있다. 오래전 속초시가 피란민 기록조사에 나선 것과는 크게 대조된다. 진지하게 기록과 조사를 진행하지 않고 성급히 역사문화 콘텐츠를 말하려는 것은 그저 공중누각을 쌓으려는 것일 뿐이다. 하지만 이런 열악한 상황을 남의 탓으로 돌릴 일은 아니다. 이와 관련 저자는 “나부터 성찰해야 하지 않을까? 어쭙잖게 이 책을 생각해낸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라고 밝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