出版社による書籍紹介
“광해군에 대한 21세기의 반정(反正)”
“나라를 망하는 과정을 알면, 나라를 일으키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
광해군을 폐위시킨 뒤 이 땅에서 살아야 했던 조선 사람들에게
오항녕 교수가 바치는 안타까운 위로, 연대의 편지
1623년 인조(계해)반정으로 쫓겨난 광해군 정권. 조선시대 내내 혼군(昏君) - 판단이 흐린 임금으로 불렸던 광해군. 그러나 20세기 들어와 실용주의 외교로 백성들에게 은택을 입힌 택민(澤民) 군주로 재평가되었다. 그 기원은 놀랍게도 식민지시대 조선사편수회의 간사였던 일본인 학자 이나바 이와키치. 이렇게 광해군은 20세기에 화려하게 부활했다. 역사인식에서 비판적인 성향이거나 보수적인 성향이거나를 막론하고, 또 교과서든 대중서든 전문연구서든 가리지 않고 고르게 재평가를 받으며 복권되어 부활하다 못해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21세기에도 광해군은 건재하다. 이 책은 이런 부활과 권세에 대한 비판이다.
오항녕 교수(전주대 역사문화학과)는 지난 100년 동안 추켜세웠던, 조선시대 사람들 표현대로 하면 다시 성군(聖君)이 되었던 광해군에 대해 “그는 본보기가 될 거울이 아니라, 우리의 미래를 망칠 위험한 거울입니다.”라며 이 책을 21세기 초입에 시도하는 광해군에 대한 새로운 반정(反正)이라 한다.
《광해군, 그 위험한 거울》은 정반대로 왜곡된 광해군시대를 바로잡는다는 소극적 기획은 아니다. 이 책은 파(破)가 아닌 립(立)이다. 삶을 망치는 과정을 알면 삶을 일으키는 방법을 찾을 수 있듯이, 나라가 망하는 과정을 알면 나라를 일으키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 역사 이해의 증대는 실패로부터 나온다. 실패하고 나면 왜 자신들이 생각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고 다른 일이 발생했는지 설명할 필요를 크게 느낀다. 실패한 역사에서 더 배우자는 취지이다.
저자는 우리 시대 우리 국민들이 이 나라가 어떤 세상이 되길 원하는지 광해군과 그의 시대에서 배우길 권한다. 또한 광해군을 폐위시킨 뒤 이 땅에서 살아야 했던 조선 사람들에게 바치는 안타까운 위로, 역사적 연대의 편지이기도 하다.
광해군의 시대를 시스템의 작동, 사람들의 비전과 욕망,
사건들의 우연성을 겹쳐서 읽어내다
오항녕 교수는 2010년에 펴낸 <조선의 힘>(역사비평사)에 <부활하는 광해군>이란 논문 한 편을 실었다. 이 논문이 담론으로서의 광해군을 분석한 글이라면 이 책은 그 담론의 토대, 즉 광해군과 그의 시대를 전면적으로, 다양한 스펙트럼을 통해 다룬 글이다. 그는 “그렇게 포착된 시대는 사뭇 느낌이 다르게 다가왔다. 사람과 구조가 함께 다가왔고, 조선의 다른 시기와도 비교가 가능해졌으며, 나가가 조선과 다른 시대에 대한 대비 속에서 질문도 많이 얻었다.”며 소회한다.
《광해군, 그 위험한 거울》은 먼저, 광해군 시대를 이해하는 데 가장 기초적인 사료인 ‘광해군일기’에 대한 검토를 통해 독자들이 안심하고 논지에 동참할 수 있게 해준다. 오항녕 교수는 자타가 공인하는 ‘실록 전문가’다운 안목으로 그 편찬과정, 다른 실록과의 장단점, 읽을 때 유의할 점 등을 안내한다. 이어 광해군 시대가 조선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왜 중요한지, 조선시대사와 역사인식의 두 측면에서 해설하였다.
저자가 광해군 시대를 접근하는 시각에는 두 가지 포인트가 있다. 첫째, 그의 일관된 근대주의 역사관에 대한 비판이다. 근대주의 역사관이란 유럽의 계몽주의자에게 봉건사회는 암흑시대였듯이 조선은 빨리 지나갔으면 좋았을 해체기로 인식하는 그런 류이다. 역사는 어디서 어디로 가는 게 아니다. 역사란 우리와 다른 삶의 양식을 가졌던 사람들과 대등하게 만나는 마당(평원) 이상이 아니라는 것. 그런데 근대주의는 있지도 않은 보편사관을 만들어내어 다양한 역사를 줄 세우기 한다. 심지어 그 보편사관에 법칙성까지 부여하면서. 결국 사회구조에 대한 인식, 역사주체로서의 민중의 발견에 기초하여 운동사, 사회사, 경제사 등에 발전을 가져온 역사학은 오히려 이런 근대주의 때문에 넓은 평원을 두고서 돌아 나오기도 힘든 골목길로 들어섰다고 보는 것이다.
둘째, 저자는 역사를 만들어가는 세 요소에 주목한다. 역사를 만들어가는 요소이기 때문에 해석에 필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객관적 조건, 목적의식, 그리고 우연이 그것이다. 누구나, 어느 시대나 벗어날 수 없는 생물학적, 사회경제적 조건이 있다는 것. 그러나 또한 생각하고 고민하면서 가치 있는 삶을 지향한다는 것. 그런데 워낙 많은 조건들과 다양한 사람들의 욕구들이 부딪히면서 역사는 우연이라는 독특한 지점을 만들어낸다. ‘아, 그때 그랬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은 대부분 이 우연에 대한 감각이다. 몰론 우연은 ‘멋대로’라는 말과 전혀 다르다.
객관적 조건은 역사를 해석할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하지만 환원론의 우려가 있다. 우리 민족은 원래 냄비야, 반도 근성이 있어, 더운 나라 사람들은 게을러……, 이런 해석은 종족결정론, 환경결정론, 지리결정론의 사례이다. 목적의식만 강조하면 쉽게 관념론에 빠진다. 그 극단에 신이 있다.
오항녕 교수는 광해군 대의 해석에도 이 세 요소를 적용한다. 객관적 조건으로서의 시스템의 작동, 사람들의 비전과 욕망, 사건들의 우연성이 그것이다. 시스템의 작동은 그가 말하는 문치주의(경연, 사관, 언관), 재정(부세, 대동법), 그리고 대외관계를 통해 살핀다. 사람들의 욕망과 의지는 정치세력의 교체, 수차례의 옥사, 궁궐공사를 대상으로 검토한다. 그리고 어쩔 수 없는 죽음의 문제를 비롯해 우연이 빚어내는 서사를 들려준다.
“광해군 15년 ‘잃어버린 시간’이란 이런 때 쓰는 말이다”
《광해군, 그 위험한 거울》은 조선의 15대 임금 광해군과 그의 시대,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에 대한 진실이 담긴 이야기다. 이 책은 그 전모를 크게 3시기로 그려낸다. 1기는 즉위부터 1613년(광해군5) 계축옥사까지이다. 정치세력이나 정책 모두 선조 후반부터 다루는데, 이 시기는 북인 중심으로 정치세력이 형성되지만 서인, 남인들도 활발하게 활동하는 시기이다. 새로운 국왕은 즉위하자마자 1년여 동안 친형 임해군을 진도로 귀양 보냈다가 강화에서 죽였고, 아버지 선조의 유신에게 죽음을 내렸다. 불쾌하고 불길한 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희망이 있었다. 여러 사람이 민생과 재정 안정을 위해 대동법을 추진했고, 백성들은 지지했다. 왕실과 집권 북인은 이권을 지키기 위한 본심을 서서히 드러냈다. 대동법 추진자들은 하나둘 조정을 떠나든지 귀양을 갔다.
2기는 1613년부터 1617, 18년 무렵까지이다. 본격적으로 대북 정권이 독주하면서 타 정치세력을 배제하는 시기이다. 대동법은 물 건너갔고, 궁궐 짓는 망치소리만 들려온다. 광해군은 늘 궁궐에서 이상한 소리가 난다며 새 궁궐을 지으라고 한다. 경연은 문을 닫은 지 오래여서 위아래가 소통하지 않는다. 광해군은 경연 대신 죄인을 심문하는 추국청으로 나간다. 실록 편찬은 요원할뿐더러 기록도 부실하다. 영창대군을 죽이고 인목대비를 폐위한다. 이이첨을 위시한 신하들은 권력과 잇속만 챙기고, 광해군의 멘토 정인홍은 아집에 갇혀 있다. 침묵의 정치, 배제의 정치였다.
3기는 1617, 18년부터 계해반정까지이다. 드디어 불안한 정치 때문에 북인 세력 내에서도 이탈 현상이 나타나고, 이탈하지 않은 자들은 서로 싸운다. 윤선도는 이이첨을 비판하고, 허균은 동지 이이첨에게 죽임을 당한다. 관직도, 상벌도, 과거급제도 다 판다. 남은 것은 궁궐 공사이다. 후금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관심은 말뿐이다. 군량미도 궁궐 공사비로 쓴다. 심지어 심하 전투 이후, 전사자와 부상자 집안에 주라고 명나라 황제가 준 은 1만 냥조차 공사비로 쓴다. 이제 이 딱한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이 차츰 반정 뒤에 살아야 할 사람들에 대한 안쓰러움으로 바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