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2부
3부
4부
5부
에필로그
미주
옮긴이 해제
옮긴이 해제 미주
옮긴이의 말
랭스로 되돌아가다
디디에 에리봉
344p

푸코 평전 및 레비-스트로스와의 대담집 등을 펴내고, 성적 지배 체계와 소수자의 정체성 문제를 탐구해온 프랑스의 사회학자 디디에 에리봉의 회고록. 이 책은 동성애자이자 지식인으로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기 위해 노동자 계급 가족을 떠났던 저자가,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자신과 가족의 계급적 과거를 탐사해나가는 여정을 담고 있다. 에리봉은 스스로를 분석의 대상으로 삼아, 계급적 정체성과 성 정체성이 교차되고 갈등을 빚는 모습을 예리하게 파헤친다. 동성애자로서 스스로를 정체화했던 그는, 오랫동안 부정하고 멀어지고자 했음에도 불구하고 계급이라는 과거의 인장이 결코 지워지지 않은 채 남아 있으며, 그러한 부정의 과정이 현재의 그를 빚어낸 과정과 뗄 수 없이 맞물려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 책은 사회적 지배질서와 정상성의 메커니즘이 작동하는 방식과 그 영향 아래 개인의 주체성이 형성되는 과정을 훌륭하게 포착해내고, 교육의 재생산 효과와 프랑스 지성계의 뿌리 깊은 계급성을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으며, 지식 장을 넘어 일반 독자층에게도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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著者/訳者
レビュー
70+目次
出版社による書籍紹介
계급 정체성과 성 정체성은 어떻게 교차하는가?
게이로서, 지식인으로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기 위해
노동 계급 가족을 떠났던 한 사회학자의
극단까지 밀어붙인 자기 분석
“자전적 기록과 비판 이론의 걸작!”_노동계급연구회 저술상 선정평 중에서
“이 책이 지닌 놀라운 힘의 중심에 있는 것은 계급적·성적 수치심이 사회적 지배 체계의 유지에 끊임없는 동력을 제공한다는 점을 폭로하기 위해 에리봉이 자신의 삶을 이용하면서 보여주는 불굴의 정직성과 비상한 통찰력이다.”_조지 천시(역사학자)
푸코 평전 및 레비-스트로스와의 대담집 등을 펴내고, 성적 지배 체계와 소수자의 정체성 문제를 탐구해온 프랑스의 사회학자 디디에 에리봉의 회고록 『랭스로 되돌아가다』(2009)가 출간되었다. 이 책은 동성애자이자 지식인으로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기 위해 노동자 계급 가족을 떠났던 저자가,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자신과 가족의 계급적 과거를 탐사해나가는 여정을 담고 있다. 에리봉은 스스로를 분석의 대상으로 삼아, 계급적 정체성과 성 정체성이 교차되고 갈등을 빚는 모습을 예리하게 파헤친다. 동성애자로서 스스로를 정체화했던 그는, 오랫동안 부정하고 멀어지고자 했음에도 불구하고 계급이라는 과거의 인장이 결코 지워지지 않은 채 남아 있으며, 그러한 부정의 과정이 현재의 그를 빚어낸 과정과 뗄 수 없이 맞물려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 책은 사회적 지배질서와 정상성의 메커니즘이 작동하는 방식과 그 영향 아래 개인의 주체성이 형성되는 과정을 훌륭하게 포착해내고, 교육의 재생산 효과와 프랑스 지성계의 뿌리 깊은 계급성을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으며, 지식 장을 넘어 일반 독자층에게도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랭스로 되돌아가다』는 프랑스에서뿐만 아니라 영미권, 동유럽과 북유럽, 남미, 아시아 국가들에서 잇따라 번역되며 호평을 받았다. 특히 독일에서는 1년 만에 8만 부가 팔리며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 그러한 반향은 출판계를 넘어 예술계에까지 이르렀는데, 2014년에는 프랑스 연출가 로랑 아타가 이 책을 각색해 아비뇽 연극제에 올렸고, 2017년에는 ‘사회학적 연극’으로 유명한 연출가 토마스 오스터마이어가 공연 작품으로 만든 후 독일은 물론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에서 현재까지도 상연을 거듭하고 있다.
또한 에리봉은 2008년 예일대학 LGBT 연구위원회에서 수여하는 ‘브러드너 상’(주디스 버틀러, 이브 세즈윅, 조지 천시 등이 이 상을 받았다)을, 2019년 영미권 국제학회인 노동계급연구회가 수여하는 제이크 라이언 저술상을 받았다.
한편 자기 자신을 객관적인 분석의 재료로 삼아 일종의 ‘사회 분석’을 시도하는 이 책의 글쓰기 형식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몽테뉴에서 사회학자 부르디외, 소설가 아니 에르노에 이르기까지 ‘자기에 대한 쓰기’와 관련해 오랜 전통을 갖고 있는 프랑스에서, 에리봉의 이 책은 자기기술지/오토픽션에 대한 논의에서 중요하게 언급되는 작품으로 꼽히게 되었다. 또한 정상성 규범의 억압 속에서 자신만의 진실을 탐구하며 스스로를 재발명해나가는 소수자의 글쓰기 사례로서도 숙고할 만한 모범을 제시한다.
노동 계급의 탈주자와 게이로서의 자기 발명
이야기는 디디에 에리봉이 아버지의 죽음 이후, 스무 살에 떠나온 후 30년 동안 한 번도 돌아가지 않았던 고향 ‘랭스’(파리 교외)로 어머니를 방문하며 시작된다. 저자는 아버지가 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고도, 심지어는 아버지의 장례식이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도 찾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만큼 아버지에 대한 증오는 뿌리 깊은 것이었다. 아버지는 그 시대 노동자 계급의 화신과도 같은 인물로, 자신이 되고 싶지 않은 모든 것을 결합해놓은 것 같았다. 롤랑 바르트가 어머니의 죽음 후 깊은 절망에 빠져 그 절망이 그의 존재를 변화시킬 지경이었다고 기록했던 것과는 달리, 에리봉은 아버지의 죽음이 그다지 고통을 안겨주지 않았다고 이야기한다. 그보다는 일종의 혼돈을 불러왔는데, 이는 그동안 잊었다고 믿고 있었던 이미지들을 깨어나게 하여, 아버지를 그토록 미워하게 된 이유를 생각해보게 하고, 계급 분화와 사회적 요인들이 주체성 구성에 미치는 영향과 같은 질문들을 연이어 촉발시켰다.
이 책을 쓰기 전까지 에리봉은 가족과의 단절이 자신의 동성애 성향과, 아버지와 자신의 성장 환경 밑바탕에 깔려 있는 동성애 혐오에 의해 설명될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것을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사유하기 위한 틀로 설정해왔다. 그는 가족과의 단절이 출신 배경과의 계급적 단절이기도 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고 고백한다. 에리봉은 자신이 왜 그러한 선택을 하게 되었는지 질문하며, 자신의 주관적 경험을 재료 삼아 전체 사회 안에서 노동자 계급이 처한 상황과 그것이 재생산되는 구조를 그려낸다. 그리고 그러한 환경에서 성장한 노동자 계급의 자녀들은 어떠한 궤적을 따라 성장하게 되는지, 그 안에서 이중의 소외를 겪는 자신과 같은 동성애자에게는 어떠한 선택지가 주어져 있었는지 이야기한다. 에리봉은 자신이 사상적으로는 좌파임을 자임하면서도, 현실에서는 노동자 계급 가족을 외면하고 부끄러워했다고 말하는데, 이렇듯 스스로의 이중성을 분석하는 데 있어서나 동성애와 계급의 교차성 문제를 사고하는 데 있어서 에리봉은 뛰어난 통찰을 보여준다. 또한 프랑스의 신자유주의화와 제도권 좌파의 역사적 변질이 어떻게 노동 계급의 보수화와 외국인 배척, 그리고 극우 정당 지지로 이어지는지에 대해서도 설득력 있는 해석을 내놓는다.
“나 자신의 인류학자”가 되어…
: 사회 분석으로서의 자기 분석
『랭스로 되돌아가다』의 글쓰기 형식은 각별한 주목을 요한다. 에리봉은 자신이 이 책에서 시도한 글쓰기를 이후 ‘사회학적 자기 성찰’이라고 이름 붙인 바 있다. 그는 노스탤지어나 나르시시즘적인 자기 고백으로 빠져드는 통상적인 자서전의 서술 방식과는 철저히 거리를 두고, 사회적인 것이 개인적인 것을 어떻게 구성하는지 보여주는 자기 분석을 위해 개인적 경험의 서사를 이론과의 긴밀한 왕복 운동 속에 투입한다. 흥미롭고도 가슴 아픈 가족의 이야기를 마치 소설처럼 들려주다가, 이를 곧장 분석대에 올려놓고 해부의 칼을 들이대는 에리봉의 모습은 간혹 당황스러울 정도로 냉정하게 느껴지기도 하는데, 애초 그가 이 책을 이론서로 기획했다가 출판사의 반대로 가독성이 좋은 지금과 같은 형태로 구성해냈다는 뒷이야기를 생각하면 놀라운 일은 아니다. 에리봉은 자기 자신 역시 억압적 제도의 산물로서 사회와 여러 차원에서 존재론적으로 공모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자신이 그 계급을 떠나온 이상 이제는 외부자로서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자신을 구성하는 지배의 논리를 객관화하고 그것을 끊임없이 해체하려고 시도한다.
불가능한 귀환의 시도
“되돌아가다”라는 제목처럼, 오래전 자신이 부정하고 떠나온 그 자리로 다시 돌아가, 연구자로서 객관화와 거리두기를 실천하며 성공적으로 자기기술을 한다는 것은 어디까지 가능한 일일까. 에리봉은 다른 책에서, 어머니와 형제들이 『랭스로 되돌아가다』를 읽고 이 책이 가족의 진실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다고 불평했던 사실을 털어놓았다. 옮긴이가 이야기하듯, “어쩌면 귀환은, 아예 불가능하지는 않을지라도, 실패의 흔적들로서만 실현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 책이 거둔 성취는 무엇보다도 “예정된 실패를 구현하면서도 귀환의 (불)가능성에 끝까지 도전했다는 데 있을 것”이다.
디디에 에리봉의 이름은 부르디외, 푸코 연구자나 사회학을 공부하는 이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만, 그렇지 않은 독자들에게는 다소 낯설 수 있다. 이전의 에리봉의 저서들과 비교하면 상당히 쉽게 쓰여 있고, 일견 소설처럼 읽혀 관련 지식이 없는 독자들도 흥미롭게 접근할 수 있는 텍스트이지만, 이 책을 보다 깊이 이해하고 싶다면 이상길 교수의 「옮긴이 해제」를 읽어보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상길 교수는 이 책의



134340
4.5
부끄러움을 정면으로 들여다보아라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될 것들을 추려라 추린 것들이 너의 정체성이다
심지
4.0
아니 에르노의 <부끄러움>과 함께 읽으면 좋을듯
매드노인
4.0
(1) 이 책을 시작하기 전에 알아둬야 할 점 : 저자는 프랑스인, 노동자 계급 출신, 마르크스주의자, 게이, 철학/사회학자임(푸코 평전을 쓴 것으로 유명). (2) 독서 시작 전 위에 말한 특징들 중 ‘게이’라는 점이 가장 구미가 당겼는데(마르크스주의자―정확히 말하면 트로츠키주의자―인데 게이라는 점이 독특했기 때문에) 게이 얘기는 책의 가장 끝부분인 5부부터 나옴. 이에 대해 더 알고 싶으면 저자의 『게이 문제에 관한 성찰』이나 『소수자의 도덕』을 읽어보면 될 듯. (3) 자전적 에세이인 줄 알았는데 사회학을 곁들인 자아 분석서임. (사회학적 자기 성찰introspection sociologique/자기의 사회 분석서auto-socio-analyse.) (4) 프랑스 사상가, 문인과 정치인들에 대한 기본적 지식이 없으면 지루할 수 있음. 이 작자가 페이지마다 인용 파티를 벌이기 때문임. 그런데 각주를 전부 책 끝에 몰아 달아놔서 프랑스사 관련 지식이 제로라면 한 챕터를 읽는 데에 수십 번을 뒤적거려야 할 수도 있음. 번역이 어색하게 된 불어 단어들도 자주 출몰. (5) 읽다 보면 나 자신과 내 부모의 사회적(계급적) 과거를 자꾸만 반추하게 됨.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에리봉과 공통되는 부분이 많이 없어서 공감하기 힘들었음. 결국 저자의 인생을 관찰하듯 읽음. (6)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 몇 군데를 나열해 보자면, 1. 프랑스의 신자유주의화와 제도권 좌파의 역사적 변질이 어떻게 노동 계급의 보수화와 외국인(이민자) 배척, 그리고 극우 정당 지지로 이어지는지에 대한 부분(3부). 굉장히 설득력 있는 해석이었음. 또, 오늘날 한국 사회의 ‘서민들은 왜 문재인 정부에 등을 돌리는가’의 문제와 매우 닮아있어서 신기했음. 여타 리뷰들을 훑어보니 이 부분에 대해 나와 비슷한 감상을 한 사람들이 많더라. 2. 부르디외의 “구조의 평행이동translation”: 빈곤층이 시대적 변화와 개인의 노력으로 이전에 배제되었던 것들에 비로소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고 믿을 때(그들이 어느 위치에 접근하게 될 때)는 이미 그 위치가 체계의 이전 단계에서 갖고 있던 위상과 가치를 상실한 뒤이다(4부). 3. 정신분석학 비판 ∴ 객관적으로 『랭스로 되돌아가다』가 잘 쓰인 책인가 아닌가 누군가가 물어보면 이것은 잘 쓰인 회고록이 맞다.1/15/22
상맹
5.0
샹탈 자케의 계급횡단자들부터 아니 에르노의 부끄러움 그리고 에리봉의 랭스로 되돌아가다까지, 계급횡단자들의 사회학, 문학, 에스노그래피를 읽었다. 특히 이 책은 난생 처음 보는 형식이었다. 셀프에스노그래피라고 해야할까. 자신의 역사와 문학적인 서술과 사회학이 모두 결합되어있다. 그것보다 뭐랄까, 감사할따름이다. 자기 연민에 빠져있던 나의 삶이 보편화되고 언어화되고 의미화되면서 나의 역사가 가기 시작한다. 정신분석학적으로만 내 역사를 독해했을 때는 결국 부모에 대한 혐오로 끝났지만, 이 세 책을 읽으니 계급과 부모에 대한 이해로 끝이 났다. 우리의 가족사나 가난이나 지금의 정치성향들까지. 저 세권을 읽은 느낌은 저 유럽 프랑스에서 나와 비슷한 삶을 지낸 진정한 어른들에게 인생사를 듣는 느낌이었다. 인생 지도 교수님은 여기있었던 것인가. 과거의 이해에서 끝나지 않고 어떻게 살아가야할지도, 해방은 없다는 것도 모두 남김없이 들어서 살아갈 용기마저 생긴다. 그래도 상길쌤 번역해주셔서 감사해요! 계속 써보일 것이다. 나 자신의 인류학자로서 글이던 영화던 시던 가리지 않고, 내가 경험한 것들을 살아내기 위해 써보일 것이다. 수치심을 자긍심으로 만드는 부단한 수행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계속 읽고 보고 배울 것이다. 실향없는 실향 속에서 평생을 떠돌아다니겠지만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을 이해하고 우연한 호의들에 삶을 기대고 나도 베푸는 사람으로서 계속 써보이며 살아낼 것이다.
warmnatasha
3.5
우리의 과거는 여전히 우리의 현재다.
보영
4.0
'오랫동안 그곳은 내게 하나의 이름에 지나지 않았다.' 개거지 에술충 필독서
구본철
5.0
운명처럼 다가오는 책들이 있다. 저자가 선택한 단어, 그 배열들이 나를 위해서 쓰여진 것만 같다(5장 제외). 아버지...... 아버지......
무재
5.0
"졸부와 비체의 교차점에서 자기 자신을 긍정하는 주체로의 이행" 1. 졸부(猝富, Nouveau riche, new rich)는 한 세대 안에 부자가 된 자들을 뜻한다. 보통 부자가 되려면 몇 세대에 이르는 것이 전통적이다. 졸부는 원래 낮은 사회 계층에 속해 있었으나 금전적으로 막대한 양의 부를 짧은 시간 만에 획득하면서 사회적 계층이 이동하게 된다. 이렇게 갑자기 부자된 사람을 비꼬는 표현하는 단어로, 부를 이루었지만 부자들이 가진 아비투스가 결여된 부류의 사람들을 일컫기도 한다. 2. 비체(卑體, abject)는 특히 사회와 도덕의 차원에서 규범과 규칙으로부터 배제되고 분리된 상태를 의미한다. 이는 객체의 개념과 주체의 개념 사이 어딘가에 존재하며, 경계 공간에서 겨우 분리된 자아의 금기적 요소들을 나타낸다. "비체"라는 용어는 종종 사람이 혐오감이나 구역질을 느끼는 신체와 사물을 설명하는 데 사용되는 개념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보존하기 위해 이들을 배제한다. 이는 종종 여성, 미혼모, 소수 종교인, 성노동자, 수감자, 빈곤층과 장애인과 같은 주변화된 집단들의 상태를 설명하는 데 사용된다. 3. 에리봉은 소수자가 스스로를 (재)발명하기 위해서는 결국 사회질서가 만든 자신의 현재로부터 출발할 수밖에 없다고 역설한다. '비천한 소수자'라는 존재는 자기 변환의 재료인 동시에 작동인이 된다. 사회질서가 자신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자기 존재를 긍정하는 순간, 소수자에게는 모욕과 낙인을 계속해서 감수하지 않고 세계에 맞설 가능성이 열린다. 소수자가 사회적으로 생산된 정체성을 다시 정의하고 의미 부여하는 순간, 정체성은 이제 더 이상 동일하게 유지되지 않고 새롭게 변모하며, 다시 그것을 둘러싼 세계를 변화시킨다. 소수자는 일종의 '배반자'가 되어 그에게 할당된 자리와 부여된 역할을 배반하는데, 그 자리와 역할이 상이한 형태로 끊임없이 재생산되기에 배반 역시 끝없는 몸짓이 될 수밖에 없다. 이때 배반은 소수자가 자기 자신을 불가피하게 정체화하는 동시에 탈정체화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긴장을 함축한다. 소수자는 개인적이거나 집단적인 배반의 실천-가족으로부터의 독립, 대도시로의 이주, 학업과 직업의 선택, 친구 관계의 재편, 새로운 독서와 학습, 공동체와 하위 문화에의 참여 등-을 매개로 정체성을 재구성하고 자신을 변화시켜나갈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소수자가 낙인찍힌 비체에서 자기 자신을 긍정하는 존재로 이행하는 주체화 과정에 에리봉은 (주네와 푸코를 뒤따라) '수행'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수행을 통해 소수자는 자신의 감정과 욕망, 신체와 섹슈얼리티, 타자와의 관계를 기꺼이 감당하는 주체로서 자기를 변형시킨다. 그런데 수행이라는 말이 불러일으킬지 모를 오해와 달리, 그것은 금욕주의와 무관하며 때로는 성적 실천을 수반하고 다양한 쾌락을 산출한다. 모욕과 낙인을 재전유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재의미화하는 과정, 나아가 사회질서의 지배로부터 자신을 자유롭게 만드는 과정은 주체에게 새로운 기쁨과 즐거움을 가져다줄 수 있다. 비체화가 수행의 시발점이라면, 수행은 수치심을 자긍심으로 변환하는 계기이다. 주의할 점은 수행이라는 자기 실천이 그것으로써 우리가 극복하고자 한 온갖 부정성을 완전히 제거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모욕의 상처, 낙인의 혼적, 배제의 고통은 자유, 자율성, 자긍심 등 새로운 주체화의 요소들과 불안정하게 공존한다. 이런저런 상황에서 부정적 요소들은 언제나 표면 위로 다시 솟아날 수 있다. 다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비체들에게는 사실 수행을 통한 새로운 주체화 말고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다는 점 이다. 이 새로운 주체화는 근본적으로 규범화 권력과 정상성 이데올로기에 대한 거부, 나아가 저항을 함축할 것이다. 수치가 결국 명예의 손상 혹은 박탈과 관련된 정동이 라면, 동성애가 수치를 불러일으키는 이유는 그것이 '비정상'이므로 '명예롭지 못하다'는 관념과 무관하지 않을 터이기 때문이다. 즉, 무엇이 '정상'인지를 규정하고 위계화하는 권력과 지식의 공모 없이 수치의 정동은 생겨날 수 없다. 그렇다면 수치를 자긍심으로 변환하기 위해서는 규범화 권력과 정상성 이데올로기를 비판하고 기각하는 과정이 필수적일 것이다. 그것이 쉽지 않은 일임은 분명하다. '비정상인들'에게서 '인간'으로서의 명예를 빼앗고 '천민'의 위치로 내모는 비체화는 성적, 사회적 지배질서 내에서 담론과 제도, 실천을 통해 매일매일 일어나는 권력작용이며, 신체 속에 깊숙이 새겨지기 때문이다. 이는 주체화 역시 '언제나-다시' 이루어져야 하는 부단한 수행의 과정이자, 지난한 자기 발명의 여정일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 옮긴이(이상길)의 해체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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