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동기 미국을 바라보는 이방인의 신랄한 시선!
로맹 가리의 미국 체험이 고스란히 담긴 소설 『흰 개』 국내 초역
1968년 2월 17일 폭우가 쏟아지던 밤, 로맹 가리와 진 세버그의 숙소에 손님이 찾아든다. 산책을 나가 며칠이나 소식이 없던 누렁개 샌디가 친구를 데려온 것이다. 잘생기고 건장하며 친절하고 붙임성 좋은 이 회색 독일셰퍼드는 금세 로맹 가리 부부와 가족이 돼 사랑을 받지만, 가슴 깊이 불안함을 야기하는 미심쩍은 면이 하나 있었다. 바로 특정한 사람을 보면 본능적으로 달려들어 살점을 찢으려는 것. 그 사람들은 하나같이 피부색이 검었다.
1960년대 초, 미국 앨라배마 주에서는 날로 골칫거리가 되어가는 흑인들의 인권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급기야 흑인을 골라 물도록 특수 훈련한 경찰견을 풀기에 이르렀는데, 사람들은 이 개를 ‘흰 개’라 불렀다…….
밖으로는 10년 가까운 베트남전쟁으로, 안으로는 인종차별 철폐를 부르짖는 흑인들의 시위로 고초를 겪던 1960년대 말 격동기의 미국, 그 혼란한 자리에 프랑스 사람 로맹 가리가 있었다. 집단 내지 국가 단위로 강제되던 이념 싸움에서 한발 물러나 소수자의 신념을 유지하고, 인간에 대한 회의와 결코 저버릴 수 없는 인간애를 모순되게 품은 그에게 이 시절은 한 단어로 압축될 수 있었다. 광기.
이 책은 로맹 가리가 1960년대 미국에서 겪은 일들에 토대한 자전 소설이다. 흑인을 공격하도록 세뇌당한 ‘흰 개’를 원래의 심성으로 되돌리기 위해 흑인 동물조련사 키스를 찾게 되면서 겪는 인종 갈등, 부부 갈등, 이념 갈등 등 여러 인간 문제가 이 책의 주된 이야기다. 피부색과 이념에서 파생한 광기를 ‘태생적 소수자’로서 맞닥뜨린 주인공 로맹 가리의 고뇌가 냉소적이고 신랄하되 사색적인 어조로 담겼다. 1968년부터 1969년까지 2년간의 이야기를 다룬 이 책은 흑인과 백인, 개인과 집단, 남성과 여성,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등 각종 대립 구도로 사회 갈등이 한창 고조되었던 격변기 미국에 관한 생생한 현장 보고다.
『흰 개』는 인종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지만 흑인을 두둔하지도, 백인을 정당화하지도 않는다. 로맹 가리의 눈에 집단의 이념에 사로잡힌 인간은 늘 광기에 빠질 우려가 있었다. 로맹 가리는 이 책의 전면에 나서 인종주의를 고발하는 동시에, 당시 흑인 인권 운동에 앞장선 과격파 흑인 단체의 위선과 말론 브란도 등 스타급 인사들의 ‘숟가락 얹기’를 적나라하게 까발리고, 흑인 단체에 놀아나는 아내 진 세버그의 혼란과 자기모순을 비판적으로 어루만진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논리에 숨어 폭력성을 정당화하는 흑백 양 진영의 모순과 부조리를 이야기하는 이 책은 특히 아내와 ‘흰 개’의 심상을 교묘히 오버랩하여 가정의 위기를 사회 우화로 발전시키는 점이 눈에 띈다. 이를테면 로맹 가리와 진 세버그 부부의 미시사를 사회라는 거시사와 유기적으로 결합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42년 만의 국내 소개
우리 사회에도 여전히 유효한 화두
『흰 개』는 1968년 단편 형태로 미국 <라이프>지에 처음 선보여 주목을 받았다. 이후 장편소설로는 1970년 프랑스에서 먼저 출간되었고, 같은 해 로맹 가리가 직접 옮긴 영어판이 미국에서 출간돼 곧장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국내에는 이번에 처음 번역되는 것으로, 첫 출간 후 42년 만에야 소개되지만 ‘적대적 공생’ ‘정치적 올바름’ 등 우리 사회에도 여전히 유효한 고민을 묵직하게 제시한다. 그의 여느 소설처럼 이 작품에서도 로맹 가리는 자기 경험을 천착하지만, 자신에서 사회로, 그리고 인류로 시야를 본격 확장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이에 미국의 저명한 월간지 <하퍼스 매거진>은 “자신의 시대에 전설로 남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로맹 가리는 자신이 원숙해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라고 호평했다.
이 작품은 1982년 새뮤얼 풀러 감독이 연출을 맡아 동명의 영화(우리 제목 <마견>)로도 만들어졌는데, 원래는 로맹 가리 생전인 1970년대 후반 로만 폴란스키 감독이 연출할 예정이었으나 그가 법정 성폭행 혐의로 촬영 전 미국 밖으로 도피하는 바람에, 결국 1979년 진 세버그가 죽은 채 발견되고 1980년 로맹 가리가 권총 자살한 이후에야 제작이 완료됐다.
“진 세버그의 성전(聖戰)에 관한 이야기”
‘흰 개’의 이야기는 크게 하나의 줄기를 따른다. ‘흰 개’를 입양하고, 그 개가 ‘인종차별견’임을 깨닫고, 재훈련하기로 마음먹고, 결국 교화하지만 이번엔 다른 이념의 희생양으로 안타깝게 떠나보내는 것. 이 소설의 중심엔 언제나 ‘흰 개’가 있다. 그런데 ‘흰 개’를 보노라면 그 못지않게 가련한 어느 한 사람의 모습이 은유되었음을 짐작하게 된다. 바로 로맹 가리의 아내 진 세버그다. 하얀 피부로 흑인의 인권 운동을 지원하는 그녀는 백인의 멸시와 흑인의 농간에 휘둘리면서도 순수한 선의를 끝내 놓지 못하는, 안타까우면서 갑갑한 여인이다.
“미스 세버그, 당신에게 해가 될 수 있는 편지 한 통을 가지고 있어요. 당신이 파리의 아프리카 출신 학생들에게 혁명적 구원의 메시지를 전하는 내용이 담긴 편지죠. 거기엔 ‘블랙팬서’의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의 이름까지 적혀 있어요. 우리가 이걸 출간하면 미국에서 당신의 배우 경력은……”
진은 대답했다.
“출간하세요.”
그런 뒤 그녀는 얼마간 울었다. 미스 세버그는 아직도 실망을 할 수 있는 나이였다.
나는 그녀가 할당액 수표에 서명을 하기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말해 거실이 비길 기다렸다가 자러 갔다.
- 45쪽에서
이 소설에서 진 세버그의 모습은 원래 회색이면서 ‘흰 개’로 불려야만 하는 그 개의 모습과 겹친다. 둘은 커다란 갈등의 희생양이라는 점에서 같다.
로맹 가리는 이 점이 탐탁지 않았다. 피부색은 사람의 성질을 대변하지 못하니 본질을 봐야 한다고, 더는 집단의 농간에 놀아나지 말라고 자신의 말로, 그리고 남의 입을 빌려 종용한다.
악한 진영에도 있듯이 이 ‘착한 진영’에도 상황을 이용하는 자들과 개자식들이 있다는 걸 내가 알기 때문이다.
- 44쪽에서
“흑인 개자식은 흑인이기 때문에 개자식이 아니라, 개자식이기 때문에 개자식인 거야.”
- 176쪽에서
결국 뜻이 달랐던 로맹 가리와 진 세버그는 1968년 가을 이혼한다. 소설과 현실 모두에서 벌어진 일이다. 이 부부의 이혼 사유를 오롯이 인종 문제에 관한 견해 차이로 돌릴 수는 없겠지만, 한 권의 소설이 나올 만큼 중대한 일이기는 했다. 인종 문제는 사회적으로도 중대했지만 부부에게도 중대했다. 개인사와 사회사, 그러니까 미시사와 거시사가 연결되는 건 이 지점이다.
물론 둘의 관계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두 사람에게는 이혼으로는 끝나지 않을, 애증과 연민으로 결속된 고리가 있었다. 『흰 개』가 출간된 1970년, <뉴욕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로맹 가리는 이렇게 말했다. “이혼이 우릴 갈라놓기엔 우린 매우 가깝습니다.” 그러나 같은 인터뷰에서 그는 또 이렇게 말했다. “그처럼 전형적인 미국 이상주의자는 본 적이 없습니다. 이를테면 호구라는 얘기죠.” 로맹 가리의 진심은 무엇일까.
그렇게 세월이 흘러 1979년, 진 세버그는 파리 외곽에서 죽은 채 발견됐다. 보수적인 시절에 흑인 운동 등 진보적 발자취를 이유로 FBI의 감시와 대중의 뭇매를 맞던 터였다. <워싱턴 포스트> 기사에 따르면 진 세버그가 죽은 뒤 로맹 가리는 이 소설을 이렇게 회고했다고 한다. “진 세버그의 성전聖戰에 관한 이야기다.” 『흰 개』가 한 작가의 삶에서, 부부라는 한 운명 공동체의 삶에서 어떤 의미일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백인과 흑인, 인간의 자리를 모색하다
『흰 개』는 로맹 가리 자신이 주인공인 자전 소설이다. 즉, 실제 경험한 것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어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