出版社による書籍紹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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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킨스는 왜 영국 역사에 주목했을까? 《찰스 디킨스의 영국사 산책》의 원제는 재미있게도 ‘A History of England’가 아니라 ‘A Child’s History of England’다. 실제로 이 책은 20세기 말까지 영국의 초등 교과 과정에 포함되어 있었다고 한다. 디킨스가 이 책을 집필하게 된 동기를 이해하려면 당시 영국의 시대 상황을 살펴보아야 한다. 1800년대의 잉글랜드는 역사상 전무후무한 제국을 이룩한 빅토리아 여왕의 시대였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고 불릴 정도로 강성한 나라로 성장했지만, 그 이면에는 가난과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었다. 아이들의 삶은 더욱 비참했다. 집이 없는 아이들은 거리에서 잠을 자야 했고, 탄광에서 힘든 노동을 하거나 공장 굴뚝을 청소해야 했다. 1830년대 런던에서 치러지는 장례식의 절반이 열 살 이하 어린이들이었다고 하니 그 비참함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디킨스는 이런 모순 속에서 고통받는 어린이들에 주목했다. “아이들이 행복하게 읽을 수 있는 책,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역사책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이 책을 썼다”는 디킨스는 영국이라는 나라가 어떻게 성립되어 어떤 우여곡절을 거치며 오늘에 이르렀는지 여러 왕을 중심으로 연대기 순으로 풀어냄으로써 누구라도 쉽게 영국 역사의 흐름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게 했다. 책 속에 등장하는 인물은 왕을 비롯한 통치자들뿐만이 아니다. 때로는 열렬한 지지를 보내고, 때로는 냉혹한 비난과 감시의 시선을 보내면서 함께 역사를 일구어온 수많은 민중의 삶과 그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이 책 전체에 깔려 있다. 이 책은 역사를 만드는 것은 일부의 사람들만이 아님을, 과거의 역사를 통해 바른 역사관을 가져야만 앞으로의 역사를 올바르게 만들어갈 수 있음을 보여준다. 비단 어린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으며 영국 역사서의 한 획을 그을 수 있었던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찰스 디킨스의 눈으로 바라본 영국의 역사를 만난다 이 책은 기존 역사서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장점이 있다. 디킨스는 특정 시대나 왕조를 집중적으로 조명하기보다는 숲을 보듯 영국 역사를 조망할 수 있도록 내용을 전개해나가되 역사적인 사실을 단순히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그동안 선보였던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이 책에는 모순된 사회에 대한 통렬한 비판 정신과 가난하고 억압받는 이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 그리고 민중 중심의 역사관이 깊이 스며 있다. 그는 책 곳곳에서 형편없는 왕이나 귀족들에 대해 통렬한 비판을 가하고, 신랄한 풍자와 재치 있는 위트로 꼬집는다. “왕자로 태어나지 않았다면 아마 좀 더 훌륭한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세상에 나가 그렇게 피를 많이 보지도 않았을 것이고, 그 탓에 인생을 망치지도 않았을 것이다.” - 제13장_리처드 1세와 십자군 전쟁 “자명한 사실은 헨리 8세가 도저히 참아줄 수 없는 악당이었고, 인간 본성에 먹칠을 했으며, 잉글랜드 역사에 튄 피와 기름덩어리 같은 존재였다는 점이다.” - 제26장_스캔들 메이커 헨리 8세 “그녀는 ‘피의 여왕 메리’답게 잉글랜드에서 공포와 혐오의 대명사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메리 1세에 대한 기억이 얼마나 혐오 일색이었던지 훗날 일부러 그녀를 일컬어 대체로 상냥하고 쾌활한 군주였다고 쓰는 작가들이 나올 정도였다.” - 제28장_난폭한 군주, 메리 1세 또한 디킨스는 왕들을 중심으로 연대순으로 영국 역사를 정리하면서 그만의 독특한 ‘군주론’을 펼친다. 그는 우리에게 일반적으로 알려진 사실과는 조금은 다른 자신만의 견해를 보이는데, 예컨대, 철혈군주이자 ‘사자의 심장을 가진 왕’으로 칭송받는 리처드 1세의 경우가 그렇다. 디킨스의 관점에서 보면 리처드 1세는 위대한 군주라기보다는 ‘살인마’나 ‘사이코패스’에 더 가깝다. 실제로 그는 수많은 유대인을 학살했을 뿐 아니라 순전히 재미를 위해 살인을 서슴지 않았을 정도로 잔인한 왕이었다. 엘리자베스 1세에 대한 해석도 흥미롭다. 그녀는 세상에 알려진 것처럼 위대한 여왕이 아니라 자신이 왕으로 군림하던 시대에 운 좋게도 윌리엄 셰익스피어, 프랜시스 베이컨, 에드먼드 스펜서, 프랜시스 드레이크 제독 같은 위대한 인물이 많이 배출되어 명성이 높아진 측면이 강하다. 그렇다면 디킨스는 어떤 왕을 ‘좋은 왕’으로 평가할까? 2천 년 영국 역사를 통틀어 그가 훌륭한 군주로 꼽는 인물은 디킨스와 동시대 인물인 빅토리아 여왕을 제외하면 색슨족의 앨프레드 대왕과 걸출한 의회파 영웅 올리버 크롬웰 정도이다. 앨프레드 대왕은 거의 흠을 찾기 어려울 만큼 완벽에 가까운 왕이자 백성들이 가장 사랑하는 군주였으며, 올리버 크롬웰은 말년에 왕위에 욕심을 부린 것 정도를 제외하면 빅토리아 여왕 못지않게 잉글랜드를 명실상부한 강대국이자 전 세계에 존경받는 국가로 만든 위대한 리더였다. 대문호와 산책하듯 재미있게 읽는 영국, 영국인, 영국 역사 이야기 이 책은 650여 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고 쉽게 읽힌다. 초등학생이 읽어도 좋을 만큼 쉽게 쓰여 있을 뿐 아니라 흥미롭게 글을 풀어가는 디킨스만의 전개 방식 덕에 한 페이지 한 페이지가 어떻게 넘어가는지도 모를 만큼 흥미진진하고 박진감 넘친다. 영국인들이 흠모하는 위대한 군주 앨프레드 대왕이 목동의 아내에게 조롱을 당하게 된 사연, 왕실 연회장에서 일개 강도의 손에 살해당한 에드먼드 1세의 비극, 죽은 뒤 시신이 세 번이나 버려지고 방치된 윌리엄 1세의 기막힌 사연, 한심한 왕 찰스 1세를 칭송한 책이 1만 2천 권이나 출간된 아이러니한 역사에 이르기까지,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책 곳곳에 등장하여 독자들의 흥미를 끈다. 그런가 하면 반역죄로 체포되거나 구교와 신교 간에 벌어지는 종교전쟁으로 포로가 되어 말로 표현하기도 어려울 만큼 처참한 방법으로 처형당하는 장면이나, 모진 억압과 착취에 견디다 못한 백성들의 반란과 이를 억압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참상, 그리고 형제자매나 친인척 사이에서 벌어지는 왕위 찬탈 음모와 귀족들의 배반 등의 사건은 당시 영국의 시대 상황과 백성들의 고통을 그대로 느끼게 한다. 이 책을 통해 잉글랜드라는 나라가 어떻게 성립되었고, 어떤 과정을 거치며 성장하고 발전해 오늘에 이르렀는지, 또 왜 초강대국이 되었음에도 부익부빈익빈의 현상과 불평등은 사라지지 않는지 등을 입체적으로 보여주고, 독자들이 바른 역사관과 통찰력을 갖게 해주고자 했던 디킨스의 바람은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말했던 E. H. 카의 이야기처럼 오늘날에도 여전히 반복되는 역사의 비극을 타산지석 삼는 데 이 책이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