出版社による書籍紹介

出版社による書籍紹介

1945년 그때, 조선에서 패전을 맞은 일본인들의 뒷모습을 추적하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선정한 우수저작, 역사비평사가 펴낸 역사 논픽션 식민지, 정치 예속, 경제적 침략과 수탈… 1910년 한일병합과 동시에 시작된 일제 35년간을 특징짓는 핵심 키워드들이다. 우리는 한일 양 민족의 지배와 피지배 관계로 시작된 불편한 만남과 그 이후, 즉 식민지 시기에 대해서는 많은 책들과 다큐멘터리를 통해 어느 정도 실상을 알고 있다. 또한 (아주 당연하지만) 해방을 맞은 조선의 다양한 표정과 조선인들의 신국가 건설 노력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1945년 조선의 해방(일본으로서는 ‘패전’)을 계기로 일본인들이 한반도를 떠나가는 과정과 그 모습에 주목한 책은 찾아보기 힘들다. 조선에서 패전을 맞은 일본인들은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식민자로 조선에 왔으니, 패전을 맞아 모국 본토로 아무 문제 없이 그냥 돌아갔을까? 이 책은 1945년 조선에서 패전을 맞은 일본인들의 뒷모습을 추적한 역사 논픽션이다. 일본인들의 회고를 통해 에피소드로 엮어나간 이야기 속에는 조선총독부 최고위 관료부터 시작하여 독립운동가를 고문한 경찰, 일본인 갑부, 조선 태생의 일본인, 교사 등이 1945년 조선에서 어떻게 패전을 맞았는지, 조선에 남긴 폐긴 폐해는 무엇이며, 일본으로 어떻게 돌아갔는지, 그리고 돌아간 일본에서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가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오랜 한일관계사 속에서 식민지 조선으로부터 일본으로 돌아간 일본인들은 과연 어떠한 집단이었을까? 그들이 한반도를 떠나가면서 남긴 흔적은 한일 양국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이 책이 던지는 물음이다. 1945년 조선은 해방을 맞이했지만, 일본인들에게 그것은 일찍이 겪어보지 못한 생경한 공포요, 끔찍한 재앙이었다 1945년 8월 16일부터 23일까지 약 1주일 동안 조선 전역에서 중앙에 보고된 ‘불상사건不祥事件’은 총 913건이었다. 사건 내역을 살펴보면 조선인이 집단으로 습격한 곳은 주로 경찰관서, 지방행정기관, 신사였다. 또한 개인을 상대로 한 살상과 폭행 사건은 약 267건이 보고되었는데, 주된 표적은 경찰관, 학교 교원, 행정기관의 공무원, 그리고 그 가족들이었다. (…) 패전 후 벌어진 이 같은 사태에 당황한 총독부는 8월 18일 각 기관에 걸어둔 천황 사진을 불태울 것을 지시하는 한편, 각 지역 신사에 신속히 연락해 신령이 불경한 일을 당하지 않도록 위패를 불태우는 승신식昇神式을 거행하라고 했다. 일본 식민 지배의 상징인 천황 사진은 말할 것도 없고, 거류민에게 온갖 재앙을 막아주는 액막이로서 정서적 안정감을 안겨준 일상의 공간이자 일본 문화의 구현체였던 신사가 ‘불경’하기 그지없는 조선인들에 의해 파괴되는 것을 차마 두 손 놓고 지켜볼 수 없었던 것이다. 일본인들은 사건의 경중과 다과를 떠나 이러한 초유의 사태를 경험하며 집단적 공포에 시달렸다. ―본문 25~26쪽 천황의 항복 선언 직후 조선 각지에서는 조선인들의 집단행동이 표출되었다. 일제 식민 지배하에서 고통받고 신음하다가 해방을 맞아 그동안 봉인되었던 해묵은 감정을 토해낸 것이다. 집단적 공포와 공황 상태에 빠져든 일본인들은 저마다 제 살 길을 찾느라 여념이 없었다. 이들은 통장과 도장을 들고 은행 창구로 몰려가고, 귀환에 앞서 가재도구를 팔기에 바빴다. 한 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비상시국에서 조선총독부는 무능했고,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하는 관이 자신들을 지켜주지 못한다고 생각했기에 이들은 ‘돈’을 더 믿을 수밖에 없었다. 당시 일본 정부는 식민지의 일본인들이 본토로 한꺼번에 쇄도하여 사회 혼란이 일어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에 총독부로 하여금 가급적 조선의 일본인들을 현지에 머무르게 하라고 지시했다. 조선의 치안 유지를 감당할 힘도 없고, 일본 정부의 지시를 따르지 않을 수도 없으며, 점령군에게 일본인의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 교섭도 벌여야 한 데다, 하루라도 빨리 귀환하려는 일본인들의 요청을 계속 무시할 수도 없는 조선총독부는 그야말로 사면초가에 처했다. 각기 다른 처지에 놓인 남쪽과 북쪽의 일본인들 집단 송환과 밀항, 그리고 억류·압송·탈출 조선에서 태어나고 자랐거나 조선 땅에서 오랫동안 뿌리박고 살아온 일본인들은 조선을 자신의 ‘고향’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패전으로 인해 왜 자신들이 ‘낯선’ 땅 일본으로 돌아가야 하는지 이유를 모르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조선을 떠난다는 것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잔류파와 귀환파의 갈등이 크게 불거지기도 했다. 하지만 조선인들의 거센 추방 압력과 미군정의 송환 행정에 따라 조선에 남아 계속 살고자 했던 일본인들도 결국은 본토 일본으로 돌아가야 했다. 이제 그들의 고민거리는 어떻게 일본으로 더 많은 재산을 갖고 가느냐였다. 1945년 12월 부산을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이 발생했다. 수십 년 동안 부산에서 ‘3거두巨頭’ 혹은 ‘4거두’ 소리를 듣던 일본인 유력자 중의 한 사람이 옹색하게도 자전거 튜브에 주식·채권·보험증서 등을 숨겨 일본으로 밀항을 시도하다가 해안경찰에 체포된 것이다. ―본문 88~89쪽 38도선 이남을 점령한 미군정은 처음에는 송환행정을 제대로 운영하지 못하다가 점증하는 조선인의 요구를 제한적으로 반영하면서, 송환하는 일본인들의 소지금을 1인당 1,000엔, 화물은 두 손에 들 수 있는 짐으로 제한했다. 한 푼이라도 더 많은 재산을 들고 가려 한 일본인들은 공식 송환선이 아닌 밀항선, 일명 도둑배에 오르기 위해 온갖 수단을 이용했고, 미 군정에 각종 로비 행각을 벌였다. 그 과정에서 조선인 브로커와 결탁한 갖가지 폐해가 성행했다. 한편 소련 점령지의 북한 내 일본인들은 바로 송환되지 못했다. 특히 식민 통치와 직결된 남성의 경우 점령군이나 새롭게 들어선 현지 정권에 의해 투옥·압송·억류되었다. 게다가 각종 공출과 곧 이어 시작된 재산 몰수에 따른 집단 공동생활은 남한의 일본인에 비해 훨씬 열악한 거류와 귀환 환경을 초래했다. 남성들이 시베리아 등지의 타지로 끌려가거나 압송된 상황에서 남겨진 부녀자와 노약자들은 가족과 떨어져 피난하고 탈출해야 했기에 ‘국가 부재’와 ‘가장 부재’를 더 뼈저리게 실감해야 했다. 모국에서도 환영받지 못한 귀환자, 그러나 마침내 전쟁 피해자로 공인받다 ‘전쟁 피해자’에 담긴 정치적 수사 저자 이연식은 이 책에서 자신의 생각과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다. 1945년 시점에서 조선의 일본인들이 패전을 어떻게 바라보고 대응해 나갔는지, 본토 귀환을 앞둔 일본인들의 표정과 마지막 뒷모습을 그들 자신의 입을 통해 서술하고 있다. 당시의 현장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한 묘사와 마치 르포 같은 서술로 엮어내고 있다. 또한 당시 신문기사의 내용도 꼼꼼하게 챙겨 복잡다단한 사회상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식민기구의 최상층을 차지하는 정치인보다는 오히려 평범한 갑남을녀의 일본인들이 실제 맞닥뜨린 패전의 공포와 어떡하든 자신의 재산을 지키고자 좌고우면하는 모습이 적나라하다. 그뿐 아니라 남쪽과 북쪽에서 각기 미군정과 소군정이 자신의 편의와 이익을 앞세우며 처리하는 행정 체계, 그리고 귀환하는 일본인들과 결탁하여 온갖 부정을 저지르는 조선인 브로커의 모습도 실감난다. 이 때문에 논픽션으로서 이 책의 특징이 더욱 잘 드러나고 있다. 그렇다고 저자가 자신의 견해를 아주 숨기는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패전 후 일본인들이 경험한 이 생경한 불안과 공포는 곧 조선인에 대해 굳이 관심을 두지 않아도 일상을 영위할 수 있었던 특권의 대가였다. 지난 역사에 대한 망각과 무지가 곧 불안과 공포의 원인이었던 것이다”라거나 “조선인에게 일본인의 마지막 모습은 그들이 처음 이 땅에 발을 디딜 때와 마찬가지로 살상과 파괴로 점철되었다”와 같이 패전과 귀환 국면의 일본인들의 모습을 그들의 회고록 등을 통해 그려내면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