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거인

프랑수아 플라스 · 小説/キッズ
8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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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꿈꾸던 아홉 명의 아름다운 거인과 명예욕에 눈이 멀어 버린 못난 남자, 이것이 우리 이야기의 전부입니다.” 가슴 아픈 고백으로 끝나는 《마지막 거인》은 거인들의 나라를 찾아 떠난 영국 지리학자의 여행기다. 1992년 프랑스에서 처음 출간되었을 때부터 평단의 주목을 받은 이 소설은 14개국에서 번역 출간되었고, 프랑스 유수의 어린이 문학상뿐 아니라 독일, 미국, 벨기에 등지에서도 여러 상을 받을 정도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디자인하우스는 2002년에 출간된 한국어판이 꾸준한 사랑을 받아 15만 부 판매를 기록한 것을 기념해 새로운 표지를 입히고 오소희 작가의 추천 글을 더한 특별판을 선보인다. 1849년 어느 날, 아치볼드 레오폴드 루스모어는 런던의 부둣가를 산책하다가 늙은 뱃사람이 진짜 ‘거인의 이’라고 주장하는 물건에 호기심을 느껴 사들인다. 그 물건을 오래 연구한 끝에 거인족의 나라가 그려진 지도를 발견한 그는 거인들을 찾아 미얀마로 떠난다. 긴 강을 거슬러 오르는 본격적인 탐험이 시작된 후 험난한 지형과 극한의 환경 속에서도 꺾이지 않았던 의지는 원주민이 탐험대원을 전부 학살하는 끔찍한 시련을 겪은 후 위축된다. 추위와 허기, 피로와 싸우며 생존을 위해 나아가던 중 우연히 거인의 발자국을 발견하고 거인의 나라에 입성한다. 그러나 세기의 발견으로 되찾은 활기도 오래지 않아 사그라진다. 극도로 쇠약해진 탓에 계곡에 쓰러진 그를 구한 것은 거인들이었다. 루스모어는 아홉 명의 거인들과 생활하며 거인들의 생김새부터 의식주, 의사소통 방식, 습속 등을 세세히 관찰하며 기록한다. 약 1년이 흐르자 향수를 느낀 그는 깊은 교류와 우정을 나누던 친구들과 이별하고 고향으로 돌아간다. 몇 년 동안 거인들에 관한 백과사전 편찬에 몰두해 마침내 1858년 책을 펴내고, 수많은 논란 끝에 학자로서 엄청난 성공을 거둔다. 두 번째 탐험을 위한 자금이 마련되자 또다시 미얀마 땅을 밟지만, 그곳에서 목격한 것은 친구인 거인의 죽음이었다. 자신의 이기심으로 거인들이 멸망한 사실을 알게 된 그는 모든 것을 뒤로 한 채 고기잡이배 선원이 되어 세상을 떠돈다. 이상한 조각을 손에 넣은 시점부터 삶이 완전히 뒤바뀌기까지 약 10년간의 궤적을 들려주는 회고록 형식의 이 소설은 독창적인 이야기와 더불어 작가의 아름다운 수채화가 어우러져 감동과 여운, 읽는 재미를 배가한다. 미지의 땅, 유물, 지도, 모험, 역경, 비밀, 발견, 영웅, 탐욕, 재앙 등의 전개에 따라 상세히 묘사되는 그림은 때로는 장면의 분위기를 극대화하고 때로는 미지의 세계를 생생하게 구현한다. 또한 이야기는 깊숙이 들여다볼수록 생각할 거리를 더 많이 보여 준다. 루스모어의 직업과 배경을 통해 19세기 개척의 시대를 어림짐작할 수 있고, 탐험 경로를 통해 미얀마부터 티베트고원, 러시아에 이르기까지 지리적 정보를 파악해 볼 수 있다. 무엇보다 결말이 주는 교훈은 과거 개척자들의 노력과 과오를 되짚게 하는 동시에 인류 발전에 따른 환경 파괴를 깊이 생각하게끔 한다. 신화와 현실, 전통과 문명, 과거와 미래를 자연스럽게 연결한 이 작품을 읽다 보면 삶과 인간, 자연과 우주에 관한 생각에 가닿게 될 것이다.

著者/訳者

出版社による書籍紹介

스스로 자기 집을 부수고 있는 인간들에게 이 책을 읽는 동안 내내 제 가슴속에는 커다란 박하사탕 하나가 녹고 있었습니다. 미지의 세계를 향한 경이로움이 화사하게 제 가슴을 메워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한순간에 그 시리도록 아름다운 꿈이 아픔으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침묵을 지킬 수는 없었니?”라고 묻는 안탈라의 애절한 목소리가 제 귀에도 들리는 듯했습니다. 저 역시 자연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종종 이런 번민에 빠집니다. 자연의 비밀을 캐내어 세상에 알리는 것이 제 직업이지만 때론 그냥 숨겨 주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예전에 학생들과 함께 지리산 자락에서 자연 탐사를 하던 중 이제는 이 짓밟힌 땅에서 참으로 보기 어려운 반딧불이를 발견했습니다. 짙은 군청색 밤하늘을 배경으로 눈부신 초록빛을 발하는 그 작은 곤충이 너무도 사랑스러워 우린 밤이 이슥하도록 하늘만 바라보았습니다. 40~50년 전만 해도 웬만한 시골이면 밤마다 그리 어렵지 않게 반딧불이들을 손 안 가득 쥘 수 있었지만, 요즘엔 어디 반딧불이가 나타났다고 하면 우선 신문에 납니다. 그러고 나면 그곳에 온 세상 사람들이 다 모여 축제를 하며 야단법석을 떨게 되죠. 그 통에 반딧불이들은 점점 더 살 곳을 잃어 가는 줄 아는지 모르는지. 그날 밤 우리는 늦도록 그 주변 산야를 뒤졌지만 기껏해야 서너 마리 정도를 찾았을 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냥 우리만 알고 있고 세상엔 알리지 않기로 했습니다. 학문적인 기록에는 작은 구멍이 날지 모르지만 이렇게라도 자연을 가끔 숨겨 줘야 할 것 같았습니다. 2000년대 초반 우리나라에 ‘호사도요’라는 매우 흥미로운 새가 무려 100여 년 만에 처음으로 그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새들은 거의 예외 없이 암수 한 쌍이 함께 자식을 키우는 완벽한 일부일처제를 유지하며 삽니다. 그런데 이 호사도요는 신기하게도 일처다부제를 따릅니다. 한 암컷이 여러 수컷을 거느리고 산다는 말입니다. 대개 암컷이 수컷보다 훨씬 화려하고 몸집도 더 큽니다. 암컷들끼리 서로 세력 다툼을 벌여 제가끔 자기 영역들을 차지하면 수컷들이 그 안에 들어와 둥지를 틉니다. 암컷은 자기 터 안에 들어온 수컷들과 차례로 짝짓기를 한 뒤 둥지마다 알을 몇 개씩 낳아 줍니다. 그러면 수컷들이 둥지에 올라앉아 알을 품지요. 이 같은 일처다부제는 인간의 경우는 말할 나위도 없거니와 새들의 세계에서도 매우 드문 일입니다. 아니 이런 귀한 새가 우리 산하에 살고 있었다니 정말 반가웠습니다. 하지만 기쁨은 잠깐이었습니다. 그런 호사도요를 발견했다며 현장에서 찍은 사진과 함께 서식 장소가 충청남도 무슨 무슨 군이라고 밝혀 놓은 대문짝만한 기사를 읽으며 나는 그만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습니다. 이제 곧 사람들이 벌 떼처럼 몰려갈 텐데. 일부러 해치지는 않더라도 그들을 보겠다고 사람들이 몰려가면 그들은 더 이상 그곳에서 살기 어려울 텐데. 답답한 나머지 그 신문사에 전화해서 기사를 쓴 기자를 찾았습니다. 저의 성급한 나무람에, 그는 그럴까 봐 엉뚱한 지역의 이름을 적었노라고 조용히 귀띔해 주었습니다. 반딧불이를 숨긴 제가 학자의 양심을 어겼듯이 그도 기자의 양심을 어긴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때 그 기자가 너무나 고마웠습니다. 자연에게 길은 곧 죽음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검푸른 열대 곳곳에 휑하니 길을 뚫고 있습니다. 그 길을 따라 깊은 숲속에서 수백 년 동안 행복하게 잘 살던 거대한 나무들이 실려 나옵니다. 나무들이 사라진 벌거벗은 대지에는 더 이상 동물들이 살지 못합니다. 길은 우리 인간이 자연의 가슴에 내리꽂는 비수입니다. 이 같은 비수는 열대에만 꽂히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무들에만 꽂히는 것도 아닙니다. 울산광역시 울주구 태화강 상류에는 세계적으로도 유래를 찾기 어려운 암각화가 새겨져 있는 큰 암벽들이 있습니다. 마치 이 책에 나오는 거인들의 문신처럼 그 암벽에는 옛날 선사시대에 살았던 온갖 동물들의 모습이 새겨져 있습니다. 우리의 ‘영혼을 오성의 한계 너머로’ 안내할 그 ‘한없이 섬세한 천상의 음악’이 새겨져 있는 곳입니다. 그런 곳을 울산광역시는 대대적인 관광지로 개발했습니다. 많은 관광객이 편안하게 그곳까지 들어올 수 있도록 진입 협곡을 뚫어 넓은 길을 닦고 대규모 주차 시설과 박물관을 지었습니다. 죽음의 길을 뚫는 김에 아예 관도 실어 나를 수 있도록 시원스레 뚫을 작정이었나 봅니다. 막대한 비용을 들여 그 아름다운 영혼들에게 한꺼번에 거대한 사약 사발을 내렸습니다. 그 고대의 영혼들을 처음으로 발견하여 세상에 알렸던 고고학자는 통한의 눈물을 쏟았습니다. 주인공은 자신을 가리켜 ‘한심한 지리학자’라 했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 지도와 함께 살았습니다. 아버지께서 어느 날 무척 커다란 세계 지도를 한 장 가져오셔서 제 방 천장에 붙여 주셨습니다. 그날부터 저는 동생과 함께 매일 밤, 불을 끄기 전에는 어김없이 지명 찾기 내기를 하곤 했습니다. 그렇게 몇 년을 하고 나니까 제 머릿속에는 불을 꺼도 그 세계 지도의 구석구석이 고스란히 남아 있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저는 생물학자가 되지 않았다면 지금쯤 지리학자가 되어 있을 겁니다. 아니면 탐험가가 되어 있거나. 제 방 천장에 붙어 있었던 지도는 분명 평면이었지만 그 위를 거닐던 제 마음은 늘 수많은 언덕과 계곡을 넘나들고 있었고 강과 바다를 건너고 있었지요. 동생이 특별히 찾기 어려운 오지의 이름을 불러서 온 지도를 몇 번이고 휩쓸어도 찾지 못할 때면 저 역시 가끔 지도에도 표시되어 있지 않은 세계를 상상하곤 했습니다. 그렇지만 한 번도 거인들이 숨어 있을 오지는 상상해 보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창의성이 아쉬운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창의성은 언제나 상상력이라는 거인의 어깨를 타고 옵니다. 도대체 작가는 이 지구 어느 곳에 그렇게도 엄청난 거인들이 살고 있으리라 어찌 상상할 수 있었을까요. 그들이 살기에는 지구라는 행성이 너무 작지 않았을까 걱정입니다. 하지만 지금으로부터 6,500만 년 전까지 지구를 호령하던 공룡들을 생각하면 작가의 상상이 결코 무리가 아니라는 걸 쉽게 알 수 있을 겁니다. 게다가 그 엄청난 체구의 공룡들이 작은 한반도를 누비고 다녔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훨씬 더 그럴듯한 얘기가 되지요. 우리나라 해안의 바위 위에서 공룡 발자국, 그것도 작은 공룡들이 아니라 거대한 초식 공룡들의 발자국들이 여러 차례 발견된 것은 다들 아시지요? 사실은 그들이 특별히 이 작은 반도를 좋아했던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가 예전에는 훨씬 더 큰 땅덩어리의 일부였고, 그 위를 공룡들이 돌아다닌 것이고, 그 땅에 차츰 물이 차서 반도가 된 것뿐입니다. 어쨌거나 저는 거대한 공룡들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 위를 걸어 다녔다고 생각만 해도 괜히 흐뭇합니다. 왜 갑자기 모두 훌쩍 떠나가 버렸는지 못내 아쉽긴 하지만 말입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거인들은 중앙아시아 어느 깊은 곳에 살았던 모양입니다. 주인공이 그들 마을에 처음 도착했을 때 발견한 해골의 수가 110여 개에 달했지만 살아 있는 이들은 고작 아홉이었지요. 남자 다섯에 여자 넷. 하지만 우리들이 지구를 이처럼 어지럽히기 훨씬 전에는 그들이 여기저기 많이 살았을지도 모르죠. 도대체 누가 만들어 세웠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는 이스터섬의 거대한 석상들, 영국의 스톤헨지, 그리고 우리나라 곳곳에 서 있는 고인돌들. 혹시 그 거인들이 세워 놓은 것은 아닐까요? 누가 압니까, 정말 그랬는지? 이 이야기는 ‘별을 꿈꾸던 아홉 명의 아름다운 거인들과 명예욕에 사로잡혀 눈이 멀어 버린 못난 남자’의 불행한 만남을 그리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거인들은 바로 다름 아닌 자연입니다. 못난 남자는 말할 것도 없이 우리들이지요. 워낙 거대하여 아무리 흔들어도 무너지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 거인이지만 순전히 우리 작은 인간의 힘으로 이 지구는 지금 이른바 제6의 대절멸 사건을 겪고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6,500만 년 전 거대하고 늠름하던 공룡들을 한꺼번에 쓸어버린 제5의 대절멸 사건을 비롯하여 지구에는 태초에서 지금까지 줄잡아 다섯 차례에 걸친 엄청난 재앙이 있었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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