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농부, 가정주부, 양모 상인, 수녀원장 등
‘보통 사람들’의 다양한 생애를 통해 생생히 드러나는
중세 사회경제사
토인비와 어깨를 나란히 한 여성 역사학자 아일린 파워의
중세 경세사와 사회사의 고전을 만난다
마르크 블로흐의 《봉건사회》, 요한 호이징하의 《중세의 가을》과 함께
미국 대학의 중세에 관한 교양 필독서로 꼽히는 《중세의 사람들》.
1924년 출간되어 지금까지 증보판이 발간되는 중세 사회경제사의 고전.
01_ 기존과 다른 새로운 역사서의 탄생
1920~30년대 경제사와 사회사 분야를 정립, 중세 사회의 개인적 측면을 재구성하다
19세기 말까지의 역사학은 주로 정치 제도사, 정치적 사건, 전쟁, 왕조, 정치적 제도 등을 의미했다. 그런 만큼 역사가들은 이름 없는 일반 대중의 생애와 활동은 외면했다. 그러나 아일린 파워(1889~1940)는 제대로 된 역사서가 되려면, 위인들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들 또한 등장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녀의 비유에 따르면, 역사가는 장엄한 다이닝홀(연회장)에서만 식사(연구)를 할 것이 아니라 그 음식이 만들어지는 주방에서도 밥을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사는 특히 개인을 다룰 때 흥미로워진다고 생각한다. 장원이나 중세 무역의 발전상 등을 다룬 유식한 논문들보다 보통 사람들의 생애가 일반 독자들에게 과거를 더욱 생생하게 되살려준다. 역사는 결국 살아있는 것일 때 가치가 있다. (저자 서문 35p)
2장의 경우 샤를마뉴 황제 시대와 동시대를 살았던 농부 보도와 그 가족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기존의 역사서는 샤를마뉴 황제와 그 일행을 따라갔다면, 그 시대를 함께 살았던 이름 없는 농부 보도의 작은 맨스(농가)에서 그들의 하루 일과와 안식일에는 어떤 여흥을 즐겼으며, 소작료와 공납품은 어떻게 되는지를 살피는 것도 보람 있음을 보여준다. 농부 보도의 생애를 통해 전형적인 중세 영지에서의 농민 생활과 그 영지의 초창기 발전 단계를 살필 수 있기 때문이다. 영국의 수도원을 해체한 헨리 8세의 업적도 중요하지만, 수도원에 살았던 수녀들의 삶과 수녀원장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것도 훌륭한 사회사이다.
그녀는 사회사와 경제사의 일환으로 중세의 무역과 산업, 여성에 대하여 깊게 연구하였다. 그리고’보통 사람들’의 생생한 일상을 역사의 무대에 올리는 데에 주교들이 남긴 기록부, 상인들 집안의 서간집, 상인들이 죽고 나면 그들의 비석에 새긴 동판, 그들이 남긴 저택 등은 모두 훌륭한 역사의 증거가 되었다.
역사는 반드시 문서로 기록된 어떤 것이어야 한다는 생각은 아주 잘못된 것이다. 역사는 건물의 형태를 취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교회, 주택, 교량, 반원형 극장 등은 그 건물을 읽는 눈을 가진 이들에게는 문서 못지않게 많은 이야기를 해준다. 수세기 동안 논밭에 묻혀 있다가 발굴된 로마식 빌라는 그 어떤 교과서보다 로마 제국의 실제적 의미를 부여해 준다. (…) 해자와 개폐교, 성문의 다락과 성벽, 성의 망루, 창문 대신 화살 투사구 등을 가진 노르만 성은 12세기의 위태로운 삶에 대하여 수백 권의 연대기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해준다. 안뜰과 예배당, 홀과 비둘기 장 등을 갖춘 14세기의 시골 장원은 다시 한 번 평화의 시대를 증언한다.(…) 이어 15세기의 도시와 마을들에는 상인들의 정교한 수직형 가옥들이 등장했다. 이러한 집들은 영국 역사에 새로운 계급이 등장했음을 보여준다. 그들은 귀족과 농부 사이에 끼여 있는 중산층으로서 그 나름의 독립된 계급을 형성했다.(본문 329p)
이 책은 아일린의 이러한 역사 철학을 바탕으로 집필되었다. 당시 아일린은 프랑스의 유명한 중세사 교수인 C.V. 랑글루아 교수의 역사 서술방식에 큰 영향을 받았다. 랑글루아 교수는 《봉건사회》의 저자인 마르크 블로흐의 스승이었으며, 블로흐는 뤼시엥 르페브르와 1921년 〈아날 Annales〉이라는 학술지를 창간함으로써 아날학파의 태두가 되었다. 따라서 그녀의 역사 서술 방식은 블로흐와 르페브르의 역사 연구와 서술방식 등과 그 궤를 같이하는 것이었다.
아일린은《종교와 자본주의의 부상》이라는 저서로 유명한 R.H. 토니 교수와 함께 1920~30년대에 경제사와 사회사라는 학문 분야를 정립하고 경제사 학회를 설립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중세의 사람들》에는 그녀의 역사 철학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으며, 어떤 중세사보다도 중세의 다양한 모습을 생생하게 재현하고 있다. 이는 지금까지 많은 이들에게 읽히고 있으며, 중세 사회경제사의 고전이자 중세에 관한 교양 필독서로 꼽히는 이유이기도 하다.
02_ 세밀화처럼 자세하게 묘사된 ‘보통 사람들’의 다양한 일생
중세 농부, 파리 중산층 가정주부, 베네치아 여행가, 양모 상인, 수녀원장, 직물 상인 등
이 책은 9세기 초 중세 농부, 파리의 가정주부, 베네치아의 여행가, 양모 상인, 초서의 《캔터베리 이야기》에 등장하는 수녀원장, 양모 상인, 직물 상인까지 모두 6명의 ‘보통 사람들’을 다루고 있다. 먼저 2장의 주인공인 농부 ‘보도’의 하루 일과를 따라가 보자.
청명한 봄날 아침, 보도는 일찍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도원의 농장에 가서 일을 하는 날인데 관리인이 무섭기 때문에 늦으면 안 된다. 그는 관리인의 비위를 맞추려고 지난주에는 계란과 야채를 주었다. … 오늘은 쟁기로 밭갈이를 하는 날이었다. 커다란 황소를 끄는 보도 옆에는 어린 아들 비도가 막대기를 들고 따라왔다. 보도는 인근 농장의 친구들을 만나 함께 영주관으로 향했다. … 그들은 관리인의 지시에 따라 영주 맨스(농지)의 밭과 초원, 삼림 등에서 일을 할 터였다.(80~81p)
많은 독자들에게 역사서의 이런 서술방식은 익숙지 않을지도 모른다. 《중세의 사람들》은 기존 역사서와 달리 이야기의 강조, 중세 사회의 개인적 측면의 재구성, 문학과 역사의 적절한 혼합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그렇다고 역사소설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곤란하다. 그녀는 자신이 확보한 사료를 먼저 제시하고 이어 그 자료를 바탕에 두고 꼭 필요한 부분에서 상상력을 발휘하여 중세 농부의 어느 하루를 상세하게 그려냈다.
농부 보도는 일주일 내내 일만 한 것은 아니다. 엄격하고도 자상한 교회 덕분에 안식일은 일을 하지 않고 가족과 친구들과 교회에 갔다. 그리고 교회 마당에서 춤추고 노래하고 익살극을 벌이며 주일을 보냈다. 농부들은 세련되지는 않았지만 언제나 쾌활했고, 때때로 방랑 음유시인의 저속한 노래에 귀를 기울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농부 보도의 일과와 여흥을 통해 우리는 전형적인 중세 영지에서의 농민 생활은 어떠했는지 자세하게 그려볼 수 있으며, 마치 중세의 농촌을 여행하는 듯한 느낌에 빠지게 된다.
다음은 제프리 초서의 《캔터베리 이야기》에도 등장하는 유명한 수녀원장 에글런타인을 만나보자.
그녀는 평 수녀로 10년 혹은 12년의 세월을 보냈다. 그녀는 성가를 잘 불렀고 성격이 온유하고 매너가 좋아 아주 인기가 높았다. 더욱이 그녀는 좋은 집안 출신이었다. 초서는 그녀의 아름다운 식탁 매너와 예의범절에 대하여 많은 것을 이야기했다. 그건 그녀가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잘 자랐다는 뜻이다. … 마담 에글런타인은 성품은 좋았지만 다소 독재성향이 있었다. 그녀는 간섭을 싫어하며 모든 일을 수녀들과 상의하지 않았다. 주교가 처음 수녀원을 방문하였을 때 그들은 불만을 토로했다. 원장이 사업을 잘 관리하지 못하여 빚을 졌으며 돈이 부족할 때에는 수도원 소유의 삼림나무들을 팔고 목돈을 미리 내놓는 사람들에게 대신 연금을 주겠다는 약속을 하였으며 낮은 소작료로 농장을 장기 임대했을 뿐만 아니라 … .(194~196p)
연말에 수녀들에게 내놓은 보고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곳에 돈을 썼다는 것을 알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