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문이 열린다. 우리는 모두 밖으로 쏟아져 나간다. 햇빛이 땀을 프리즘 삼아 갈라진다.”
테크노 레이브에서 나온 자기이론과 오토픽션
트랜스섹슈얼 퀴어 연구자가 쓴 레이빙 경험
미국 뉴욕 뉴스쿨 미디어 문화 연구학과 교수이자 작가인 매켄지 워크가 쓴 테크노 레이브에 관한 자기이론과 오토픽션. 트랜스섹슈얼인 작가는 트랜스로서 경험한 해리를 테크노 레이브에서도 경험하며, ‘해리’를 세계의 면면을 확인하게 해주는 하나의 방법으로 사유하고 정신과 의사들의 언어에서 몇 가지 해리만이라도 구해내고 싶다고 말한다. 저자는 트랜지션 이후에 전혀 글을 쓸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트랜지션 이후 본인은 본인의 몸을 조금 더 편안하게 느끼게 되었으나 세상은 그러지 않았고 20년 만에 레이브로 다시 돌아간다.
저자는 과거를 회상하기 위해 레이브로 돌아온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일종의 초심자적 태도로 어리석음을 향한 개방성, 길을 잃었을 때 발견하는 것을 향한 개방성을 배우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지금의 레이브가 결코 퀴어 그리고 인류를 위한 유토피아를 미리 엿보게 해주는 공간 혹은 상황은 아니라고 선을 긋는다. 미래가 없을지도 모르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테크노 음악이 나오는 클럽에서 그 상황에 몰두하며 경험하게 되는 몇 가지 상태를 분석한다. 몸과 정신이 서로에게서 자유로워지는 ‘레이브스페이스’, 정신이 육체 속에 잠기며 타자성으로 화학적으로 변하는 ‘제노-유포리아’, 자아가 신체 내부로 해리되는 ‘인러스트먼트’ 등 테크노 레이브에서 경험하게 되는 기이한 상태를 이론화한다.
이론가인 저자는 나이 든 백인, 불구, 퀴어, 트랜스, 작가라는 정체성을 갖고 있다. 저자는 “스스로에게서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으로 레이빙을 시작한다 해도 여전히 하나의 특수한 자아”임을 밝히며 만약 본인이 제시한 개념이 독자와 공진하지 않는다면 읽는 이가 자기만의 실천 과정을 통해 다른 개념을 만들어 보라고 제안한다. 자기이론으로 쓰인 이 책은 또 다른 이의 자기이론을 요청한다. 자기이론이자 오토픽션이라고 밝히는 이 책은 읽는 이의 몸과 마음속으로 흩어지며 독자의 몸, 정신의 어느 한 부분과 만나 공진을 일으키길 기다리고 있다.
‘해리’와 레이브라는 ‘상황’
우리는 어떻게 ‘주위’를 구축할 것인가
한편 매켄지 워크는 테크노 음악, 흑인성, 약물 등을 다룬 여러 작가의 글을 인용한다. 이 인용문은 원문에서 편집, 요약된 형태로 인용되는데 마치 음악에서의 샘플링처럼 배치되어 있다. 저자는 이론가, 작가, 음악가들의 글을 인용하면서 특히 흑인성에 주목한다. 테크노가 생겨난 그 시작 지점에 흑인들이 있었고 테크노 레이브와 흑인성이 맞닿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흑인 이론가들이 제시한 ‘주위’라는 개념은 “숨이 막히는 상황을 도려내 만든 피난처, 빛이 부족하고 통치의 영향이 미치지 않는 또 다른 도시”를 가리키는데 레이브를 흑인성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선물 중 하나로 이해하는 것이다.
또한 상황주의에 관한 책과 글을 써온 저자는 레이브를 일종의 ‘구축된 상황’이라고 말한다. 구축된 상황이란 “상품, 스펙터클, 모든 억압의 총체를 폐지한 뒤에 만들어질 삶의 형식을 실험하도록 해주는 혁명의 가능성을 품고 있는 것”으로서 기능하는데 미래가 없을지도 모르지만 여전히 레이브가 하나의 상황인 이유는 가능성을 발견하기 위해 계속해서 이 상황을 구축하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상황으로부터 이야기를 추출하기보다 개념을 더 많이 그러모아야 하는 글쓰기”, 즉 자기이론의 형태로 쓰인 이 책은 모든 위태로운 삶을 초대한다. “테크노의 사운드와 비트 주변에는 퀴어와 트랜스젠더의 삶을 비롯하여 모든 종류의 임시적인 삶을 위한 음향적 상황이 구축되어” 왔기 때문이다.
구멍이 되는 경험
스펙트럼이 불러오는 스펙트럼
이 책에는 음악가이자 작가인 류한길의 해제가 수록되어 있다. 음향학에 관한 책 『프린스 오브 다크니스』의 저자이자 한국 최초의 레이브로 기록된 1999년 ‘문스트럭99’에서 공연했던 음악가인 류한길은 이 책을 일종의 개념공학으로 이해하며 자신의 경험을 이 책에 대입하면 어떠한 결과가 나오는지 설명한다. 아주 오래 전 레이브를 경험한 이후에 자신에게 레이브가 어떤 경험으로 남았는지, 또 이 책을 통과하며 어떠한 가능성과 스펙트럼을 발견하게 되었는지를 이야기한다.
이 책에는 한국에서 활동하는 네 명의 활동가, 번역가, 뮤지션의 추천사가 실렸다. 퀴어활동가이자 켐섹스(chemsex) 이슈를 고민하는 연구모임POP의 구성원 나영정, 번역가이자 『전부 취소』(읻다)를 쓴 작가 문호영, 2022년 ‘트랜스젠더 가시화의 날’에 시작되어 2025년 5월 여덟 번째를 맞이한 ‘트랜스패런트’ 파티의 기획자이자 뮤지션인 정글, 음악가이자 2025년 제22회 한국대중음악상 일렉트로닉 음반 부문 수상자인 NET GALA의 추천사다.
『레트로 마니아』(작업실유령)의 저자이자 저명한 음악평론가인 사이먼 레이놀즈는 『레이빙』에서 매켄지 워크의 통찰력이 빛을 발한다고 말한다. 사이먼 레이놀즈는 매켄지 워크가 “레이브를 일시적 친족을 구축하는 현장, 지루한 관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이들을 위해 시공간 옆에 따로 마련된 주머니, 이미 이 행성에 함께 살고 있는 외계인들을 위한 축소판 고향”으로 이해하며 “레이버들은 도시의 버려진 장소를 점유해 정체성이 용해되는 곳, 자기를 잃어버리거나 발견하는 방종의 구역으로” 뒤바꾸는 모습을 조명한다고 말하며 독자들에게 이 책에 몸을 담그는 경험을 해보길 요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