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변의 카프카

[해변의 카프카]의 주인공은 왜 15세인가? 15세의 소년소녀란 신체는 어른이 다 됐지만, 마음은 아직 어린티를 벗어나지 못한 인간의 순수한 원틀이다. '인간의 원형'이란 프란츠 카프카가 말한, 세상의 상식과 궤도에 맞춰진 '다스 만'(세상사람)이 아닌, 세상의 때가 묻지 않고 부조리에 물들지 않은, '다스 제루프스트', 즉 '본래의 자기'라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예부터 15세가 되면 '호패를 찬다'는 말이 전해 내려왔고, 한국인의 이상적 여인상 '성춘향'도 만으로 치면 15세, 2차 세계대전의 비극을 50여 년이 지난 현재까지 상징적으로 전하고 있는 "안네의 일기"의 주인공도 15세인 채로 세계인의 가슴속에 살고 있다. [해변의 카프카]의 주제는 그런 15세의 순수한 인간상을 지닌, 카프카의 눈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고, 사회의 부조리를 극복하고 어떻게든 삶의 공허함과 살아가야 한다는 숱한 메타포를 동원해서 그려냈다. 주인공의 본명은 밝히지 않았지만 별명이 왜 카프카인가는, 불멸의 작가 플간츠 카프카의 이름이 공허와 부조리, 그리고 악몽 같은 뜻을 담고 있으며, 그가 "부친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실토했듯이 부친 콤플렉스로 시달려왔다는 사실과 무관치는 않을 것 같다. 다무라 카프카는 아버지로부터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누이를 범하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저주를 받게 되는데, 그 저주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어 15세 생일날 가출을 하여 세계의 끝까지 갔다가 현실로 돌아온다. 매우 강렬한 이미지와 메타포가 풍부한 이 작품은 제목이 암시하듯 갖가지 경계가 숱하게 펼쳐진다. '해변'부터가 육지와 바다의 경계, '카프카'도 일본어로 '카 후카', 즉 '옳으냐, 그르냐' 또는 '되나, 안 되나'의 의미를 나타낸다. 결국 [해변의 카프카]는 삶과 죽음, 선과 악, 어른과 아이, 남자와 여자, 의식과 무의식, 현실세계와 환상의 저 세계 등 상반된 두 세계의 경계를 넘나드는 삶의 모습, 또는 그 의미가 잘 그려져 있는 대작이다.
購入可能なサービス
本情報の最新性は保証されませんので、正確な情報は各プラットフォームにてご確認ください



송승훈
4.5
왜 마음에 드는지 모르겠다. 그냥 분위기다. 분위기가 좋다. 미친 하루키 월드의 분위기.
July
3.5
책에 감도는 분위기와 예술적인 묘사는 미친 듯이 좋지만,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작가의 여성관이 느껴져 자꾸만 싸늘해졌다.
전성원
3.0
난해하고 어렵다. 다만 글에 녹아들어간다는 느낌이 드는 글을 쓴다는 건 아무나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해라는 과정이 들어갈 수 있는지나 모르겠는 글이지만 마치 세상과 동떨어져 나만의 공간에 갇힌 기분이 드는 묘한 작품이었다.
channy
4.0
1. 하루키 장편은 두 부류로 나뉜다. 현실적인 작품,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품. 전자로 <노르웨이의 숲>, <색채가 없는 다자키 스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후자로 <기사단장 죽이기>, <1Q84>가 있다. <해변의 카프카>는 후자에 속한다. 그리고 <해변의 카프카>는 이러한 스타일의 정점이라 부를 만하다. 2. 하루키의 글은 명쾌하지 않다. 현상이나 사건의 원인, 이유를 명백히 밝히지 않는다. 문장 수준에선 대화가 무슨 의미인지, 독자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잘 파악되지 않는다. 온통 은유로 이루어져 있다. 하루키 까와 빠가 갈리는 큰 지점이다. 은유가 마음에 와닿지 않는 독자는 이런 걸 뭣하러 읽냐는 느낌이 들 수밖에 없다(유시민 작가가 <1Q84>를 읽고 실제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빠에 속한다. 그 모호함을 매우 좋아한다. 3. 자신이 품고 있는 마음의 모양을 정확히 아는 사람이 있을까. 겉모습만 판단하면 되는 타인과 달리, 자신은 의식 그 자체가 자신에게 주어지기 때문에 오히려 더 형태가 불분명하다. 깊은 마음일수록 더더욱 모호하다. 하루키의 은유는 그 지점을 건드린다. 모호하기 때문에 마음 깊이 침투한다. 느껴지지만 파악할 수 없고, 엄존하지만 실체 없는 무언가를 모호한 언어로 묘사하고 가닿는 일은 역설적이게도 모호하기 때문에 정확하게 작용한다. 4. <해변의 카프카>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품 중 최고작이다. 스타일 자체는 많이 봐왔던 하루키 소설이지만 원래의 스타일을 유지한 채 그 한계를 어느 정도 뛰어넘는다. 인물, 사건, 장치 모두가 날실과 씨실처럼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게 엮여있다. 날실, 씨실 자체도 흥미롭지만 그것들이 엮여진 방식이 이 작품을 최고로 만든다. 5. 상권은 날실과 씨실이 하루키의 전형적인 스타일로 제시된다. 끝까지 재밌게 읽힌다. 하권은 조금 다르다. 더이상의 실은 제시되지 않고 상권에서 이미 제시됐던 것들을 엮기 시작한다. 저자가 무엇을 엮고 있는지 모르는 독자에게 이 과정은 무의미하고 지루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후반부에 전체적인 모양이 형태를 갖추고, 완성에 도달하면 실을 엮었던 과정이 의미를 안은 채 독자의 마음에 안착한다. . - "즉 네가 숲에 있을 때 너는 온전히 일부가 되고, 네가 빗속에 있을 때 너는 온전히 쏟아지는 비의 일부가 되지. 네가 아침 속에 있을 때 너는 온전히 아침의 일부가 되고, 네가 내 앞에 있을 때 너는 내 일부가 돼. 간단히 말하면 그런 이야기야."
신용진
3.5
재밌었다기보다는, 열심히 따라갔다.
bintheloner
4.5
책을 읽다가 웃었다는건 텍스트로 독자를 하여금 생생한 상상을하게 만들었다는 것. 하루키의 글자는 텍스트가 아니라 이미지라고 말하고싶다. 물론 호불호는 갈림
앞마당
4.0
나카타 할아버지가 내뿜는 매력
강민주강민주
5.0
나도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가보면 알게 될 것입니다. 해보면 알게 될 것입니다. 나카타씨의 삶을 대하는 자세 끄적끄적
さらに多くのコメントを見るには、ログインしてくださ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