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르헤스, 가르시아 마르케스와 함께
현대 문학의 3대 거장으로 손꼽히는 작가 이탈로 칼비노의 대표작
▶악한 반쪽과 선한 반쪽으로 두 동강 나 버린 한 남자를 통해 엿보는 고독한 인간 내면
17세기, 이제 막 성인이 된 테랄바의 메다르도 자작은 터키와의 전쟁에 참가한다. 그는 세상 물정을 모르는, 그렇기에 열정적이면서도 순진한 젊은이였다. 그는 대포를 쏠 줄도 모르면서 무모하게 터키인의 대포 정면으로 뛰어들어 몸이 산산조각 나고 만다. 불행 중 다행으로 야전 병원 의사들은 아직 살아 숨을 쉬는 자작의 몸뚱어리를 이리저리 꿰매어 낸다. 메다르도 자작은 반쪽 몸으로 고향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이 반쪽은 자작의 ‘악’한 부분만 고스란히 품고 있다. 반쪽으로만 세상을 보고 이해하게 된 그는 열매와 버섯, 개구리 등 눈에 띄는 모든 것을 반쪽 내기 시작한다. 가벼운 죄를 지은 사람들마저도 쉽게 사형해 버리는 사악한 반쪽짜리 자작, 그 기괴한 존재에 마을 사람들은 모두 두려움을 느낀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에 큰 혼란을 가져다 줄 또 다른 반쪽, 오로지 ‘선’으로만 존재하는 반쪽 자작이 나타난다. 선한 반쪽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목적도, 의도도 없는, 그래서 오히려 ‘비인간적인’ 선행을 베푼다. 마을 사람들이 이 극단적인 ‘선’과 ‘악’ 사이에서 어찌할 바를 모를 무렵, 두 반쪽은 거의 동시에 ‘파멜라’라는 소녀를 사랑하게 된다.
오로지 악하거나 오로지 선하기만 한 이 반쪽 자작‘들’을 통해 이탈로 칼비노는 냉정하고 잔혹한 현대 사회에서 정신적으로 분열된 채 살아가는 인간들의 고통과 외로움을 그만의 동화적 상상력으로 그려 냈다. 옮긴이 이현경은 작품 해설을 통해 ‘반쪼가리 자작’으로 대표되는 현대인은 바로 “마르크스식으로 말하자면 ‘소외된 인간’이고 프로이트식으로 말하면 ‘억압받는 인간’”이라고 말한다.
▶이탈로 칼비노가 그려 낸 기괴한 동화적 공간, 그 속에서 살아 숨 쉬는 현대인의 초상
이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는 ‘반쪼가리’ 인간들은 메다르도 자작만이 아니다. 현실의 고통을 잊기 위해 무책임하고 무분별한 쾌락만 추구하는 ‘버섯들판’의 문둥이들, 진정한 믿음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종교 윤리만을 강조하며 집단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위그노들, 자신이 만드는 도구가 살인에 사용될 것을 알면서도 일체 최선을 다하는 장인 피에트로키오도, 의사이면서도 비과학적인 현상에 흥미를 느끼고 ‘순수한’ 탐구에만 몰두하는 트렐로니, 그리고 마을 사람들과 자신의 외삼촌인 메다르도 자작을 순진무구한 눈으로 바라보는 한 아이 등, 이들 역시 비록 신체는 온전하지만 자작과 마찬가지로 반쪽짜리 인간들에 불과하다. 실제로 칼비노는 등장인물들을 현실 속 인물들과 비교했었는데, 원자탄을 만들었던 현대 과학자들을 피에트로키오도에, 무책임한 유미주의에 빠진 문둥이들을 문학적, 예술적 데카당스에 빠진 현대 예술가들에 비유하기도 했다.
비단 칼비노의 비유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극도로 산업화된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들은 누구나 어딘가 불안정하며, 선악의 구분이 모호해진 이 세상에 속한 인간은 누구나 다 불완전한 존재임을, 또한 그 불완전한 모습이야말로 오히려 ‘인간적’임을 『반쪼가리 자작』을 통해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사실주의적 서술로는 더 이상 산업화된 현대 사회를 표현할 수 없다.”
칼비노는 신사실주의 영향 아래에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레지스탕스에 참가해 알프스 산악지대에서 전투를 하기도 했던 칼비노는 이 경험을 바탕으로 첫 소설 『거미집으로 가는 오솔길』을 발표했다. 그 후에도 현실을 기록하고 고발해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비슷한 작품들을 썼지만 칼비노는 이에 만족할 수 없었다. 그 스스로 자신이 쓴 글들이 “너무 무거워 돌로 변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라고 털어놓은 적도 있었다.
신사실주의적 서술로는 더 이상 산업화되는 현대를 표현할 수 없다고 생각한 칼비노는 그리하여 동화적이고 환상적인 방법을 통해 현실을 바라보는 방법을 택하기에 이르렀다.
역사적인 현실이 우리에게 전해 준 긴장은 곧 풀리게 된다. 오래전부터 우리는 죽은 물 위에서 항해를 하고 있다. 우리들이 맨 처음 현실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역사적 현실에 대한 신뢰성이나 그 현실의 표정, 책임감, 에너지에 대한 신뢰성을 회복하려고 애썼지만 점점 더 힘을 잃어 가기만 했다. 환상적인 소설을 통해 나는 현실의 표정, 에너지, 곧 내가 가장 중요하다고 믿는 것들에 활기를 주고 싶었다.
이렇게 해서 칼비노는 17~19세기로 돌아가 현대 사회와 인간의 이야기들을 펼친다. 터키와의 전쟁에 나가 선과 악으로 두 동강이 난 『반쪼가리 자작』, 아버지와의 불화를 견디다 못해 나무 위로 올라가 일생을 보내는 『나무 위의 남작』, 의지의 힘으로 빈 갑옷으로만 존재하는 『존재하지 않는 기사』 등 동화 같은 3부작을 통해 칼비노는 현대 사회를 향해 강한 메시지를 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