出版社による書籍紹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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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대 가장 경이로운 미디어학자이자 이단적 문학자 프리드리히 키틀러의 대표작, ‘문학 엄숙주의자’들을 경악에 빠뜨린 문제적 고전, 말 만드는 자들에게 내리꽂힌 질문의 책! ‘말’이 세계를 창조한 ‘말씀’의 반영으로도, 세계를 투시하고 조직하는 순수정신의 직접적 매개체로도 상상될 수 없는 시대- 말이란 무엇이고, 말의 세계란 무엇이며, 말과 문학의 영점을 재정의하는 ‘미디어’란 무엇인가? 문학-미디어 연구의 새로운 창을 열어젖힌 혁명적 저작, 말 만드는 자들과 기술로 운신하는 자들의 좌표를 내리긋는 “미디어 이론의 고전”(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 “동시대 그 어떤 학자보다 미디어에 대한 통찰력이 뛰어난 인물”(가디언)이자 “독일정신사에서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독창적 학자”(디 차이트) 프리드리히 키틀러(1943~2011)의 대표작 《기록시스템 1800·1900》(1985)이 독일에서 출간된 지 30년 만에 번역 출간되었다. 방대한 문헌을 가로지르는 눈부신 사유와 문장들 덕분에, 관련 미디어 연구가들과 번역가들이 숱하게 번역상의 난해함을 지적해왔던 고전 중의 고전이다. 키틀러의 중기 사유가 담겨 있는 베를린 훔볼트 대학 강의록 《광학적 미디어》를 번역했던 시각문화, 미디어, 미술 관련 번역가이자 연구자 윤원화가 키틀러의 사유를 특징짓는 ‘불연속의 연쇄’를 촘촘히 뜯어 번역했다. 문학의 역사를 정보시스템의 변천이라는 관점에서 재구성한 이 책은, 발표 당시 문학 연구의 근본적인 패러다임 교체를 이뤄냈다는 찬사를 받은 한편, 동시대 문학자들에게 격렬한 반발을 사며 학계에 파란을 일으킨 하나의 사건과도 같은 저서다. 또 우리에게는 “미디어가 우리의 상황을 결정한다” “사물의 기준은 인간이 아니라 미디어다” 등의 기술결정론적 테제로 두루뭉술하게 알려져 있던 유럽 최고의 미디어학자이자 이단적 문학자의 사상적 출발점을 원전 번역으로 만나볼 수 있는 첫 기회이기도 하다. 묻혀 있던 과거의 사건들을 현재적 관점에서 엮어붙이는 사유의 독창성뿐만 아니라 마력이 넘치는 문장들로 글을 발표할 때마다 독자들을 놀라게 했던 키틀러 특유의 눈부신 언어의 향연은, 시간과 공간을 가로질러 오늘날 우리가 거주하는 ‘존재의 집’을 밝히는 중요한 실마리가 되어줄 것이다. 문학동네 인문 라이브러리 제11권. “글의 독점체제가 폭파된 이후, 글의 기능을 재검토하는 것은 가능하고도 절박한 과제가 되었다. 우리가 분별해야 하는 것은 감정의 배치가 아니라 기술이 개입하는 실증적 현실, 시스템이다.” 프리드리히 키틀러 “인간과 기표를 잇는 접속 방식에 변화가 일어나면 역사의 흐름이 바뀌고 존재가 닻을 내리는 곳이 달라진다.” 자크 라캉 ■ 괴테의 ‘파우스트’에서 발레리의 ‘파우스트’까지, 정보시스템의 변천이라는 관점에서 재구성한 미디어로서의 (독일)문학사 “대학 제도와 대학의 대변인들을 이토록 조롱하는 교수자격취득 논문은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독문학자 게르하르트 카이저의 말이다. 분과학문과 국가의 경계를 넘나들며 특히 동시대 프랑스 이론을 열성적으로 흡수했던 키틀러가 1982년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에 독일문학사 전공 교수자격취득 논문으로 《기록시스템 1800·1900》을 제출했을 때, 심사위원들은 이 저술이 ‘독일문학사’ 연구논문으로 적합한지를 두고 격렬한 공방을 벌인다. 결론이 나지 않는 찬반양론 속에서 심사는 2년 가까이 계속되고 심사위원은 13명으로 불어난다. 마침내 ‘가까스로’ 통과된 이 논문이 1985년 단행본으로 나왔을 때, 키틀러는 이미 유명 인사가 되어 있었다. 동시대 가장 변칙적 필자이자 이단적 문학자 키틀러의 출발을 알린 떠들썩한 첫 신호였다. 제도에 안전하게 발을 들이는 것보다 중요했던 그의 문제의식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글의 독점체제가 깨진 시대에, 언어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학자의 빛이란 무엇이며 그것이 비추는 것은 또 무엇인가.’ 이 문제는 대학 제도 내부에서 안전하게 말을 짜나가는 것으로는 결코 해명될 수 없었다. 따라서 키틀러는 질서 내부를 벗어나 시스템 자체를 조명할 수 있는 외부적 관점을 들여온다. 그렇게 도출된 방법론이 미셸 푸코의 담론분석을 참조한, 그러나 문서 자료에 그치지 않고 기술적 장치와 그 산물까지 아우르는 ‘기록시스템’이다. “임의의 문화에서 유의미한 데이터를 송부, 저장, 처리하는 기술적, 제도적 네트워크”를 뜻하는 이 시스템을 렌즈 삼아 키틀러는 말과 행동, 인식과 판단의 주체로서 ‘인간’의 역사를 가능하게 했던 객관적 조건 또는 ‘환경’의 역사를 기술해나간다. 문학이라는 권위의 ‘신비한 토대’를 헤집어내기 위한 이 기획은, 역사의 거대한 불연속을 두 번 날카롭게 끊어서 그 단면을 해부하는 것으로 실행된다. 두 번의 경계를 설정하는 핵심적인 사건은 교육학, 시, 철학을 변수로 둔 ‘1800년경의 알파벳 학습의 보편화’와 미디어 기술, 정신물리학, 문학을 변수로 둔 ‘1900년경 기술적 데이터 저장장치의 발명’으로 요약될 수 있다. 여기에 더해, 문학사 연구라는 틀에 걸맞게 키틀러는 1800년경 불연속의 시작점에 괴테의 전인적 인간 ‘파우스트’를, 1900년경 또다른 불연속의 끝에 구시대의 정신이 사라지고 오직 욕망으로 웃는 발레리의 ‘파우스트’를 내세운다. ■ 1800년식 기록시스템: 어머니의 알파벳 교육을 통해 출현한 시인들이, 영화처럼 환각적이며 철학으로 해석할 수 있는 책을 만든다 첫번째 불연속은 1800년경, 읽고 발췌하고 주해를 다는 것이 전부였던, 생산자도 소비자도 없이 그저 말들을 회전시키는 문예공화국을 가르고 지나간다. 저자도 독자도 없이 말들만 끝없이 순환하던 옛 시스템은 인간이 주체의 위치에 등극하면서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 되고, 정신과 글쓰기의 관계를 좌표축으로 삼는 새로운 시스템이 태동한다. 그리하여 성서와 오래된 문헌들 대신 자유로운 글쓰기가 대두되는바, 1800년식 기록시스템은 입에서 입으로 달콤하게 언어를 가르치는 ‘어머니 자연’, 그리고 입으로 익힌 언어를 손으로 숙련시키는 사법적·관료적·정치적인 권력인 ‘아버지 국가’를 마련한다. 이 둘의 긴장 관계 속에서, 역사의 무대에 오르는 이들이 시인과 공무원이다. 키틀러는 이 시대의 시인을 근본적으로 자녀와 학생을 문화의 정신으로 이끄는 교육공무원들로 위치짓고, 이 시대에 출현한 근대적 대학과 시문학 해석, 시문학 정전을 시인을 권위를 뒷받침해주는 제도이자 질서로 한계짓는다. 괴테, 슐레겔 형제, 헤겔, E. T. A. 호프만 등 모든 위대한 시인들이 1800년식 기록시스템 속에서는 시스템의 개체들에 불과하다. 이는 호프만의 「황금 단지」와 프리드리히 슐레겔의 「철학에 관하여」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보다 분명해진다. 이 낭만주의 시대에 책과 글이 신비로운 권위를 갖게 된 것은 (1) 책을 제외하면 그와 경쟁할 만한 다른 시청각 미디어가 전무했기 때문이고, (2) 한없이 고귀하고 어려운 철학이 해석이라는 이름으로 문학을 뒷받침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시대의 독일 시문학은 핵가족이 생산하고, 교양계급이 증폭하고, 철학이 절대적인 ‘학문’의 이름으로 해석하고 정당화한 시스템의 효과가 된다. 1800년식 기록시스템을 분석한 장의 제사인 오일러의 공식 “eix=cosx+isinx”는 바로 이러한 발전과 공모의 알고리즘을 나타낸다. 한편 철학자들과 시인들이 문자로 쓴 글을 토대로 자신들의 권위를 다져나가는 동안, 말을 가르치는 여성들은 단일하고 비가시적인 자연이 된다. 시인들과 철학자들이 손을 잡으면서 여성은 저자를 만들면서 사라지는, 학문과 글의 흐름을 주도할 수 없는 타자로 남게 되는 것이다. 이 시대의 여성은 시인이나 철학자가, 즉 말의 주인이 될 수 없다. 말의 주인을 꿈꾸는 여성들은 남성의 필명으로 글을 썼던 여성 시인 귄데로데처럼 회유와 절망 속에서 죽음을 맞이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