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달을 먹다』의 작가 김진규의 두번째 장편소설!
2007년 장편소설 『달을 먹다』로 제13회 문학동네소설상을 수상하면서 데뷔한 작가 김진규가 신작 장편 『남촌 공생원의 마나님의 280일』을 선보인다. 조선 영정조시대를 배경으로 근친상간의 치명적 사랑에 눈멀어 죽음충동에 몸을 내맡기는 인간군상의 모습을 빼어나게 그려 보였던 『달을 먹다』에 이어 새롭게 선보이는 장편소설 『남촌 공생원 마나님의 280일』은 조선 성종대의 한성부 명례방을 배경으로 개성 만점의 다양한 캐릭터들이 벌이는 여러 사건들을 풍자와 해학이 넘치는 문장으로 경쾌하게 풀어내면서, 전작과는 또다른 매력을 한껏 발산하고 있는 작품이다.
애면글면 안달복달 공처가 공생원의 숨은 진실 찾기!
자신보다 키가 한 뼘 정도 크고 몸무게도 너덧 근은 더 나가 보이는 마나님을 모시고 사는 생원 ‘공평’은, 성격이 드센 마나님만 보면 깜짝깜짝 기가 죽는다. 그러면서도 나라님도 하는 ‘공처’를 자신이 하는 것은 ‘충(忠)’이라고 억지로 스스로를 안심시키며 살아가던 어느 날, 공생원은 마나님이 아이를 가졌다는 소식을 듣는다. 손자를 보고도 남을 마흔다섯 나이에 첫아이 임신 소식을 들었으니 마냥 즐거워해도 모자랄 판에, 공생원은 근심걱정만 늘어간다. 혼인을 하고 나서도 한참 동안 아이가 들어서지 않아 천지사방 용하다는 의원과 무격을 죄다 찾아다녀봤지만 별 소용 없었고, 의원 서지남은 공생원에게 문제가 있어서 그런 것이니 그만 포기하고 마나님한테나 잘하라고 면박을 주기까지 했는데, 마나님이 임신을 했다니! 그렇다면 지금 마나님의 뱃속에 들어앉은 아이는 대체 누구의 자식이란 말인가.
서지남이 비록 지난 초봄에 의료사고를 내고 야반도주를 한 의원이긴 하나, 공생원은 자신에게 이상이 있다는 그의 말을 돌팔이의 공갈쯤으로 무시하고 마음 편히 있을 수가 없다. 시름 끝에 결국 공생원은 마나님을 임신시켰을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을 하나둘 꼽아보는데, 의원 채만주, 참봉 박기곤, 두부장수 강자수, 노비 돈이, 알도 임술증, 저포전의 황용갑, 처팔촌 최명구, 악소배 백달치 등등 미심쩍은 자가 한두 명이 아니다. 과연 공생원은 진실을 밝혀내고 시름을 덜 수 있을까……?
*
이번엔 인위적으로 배꼽의 모양까지 다듬다니! 공생원은 당혹스러움에 입을 다물 수조차 없었다. 공생원이 보기에 마나님의 배꼽은 그리 얕은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살구씨가 들어갈 만큼 크고 깊어야 아들을 많이 낳는다며 여러 날 끌탕을 하더니만, 결국 불뜸질로 배꼽을 속으로 더 밀어넣고 온 것이었다. (……) 공생원은 마나님이 배꼽을 바꾸고 온 그날의 정황이 궁금했다. 아무리 의원이라 해도 아녀자가 외간남정네 앞에서 배꼽을 드러냈다는 사실을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하여 속내를 캐기 위해 은근슬쩍 말에 요령을 부렸다.
“자네! 배꼽은 무사한 게요?”
“아물었다고 하지 않습니까?”
“손독은 안 올랐소? 채의가 이래저래 주물렀을 것인데……”
“……”
“왜 아무 말이 없는 게요?”
“주물렀다는 말이…… 좀 그렇습니다.”
그 말을 하는 마나님의 얼굴이 순식간에 발그레해졌다. 볼의 얽은 자리가 도드라져 보였다.
‘무언가 켕기는 게 있다!’
공생원의 이마에 맺힌 땀이 망건 틈을 비집고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
“헉, 헉, 나리, 켁, 마님이, 헉, 애가, 헉, 헉, 아까, 커억, 찾아가지구, 산파를, 아이구……”
단어들이 아무렇게나 잘라져나와 사방으로 튀어갔다. 그것들을 주워 간신히 이어붙이고 나니 문장은 이렇게 재구성되었다.
“나리! 아까부터 찾았는데 왜 이제 오십니까? 애가 나올 모양입니다. 지금 우리 마님이 곁을 지키고 계십니다. 저는 산파를 데리러 가는 중입니다.”
공생원은 대경실색했다. (……) 다가앉은 공생원을 향해 마나님의 입이 연신 옴짝거렸다.
“뭐라는 게요? 무슨 말이요? 안 들리오.”
공생원이 허리를 구부려 마나님의 입에 귀를 댔다. 달짝지근한 숨내. 그 와중에도 피가 아랫도리로 쏠려들자 공생원은 민망했다. 그것이 미안하여 괜한 헛기침이라도 하려는 순간, 마나님의 쇠진 목소리가 느릿하게 감겨왔다.
“당신 자식이 아닙니다.”
공생원의 엉덩이가 순간 중력을 거슬렀다.
‘무어라? 옳거니! 그럴 줄 알았다.’
공생원의 눈빛이 벌겋게 곤두섰다.
“누군가? 그게 누군가?”
한데 손가락 까딱할 기운도 없어 뵈던 마나님이 상반신을 벌떡 일으키더니, 공생원 턱 밑으로 고개를 바짝 들이밀었다.
“누구일 것 같습니까?”
끊임없이 독자를 매혹시키는 풍성하고 다채로운 이야기 속으로
『남촌 공생원 마나님의 280일』은 조선시대의 사회상과 풍속에 대한 세밀하고도 촘촘한 묘사, 끝까지 손에서 책을 놓을 수 없게 하는 흡인력 있는 이야기와 더불어 결말에 이르러서는 무릎을 탁! 치게 하는 경쾌한 반전 등 다양한 소설적 매력이 담뿍 묻어나는 소설이다. 이미 전작 『달을 먹다』에서 여러 가문, 여러 세대에 걸쳐 얽히고설킨 이야기의 타래를 노련하게 풀어내는 필력을 보여주었던 작가는 이번 작품에서 더욱 풍성하고 다채로운 이야기로 독자들을 매혹시킨다.
『달을 먹다』가 양반과 부유한 중인 계층의 이야기라면, 『남촌 공생원 마나님의 280일』은 서민들의 이야기다. 그만큼 작가의 손끝에서 풀려난 문장들은 보다 흥겹고 신이 난다. 등단 만 이 년, 그리고 독자들에게 선보이는 두번째 작품, 아직 보여줄 것이 훨씬 더 많이 남은 이 작가의 소설세계가 과연 어디까지 뻗어나갈지, 벌써 작가가 들려줄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