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수경4.5영화는 훌륭하지 않다. 카메라는 게으르다. 감독의 자책은 성의가 없다. 하지만 나는 많은 이들이 이 영화를 봤으면 좋겠다. 박건호의 삶은 우리 사회의 중요한 단면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통계나 기사만으로는 알기 힘든 세세한 풍경들이 담겨 있다. 다큐라는 장르가 종종 그렇듯 이 영화는 예술과 저널리즘의 영역 둘 다에 속한다고 느꼈다. 사채업이 돌아가는 구조나 거기에 진입하는 이들의 상황, 개인정보 거래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 시재(=일수꾼이 쩐주에게서 빌리는 돈) 등의 존재는 눈을 뗄 수 없게 흥미롭다. 이것들은 전부 ‘흥미로워’선 안 된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고 그 어느 때보다도 대상화에 대해 열심히 생각했다. 애초에 모두가 다각도에서 잘 알고 있는 것이라면 ‘전시’될 일도, ‘포르노’가 될 일도 없다.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의 협소한 단면만을 소비하는 행태가 폭력이기 때문에 대상화를 지양해야 한다. 이 영화가 담은 모든 문제-특히 가난-에 대하여 사람들이 더 자세히 알도록 카메라가 기여하는가를 질문했을 때, 그러하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 영화의 편에 설 수 있다. 내가 흥미롭다고 느꼈던 많은 디테일들은 어쩌면 진즉 우리가 알고 있어야 했던 것들이다. 한 명이 아니라 수백만 명이 도박에 빠지는 거라면, 이건 구조의 문제다. 왜 저들은 다른 것 대신 도박을 선택하게 되는가. *<뉴욕타임스>는 2022년 3월 7일 관행을 깨고 우크라이나 이르핀에서 러시아의 공습으로 사망해 길가에 쓰러져 있는 일가족 얼굴이 담긴 사진을 1면에 게재했다. 피해자의 프라이버시보다는 전쟁 희생자의 모습을 직접 묘사함으로써 전쟁의 처참함을 알리는 일이 더 큰 선이자 더 공적인 애도의 방식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시사인 2022.12.6- “배달하는 사람들 95%는 도박할 걸,” “사장님, 저도 배달 대행업체 했어요, 하다가 망했어요” 따위의 대사들로 유추할 수 있는 건 도박이 우리 사회의 가난과 가까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배달업은 가진 게 몸뚱아리밖에 없다고 느끼는 사람이 쉽게 종사할 수 있는 분야다. 다만 비율의 문제라서 충분히 돈 잘 버는 사람들도 도박에 빠진다. 극중 월급이 들어왔는데도 10만 원밖에 안 갚은 CJ 연구원은 총 서른아홉 군데의 사채를 쓰고 있었다. 도박에 빠진 이들을 비웃기 전에 주식하는 K-직장인들을 생각하게 된다. 대한민국에서 아는 사람 중에 주식이나 코인으로 돈 잃어본 사람이 한 명도 없다면 아마 땅굴에서 지내고 있을 확률이 높다. 그보다 낮은 곳에서 한탕 노리는 게 도박이다. 주식이나 코인과는 다르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어느 계급에 속하든 추구하는 삶의 조건은 다 거기서 거기고, 집값은 어디든 비싸고, 낮은 처지에서 큰 걸 꿈꾸려면 더 많은 리스크를 거는 것은 당연하다. 주식이나 코인과 다른 점은 마치 게임처럼 좀 더 유흥적이라는 점인데 (스포츠 도박은 실제로 경기 관람을 수반하고), 여가시간이 한정된 이들에게 투자와 게임이 합쳐지는 건 가성비 측면에서 필연적일 것이다. 박건호는 너무도 다양한 도박에 돈을 꼴아박는 듯한데 실은 정확히 어떤 것들인지 가늠도 안 된다. 그 부분을 감독은 최소한으로 담는다. GV를 듣고 나니, 본인이 보기 힘들었던 장면을 (거의 전부였던 것 같지만) 많이 쳐낸 것 같다. 의도와 무관하게 결론적으로는 더 윤리적이라고 생각한다. 도박에 빠져서 모든 걸 잃는 과정보단, 도박에 쓸 돈을 버는 데에 화면이 대부분 할애되니까. 이 영화는 감독의 의도보다 우위에 존재하는, 그러니까 감독의 의도를 넘어서는 사료로써 의미가 있는 작품이라고 느껴진다. 2회차 소감인데 아직 마음을 완전히 정한 것은 아니다. 감독은 박건호를 만나는 게 너무 괴로운 나머지 영화도 파일로 전달해줄 예정이라고 한다. 화면으로 만났을 관객들보다 훨씬 더 큰 규모의 혐오감을 느꼈을 거라 짐작해본다. 혐오감이라는 단어로는 다 형용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이었으리라. 감독(이자 카메라맨)이 박건호와 웃으면서 대화하는 장면들도 있다. 둘 사이엔 친밀감이나 애착 같은 게 분명히 있다. 처음엔 웃으면서 봤다. “저도 너무 힘들어요,”라며 애원하는 사채업자라니. 그것도 10만 원, 20만 원씩 받기 위해 끊임없이 전화를 걸다니. 흡사 미련 남은 애인 같다. 상대가 마음 떠날까봐 조심스럽게 회유하는 모습도 웃기다. 그러면서 본인도 빚이 산더미라 사채업자의 전화를 받는다. 곧 갚겠다고 서글서글하게 설득한다. 그가 채무자들에게 제일 자주 하는 말은 “내일 꼭 전화 주세요,” “이따 전화 드릴게요,”다. 그는 그들과의 마지막 통화에서 언급된 것들을 엑셀 파일로 정리해놓기까지 한다. 절대 험악해지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신뢰를 유지하는 데에 엄청난 에너지를 쓴다. 어떤 일에 오래 종사한 사람 특유의 자신감과 말솜씨도 관전 포인트다. 부산에 그가 일 잘한다고 소문이 나서 조폭의 일꾼으로 스카우트되었을 때는 진심으로 응원하게 되더라. 역시 사람은 자기가 잘 하는 걸로 먹고 살아야지! (불발되었을 때 내가 더 실망했음). 박건호는 영화의 주인공으로 손색없을 정도로 쇼맨쉽이 있다. 심지어 자꾸만 자기 꿈이 영화 감독이 되는 것이라고 해대니 영화를 끝까지 봐야만 했다. (그만 보고 싶은 순간들이 많았다). 그가 캠핑카를 사서 전국을 일주하며 대부업을 하는 꿈을 말할 때 꽤나 일리 있는 꿈이라고 생각했다. 상기된 박건호는 행복해 보인다. 실제로 채무자들은 전국 곳곳에 있으니, 싱어송라이터나 전국투어를 하는 밴드 만큼이나 사채업자에게도 캠핑카는 적절한 이동수단일 테다. 전기세를 안 내서 전자레인지가 돌아가다 만다. 그런데 에어컨은 멀쩡히 나온다. 혼자 천재적인 생각을 했다는 듯 에어컨 콘센트를 뽑고 거기에 전자레인지를 돌려본다. 전자레인지는 또 꺼져서 헛웃음과 함께 쌍욕을 뱉는다. 콘센트 구멍의 문제가 아니라 기기 개별로 쓰이는 전력의 문제였을 것이다. 관객들은 웃었다. “전기세는 내야겠다,”고 하는 그의 궁색함이 시트콤의 한 장면 같았다. 그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박건호는 어쩌면, 이 모든 게 하나의 영화가 되고 이야기로써 존재할 수 있는 거라면, 어떻게 되든 좀 괜찮은걸까. 노잼이 예상되는 소개팅을 나가기 전에 “너희 만나서 풀 썰을 위해 한번 다녀올게,”라고 말하는 사람의 마음처럼. 그런 거라면 감독이 그의 인생을 망친 게 아닌가 하는 자의식 과잉스러운 자책을 느끼는 게 합당한 걸 수도 있겠다. 내가 박건호나 감독의 마음을 알진 못하겠지만. 어쨌든 박건호는 자신이 찍히고 있다는 사실을 크게 개의치 않는다. 감독에겐 “너 진짜 좋은 형을 둔 거다. 이러다가 좆된 걸 내가 몸소 보여 줬으니까!”라고 한다. 마치 타산지석으로써 만족한다는 듯. 그 모습은 너무 기이한데, 그가 자꾸만 죽어야겠다는 말을 해서 그저 다 그럴 수 있겠거니 했다. 영화 말미에 그가 강아지를 키우게 된 장면이 나왔을 때 몇몇 관객들의 탄식이 들려왔다. 본인 몸도 건사 못하면서 무슨 생각으로 쟤를 데려온 거지, 라고 다들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고 6개월 후에 강아지가 즐겁게 뛰어노는 장면이 나온다. 박건호는 빚을 다 갚고 새로운 사업체를 차린 상태다. 물론 도박을 그만둔 건 아니라서 그는 여전히 영화 초반이랑 크게 다를 바 없는 상태-여기저기 돈을 빌리는 상태-로 영화가 끝난다. 나는 그가 빚을 다 갚은 상태와 원상태로 복귀되는 지점 사이의 기간이 인상 깊은데, 그가 인생이 너무 재미없다고 하기 때문이다. 그가 묘사하는 루틴 잡힌 일상은 지루하다. 재영이 데리고 다니면서 오만 고생 다 하고, 갑자기 뜬금없이 사기당해서 얼떨결에 보이스피싱 피해자 돈 찾아준 사람 되고, 친구랑 싸우던 나날들이 그리워 보이기까지 했다. 마치 영화 <허트로커>에서 더 이상 참전할 전쟁이 없는 군인이 한없이 심심해졌듯이. 그는 도박뿐만 아니라 도박에 수반되는 그 모든 고통에 중독된 것이었을까. 처음 봤을 때도 내내 생각했지만, 나는 박건호가 유튜버가 되었으면 좋겠다. 딱 이 영화에서 하듯이 그냥 “채무자한테 개지랄하기 꿀팁” 늘어놓고, 가족 썰 같은 거 풀고, 친구들이랑 술 마시면서 뻘짓하는 걸 팔아서 돈을 벌었으면 좋겠다. 자기를 똑바로 바라볼 수조차 없는 감독의 손을 빌리지 말고 스스로 카메라를 잡았으면 좋겠다. 그가 명절에 놀러 온 조카들에게 세뱃돈을 주기 위해 친구에게 돈을 빌리는 사람이라서다. 전주에 있는 놈 잡으러 갈까, 군산에 있는 놈 잡으러 갈까, 하다가 군산에 바다가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는 사람이라서다.いいね22コメント0
동구리3.5사갈은 뱀과 전갈이라는 뜻으로, ‘남을 해치거나 심한 혐오감을 주는 사람’을 뜻한다.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것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자막으로 시작해서 "이 영상이 내가 만드는 마지막 다큐멘터리였으면 좋겠다"는 자막으로 끝난다. 감독이 오랜만에 만난 영화과 동기인 박건호는 도박에 빠져 있는 사채업자다. 이 영화는 156분 동안 박건호와 그 주변 인물들의 끝없는 실패를 담아낸다. 사채업자라곤 하지만 그가 수금해야 하는 돈은 꽤나 작은 돈이다. 100만원 이하의 작은 돈들은 불법도박으로, 돌려막기로, 또 다른 샛길들로 사라진다. 이는 사채를 쓴 채무자 뿐 아니라 박건호 본인에게도 해당하는 말이다. 그는 수금한 돈을 자신의 사업이나 빚을 갚기 위해 쓰기보단, 돈이 생기는 족족 불법도박에 사용한다. 그야말로 대책없는 상황이 끝없이 이어진다. 이동우는 박건호가 빠진 무간지옥에 자신의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전작 <셀프-포트레이트 2020>의 주인공이었던 이상열이 영화 촬영 이후 조울증이 심해지고 구치소를 들락거리며 살고 있음을 이야기하며, 자신의 다큐멘터리가 헛된 희망을 심어준 것 같다는 죄책감을 토로한다. 그는 자신이 <사갈>이라는 영화를 왜 찍고 있는지, 박건호를 왜 찍기로 하였는지, 그는 왜 자신을 찍어달라고 했는지 생각해내지 못한다. 그는 그저 끝없이 반복되는 빚과 도박의 악순환에 놓인 한 사람을 찍고 있을 뿐이다. 그것은 카메라를 들고 있는 이동우 자신이 자신의 영화에 대해 떠올린 생각과도 같다. 박건호에 대해 관객이 약간의 희망을 볼 때면, 카메라는 어김없이 다시 추락하는 그의 모습을 담아내고 보여준다. 이 영화는 그 지옥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대상과 자신에 관한, 한없이 솔직하고 끔찍한 자기반성이다. 이동우의 전작들과 비교하면 이번 영화에서 그의 얼굴이나 목소리는 좀처럼 등장하지 않는다. <사갈>의 이미지와 사운드에 이동우 감독 자신의 자리가 마련될 필요가 없다. 대신 그는 자막을 통해 말한다. 카메라가 향하고 있는 대상과 자신이 우정의 동행을 이어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자신의 판단을, 카메라를 통해 비극의 연쇄를 벗어날 수 없음을 자신에게 말하는 것이다. 그것이 남기는 질문이 영화가 끝난 뒤에 맴돌고 있다.いいね8コメント0
조성호4.0이동우 감독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 다큐멘터리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감독님 인생에서 불현듯 누군가를 만나서 그 인물을 찍고 싶다는 생각이 들때! ’인물’ 트릴로지를 완성해주시길 기대할게요. 서울독립영화제2022 장편경쟁6いいね3コメント0
Meltingbrain4.0어쩌다보니 이동우 감독의 작품을 다 봤다. 처음 본 건 '셀프-포트레이트'. 의식의 흐름 개그를 좋아하지만 그걸 3시간 동안 듣는 건 솔직히 고문이었다. 하지만 그다음이 궁금해서 뛰쳐나갈 수 없었다. 그 이후 '노후 대책 없다'를 보았고 올해 인디 피크닉에서 '사갈'을 보았다. '사갈'은 전작 '셀프-포트레이트'의 연장선에 있는 듯하다. 그리고 닮은 구석이 많다. 감독의 각 작품 주인공은 특이하다. 평범하게 산다면 평생 말 한번 섞을 기회가 없을 사람들이다. 그래서 '사갈'을 봤다. 의식의 흐름 대화법와 긴 상영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사갈의 주인공은 도박에 중독된 사채업자이며 그의 1년여간 기록을 보여준다. 처음엔 수더분하고 성격 좋은 사람으로 보였다. 점점 자신의 민낮을 드러내면서 자조적이고 후회가 섞인 말을 자주 했다. 한때 영화인을 꿈꾸던 사채업자는 돈을 많이 벌어 영화를 제작하겠다고 하지만 채무자가 돈을 보내면 도박으로 다 날린다. 그의 삶은 이런 악순환의 반복이다. 이번 다큐에서는 감독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감독의 개입은 자막으로 처리했다. 감독은 본인 다큐에 사채업자를 이용하고 있고 점점 나락으로 보내는 것 같아 한동안 연락을 끊고 양심의 가책을 느껴 작업 중단까지 선언한다. 사채업자에서도 본인에게서도 사갈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다큐는 날짜까지 보여주면서 일기처럼 매일매일의 일상을 보여주다 점점 날짜의 텀이 길어진다. 첫 촬영일에서 1년여 이후 사채업자는 여전히 도박에 중독된 사채업자였다. 벗어나고 싶다고 말은 하지만 변한게 없다. 하지만 눈빛이 달라져 있었다. 마지막 채무자를 설득하는 장면에서 본인도 출구없는 삶을 살면서 채무자의 미래를 걱정하며 충고를 한다. 내 귀에는 본인이 듣고 싶은 말, 본인에게 하는 말처럼 들려 짠한 마음이 들었다. 상영 후 정성일 영화평론가와 감독의 GV가 있었는데 거의 12시까지 진행했다. 정성일 평론가의 GV는 처음이었는데 시간 단위로 분석하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다큐 제작 중단까지 선언했던 감독에게 극영화를 제작하라는 압력으로 마무리하셨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이 감독의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 인디 피크닉 2023 인디스페이스いいね1コメント0
천수경
4.5
영화는 훌륭하지 않다. 카메라는 게으르다. 감독의 자책은 성의가 없다. 하지만 나는 많은 이들이 이 영화를 봤으면 좋겠다. 박건호의 삶은 우리 사회의 중요한 단면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통계나 기사만으로는 알기 힘든 세세한 풍경들이 담겨 있다. 다큐라는 장르가 종종 그렇듯 이 영화는 예술과 저널리즘의 영역 둘 다에 속한다고 느꼈다. 사채업이 돌아가는 구조나 거기에 진입하는 이들의 상황, 개인정보 거래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 시재(=일수꾼이 쩐주에게서 빌리는 돈) 등의 존재는 눈을 뗄 수 없게 흥미롭다. 이것들은 전부 ‘흥미로워’선 안 된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고 그 어느 때보다도 대상화에 대해 열심히 생각했다. 애초에 모두가 다각도에서 잘 알고 있는 것이라면 ‘전시’될 일도, ‘포르노’가 될 일도 없다.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의 협소한 단면만을 소비하는 행태가 폭력이기 때문에 대상화를 지양해야 한다. 이 영화가 담은 모든 문제-특히 가난-에 대하여 사람들이 더 자세히 알도록 카메라가 기여하는가를 질문했을 때, 그러하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 영화의 편에 설 수 있다. 내가 흥미롭다고 느꼈던 많은 디테일들은 어쩌면 진즉 우리가 알고 있어야 했던 것들이다. 한 명이 아니라 수백만 명이 도박에 빠지는 거라면, 이건 구조의 문제다. 왜 저들은 다른 것 대신 도박을 선택하게 되는가. *<뉴욕타임스>는 2022년 3월 7일 관행을 깨고 우크라이나 이르핀에서 러시아의 공습으로 사망해 길가에 쓰러져 있는 일가족 얼굴이 담긴 사진을 1면에 게재했다. 피해자의 프라이버시보다는 전쟁 희생자의 모습을 직접 묘사함으로써 전쟁의 처참함을 알리는 일이 더 큰 선이자 더 공적인 애도의 방식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시사인 2022.12.6- “배달하는 사람들 95%는 도박할 걸,” “사장님, 저도 배달 대행업체 했어요, 하다가 망했어요” 따위의 대사들로 유추할 수 있는 건 도박이 우리 사회의 가난과 가까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배달업은 가진 게 몸뚱아리밖에 없다고 느끼는 사람이 쉽게 종사할 수 있는 분야다. 다만 비율의 문제라서 충분히 돈 잘 버는 사람들도 도박에 빠진다. 극중 월급이 들어왔는데도 10만 원밖에 안 갚은 CJ 연구원은 총 서른아홉 군데의 사채를 쓰고 있었다. 도박에 빠진 이들을 비웃기 전에 주식하는 K-직장인들을 생각하게 된다. 대한민국에서 아는 사람 중에 주식이나 코인으로 돈 잃어본 사람이 한 명도 없다면 아마 땅굴에서 지내고 있을 확률이 높다. 그보다 낮은 곳에서 한탕 노리는 게 도박이다. 주식이나 코인과는 다르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어느 계급에 속하든 추구하는 삶의 조건은 다 거기서 거기고, 집값은 어디든 비싸고, 낮은 처지에서 큰 걸 꿈꾸려면 더 많은 리스크를 거는 것은 당연하다. 주식이나 코인과 다른 점은 마치 게임처럼 좀 더 유흥적이라는 점인데 (스포츠 도박은 실제로 경기 관람을 수반하고), 여가시간이 한정된 이들에게 투자와 게임이 합쳐지는 건 가성비 측면에서 필연적일 것이다. 박건호는 너무도 다양한 도박에 돈을 꼴아박는 듯한데 실은 정확히 어떤 것들인지 가늠도 안 된다. 그 부분을 감독은 최소한으로 담는다. GV를 듣고 나니, 본인이 보기 힘들었던 장면을 (거의 전부였던 것 같지만) 많이 쳐낸 것 같다. 의도와 무관하게 결론적으로는 더 윤리적이라고 생각한다. 도박에 빠져서 모든 걸 잃는 과정보단, 도박에 쓸 돈을 버는 데에 화면이 대부분 할애되니까. 이 영화는 감독의 의도보다 우위에 존재하는, 그러니까 감독의 의도를 넘어서는 사료로써 의미가 있는 작품이라고 느껴진다. 2회차 소감인데 아직 마음을 완전히 정한 것은 아니다. 감독은 박건호를 만나는 게 너무 괴로운 나머지 영화도 파일로 전달해줄 예정이라고 한다. 화면으로 만났을 관객들보다 훨씬 더 큰 규모의 혐오감을 느꼈을 거라 짐작해본다. 혐오감이라는 단어로는 다 형용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이었으리라. 감독(이자 카메라맨)이 박건호와 웃으면서 대화하는 장면들도 있다. 둘 사이엔 친밀감이나 애착 같은 게 분명히 있다. 처음엔 웃으면서 봤다. “저도 너무 힘들어요,”라며 애원하는 사채업자라니. 그것도 10만 원, 20만 원씩 받기 위해 끊임없이 전화를 걸다니. 흡사 미련 남은 애인 같다. 상대가 마음 떠날까봐 조심스럽게 회유하는 모습도 웃기다. 그러면서 본인도 빚이 산더미라 사채업자의 전화를 받는다. 곧 갚겠다고 서글서글하게 설득한다. 그가 채무자들에게 제일 자주 하는 말은 “내일 꼭 전화 주세요,” “이따 전화 드릴게요,”다. 그는 그들과의 마지막 통화에서 언급된 것들을 엑셀 파일로 정리해놓기까지 한다. 절대 험악해지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신뢰를 유지하는 데에 엄청난 에너지를 쓴다. 어떤 일에 오래 종사한 사람 특유의 자신감과 말솜씨도 관전 포인트다. 부산에 그가 일 잘한다고 소문이 나서 조폭의 일꾼으로 스카우트되었을 때는 진심으로 응원하게 되더라. 역시 사람은 자기가 잘 하는 걸로 먹고 살아야지! (불발되었을 때 내가 더 실망했음). 박건호는 영화의 주인공으로 손색없을 정도로 쇼맨쉽이 있다. 심지어 자꾸만 자기 꿈이 영화 감독이 되는 것이라고 해대니 영화를 끝까지 봐야만 했다. (그만 보고 싶은 순간들이 많았다). 그가 캠핑카를 사서 전국을 일주하며 대부업을 하는 꿈을 말할 때 꽤나 일리 있는 꿈이라고 생각했다. 상기된 박건호는 행복해 보인다. 실제로 채무자들은 전국 곳곳에 있으니, 싱어송라이터나 전국투어를 하는 밴드 만큼이나 사채업자에게도 캠핑카는 적절한 이동수단일 테다. 전기세를 안 내서 전자레인지가 돌아가다 만다. 그런데 에어컨은 멀쩡히 나온다. 혼자 천재적인 생각을 했다는 듯 에어컨 콘센트를 뽑고 거기에 전자레인지를 돌려본다. 전자레인지는 또 꺼져서 헛웃음과 함께 쌍욕을 뱉는다. 콘센트 구멍의 문제가 아니라 기기 개별로 쓰이는 전력의 문제였을 것이다. 관객들은 웃었다. “전기세는 내야겠다,”고 하는 그의 궁색함이 시트콤의 한 장면 같았다. 그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박건호는 어쩌면, 이 모든 게 하나의 영화가 되고 이야기로써 존재할 수 있는 거라면, 어떻게 되든 좀 괜찮은걸까. 노잼이 예상되는 소개팅을 나가기 전에 “너희 만나서 풀 썰을 위해 한번 다녀올게,”라고 말하는 사람의 마음처럼. 그런 거라면 감독이 그의 인생을 망친 게 아닌가 하는 자의식 과잉스러운 자책을 느끼는 게 합당한 걸 수도 있겠다. 내가 박건호나 감독의 마음을 알진 못하겠지만. 어쨌든 박건호는 자신이 찍히고 있다는 사실을 크게 개의치 않는다. 감독에겐 “너 진짜 좋은 형을 둔 거다. 이러다가 좆된 걸 내가 몸소 보여 줬으니까!”라고 한다. 마치 타산지석으로써 만족한다는 듯. 그 모습은 너무 기이한데, 그가 자꾸만 죽어야겠다는 말을 해서 그저 다 그럴 수 있겠거니 했다. 영화 말미에 그가 강아지를 키우게 된 장면이 나왔을 때 몇몇 관객들의 탄식이 들려왔다. 본인 몸도 건사 못하면서 무슨 생각으로 쟤를 데려온 거지, 라고 다들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고 6개월 후에 강아지가 즐겁게 뛰어노는 장면이 나온다. 박건호는 빚을 다 갚고 새로운 사업체를 차린 상태다. 물론 도박을 그만둔 건 아니라서 그는 여전히 영화 초반이랑 크게 다를 바 없는 상태-여기저기 돈을 빌리는 상태-로 영화가 끝난다. 나는 그가 빚을 다 갚은 상태와 원상태로 복귀되는 지점 사이의 기간이 인상 깊은데, 그가 인생이 너무 재미없다고 하기 때문이다. 그가 묘사하는 루틴 잡힌 일상은 지루하다. 재영이 데리고 다니면서 오만 고생 다 하고, 갑자기 뜬금없이 사기당해서 얼떨결에 보이스피싱 피해자 돈 찾아준 사람 되고, 친구랑 싸우던 나날들이 그리워 보이기까지 했다. 마치 영화 <허트로커>에서 더 이상 참전할 전쟁이 없는 군인이 한없이 심심해졌듯이. 그는 도박뿐만 아니라 도박에 수반되는 그 모든 고통에 중독된 것이었을까. 처음 봤을 때도 내내 생각했지만, 나는 박건호가 유튜버가 되었으면 좋겠다. 딱 이 영화에서 하듯이 그냥 “채무자한테 개지랄하기 꿀팁” 늘어놓고, 가족 썰 같은 거 풀고, 친구들이랑 술 마시면서 뻘짓하는 걸 팔아서 돈을 벌었으면 좋겠다. 자기를 똑바로 바라볼 수조차 없는 감독의 손을 빌리지 말고 스스로 카메라를 잡았으면 좋겠다. 그가 명절에 놀러 온 조카들에게 세뱃돈을 주기 위해 친구에게 돈을 빌리는 사람이라서다. 전주에 있는 놈 잡으러 갈까, 군산에 있는 놈 잡으러 갈까, 하다가 군산에 바다가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는 사람이라서다.
동구리
3.5
사갈은 뱀과 전갈이라는 뜻으로, ‘남을 해치거나 심한 혐오감을 주는 사람’을 뜻한다.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것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자막으로 시작해서 "이 영상이 내가 만드는 마지막 다큐멘터리였으면 좋겠다"는 자막으로 끝난다. 감독이 오랜만에 만난 영화과 동기인 박건호는 도박에 빠져 있는 사채업자다. 이 영화는 156분 동안 박건호와 그 주변 인물들의 끝없는 실패를 담아낸다. 사채업자라곤 하지만 그가 수금해야 하는 돈은 꽤나 작은 돈이다. 100만원 이하의 작은 돈들은 불법도박으로, 돌려막기로, 또 다른 샛길들로 사라진다. 이는 사채를 쓴 채무자 뿐 아니라 박건호 본인에게도 해당하는 말이다. 그는 수금한 돈을 자신의 사업이나 빚을 갚기 위해 쓰기보단, 돈이 생기는 족족 불법도박에 사용한다. 그야말로 대책없는 상황이 끝없이 이어진다. 이동우는 박건호가 빠진 무간지옥에 자신의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전작 <셀프-포트레이트 2020>의 주인공이었던 이상열이 영화 촬영 이후 조울증이 심해지고 구치소를 들락거리며 살고 있음을 이야기하며, 자신의 다큐멘터리가 헛된 희망을 심어준 것 같다는 죄책감을 토로한다. 그는 자신이 <사갈>이라는 영화를 왜 찍고 있는지, 박건호를 왜 찍기로 하였는지, 그는 왜 자신을 찍어달라고 했는지 생각해내지 못한다. 그는 그저 끝없이 반복되는 빚과 도박의 악순환에 놓인 한 사람을 찍고 있을 뿐이다. 그것은 카메라를 들고 있는 이동우 자신이 자신의 영화에 대해 떠올린 생각과도 같다. 박건호에 대해 관객이 약간의 희망을 볼 때면, 카메라는 어김없이 다시 추락하는 그의 모습을 담아내고 보여준다. 이 영화는 그 지옥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대상과 자신에 관한, 한없이 솔직하고 끔찍한 자기반성이다. 이동우의 전작들과 비교하면 이번 영화에서 그의 얼굴이나 목소리는 좀처럼 등장하지 않는다. <사갈>의 이미지와 사운드에 이동우 감독 자신의 자리가 마련될 필요가 없다. 대신 그는 자막을 통해 말한다. 카메라가 향하고 있는 대상과 자신이 우정의 동행을 이어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자신의 판단을, 카메라를 통해 비극의 연쇄를 벗어날 수 없음을 자신에게 말하는 것이다. 그것이 남기는 질문이 영화가 끝난 뒤에 맴돌고 있다.
deok
4.0
그냥 리얼한 사채업자 사채중독자의 생 삶을 보여주는… 영화를 보고 나서 주인공이 아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이 시대의 한 단면을 잘라 보는거 같았다
So Hee Kim
4.0
찍는 자의 윤리와 비윤리적인 자들의 도덕. 마치 <파벨만스> 속 스필버그와 <킬러들의 도시> 속 인물들이 마주한 듯이.
조성호
4.0
이동우 감독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 다큐멘터리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감독님 인생에서 불현듯 누군가를 만나서 그 인물을 찍고 싶다는 생각이 들때! ’인물’ 트릴로지를 완성해주시길 기대할게요. 서울독립영화제2022 장편경쟁6
김태연이
4.0
그 '적은' 돈 그 '적'은 돈 <제11회 무주산골영화제>
이동윤
3.5
피사체를 찍는 딜레마를 너무나도 솔직하게 표현하고 있어 멋있음
Meltingbrain
4.0
어쩌다보니 이동우 감독의 작품을 다 봤다. 처음 본 건 '셀프-포트레이트'. 의식의 흐름 개그를 좋아하지만 그걸 3시간 동안 듣는 건 솔직히 고문이었다. 하지만 그다음이 궁금해서 뛰쳐나갈 수 없었다. 그 이후 '노후 대책 없다'를 보았고 올해 인디 피크닉에서 '사갈'을 보았다. '사갈'은 전작 '셀프-포트레이트'의 연장선에 있는 듯하다. 그리고 닮은 구석이 많다. 감독의 각 작품 주인공은 특이하다. 평범하게 산다면 평생 말 한번 섞을 기회가 없을 사람들이다. 그래서 '사갈'을 봤다. 의식의 흐름 대화법와 긴 상영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사갈의 주인공은 도박에 중독된 사채업자이며 그의 1년여간 기록을 보여준다. 처음엔 수더분하고 성격 좋은 사람으로 보였다. 점점 자신의 민낮을 드러내면서 자조적이고 후회가 섞인 말을 자주 했다. 한때 영화인을 꿈꾸던 사채업자는 돈을 많이 벌어 영화를 제작하겠다고 하지만 채무자가 돈을 보내면 도박으로 다 날린다. 그의 삶은 이런 악순환의 반복이다. 이번 다큐에서는 감독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감독의 개입은 자막으로 처리했다. 감독은 본인 다큐에 사채업자를 이용하고 있고 점점 나락으로 보내는 것 같아 한동안 연락을 끊고 양심의 가책을 느껴 작업 중단까지 선언한다. 사채업자에서도 본인에게서도 사갈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다큐는 날짜까지 보여주면서 일기처럼 매일매일의 일상을 보여주다 점점 날짜의 텀이 길어진다. 첫 촬영일에서 1년여 이후 사채업자는 여전히 도박에 중독된 사채업자였다. 벗어나고 싶다고 말은 하지만 변한게 없다. 하지만 눈빛이 달라져 있었다. 마지막 채무자를 설득하는 장면에서 본인도 출구없는 삶을 살면서 채무자의 미래를 걱정하며 충고를 한다. 내 귀에는 본인이 듣고 싶은 말, 본인에게 하는 말처럼 들려 짠한 마음이 들었다. 상영 후 정성일 영화평론가와 감독의 GV가 있었는데 거의 12시까지 진행했다. 정성일 평론가의 GV는 처음이었는데 시간 단위로 분석하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다큐 제작 중단까지 선언했던 감독에게 극영화를 제작하라는 압력으로 마무리하셨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이 감독의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 인디 피크닉 2023 인디스페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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