君たちはどう生きるか
君たちはどう生きるか
2023 · アニメーション/アドベンチャー/ファンタジー/ドラマ/ファミリー · 日本
124分 · G


母を火事で失った11歳の少年・眞人(マヒト)は父・勝一とともに東京を離れ、和洋折衷の庭園家屋「青鷺屋敷」へと引っ越してきた。軍事工場を営む豪放な父と、新たな母親となった、亡き母の妹・夏子に複雑な感情を抱く眞人。新しい学校では初日から喧嘩をしかけられ、自ら石で頭を打ちつけて血を流す。そんな孤立して家にひきこもる眞人の前に、青サギと人間の姿を行き来するサギ男が現れる。敷地の奥の森にある謎の石づくりの塔、本を読みすぎて姿を消してしまったという青鷺屋敷の主・大伯父、眞人を見守る7人の老婆たち……。時間と空間がゆがみ、夢と現実が入り混じりながら、眞人はサギ男に導かれて、生と死が混然一体となった世界へと足を踏み入れ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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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훈남
5.0
우리는 아득한 시간과 장소를 여행하며 탑을 쌓는다. 그곳엔 풍요와, 평화와, 아름다움이 가득하기를. 졸다가도 황홀스러운 꿈을 꾸게 될 영화. ”우리는 다들 굶주릴 수밖에 없어. 그래서 날아올랐지. 더 높이 날기 위해. 계속해서 날갯짓을 하기 위해. 새로 태어난 아이는 나는 법을 몰라.” 지브리는 늘 우리가 보고 싶었던 것만 보여주었다. 제목만 봐도 그렇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하울의 움직이는 성>,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관객들로 하여금 그들이 보기 쉽게, 영화의 인물이나 내용을 제목에 드러내곤 했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하야오가 ’우리가 보고 싶은 것‘이 아닌, ’그가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담아낸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히토의 어머니가 사랑하는 마히토에게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었던 그 의미처럼. 그는 그림 그리는 것을 사랑했고, 영화를 사랑했으며,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을, 그리고 그의 애니메이션을 봐주는 모든 사람들을 사랑했다. 이 영화는, 그런 사람이 우리에게 남긴 선물과도 같다. “모든 왜가리는 거짓말쟁이라고 왜가리가 그랬어. 이 말은 진실일까, 거짓일까?” ’살 것인가‘라는 표현에 대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살아갈 것인가‘ 혹은 ’살아남을 것인가‘ 어쩌면, 전부일지도. i)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마히토는 갑자기 나타난 여인을 자신의 모친으로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고개 숙여 인사하는 예의를 갖추다가도, 속으로는 벽을 세우고 있는 태도가 우리들의 일반적인 모습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그녀를 찾기 위해 노력한다. ’아버지가 사랑하는 여인‘이어서가 아니다. ’가족에게서 도태되었다‘는 그녀를 향한 동정심과, ’행복을 공유해야 하는 가족관계의 필요조건‘이라는 마음가짐. 모두 ’앞으로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필수적인 요소들이었기에. “이 세계가 아름다운 세상일지, 추악한 세상일지 너의 손에 달려 있다.“ ii)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마히토는 늘 무기를 손에 쥐게 되지만, 결국 그 어떠한 살생도 저지르지 않는다. 자연적으로 그에게 발생한 ‘죄악의 기회’를 거부한다. 어서 자신을 죽여달라는 펠리컨의 간곡한 요청에도 그는 가만히 있었다. 이처럼 마히토에겐 일말의 악의조차 찾을 수 없다가도, 계속해서 보이는 그의 이마에 난 ‘흉터’는, 분명 그의 비겁한 악의에서 비롯되었다는 걸 알 수 있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악의의 순간’에 마주하게 되고, 그럴 때마다 타협하며 죄를 저지르고, 이후 후회하거나 좌절하게 된다. 그럼에도 우리는 남은 삶 앞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저지르지 않을 수 없고, 품지 않을 수 없는 ‘악의’ 앞에서 조금이나마 초연해질 수 있기를. 결국 때타지 않은 돌들을 만지지 않는 마히토처럼. ”이 상처는 내가 만든 거예요. 내 악의의 증거죠. 전 그 돌을 만질 수 없어요.“ 머리에 난 상처는 지워지지 않고 흉터로 남는다. 그 곳에 새겨진 흉터는 머리로 덮어 충분히 가려질 수 있지만 영화 내내 우리는 마히토의 흉터를 보게 된다. 왜 하야오는 우리에게 그것을 보여주고 싶었을까. 그 흉터는 끊임없이 강조된다. 살면서 안 날 수 없는, 흉지지 않을 수 없는 그 흉터를 보며, 우리는 그것에 초연하며 어떻게 그 흉터를 갖고 살아가야 하는지 알게 된다. 그 흉터를 계속해서 보면서, 아이러니하게도. “마지막 파도가 온다. 저 파도가 지나가면 평안해지지.” 잔잔한 바닷결에 묵직한 파도가 출렁인다. 사운드트랙은 과하지 않으며 영화의 모든 부분들은 절제되어 있다. 인물들의 내면 묘사는 감정선을 흘러 넘치지 않고, 바람에 흔들리는 숲의 풀밭들은 거세지 않고 평화롭다. 우리는 잔잔하게 움직이는 바다 앞에서, 가끔씩 밀려오는 묵직한 파도에 집중하게 된다. 그런 순간이 있다. 파도가 철썩이고, 바닷물의 표면끼리 부딪치는 그 순간에, 이 영화는 우리에게 질문한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이 영화의 명장면 📽️] 1. 태어나는 것들 우리는 모두 태어났다. 기준은 항상 ‘태어난 시점에서부터’ 지정되는 것이다. 하지만 저토록 귀여운 와라와라들은 아직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이 아니었다. 그리고 날아올라, 태어나러 간다. 태어나서, 뭔가를 경험해볼 수 있고, 또 다른 뭔가를 느낄 수 있다는 건 분명 좋은 일이었다. 그러나 ‘바다에 먹을 수 있는 물고기가 많지 않은 이 저주의 바다’에서의 펠리컨들에겐, 지금이 유일하게 좋은 순간이었다. 그들은 와라와라들의 비상을 방해한다. ‘태어나기 이전의 고난에서의 자연적 흐름’에 헷갈려하던 그 때, 히미가 등장한다. 펠리컨들은 불타서 하늘에서 폭발한다. 나는, 이 때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것만 같았다. 기쁘지 않아도, 자연스럽다가도, 이런 아름다움은 처음 겪는 것이었으니까. “얘들은 성숙해지면 날아가지.“ ”다들 어디로 가는 거죠?“ ”태어나는 거야. 너가 왔던 곳으로.“ 2. 무너지는 탑 또 하나의 세상인 탑이 무너져 내리지만 그것에 아쉬워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곳은 누군가에겐 가족으로서 인정받지 못 해 선택한 도피처였고, 누군가에겐 재앙이 닥칠 걸 알고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겠다는 굳은 결의였으며, 또 다른 누군가에겐 뚜렷하게 알지 못 했던 삶의 방향을 알려주는 소중한 곳이기도, 결국 잊지 못 할 아름다운 ‘기억’이 되어주는 곳이기도 했다. ’기억이 나기에’ 그곳의 붕괴는, 아무도 괴롭히지 않았다. 하물며 정신없이 날갯짓을 하는 모든 생물체들에게까지도. ”불은 무섭지 않아. 널 낳는 건 좋은 일이잖아.“ 마히토의 흉터는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그는 우리에게 더 이상 흉터를 보여주지 않는다 그것은 더 이상 보여줄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잊어버려, 보통은 다 잊어버리거든. 점점 잊어버릴 거야. 그러면 돼. 잘 있어, 친구여.”
Joopiter
4.0
빨리 제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려주세요. 감상후 사실, 아직도 어떻게 살아야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대처럼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힝흥행
4.0
메시지가 없다고 해서 안좋은 영화가 아니다. 친절하지 않다고 해서 안좋은 영화가 아니다. 라고 하더라도 의외로 이 영화는 꽤나 직선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는데, 전달하는 방법이 결코 상냥하지는 않다. 제목은 직설적이나, 뭘 가르치려고 드는 영화는 아니다. 마치 흐르는 물이 되어 타인의 꿈을 들여다보는것처럼 구성되어있는데, 이는 나우시카나 하쿠처럼 일어나는 일들에 항상 답을 갖고 있는 인물들이 아닌 상황과 감정에 이끌려 나아가는 인물이 주인공으로 설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흐르는 꿈같은 이야기에서 여느 영화가 그렇듯 일어나는 일련의 일들에 대한 주어져야할, 주어지기 쉽상인 왜? 라는 질문의 답의 분량은 극도로 자제되어 있다. 다분히 의도 되어지고 있다고 보는데 이 영화에서 말하듯 탑을 쌓는건 쌓는 이들의 몫이지 탑이 되는 돌멩이들의 역할이 아니라는것이다. 일상속의 인사처럼 된 MBTI는 난 ~니까 ~이지, 라고 나 자신에 관해 단정을 내리고, 나 자신의 행동을 정의하기에 편한 세상이 되었다. 한 신념에 사로잡혀, 세상을 그 신념에 준하는/반하는 것으로 나누는 이분법적 사고가 팽배해진 세상이 되었다. 너무나도 쉽게 휩쓸리고, 쉽게 성을 내며, 쉽게 열었던 입을 쉽게 닫는 세상이 되었다. 영향력이 절대적인 리뷰어나 평론가의 단상이 정답지로 여겨지며 그 정답지에 맞춰 본인의 생각을 끼워맞추고 흡족해하며, 개인의 감상이나 생각을 정리하기도 전에 나무위키와 유튜브로 영화에 내재되어있는 의미를 끄집어내고 정답을 찾아내려하는, 낼 수 있는 편한 세상이 되었다. 물론 그런 정답이 필요한 영화가 있고, 각자의 정답을 찾는것이 중요한 영화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 영화는 분명한 후자에 해당하지 않을까. 각자의 생과 삶은 흔들릴때도 있고, 무너져 비참할때도 있고, 정교하게 놓여져 눈물나게 반짝일때도 있다. 그 모든 저마다의 순간의 모여 인생이라는 탑이되고, 인생이 모여 역사가 되고 역사가 모여 지구본이 된다. 지구는 돌아가는 방향이 일정하지만 지구본은 저마다 마음먹기 나름의 방향으로 돌아간다. 마음먹기 나름인것이다. 인생이라는 이름의 탑이 어떤 모양이 될지는 탑을 쌓는 이들에게 달려 있으며, 무너뜨리는것조차 탑을 쌓는 이들에게 달려있다. 애매모호하고 흐릿한 모든 위태로운 꿈속에 하나 확실한건 느려도 좋으니 쉴새없이 쏟아지는 파도에 연약하게 휩쓸리지 말고 본인만의 탑을 쌓아가야 한다는것이다. 본인만의 방향을 가져야 한다는것이다. 불친절하고 몽롱하고 흐릿하면서도 동시에 뚜렷하며 끝내 따뜻한 편지지는 많은 이들을 감명시키긴 어려워 보이나 누군가에게는 확실하게 닿는 지점이 있다. 이 영화에 관한 수십가지 변명이 떠오르는 날 보며 이 영화가 나한테는 좋았구나 싶다. 내가 대단해서가 아니라 그냥 나한테는 좋았던것 뿐이다. 나는 이렇게 살아가련다.
진도언
4.0
ネタバレがあります!!
주변인
1.0
술 취하면 했던 이야기 계속 하는 사람 보는 기분
이동진 평론가
4.0
미야자키 하야오의 최고작이 될 순 없어도 그의 예술의 총결산이 될 운명을 품은 역작.
koowgnoj
5.0
그는 항상 우리에게 영화를 통해 해결책을 제시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저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인생을 살아가는 이정표에서 도움이 될만한 돌 한조각 정도를 주머니에 살며시 넣어줄 뿐이다. 우리는 영화관에서 나오며 주머니에서 만져지는 돌의 존재를 느끼며 꺼내 깊은 맘 속에 하나 씩 쌓아온 것이다.
혜빈
1.0
아이고 할배요, 내 알아서 살랍니더. 비유와 상상으로 세상을 돌아보고 미래를 걱정하던 내 다정한 미야자키 하야오가 사이비 종교에 귀의한 거 아니면 노망난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난해한 세계관을 뱉어내는데… 현실 배경은 한 술 더 떠서 태평양 전쟁 중의 군수공장 사장님댁. 왓챠에 쏟아지는 철학적인 찬사들이 좀 무서울 정도다. 정말 나만빼고 다 그 심오한 의미를 깨달은건가… 작화가 어쩌고 은퇴작이고 어쩌고 떠나서 내사랑 지브리를 뺏아간 죄로 별점을 더욱 감점한다. 그대들은 어떻게 이런 영화를 지브리 딱지 달아서 팔아치울 수 있는가. 반박하지 마세요 성질났으니까. 마치 어릴때부터 좋아했던 아이돌 오빠를 사회면 기사에서 보는 기분이야. (2023.10) 누구든 살아온 삶, 중요한 가치, 지식과 감성 등에 따라 같은 영화를 다르게 볼 수 있습니다. 누구에게도 영향받지 않고 평을 남길 권리도 있죠. 메시지가 뭔지조차 알아볼 수 없는 이 심각한 서사구조, 더 정확히는 그의 작품에서 내가 가장 뛰어나다고 생각했던 점에 대한 아쉬움의 평인데 자꾸 날더러 오해했다느니 감독이 사실은 반전주의자라느니 하는 사람들을 보면 되묻고 싶은게 오히려 많지만… (eg. ‘반전주의 감독 작품에는 실망할 수 없는건가요?’, ‘여러분은 이 영화가 반전영화라서 좋아하시나요?‘, etc.) 여러분이야말로 제 감상을 오해하셔서 안타깝습니다. 사실 안타깝기보다 꽤 불쾌합니다. 제 포인트는 전혀 반전에 있지 않고, 감독도 영화도 미워하지 않고, 다른 유저들의 코멘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도, 고쳐주고 싶지도 않습니다. 제 평가와 안목이 남들보다 낫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제 평가를 수준낮게 보시고 공부좀 하라는 투의 평을 하시는 분에게서도 저보다 딱히 우월한 점은 찾지 못했습니다. 말씀하신대로 제가 훗날 이 영화를 다시 보고 다른 생각을 가질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렇더라도 지금의 제 감상이 틀렸다거나 취소해야한다고 생각하지 않을겁니다. 왜 그렇게 남의 생각을 조종하지 못해서 안달이신가요. 당신의 오지랖에 생각을 바꿀 사람은 거의 없을겁니다. 그것도 팬심의 일부인가요. 저도 꽤나 미야자키 하야오의 팬입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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