楽日
不散
2003 · ドラマ/コメディ · 台湾
82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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今日で閉館という台北の古い映画館『福和大戯院』。その楽日(最終日)の巨大なスクリーンにはキン・フー(胡金銓)の傑作「血闘竜門の宿」が映し出されている。満場の観客席から喝采が沸きあがっていたのも今は昔。観客席にあるのはまばらな人影だった。その中に真剣にスクリーンを見つめる観客の姿があった。往年の映画スター、ミャオ・ティエン(苗天)とシー・チュン(石雋)。彼らは「血闘竜門の宿」の主演男優でもある。万感の思いを込めてスクリーンを見つめるシー・チュンの目に光る涙。しかしここには、別の『映画ファン』たちも出没していた。観客席を包む闇と光と大音量にまぎれて、『神聖なる集い場』と化した男子トイレの中や薄暗いバックヤードでは、男たちの怪しい人間模様が繰り広げられる。その一方で、孤独に打ちひしがれた男の背後には女幽霊が現れ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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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미인
3.0
추억다오 나는 추억거지 극장의 너른 옥상, 난 서울에서 여기가 제일 좋더라. 우리 헤어지면 일년 후에 여기서 다시 만날래? 그러자. 헤어진 날짜를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 여러해 살다보니 참 멍청한 말 많이 했다. 여자가 절룩이면 생의 고단함에 나도 잠들고 다시 보면 생계를 스스로 해결하는 사람만이 가지는 품위에 눈이 떠지고 다시 졸고... 보다 잔 영화는 아무 말도 적지 않지만 그냥 이 영화는 내가 자면서도 별일 없이 무탈해뵈여서 구조의 의미는 시간의 지연이라는 말, 좋아하는 문장, 구조체의 목적은 시간을 지연시키다 결국 허물어지는 것이라고. 낡았지만 기품있는 건물, 허물어질 극장, 예전의 건축가는 모든 곳에 신이 있다 믿어서 완벽한 엄격함을 요구했다지. 저 여자와 닮았네. 산동네의 오르막, 포대기에 아이를 업고 걸어가는 여자를 본적이 있다. 아이를 받친, 뒷짐진 손에 걸린 검은 비닐 봉다리가 뱅뱅 돌고 있어서 나는 뒤에서 멍하니 그걸 보며 걸었다. 과자가 들었나. 장난감일까. 생각하다보니 설핏 나를 지고 가는 우리 엄마 같아서, 그렇게 잠에서 깨었다.
다솜땅
4.0
경기도 용인. 처인구의 한 복판에. 예전..회성극장이라고 있었다. 에어컨에서는 곰팡이 냄새가 나고, 냉기의 조절이 안되어 영화볼때면 추위에 떨곤 했다. 영화관 대형 실외포스터는 늘, 신출내기 화가가 그리던 조악해보이던 그림들이..., 가끔은 대학생들의 공연장소로 대여되던 그 극장이.. CGV와 롯데시네마에 밀려.. 언젠가 사라져버렸다. 지금은 다른 상점으로 사용되는 그 추억의 장소.. 이 영화를 만든 사람은 그걸 말해주는 것 같다. 추억하고 기억해야할게 또 있다고.. 마음속, 마지막이라는 애절함과 쓸쓸함, 이젠 추억만남게되는 그 장소가. 세월을 타고 들아가는 나 라는 사람의 세대에.. 기억하라고 그리워하라고... 말하는 것 같다. #무성영화인줄... #모두..수고 하셨어요. 이젠 새 시대에 맞겨주세요. #이문세의 조조할인!
kyo
4.5
사랑애 잔히 머물고픈 유령들에 관한 이야기. 추억은 언제나 묘연히 사라져만 간다.
Ordet
5.0
영화관에 관한 최고의 헌사인 차이밍량의 <안녕, 용문객잔> 예찬 2D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굳이 3D 안경을 쓰지 않고도 3D 영화를 능가하는 실감을 선사하는 영화가 있다면 믿으시겠는가. 아니 3D를 넘어서 거의 4D에 가까운 체험을 가능케하는 2D 영화가 있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 그 영화가 우리 모두에게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있지만 지금은 사라져버린 어떤 공간을 잠시나마 거닐고 있다는 생생함을 느끼게 해줄 수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지 않겠는가. 놀랍게도 그런 영화가 있으니 그 영화는 바로 차이밍량의 2003년작인 <안녕, 용문객잔>이다. 이 영화는 다음 날이면 폐관될 한 단관 극장의 마지막 상영 시간 동안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안녕, 용문객잔>이 곧 사라질 극장의 마지막 시간들을 보여주기 때문에 극장이라는 공간의 특수성이 부각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영화가 많은 관객들에게 큰 감동을 줄 수 있는 것은 이 작품이 비단 극장뿐만이 아니라 사라져가는 모든 공간을 떠올리게 만드는 보편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안녕, 용문객잔>은 사라져가는 모든 것들에 대한 헌사이자 송가인 셈이다. 2015년 1월 25일에 나는 <안녕, 용문객잔>을 보기 위해 전라도 광주에 있는 광주극장에 갔었다. 그날 영화가 끝나고 이 영화를 만든 차이밍량의 GV가 예정되어 있었다. 영화 속 복화극장과 꽤 유사한 모습을 지닌 광주극장에서 <안녕, 용문객잔>을 본다는 것은 이 영화를 너무 좋아하는 나로서는 결코 놓칠 수 없는 기회였기 때문에 나는 광주로 내려가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과연 이 영화를 광주극장에서 본 것은 정말 내가 영화를 봐온 이래 결코 잊을 수 없는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마침 그날은 영화가 끝나고 밖으로 나오니 비가내리고 있어서 <안녕, 용문객잔>의 엔딩 장면이 오버랩되며 감동의 영역을 현실로까지 확장시켰다. 정말 보기 드물게 신비한 순간이었다. 이렇듯 이 영화는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본다는 행위 자체가 무엇보다 중요하며 오로지 극장에서의 관람을 통해서만이 온전하게 이 영화의 경이로움을 체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특별한 작품이다. 이 영화에 보다 쉽게 접근하기 위해 우리에게 너무나도 친숙한 쥬세페 토르나토레의 명작인 <시네마 천국>을 떠올려보기로 하자.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극장을 다룬 최고의 영화로 평가받는 작품이다. '시네마 천국'이라는 극장을 중심으로 엔니오 모리코네의 주옥 같은 음악이 시종일관 깔리는 가운데 영사기사인 알프레도와 영화에 푹 빠진 토토와의 우정을 감동적으로 그리며 관객으로 하여금 저마다의 극장과 영화에 대한 추억을 일깨워준다. <시네마 천국>은 나도 매우 사랑하는 작품이며 이 영화의 엔딩에서 알프레도가 토토에게 남긴 키스 신들을 토토가 시사실에 홀로 앉아 보는 장면은 관객들도 토토처럼 감정이 북받쳐 울음을 참기가 힘들 정도로 감동적이다. <시네마 천국>에서 우리에게 가장 인상적이고 감동적으로 다가오는 공간은 물론 당연히 '시네마 천국' 극장이다. 영화 속에서 줄곧 '시네마 천국' 극장이 나오고 있으며 관객들과 관련되어 극장에서의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삽입되어 있다. 알프레도와 토토의 아름다운 우정도 주로 '시네마 천국' 극장 안에서 묘사된다. 이렇게 '시네마 천국' 극장과 관련되어 서사가 잘 구축되어 있기 때문에 영화의 종반부에 영화감독으로 성공한 중년의 토토가 폐관을 앞둔 '시네마 천국' 극장을 방문했을 때 폐허로 변해버린 공간을 보여주고 결국 그 극장이 폭파되어 사라질 때 관객들도 토토처럼 슬픔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 사실 잘 생각해보면 이 영화에서 '시네마 천국' 극장이 수도 없이 시각화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네마 천국' 극장은 온전한 물리적 존재감을 가지고 있지 않다. 무슨 말인가 하면 '시네마 천국' 극장은 알프레도와 토토의 우정을 감동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하나의 도구일 뿐 그 극장 자체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시네마 천국>에서 '시네마 천국' 극장은 서사에 종속되어서만이 의미를 가질 수 있다. 그런데 만약 이 영화에서 알프레도와 토토의 우정의 서사가 최소한의 흔적만 남긴 채 거의 사라져버리고 '시네마 천국' 극장 자체가 전면에 부각된다면 어떻게 될까. 그러니까 '시네마 천국' 극장 자체의 물리적인 존재감을 보여주는 게 영화의 주요 동력이 되고 알프레도와 토토의 이야기는 단지 '시네마 천국' 극장을 구석 구석 잘 보여주기 위한 보조 역할에 머물게 된다면 비로소 <시네마 천국>은 <안녕, 용문객잔>에 가까운 모습을 갖추게 될 것이다. 요컨대 <안녕, 용문객잔>은 통상적으로 서사에 종속된 공간을 해방시켜 오히려 공간이 서사를 압도함으로써 공간 자체가 영화의 주인공으로 탈바꿈한 작품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안녕, 용문객잔>은 일종의 실험적인 버전의 <시네마 천국>이라고 볼 수 있다. <안녕, 용문객잔>이라는 제목에 이 영화의 힌트가 숨겨져 있다. 이 영화는 무협 영화의 거장인 호금전의 1967년작인 <용문객잔>의 상영을 끝으로 문을 닫는 복화극장의 마지막 시간을 보여준다. 따라서 제목 자체에 이 영화가 <용문객잔>과 함께 사라질 복화극장에 관한 송가임을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이 영화에는 <용문객잔>에 출연했던 마오티엔과 시천이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관객으로 등장한다.(마오티엔은 차이밍량의 <하류>나 <거기는 지금 몇 시니?>에서 이강생의 아버지 역할로 출연했던 배우로 차이밍량이 <용문객잔>에서 그를 보고 자신의 영화에 그를 출연시킨 것은 아닐까 하는 추측을 가능케한다.) 영화의 말미에 시천이 마오티엔에게 "이제 우리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죠."라고 말하는데 이제 늙어버린 두 배우의 모습이 이 영화에 쓸쓸하고 애잔한 정조를 배가시킨다. <안녕, 용문객잔>은 차이밍량이 이전 작품인 <거기는 지금 몇 시니?>에서 이미 등장시켰던 복화극장이 곧 문을 닫는다는 사실을 알고 극장이 사라지기 전에 복화극장에 가서 찍은 영화이다. 현재 복화극장은 사라지고 없다. 복화극장의 모습은 오로지 이 영화 속에만 남아있다. 그렇게 본다면 <안녕, 용문객잔>은 복화극장에 관한 일종의 다큐멘터리라고 볼 수 있다. 이 영화는 시종일관 복화극장의 구석 구석을 철저하게 보여주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그리고 복화극장의 내부를 보여줄 때는 주로 딥 포커스 기법으로 롱테이크로 이루어진 롱 쇼트를 사용하는 전략을 취한다. 롱테이크를 사용함으로써 복화극장의 물리적인 존재감을 부각시키며 관객이 그 공간 속에 있는 인물이나 사물을 찬찬히 들여다볼 수 있게 만든다. 딥 포커스의 롱 쇼트는 공간이 인물보다 거대하게 보일 수 있도록 해주고 그로 인해 공간감이 더 두드러질 수 있게 만들며 공간의 디테일을 자세하게 볼 수 있게 해준다. 빗소리, 발자국 소리, 영사기 소리 등 현장감이 있는 생생한 사운드들은 이 영화에 현실감을 더해준다. 이 영화에는 대사가 거의 없다. 영화의 44분 지점이 되어서야 첫 대사가 등장하며 이후로도 극중 인물들은 몇 마디 대화밖에 나누지 않는다. 따라서 관객은 자연스럽게 영화를 보면서 온전히 복화극장이라는 공간 자체에만 몰두하게 되며 화면 속에서 들려오는 소리들이나 화면 속에 보이는 디테일들 하나 하나까지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 이러한 이미지와 사운드의 조합으로 말미암아 마치 3D나 4D 효과로 복화극장을 체험하는 것 같은 입체감이 만들어지게 된다. 복화극장의 내부를 효과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차이밍량은 이 영화에서 세 가지 서사를 작동시킨다. 하나는 파트너를 찾기 위해 극장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일본인의 서사이고 다른 하나는 영사기사(이강생 분)를 좋아하는 절름발이 여자 매표원(첸샹치 분)의 서사이다. 마지막으로 <용문객잔>에 출연했던 두 배우에 관한 서사이다. 이 세 가지 서사와 관련된 인물들의 발걸음을 따라가게 되면 관객은 자연스럽게 복화극장 내부의 곳곳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게 된다. 여자 매표원이 절름발이라는 설정도 멜로드라마적 정서를 강화할 뿐만이 아니라 관객이 복화극장 내부를 천천히 볼 수 있도록 유도하기 때문에 다분히 의도적인 것으로 보인다. 앞에서 얘기했듯이 이 영화의 서사는 일반적인 영화와는 다르게 공간에 종속되어 있으며 복화극장을 잘 보여주기 위한 하나의 도구로서 사용되고 있다. 영화에서 일본인의 서사와 여자 매표원의 서사가 교차로 진행된다. 영화의 도입부에서 이 두 명이 한 프레임 안에 같이 잡힐 때부터 두 가지 서사가 병치된다. 중간부터 <용문객잔>의 두 배우의 서사가 맞물리게 된다. 영화는 카메라로 극장 내부를 다양한 각도에서 나눠서 보여준다. 어떤 서사의 국면에 필요한 만큼만 프레임을 활용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그렇기 때문에 쇼트와 쇼트의 연결 사이에 긴장감이 넘친다. 인물을 소개하거나 등장시키는 방식도 제한된 정보를 제시하고 점진적으로 인물을 구체화하는 쇼트를 보여주는 식으로 편집되어 있기 때문에 서스펜스를 느낄 수 있다. 예를 들어 영사기사는 영화의 막판에서야 등장하고 <용문객잔>의 두 출연 배우도 처음 등장할 때 인물이 명확하게 보여지는 쇼트를 일부러 사용하고 있지 않아서 점차적으로 그 인물들을 확인하게 된다. 마치 무성영화처럼 진행되다가 44분 지점에서야 비로소 등장하는 이 영화의 첫 대사는 극장에서의 유령의 존재 유무에 관한 것이다. 그 대사에 걸맞게 차이밍량은 이 영화 속에서 복화극장을 마치 유령의 집처럼 보여주는 측면이 있다. 거대한 극장 안에 드문 드문 떨어져서 영화를 보거나 극장의 이곳저곳을 배회하는 소수의 관객들은 흡사 유령을 방불케한다. 그리고 영화 속에는 마치 실제로 극장 내에 유령이 존재하는 것처럼 절묘하게 이미지와 사운드를 활용하고 있는 장면들도 있다. 화장실 문이 갑자기 스윽 열린다거나 사람이 나왔는데 화장실 문이 다시 닫힌다거나 하는 장면이 있고 '딱' 소리를 내면서 견과류를 씹어먹는 여성(양귀매 분)이 프레임 안에 등장하는 방식을 통해서 그 여성을 마치 유령처럼 보이게 만들기도 한다. 이 영화 속에서 <용문객잔>에 출연했던 두 배우를 포함한 관객들을 유령처럼 보여주는 이유에는 중층적인 함의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먼저 사회적으로 존재 가치를 상실해가고 점점 유령화되어가는 극장이나 인물에 관한 논평이라고 볼 수 있다. 다음으로 오래전부터 실체없는 유령의 속성을 지니고 있다고 여겨져온 영화 자체와 연관된 메타성을 담보한 이미지라고 볼 수 있다. 이미 한 영화관에 관한 작품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안녕, 용문객잔>은 메타적인 성격을 갖고 있지만 영화 속에서 마치 영화 자체인 듯한 카메라의 시선이 등장해서 더욱 흥미롭다. 그 시선은 영화 속에서 상영되고 있는 <용문객잔>과 복화극장과 인물과의 관계를 통해 보여진다. 여자 매표원이 <용문객잔>을 볼때 <용문객잔> 속의 여협객의 눈과 여자 매표원의 눈을 번갈아가면서 보여준다거나, <용문객잔>이 점점 클라이맥스로 치달을 때 그에 맞물려서 극장 내부를 보여주는 쇼트들도 마치 <용문객잔> 속의 결투처럼 박진감 있게 편집이 되는 식이다. 카메라가 극장을 돌아다니다가 어느 순간 스크린 속으로 아예 들어가서 영화만 보여주다가 다시 밖으로 나오는 패턴을 반복하고 있다. 그건 마치 영화 자체가 주인공으로 존재하는 장면인 것처럼 느껴진다. 마침내 <용문객잔>의 마지막 상영이 끝나고 극장 안에 불이 켜지면 우리는 극장에서 난생 처음 압도적인 이미지와 마주하게 된다. 그 이미지를 보는 것만으로도 본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이니 말 다했다. 거대한 극장 안의 텅빈 객석. 그러나 이 텅빈 객석은 복화극장에 얽힌 무수히 많은 기억들을 품고 있다. 이 이미지는 온갖 상념들을 불러 일으키고 거의 4D 효과를 방불케하는 체험을 하게 하며 관객 각자의 마음 속에 깊이 새겨질 것이다. 그러나 극장이 문을 닫기 때문에 이 이미지는 이제 곧 사라질 것이다. 그래서 이 이미지는 너무 아프고 슬프다. <용문객잔>의 극장 영화 포스터 간판을 배경으로 비가 세차게 내리는 가운데 여자 매표원이 우산을 쓴 채 다리를 절룩거리며 쓸쓸하게 극장을 떠나고 있다. 마치 이 풍경을 아쉬워하듯이 영화 속에 처음으로 대중 가요가 울려퍼진다. '너무 많은 지난 날들이 내 가슴에 남아 있습니다. 때로는 아프고, 때로는 달콤하던. 세월이 지나도 잊을 수 없습니다...' 여자 매표원은 아마 그녀가 연모했던 영사기사를 다시 만나지 못할 것이다. 이미 그 일은 추억이 되었다. 비록 복화극장은 사라졌지만 삶은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살아가다가 불현듯 그때가 떠오르겠지. 그때 그녀는 과연 웃을 수 있을까. (긴 글을 읽어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Jay Oh
5.0
지나가버린 시간이 떠도는, 어느 공간. 언젠가 사라질 나의 공간. Wandering memories, waiting to be forgotten. Even knowing it'll pass, I love all of it.
JE
4.5
실패한 섹스, 전해지지 못한 마음, 하염없이 타들어 가는 담배, 잊힘의 눈물, 끝내 빛과 빗속으로 사라지는 사람들. 아무래도 굳게 잠긴 숏은 인물을 무력하게, 또 대신 공간감을 극대화 한다. 어긋나고, 마치 경계적인 프레임과 때론 단절적이기까지한 관계 위로 심지어 "유령이 산다"는 말까지. 아무것도 이어지지 못하는 가운데, 영화는 오직 공간과 정서만을 남긴 채 모든 걸 떠나 보낸다. 어떤 쓸쓸함, 상실감, 그러나 아름답기도 한 이 감각은 스트리밍과 vod에 떠밀려 가는 오늘날의 극장에도 다시금 유효해 보인다. 무엇보다 다른 어떤 강조 대신, 오프닝에서부터 관객을 '관객'으로 만드는 덕에, 영화가 마련한 정서는 그 조용한 장면들과 함께 이따금씩 살아나 스며들 것만 같다.
차지훈
5.0
영화관에서 누군가가 영화를 보는 모습을 촬영하는 영화가 세상에 존재했으면 좋겠다 생각했었는데 우연찮게 마주한 이 영화가 그 판타지를 완벽히 충족시켰다. 쥬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의 시네마 천국(1988)에서도 외형만 보여줬지 사실상 깊게는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다루진 않았다. 곧 사라질 영화관에 앉아서 영화를 보는 사람들을 연출하여 철저하게 관객을 경험시키며, 몰입시킨다. 마치 극장에 앉혀놓는 듯한 연출은 소름이 돋을 정도이다. 오감을 자극하지만 이를 증폭 내지는 극대화 시키는 영화는 생각보다 본 영화 중에 많지 않은데, 이 영화는 사뭇 달랐다. 아무래도 '서사'와 '대사'가 거의 없기 때문인지 소리,미각,후각적 심상등이 독창적으로 극대화되어 다가온다. 시시하게 이어갈 극을 신비롭고 비상식적인 인물들의 행동과 태도, 그리고 가벼운 필치이지만 현실주의와 초현실주의를 오가는 연출들이 압권이다. 사라져갈 극장에 신화적인 면모를 불어넣는 황당하면서도 몸에 전율을 일으키는 부분은 특히 이 영화의 묘미이다. 21세기에 이렇게 눅눅하면서도 아련한, 그러면서도 앙증맞은 영화가 존재한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며, 어떤 영화보다도 관객을 최대한 '체험'시킨다는 면에서는 반박할 여지가 없는 작품인듯 싶다.
리얼리스트
4.5
유령이 배회하는듯한 극장 사라지는 영화와 문화에 대한 아프고 아름다운 진혼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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